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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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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노도 해돋이를 보러 나갔지만, 수평선 위에 구름이 두텁게 앉았다. 겨울바다에는 파도를 나르는 세찬 바람과 바다 위를 떼 지어 나는 새떼 뿐이었다. 해도 떠오르지 않은 춥고 이른 아침에, 먹이를 구하기 위해 바람과 파도와 싸우는 새떼의 모습에서 비장함을 느껴 보았다. 솟아오르는 붉은 태양 대신에 생존을 위해 먹이를 구해야만 하는 새들의 비상을 보면서, 우리네 인생사를 돌아다보았다. 햇살이 퍼지고 구름이 걷히자, 바다는 망망한 수평선을 맑고 투명한 하늘아래 깔고 눕는다. 수평선 너머로부터 바람에 실려 떠밀려 온 물살들이 바위에 장렬하게 부딪힌다. 하얀 포말들을 허공에 뿌리고는 장렬하게 산화한다. 파도 잃는 바람은 나그네를 스치곤 땅 위로 고함치며 올라선다. 그 뒤로 또 밀려드는 질풍노도(疾風怒濤)! 疾風怒濤! 疾..
경회루 야경 경복궁 야간 개장(3p)
환구단의 봄 서울시청 근처에 갔다가 환구단을 찾았다. 환구단 주변의 나무들에 녹음이 깊어 겨울 분위기와 사뭇 다르게 보였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후, 제대로 된 가치관의 정립도 없이, 외형적으로만 치달아 온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환구단이 아닌가 싶다. 민족 자존의 자긍심은 현대식 빌딩들의 뒷골목에 묻어 버리고, 도시의 겉만 화려하게 치장하고는 세계 선진국으로 진입했느니 어쩌니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에게 과연 '정의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집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수한 사건 사고들에 온몸이 움츠려 들기도 한다. 믿을 곳이 점점 사라지는 현실에 공포감마저 일어나 잠자기 전에 현관문의 잠금장치를 확인하는 버릇까지 생겨났다. 별로 가진 것도 없이..
온통 꽃동네 "내가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이른 봄 풍경은 이미 지나고 여름 같이 무르익은 오월의 봄이 되었다. 해마다 이삼 월이면 남녘의 소리에 귀를 쫑끗 세우고 꽃소식을 기다리는데, 산길을 걷다 이름 모를 풀꽃을 바라봐도 감격하고 만다. 그러나 벌써 지천으로 널린 꽃에 무감각해져서는 웬만해선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사람 마음이 이토록 간사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욱 시세에 민감한 것은 우리나라 기후 때문인 것 같다. 몇 달 전, 겨울에 동남아 골프여행 갔다 오신 분 말씀이 그 쪽 사람들은 쉬 늙어 보인단다. 연세가 70이신데 그쪽 사람들은 50 정도밖에 쳐주지 않아 20여 년 젊어져서 보름동안 재미있게 지내셨다고 했다. 그러고 보..
윤삼월 그토록 춥고 지리하던 겨울 끝에 봄맞이한 것이 엊그제인데, 요즘은 한여름 폭염처럼 햇볕이 뜨겁다. 무더위 때문인지 벌써 뜨락의 영산홍도 제빛깔을 잃어간다. 머리가 아파 산책삼아 잠깐 뒷산에 올랐더니, 앙상하던 나목의 계절이 언제였나 싶게 녹음이 무성하다. 향긋한 숲내음과 이름모를 꽃향기가 진하게 퍼져왔다. 양지녘엔 벌써 아카시아 꽃이 떨어진다. 예년에 비하면 1주일은 빠른 듯 싶다. 오월하고도 중순쯤에 피는 아카시아꽃이 벌써 피었다. 일찍 피어야할 과수나무꽃은 추위 때문에 늦게 피었다고 한다. 자연도 순리대로진행되면 좋을텐데, 기후변화가 들쭉날쭉 변화무쌍해서 조금은 걱정스럽다. 자연도, 세상사 사람들의 일들도, 순리대로 때맞추어 풀려나갔으면 좋겠는데... 윤사월 박목월 송화(松花)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
앗싸, 새우깡! 새우깡 덕에 갈매기들과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이 녀석들은 새우깡 획득에 이미 익숙해진 듯, 거센 바람에도 연처럼 제자리에 머물면서 새우깡 던지기를 기다렸다. 공중에 던져진 새우깡을 다 받아 먹는 것은 아니었지만, 날쌔게 부리로 낚아채 입에 물었다. 챤스를 놓친 녀석들은 부럽다는 듯, 다시 새우깡이 던져지기를 애처럽게 기다렸다. 갈매기들에게 새우깡의 새우와 바다의 생새우는 어느 것이 더 맛있을까? "잘 봐! 새우깡은 이렇게 무는 거야." "에이- 아쉽다!" "뭐해? 또 던져 봐!" 새우깡에 길들어져, 사람들을 바라보면 새우깡만을 생각할 갈매기들의 타성처럼, 나 역시 세상사의 편견대로 하루들을 보내는 것 같아 깜짝 깜짝 놀래곤 한다. 그 동안 수차례 겪어보았던 자동차 회사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새 차가 ..
