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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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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청화백자전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청화백자전에서 인상깊은 몇 작품들...
김유정 문학촌 김유정역에서 도보로 5분 정도 걸어가면 그의 생가터에 김유정 문학촌이 있다. 1908년 1월 11일 춘천에서 태어나 만 30년도 채우지 못하고 1937년 3월 29일 타계한 그의 고향인 춘천시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토속적이고 해학적인 소설들을 써내었다. 실레마을 부자집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 살아생전엔 호강을 누리며 자랐으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형의 가산탕진으로 어려운 생활을 겪었다. 일찍이 서울에 유학하여 휘문고보(徽文高普)를 거쳐 연희전문(延禧專門) 문과를 다니다 그만두었다. 대학시절 당대의 유명한 기생 박록주를 짝사랑하며 이룰 수 없는 사랑에 폭음하며 실의에 빠져들기도 했었다. 이후 고향 실레마을로 낙향하여 금병의숙을 세워 고향사람들의 문맹퇴치 운동을 하기도 했었다. 이때 겪은 고향사람들..
밀레를 닮은 화가, 박수근 미술관 박수근, 그는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며 세상으로 나왔다. 어려서부터 그림솜씨가 뛰어나 그의 실력을 인정받았기에, 궁핍한 그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준 후원자들이 있었다. 국민학교시절 일본인 교장 선생님, 청년시절엔 춘천의 일본인 지방관리와 한국전쟁 이후 미국인 밀러 부인 등, 이들은 진흙 속에 묻혀 있던 박수근을 도와,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만들었다. 한국전쟁 중, 금강산 아래 금성(지금의 금화)에서 가까스로 월남하여 처남 집에 얹혀살며 생계를 위해 미군부대 PX에서 미군들의 초상을 그렸다는 사실은 과거 100여 년의 우리 역사가 이 땅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과 시련이 있었는지를 알게 해 준다. 박수근 미술관에 들렸다가, 그의 행적을 찾..
간송미술관, 진경시대 회화대전(眞景時代 繪畵大展) 간송미술관을 다녀왔다. 1년에 두 번만 볼 수 있는 기회라일요일임에도 번거로움을 각오하고 미술관을 방문했으나, 우려는 사실이 되어, 진경산수화들을 보기까지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3시간여를 서서 기다려야 했다. 오전 9시 20분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 12시 10분에야 전시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줄은 미처 몰랐다. 나야 간송미술관 방문을 벼르고 있던 처지로, 첫 방문길이었으나, 여타의 관람객들은 매우 익숙한 모양새였다. 오랜 시간 끝에 입장한 관람객들은 작품 하나하나에 시선을 고정한 채 움직이려 들지도 않았다. 미술 전시회에 가보았어도 이토록 진지하게 감상하는 관객들은 처음 보았다. 무료입장이지만, 기다린 그 시간에 대한 보상심리로 애착을 갖는 것인지, 아니면..
미술관 풍경-안산 경기도미술관 봄은 바람이 몰고 오나 보다. 거침없는 강풍이 구름들을 몰고 불어왔다. 간헐적으로 불어대는 강한 바람으로 온종일 하늘은 변덕스럽게 햇볕을 수없이 거둬들였다. 이국 풍경을 보겠다고 안산 다문화 거리에 나갔다가 바람 때문에 월남 쌀국수 한 그릇 먹는 것으로 구경을 끝냈다. 다문화 거리엔 정말 이방인들이 많았다. 각양각색의 피부를 지닌 사람들, 끼리끼리 모여 저마다의 언어로 정감을 나누는 모양이었다. 다문화길 골목에는 우리 재래시장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물건들을 팔고 있었는데, 차마 카메라를 들고 촬영할 수가 없었다. 관광지도 아니고, 이국 땅에서 고생하는 외국인들을 찍는다는 것이 거북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아예 카메라를 가방 속에 넣어 버렸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찾아간 곳이 안산의 경기도미술관이었다. 안산에..
허균과 허난설헌의 생가 강릉 경포호 바로 아래의 조선시대불우한 천재 문필가 허균 허난설헌 남매의 생가를 찾았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이라 문학사적으로도 의의가 깊을 텐데,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우연히 작년에 1박 2일에 소개되어 몹시 궁금했었다. 허균은 뛰어난 문장가로서 그의 인생편력이 매우 다채롭다. 벼슬길에 나가 기행과 파격으로 부침을 거듭하다 50세에 역모죄로 저잣거리에서 능지처참된 사형수이기도 하다. 허균의 누나인 난설헌은 뛰어난 문장으로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도 명성이 높았던 재원이기도 했다. 15살에 안동 김씨 성립과 혼인했으나 남편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했고, 아들 딸을 낳았으나 일찍 죽어 어린 나이에 피눈물로 한 많은 세상을 살다 27살에 요절한 비운의 여인이기도 하다. 허난설헌이 지었다는 조선..
