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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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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의 전설이 깃든 쌍미륵사 대한불교 법상종 본산인 안성시 삼죽면 쌍미륵사. 규모는 작은 절이었지만, 궁예의 전설이 살아깃든 유서깊은 사찰이었다. 법상종이란 종파도 금시초문이었지만, 이 작은 절이 법상종의 총본산이라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황석영 소설 "장길산"을 읽으며, 소설 속에 미륵신앙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화순의 운주사를 일부러 찾아 가보기도 했지만, 수도권인 안성에 거대한 쌍미륵불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미륵불은 불교에서 석가모니불의 뒤를 이어 56억 7000만년이란 까마득한 훗날 홀연히 출현해 세 번의 설법으로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불이다. 가늠할 수조차 없는 긴 시간. 그러나 아무리 먼 시간이라도 미륵 출현은 날은 잡혀 있는 것이니 도래의 희망만큼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 오랜 시간 뒤 미륵이 도래하는 미래세상은 ..
전설이 숨쉬는 칠장사 이번 칠장사 방문은 세 번 째였다. 처음은 sbs에서 드라마 "임꺽정"을 방영할 때, 그 배경이라 해서 찾아갔었고, 두 번 째는 2년 전쯤, 이른 봄에 지나는 길에 들렀었다. 이번엔, 이른 봄의 모습이 쓸쓸해서 녹음이 우거진 모습을 보러 갔다.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명부전 아래 건물 툇마루에 앉았다가 문화해설가를 만나 이것저것 칠장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때마침 그분도 무료했었던지 칠장사에 얽힌 이야기를 구수하게 풀어냈다. 고려시대 혜소국사가 왕명으로 이 절을 중건하기 위해 내려왔는데, 퇴락한 사찰에 도적들이 숨어 살고 있었다고 한다. 7인의 도적들이 혜소국사의 도력에 감화되어, 지난 일을 회개하고 탈속하여 현자로 거듭나서 나한이 되었다. 우리나라에 나한 이야기가 있는 곳은 ..
금강산 건봉사 막 동터오는 햇살을 등 뒤로 받으며 찾아간, 동해안 최북단,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에 있는 건봉사였다. 6.25 전쟁 때, 치열한 전투로 소실되었던 것을 1994년 이후 점차로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단다. 임진왜란 때 왜구가 통도사에서 가져간 부처님 진신치아사리 12 과를 임진왜란이 끝나고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찾아와 건봉사에 봉안하였다. 이후조선 경종 때 사리탑을 만들고 적멸보궁을 지었는데, 현재의 적멸보궁은 1994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경내엔 아직도 휑한 건물터가 많이 남아 있어서, 오늘의 건봉사는 새로운 사찰로 만들어 가고 있는 절이라 하겠다. 한동안 왕래할 수 있었던 금강산 방문이 끊어지고, 냉전시대 이상으로 남북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이때, 우리가 갈 수 있는 최북단의 사찰이 바로 건봉..
인드라 공동 생명체의 지리산 실상사 하늘이 점차로 맑아지더니, 쨍하니 햇볕이 났다. 하루 만에 보는 햇살이지만, 전날 하루종일 폭우 속에 차를 달렸기 때문에, 마치 여름 장마 때 맑은 하늘을 보는 것처럼 반가웠다. 산청에서 국도를 타고 함양까지 올라갔다가, 문득 실상사를 찾기로 했다. 신라 고찰로 유명한 절이라는 얘기에 지도검색을 하니, 함양에서 20여 km로 40분여 소요된단다. 목적지를 실상사로 맞추고 차를 돌렸다. 국도로 달려 고갯마루에서 경상도계를 넘어 전라도로 들어섰다. 고개 마루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투리를 사용할까. 좁은 나라에, 가까운 지역에서 고갯마루 하나로 경상도와 전라도로 갈리게 되는데, 두 지역의 갈등이상극처럼 첨예화되어 있으니, 궁금하기 이를 데 없었다. 모처럼의 여행이 남해까지 점찍고 오긴 했지만, 결국은 지리산..