봄의 전령사- 노랑 동백꽃과 산수유 꽃 아침에 안개가 자욱하더니 오후에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바람도 없어 뒷산에 올랐더니, 봄기운이 완연하여 등에 땀까지 흘렀다. 겨울 자켓을 벗어들고 오솔길을 걸었다. 양지녘에 꽃망울이 맺혔던 생강나무에 노랑 꽃이활짝 피어 봄을 즐기고 있었다. 며칠 전 꽃망울이 부풀었었는데, 드디어 오늘 활짝 피어 올랐다. 더구나 꿀벌까지 날아 꽃에서 꽃으로 옮아 다니고 있었다. 봄바람 쐬러 나오신 산책객들의 옷차림도 가볍고 경쾌한 봄차림새였다. 뜬금없이 추위를 타는, 나만 두꺼운 다운 점퍼 차림이었으니 땀을 흘릴만 했다. 고목을 쪼는 딱따구리 소리도 경쾌했고, 이름모를 새소리도 새봄맞이 노래처럼 흥겹게 들려왔다. 활짝 핀 생강나무와 산수유 꽃을 바라보니, 마음 속에만 와있던 봄이 이젠 성큼 우리 곁에 찾아들어와 있었다...
환구단(2) 화창한 봄날씨에 마음까지 가벼워 잠깐 짬을 내서 환구단에 들렸다. 화창한 날씨와는 다르게 쌀쌀한 꽃샘 바람이 강하게 불어와 체감 온도가 낮았다. 지난 번에 갔을 땐 흐린 날씨여서 가뜩이나 고층 빌딩들에 에워싸여 움츠려든 것 같은 황궁우 모습이 안스러웠었다. 그래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늠름하게 촬영하고 싶었다. 시청 앞 프레지던트 호텔 주차장 골목으로 들어 섰는데, 골목길은 호텔의 이면도로답지 않게 어수선했다. 골목 끝 계단으로 환구단 경내로 들어섰다. 아침 시간이라 태양의 고도가 높지 않아서인지 황궁우는 고층빌딩의 그늘에 반쯤 가려져 사진 찍기가 쉽지 않았다. 햇살 따라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내나라에서 홀대받는 환구단을 보다 웅장한 모습으로 표현하려 했으나, 주변 환경 때문에 어찌 할 수 없었다. 골목..
기다림 남녘의 매화 소식에도 불구하고, 기별도 없는 봄꽃을 보기 위해 뒷산에 올랐다. 언제나 제일 먼저 꽃을 피우던 골짜기 양지녘 생강나무로 가서 꽃망울을 살폈다. 일주일 전부터 망울이 잡혔으나 별 차이가 없었다. 꽃샘 추위를 겪어서 그런지,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발걸음을 옮겨 타박타박 산길을 걸었다. 음지쪽에 꽁꽁 얼어 먼지만 폴싹이던 오솔길이 녹아서 질척거렸다. 봄은 언 땅이 녹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린 시절 얼었다 녹은 시골 진흙길을 요리저리 피해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까맣게 잊었던 이른 봄의 추억이 떠올랐다. 참으로 봄은 지루하게 찾아온다. 제법 풀린 날씨에 산길을 걷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양지녘에선 삼삼오오 무리지어 정담을 나누는 모습이 봄기운을 돋군다. 수북..