홍사용문학관 잔뜩 흐린 하늘에 겨울빗방울이 간간이 떨어지는 가운데 화성시 동탄 신도시 초입에 있는 홍사용 시인의 문학관을 찾았다. 진작부터 방문하고자 했으나 차일피일 미루던 터였다. 홍사용 시인은 이곳 동탄에서 태어났으나, 생후 100일 만에 무관학교 1기에 합격한 아버지를 따라 서울 재동으로 옮겨 살다가 9세 때 부친의 군대가 해산하고 큰아버지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다시 화성으로 이사하여 17세 때 휘문의숙에 입학하기 전까지, 고향의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본관은 남양(南陽). 호는 노작(露雀)·소아(笑啞)·백우(白牛) 등이 있지만 주로 ‘노작’으로 작품활동을 하였다. 아버지는 대한제국 통정대부 육군헌병 부위를 지낸 철유(哲裕)이며, 어머니는 한산 이씨(韓山李氏)이다. 1919년 휘문의숙을 졸업, 기미독..
장욱진 古宅 가을의 마지막 날,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인가 싶다. 갈피 잡을 수 없는 날씨의 변덕은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처럼 종잡을 수 없다. 갑자기 추워져 살을 에는 듯하다가도 땀이 흐를 정도로 더운 훈풍이 거침없이 불어온다. 한동안 추웠으니, 12월 겨울을 맞아 강추위도 다가서리라 싶기도 하다. 한동안 카메라를 쥐지 못했다가 비 오는 날, 그것도 빗속에 장욱진 고택을 찾았다. 두 번째 방문인데도, 난개발 지역인 용인시 구성 마북동에 있는 장욱진 고택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작가의 연보에 따르면 장화백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건 1986년으로, 옛 가옥을 사들여 그 옆에 1989년 양옥을 완성하여 살았단다. 그리고 1990년 12월 27일 타계했으니, 실제 거주기간은 그리 길지 않은 셈이다...
`상록수`의 산실-筆耕舍 고등학교 다닐 때, 우연한 기회에 심훈 선생의 "그날이 오면"이란 시를 읽고는 나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돋았었다. "조국 광복이 오기만 한다면 내 가죽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메고는 행렬의 앞장에 서서 거꾸러 죽어도 한이 없겠다."는 선생의 피 맺힌 외침은 어린 내 가슴을 불덩이로 만들어, 지금까지 도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지난 6월, 최용신 생가(http://blog.paran.com/fallsfog/44925027)를 방문했을 때, 필경사를 가보지 못했다는 회한에 날 좋은 일요일,당진행 여로에 나섰다. 충남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 소재, 필경사, 심훈 선생의 작업실이다. 선생은 1932년 이곳에 내려와, 밭을 갈 듯 붓으로 글을 경작하는 집이란 이름으로 이 집을 짓고 창작에 몰두했다. ..
소나기 마을 황순원 문학촌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소재 황순원 문학촌, 그동안 많이 들어 봤지만 아직 방문은 하지 못했던 곳이라, 세미원 방문 뒤에 그곳으로 향했다. 세미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황순원 문학촌이란 바위 표지석을 보고 그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많지는 않았지만 여러 대의 차들이 이미 주차되어 있었고, 문학촌으로 오르는 길은 일반차량 진입 금지란 푯말이 서있었다. 차에서 내려 200여 m 언덕길을 타박타박 걸어서 올라갔다. 문학촌 앞, 운동장, 소나기에서 소년과 소녀가 비를 피했다는옥수수대 더미는 짚으로 대신했지만, 작품 세계를 재현하려 애쓴 흔적들이 보였다. 광장을 둘러싼 산 허리엔 산책로를 만들고, 선생의 소설의 배경지처럼 '목넘이 고개' 등의 이름을 붙여 놓았다. 분수대는 물이 말라 휴식 중이었다. 비가 ..
강진기행-다산과 영랑 일찍이 유홍준 선생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강진을 남도기행 1번지로 꼽았었다. 그래서인지 강진엔 여러 번 들렸었는데, 견문이 짧은 내 식견으로는 선생의 혜안을 살피기 어려웠다. 강진이라면 그저 다산초당과 영랑시인 생가, 상감청자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첫 번 째 행선지로 다산초당을 꼽았다. 다산초당은 이번이 세 번 째였다. 1. 다산초당 진도에서 오락가락하던 빗방울은 이제 땡볕으로 바뀌어 뜨겁게 내렸다.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찾아갔는데, 예전과 달리 입구에는 너른 주차장과 웅장한 건물들이 서있었다. 잔디 동산에 조성된 육중한 건물은 다산기념관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념관 전시물들을 관람하고 있었다. 밀랍 인형으로 재현한 다산 선생의 집필 모습 시끄러운 매미 소리를 들으며, 기념관 우측길을 돌아 ..