환구단 몇 년 전, 북경에 갔다가 중국 황제가 하늘에 제사 지내던 천단을 보고, 그 웅대함에 놀란 적이 있었다. 황제는 天子, 즉 하늘의 아들이니, 하늘과 소통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고종황제 때 하늘에 제사지내는 환구단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실체를 본 적이 없어 매우 궁금했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환구단을 검색했더니, 소공동 조선호텔 뒤에 있었다. 독립된 지역이라는 느낌보다는 호텔의 한 구역같아서, 호텔과 거리가 먼 내 처지에 찾아 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그래도 보고 싶은 마음이 커서 상세히 검색한 후, 서울 시청으로 갔다. 가다 보니, 프레지던트 호텔 옆에 환구단 이정표가 있어서 화살표 방향대로 호텔 옆 호텔 주차장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50여 미터쯤 골목길 끝 부분의 계단을..
`곰치국`에 대한 단상 십여년 전, 삼척에 들렸을 때, 삼척에 사는 절친으로부터 곰치국 얘기를 들었는데, 비위가 약하면 먹기 어렵다고해서 겁먹고, 대신에 콩나물 해장국을 먹었었다. 그 때, 곰치국은 삼척에만 있었던 것으로 생소한 것이었는데, 불과 몇 년 후,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서, 오늘날엔 숙취해소용 음식 중 으뜸으로 꼽히고 있다. 엊그제 신문에서 송아지 한 마리 일만 원, 곰치 한 마리 12만 원이란 기사가 대서특필된 것을 보았다. 그 전엔 생긴 모양이 흐물흐물하고 흉칙해서,어물전 천덕꾸러기였던 곰치가, 이젠 없어서 못파는 귀하신 몸이 되었다. 4-5 년 전 낙산에서 1박하며 과음해서, 속초의 유명하단 곰치국집을 찾았는데, 문전성시 발 디딜 곳조차 없었다. 좁은 자리에 가슴펴지도 못하고 모잽이로 겨우 앉았는데, 아뿔사, ..
바다가 그리울 때 바다가 그리울 때, 달려가곤 했던 경포해변, 나에게는 바다의 대명사인지도 모르겠다. 넘실대는 파도 가운데 오리 바위 십리 바위는 사시사철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데, 주변의 경관은 많이도 바뀌었다. 민박촌과 방가로가 즐비했던 70년대의 추억부터 말끔하게 정비된 오늘까지, 경포해변은 횟집에서 까페까지 현대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 한 때, 여름철 경포는 바가지 상혼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여름 한 철 벌어서 일 년을 먹는다는 말로 바가지 상술을 합리화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여름철에만 찾는 바다가 아니기에 말이 끄는 꽃마차도 준비되어 있었다. 고속도로도 없던 옛시절엔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대관령을 넘어 여기서 텐트치고 야영도 했었다. 또는 청량리역에서 경북 영주를 지나 강릉에 도착하는 보통급행 야간열차를 타..
눈 오는 밤 눈이 내린다. 인적도 뜸한 겨울 바닷가에 눈이 내린다. 적막감을 깨는 파도소리 위에 어둔 바람을 타고 흰 눈이 내렸다. 멀리 수평선 부근쯤 까만 바다 위에 어선들의 등불이 추억처럼 흔들려 창 안으로 밀려 들었다. 가슴 속에 저며진 젊은 시절들의 애련이 흩뿌려지는 눈 위로 쌓여 갔다. 어항의 작은 횟집 안, 왁자한 원주민들의 걸쭉한 취기들이 낯 설게 다가선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사투리에 여행객의 피로감이 밀물결처럼 찾아들었다. 밤은 깊어가고, 눈발은 거세지기에, 내일의 여정은 단정할 수 없었다. 눈오는 밤, 삼척의 밤은 파도 소리 속에 온 몸을 뒤척거리며 그렇게 깊어 갔다.
햇빛바라기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 바다, 동해의 격랑이 바위와 해변을 삼킬 듯 밀려들며 부딪혀 물보라를 뿌려댔다. 갈매기들도 비행을 멈추고 저마다 햇볕을 향해 쉬고 있다. 바닷물에 젖은 깃털을 고르며 햇볕을 향해 따스한 햇살을 쬐고 있었다. 먹이를 찾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갈매기들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떼지어 해를 향해 줄지어 있는 모습들이 우수꽝스럽기도 하면서, 한편 애처러워 보이기도 했다. 춥고 배고플 때, 풍성하고 따스한 햇살만이라도 마음껏 쬘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한 일이긴 했지만...문득 나에게도 햇살 따스한 봄이 그리워졌다.
White christmas 송년회를 마치고 밖에 나오니 어둠 속 가로등 불빛 사이로 함박눈이 봄나비 떼처럼 바람에 날렸다. 순간 눈길 운전을 해야 할 두려움도 잠시 잊고 동심으로 돌아갔다. 모였던 동료들도 모두 어린아이들처럼 순진무구하게 활짝 웃었다. 모처럼 바쁘고 지친 일상에서 벗어난 표정으로 행복한 모습을 지었다. 3차로 들린 생맥주집엔 선점하고 있던 중년의 손님들이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십년지기라도 대하듯 친절하게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여전히 눈은 창밖에 바람을 타고 내려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속이 좋지 않아 금주하는 중이라 병아리 물먹듯 조금씩 술잔을 빨고 있던 나는 맨 정신으로 눈과 술에 취해 행복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웃사이더로, 늘 중심에서 한 발짝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곤 했던 나는 술자리..
뿌리 깊은 나무 - 드라마와 소설의 차이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라 중간부터 관심 있게 보았다. 제법 구성도 탄탄하다 싶어 즐겼었는데, 역시나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시청률은 최고라는데, 이야기의 전개가 중반이 넘어가면서부터 너무나 허술하다. 줄거리가 너무 궁금해서 원작은 어떨까. 하루 만에 두 권을 독파해 버렸다. sbs 홈페이지에 있는 드라마 메인 포스터 소설 "뿌리 깊은 나무"는 극중 전개가 치밀하다. 겸사복이라는 말단 근위병이 궁중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사건들을 추적하며, 죽은 자들이 남긴 흔적으로 범인들을 찾아 나선다. 죽어가는 집현전 학사들... 첫 번째 희생자는 분서관(책을 태우는 사람) 장성수로 우물에서 시신이 발견되는데, 그를 조사하던 강채윤은 마방진을 발견하고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두 번째 희생..
만추 잔뜩 흐린 날씨에 뒷산에 올랐다가 주택가에서 오르는 연기를 보고 향수를 느꼈다. 어린 시절, 들판에서 뛰놀다가 허기가 지면,자꾸만 동네를 뒤돌아 보았다. 땅거미 지기 전, 동네에선 집집마다 밥짓는 연기가 피어올라 야트막한 산자락 위에 구름처럼 걸리곤 했다. 연기 구름 걸린 마을을 돌아보면배고픈 또래 동무들도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놀이의 마무리를 지었다. 까스로 취사하는 오늘날엔 멀리서 낙엽 태우는 연기만 봐도 옛시절이 떠올라 왈칵 그리움이 솟구친다. 풍요롭지 못해서 항상 배고프고,전기도 없어서 등잔불에 심지를 돋구고 엎드려서 책을 읽던 시절이었고, 겨울이면 질퍽한 흙 속에서 뒹굴며 놀았기에 손등이 두꺼비 등짝처럼 거칠게 터서 안티푸라민이최고의 명약으로 꼽히던 시절이었었다. 겨울로 들어서는 길목, 도시의..
유혹 아름다움으로 치장한 그 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번식을 위한 화려한 유혹 이상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 의미는 쉽게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감추고 있는 의미 중 하나는 생존을 위한 덫이 아닐는지. 나를 위해 아름다움으로 유혹하여 상대를 죽음으로 흡인해 버리는 치명적 덫... 식충식물 - 네펜데스 토바이카 꽃을 위한 서시 김춘수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存在)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追憶)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 얼굴을 가린 나..