`상록수`의 모델 `최용신` 기념관 안산시 전철역인 상록수역은 그 유래가 심훈의 상록수의 주인공 채영신의 실제 모델이었던 최용신 선생의 활동지역이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상록수역의 유래를 듣고부터 최용신선생의 묘를 꼭 찾아보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십 년도 훌쩍 지난 후에야, 비로소 찾아보게 되었다. 애석하게 내비게이션에 나오지 않아 상록수 역 부근에서 행인들에게 물어물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의외로 최용신 선생의 묘역엔 묘뿐만이 아니라 기념관까지 있었음을 도착해서야 알 수 있었다. 샘골강습소 부근은 상록수공원으로 지정되어 인근의 아파트와 상가 건물 한가운데서, 겨레의 정신을 일깨우는 배움의 터로 새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문맹률 75%였던 시절(여자는 20명 중에 1명이 글을 아는 정도), 1930년 10월에 신교육을 받은 '모던..
풍자와 해학의 대가 - `채만식` 문학관 오락가락하는 빗줄기가 간간이 내리는 가운데, 군산의 금강 하구둑 아래에 있는 채만식 문학관을 찾았다. 선생의 작품 중 '태평천하'를 매우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그의 문학관 방문은 감회가 깊었다. 풍자와 윗트, 판소리 광대처럼 한발짝 떨어져 등장인물들을 조롱하고 비웃으며 집필한 '태평천하'를 읽으면서, 겉으로 웃으면서도, 그풍자 속에 감춰진 일제시대의 사회적 모순과 가진자들의 비도덕 작태에 눈물지었었다. 문학관 입구에 전시된 선생의 연보 첫머리에 쓰인'濁流(탁류)"처럼 금강 하구에는 탁류가 흐르고 있었다. 흐린 오늘의 날씨처럼, 아니 우리의 밝고 희망찰 미래가 안개 속에 감춰진 것처럼 탁한 물이 흐르고 있었다.전시된 선생의 작품들 밀납인형으로 재현된 선생의 생전 집필 모습 선생의 작품들과 동 시대의 문인..
박경리 기념관 통영의 햇살이 참으로 따스하다. 전국이 영하의 혹한에 떨고 있다는 데도 봄날씨처럼 포근하고 화창했다. 통영시 산양면에 조성된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의 묘소를 찾았다. 얕으막한 동산을 병풍삼아 탁 트인 바다가 보이는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선생의 기념관과 묘소가 있었다. 산양초중학교를 지나, 작은 언덕 너머, 길가에선생의 기념관이 있었다.기념관 옥상 위 오른쪽 산봉우리가 미륵산 정상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2층으로 올라가면 바로 전시관이다. 입구 오른쪽 코너에 마련된 선생의 년보표 기념관 안에 재현된 소박하고 검소한작업실로, 소탈한 선생님의 성품이 우러나는 듯했다. 멀리서 바라본 기념관 2층, 기념관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공원이 있고, 공원의 맨 위에 선생의 묘소가 있다. 공원으로 가는 길 좌측에 ..
하동군 평사리-`토지`의 무대 태풍으로 폭우가 간헐적으로 쏟아지던 날, 섬진강, 유명한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를 찾았다. '토지'의 배경으로 잘 알려진, 최참판댁이 있는 곳으로, 내가 도착했을 때 빗줄기는 소강상태였다. 마을 초입의 주차장을 지나 중턱까지 올라 갔다. 그곳 주차장에 차를 대고, 매표소에서 1000원의 입장료를 지불하고서 탐방에 올랐다. 예쁘게 포장된 마을길에 길 양옆으로상점들이 서있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염색가공한 옷파는 가게를 비롯하여,먹거리, 기념품 가게들이 빗속의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마을 뒷산에서는 비구름들이 솟아 오르고 있었다. 간간이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이정표를 따라 위로 올라 갔다.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도로에서 좌측으로 돌아 TV 드라마 '토지' 셋트장을 경유하여마을로 올라..
봄봄-김유정문학관 경춘선 열차를 타면 남춘천역 바로 앞의 역이 '김유정역'입니다.예전엔 춘천의 남쪽에 있는 철도역이라는 의미의 신남역이라고 불렸던 곳인데, 김유정님을 기리기 위해 김유정역으로 개명했습니다. 역에서 걸어서 조금 들어가면 김유정님의 고향 실레마을입니다. 지금은 '실레'대신 '증리'라고 부릅니다. 바로 그의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작은 마을이지요. 그 마을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경춘선 전철사업으로 교통이 좋아져 땅값이 무지 올랐다는 것만 빼고는요. 자동차로 갈 때에는 춘천고속도 강촌IC에서 빠져나가, 의암댐 아래 새로난 길로 진행하다가 김유정문학관 이정표를 보고 찾으면 됩니다. 강촌IC는 말만 강촌이지. 강촌까지 나가는 길이 퍽이나 멉니다. 강촌부터 의암댐까지 가는 길은 북한강을 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