거리의 예술가 1. 여의도 벚꽃길에서... 2. 서울대공원에서... 어린 시절엔 사진이 귀했었다. 어느 날, 보따리 사진장사가 우리 동네로 와서 어른들의 스냅사진에서 인물을 바탕으로 초상화를 만들어 팔았다. 갑자기 우리 동네 어른들은 의젓하신 양반이 되어 대청마루 큰 벽에 액자로 걸리셨다. 신식결혼 하지 못한 동네의 젊은 아낙들은 그들의 구식 결혼사진에서 얼굴만 오려 누군지도 모르는, 양복과 드레스에 면사포 쓴 새신랑 새색시의 몸통을 빌려 붙여 그들의 혼인사진으로 큰 액자에 넣어 신혼방에 걸기도 했었다. 빛바랜 사진 속의, 내 할아버지의 작은 얼굴도 정자관 쓰신 초상화로 바뀌어 커다란 액자로 걸리셨다. 만화 그리기를 즐겨하던 난, 그 때부터 사진 보고 그리는 초상화를 연습했었다. 몇 번은 칭찬도 들은 것 같은데, 심심..
낙화유감(落花有感) 봄이면 꽃은 피고 진다. 추운 겨우내 따스한 봄을 그리며, 추위 속에 피워낸 봄꽃들에 환호하며 기뻐한다. 이제 그 꽃마저도 바람에 흩날려 떨어지고 있다. 그동안 남녘의 봄꽃 소식에 귀 기울이며 얼마나 기다렸던가. 저 꽃이 떨어지면 내년 봄을 기다려야 하는 걸까. 그러나, 내년의 꽃은 오늘과 전혀 다른 꽃이다. 그러고 보면, 일생에 볼 수 있는 봄꽃도 그리 많지 않다.평균수명이 늘었다고 해도 유한한 생물의 한계 때문에 지는 꽃에 대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아직도 기억 저편 한 곳에서스믈스믈 살아 움직이는데, 내 심신은 쇠한 모습으로 자꾸만 지쳐가기만 한다. '조여청사 모성설(朝如靑絲 暮成雪)이라." 아침에 푸른 실 같은 머리칼이 저녁엔 눈이 되었구나!라는 탄식처럼 흘러 지나는..
봄비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보슬보슬 내리는 빗방울이 창문에 맺혀 봄기운으로 문을 두드리는 것 같다. 영동지방엔 또다시 폭설이 내린다니 걱정이다. 봄소식만 전해주고 가면 좋으련만... 우리 한반도의 기후가 아열대로 바뀌었다는데, 날씨는 왜 이리 추워졌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지구 온난화, 또는 엘리뇨, 라니냐현상으로 설명하려 하지만, 삼한사온이 정확히 들어맞던 내 어린 시절의 예상가능했던 기후가 정겨워질 뿐이다. 이 비가 그치면 따스한 봄이 더 가까이 다가왔으면 좋겠다. 그런데, 기상예보로는 다시 추워진다니 걱정이다. 응달에 남아 있던 잔설은 다 녹았다. 이제 따뜻한 꽃소식과 함께 봄기운이 풍성해지는 것만 남았으리라. 봄비 이수복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봄을 기다리며 봄날씨처럼 포근한 날씨 탓에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응달진 산길엔 잔설이 녹아 질척이고 있었지만, 호수엔 아직도 얼음이 가득했다., 유난히 추웠던 금년 겨울의상채기가 참으로 크다. 눈앞은 아직도 꽁꽁 얼어붙은 겨울인데, 바람은 귓가에 살랑이는 봄바람이다. 어디선가 꽃향기라도 날아올 것만 같다. 제주의 유채꽃, 매화꽃 소식을 떠올리며, 머지않아 찾아올 또 다른 봄을 손꼽아 기다린다.
되돌아오신 충무공 보수되어 되돌아오신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영하의 추위에 온 세상이 꽁꽁 얼어도, 조국을 수호하는 장군의 위용은 서릿발보다도 더 당당하다. 세간의 논란 끝에 보수되고 정비되어 그 자리에 다시 서게 된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 논란의 시비를 떠나서 이순신 장군의 입장으로 생각해 보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될 것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으로 외면한다고 문제의 근본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 국적불명, 정체불명의 동상을 세우고, 장군의 위업을 기릴 수는 없다. 일제 총독부 건물을 허물어 버릴 때처럼, 대통령의 결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가? 그때도 미사려구로 총독부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아도 백 번 잘한 일이었다. 공원처럼 잘 정비된 ..
만추 기온이 뚝 떨어진 후 가을이 무르익었다. 벌써 잎 떨어진 나목들도 눈에 많이 띈다. 산에 올라도 땀이 흐르지 않는다. 활동하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하지만 점점 떨어지는 기온 탓에 다가오는 겨울철이 걱정이다. 개인적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 요즈음엔 겨울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아졌지만, 배고픈 시절을 겪었던 사람들에게는 겨울은 시련이었다. 혹한기의 군생활도 지내기 어려웠던 고생이었고... 하늘이 참 맑다. 구름빛도 예쁘고, 황금색으로 바뀐 느티나무 잎새들도 푸른 하늘아래 빛나고 있다.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이 계절이 좀 더 풍요로웠으면 좋겠다.
공존 1. 동대문 운동장터, 조선시대 수문과 새로 지은 전시장이 과거와 현재의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2. 청계천의 전태일 다리. 우리나라 노동 운동의 선구자 전태일, 그는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에 분노하며 분신했으나, 오늘날 노동자들의 가슴속에 살고 있다.
동네 반 바퀴 어제까지 뿌연 안갯속에서 며칠을 보냈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정신이 번쩍 났다. 눈 뜨자마자 바라본 창밖엔 구름 하나 없는 하늘이 파랗게 물들어 있고, 아침 햇살도 말갛게 내려 퍼지고 있었다. 그 덕에 눈에 보이는 세상의 윤곽이 뚜렷하여 정신이 번쩍 났다. 오후 두 시가 넘어서, 일을 보러 상가에 나갔는데, 바람이 제법 쌀쌀했다. 길가 가로수의 나뭇잎들이 바람에 꽃잎처럼 날리고 있었다. 일을 마치고, 동네 반 바퀴를 천천히 돌아, 뒷산에 잠깐 올랐다. 쌀쌀한 바람 때문에 땀도 나지 않았다. 등산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집으로 돌아올 쯤엔, 그 새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1971, 춘천, 소양로 2가 시간이 멈춰버린 곳. 그것도 40년 동안이나... 강산이 바꿨어도 네 번 이상은 변했을 텐데...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없었다.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면 폐가처럼 돼버린 골목 안의 퇴락한 집모양에서나 가능할 일이었다. 골목길에 들어서서는 40 년 전에 내가 살았던 집 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동안 집주인도 몇 번은 바뀌었을 터, 낯선 사람들이 집 앞에 서서 뭣인가를 골똘히 의논하고 있었다. 집 앞에 가지런히 세워 놓은 화분에서 지금 주인의 부지런함을 조금 엿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달라진 것은 미닫이 문을 현대식 철문으로 바꿔 달아 놓은 것뿐, 골목 안 풍경도 옛날 그대로이다. 다만, 골목에서 조금 떨어진, 지붕 위로 보이는 아파트가 적어도 70년대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큰길에서 한 블록 떨..
버림으로써 얻는 사람 추웠던 날씨마저 따사로운햇살에 사라져 봄기운이 이 세상에 만연한데, 스님은 떠나셨다. 가난을 미덕으로 삼고, 있는 것이 마음의 누(累)라고, 말씀하시던 스승님이 오늘 한 줌 재로 먼 길을 가셨다. 평소의 그분답게 사리도 얻지 말며 탑도 쌓지 말라고 하셨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번 쯤 생각해 볼 말씀이다.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逆理)이니까."평소의 말씀을, 가시면서도 몸으로 보이시며, 가르침만 남기시고, 육신은 우리곁을 떠나시고 말았다. 못 살던 6~70년대에 비해 그래도 잘 살게 되었다는 요즘, 왜 사람들은 행복하지 못하고 조바심을 내며 불행해 하는 걸까. 판자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