山靑, 벼랑 위의 암자, 정취암 지루하게 내리던 비는 멎었다. 간혹 이슬처럼 간간히 뿌리기는 했지만, 움직이는 데는 전혀 지장 없었다. 장대비를 맞으며, 어쩔 수 없이 진주에서 잠을 잤는데, 비바람 소리에 잠을 설치기까지 했다. 새벽녘에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비는 멎어 있었고, 도도히 흐르는 진주 남강에 가로등빛이 빛나고 있었다. 맑은 아침을 기대하며 다시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깨어보니, 하늘엔 먹구름이 잔뜩 내려앉아 있었다. 차라리 남해에서 하룻밤 자고 못다 한 경치를 다시 찾아보지 못한 것이 후회되기도 했으나, 다시 그곳까지 내려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짜낸 묘안이 고속도로를 타고 북상하면서 휴게소에 들러 안내를 받아보자는 것이었다. 산청 휴게소에 들러 아침을 먹으며, 관광 안내지도를 살피며 찍은 곳이 바로 정취암이었다...
지리산 천은사(泉隱寺) 여름비처럼 내리는 빗속을 달려 남원에서 지리산 천은사에 갔다. 지리산 비탈길을 굽이굽이 돌아 오르니, 문득 저수지 둑이 올려다 보였다. 깊은 산에 저수지가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푸른 물이 가득 고여있는 저수지 상류에 천은사가 있었다.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에 빗줄기의 방향은 종잡을 수 없이 사방에서 몰아쳐 왔다. 우산을 썼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다만 카메라에 빗물이 스미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했다. 이럴 땐 어찌해야 하나. 참 난처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날씨가 좋았더라면 지리산의 해맑은 풍광을 고색창연한 산사에서 실컷 담을 수 있었을 텐데... 천은사는 828년(신라 흥덕왕 3년) 세운 절로서 처음에는 절 이름을 감로사(甘露寺)라 지었다 한다. 그 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610년 (조선 ..
길상사의 봄 주말이면 어김없이 찬 바람이 부는 것은 웬 조화일까. 모처럼의 나들이에 꽃샘바람이 차가웠다. 게다가 불청객 황사까지 엷게 번져 나들이 기분을 상하게 했다. 길상사 산수유가 아름답다고 해서 활짝 핀산수유를 상상하며 경내에 들어섰는데, 아쉽게도 추운 날씨 덕인지 아직 만개하지 않았다. 바람이 차가워서인지 상춘객들은 그리 많지 않아서 비교적 한가롭게 경내를 거닐 수 있었다. 경내에 들어서니, 나무 가지에 높이 걸어 올린 연등이 이채로웠다. 마치 하늘로 떠오르는 풍선처럼 연등들은 마음을 부풀게 했다. 보통의 사찰들은 대웅전 앞에 폴대를 세우고 촘촘하게 연등을 달아 놓는데, 길상사의 연등들은 나뭇가지에 풍선처럼 걸려 있었다. 일주문 맞은 편의 범종각과 설법전 설법전 앞의, 성모 마리아를 닮으신 관세음보살 부처님을..
선암사 가는 길 순천에는 볼 것도 참 많다. 순천만에다 낙안읍성이며, 송광사, 그리고 선암사까지... 얼마 전 문화재청장이던 유홍준님이 TV 무르팍 도사 출연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곳이 선암사라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 후 선암사를 찾는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후문도 있었다. 나야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심미안을 가진 것도 아니고, 전문 지식이 있어서 건축물이나 가람의 배치를 보고 탄성을 지를만한 처지도 아니지만, 들어가는 길의 강선교와 승천루의 절묘한 조화는 익히 사진으로 본 바가 있어 무척이나 기대되던 곳이었다. 그러나, 내가 방문했을 때는 늦은 오후시간인데가 겨울답지 않게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구름까지 낮게 드리운 까닭에 보이는 풍광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늦은 시간이라 방문..
치악산 상원사 눈내리던 치악산 상원사
삼각산 길상사 시궁창에서 연꽃이 피는 것처럼, 독재정치의 어둠 속에서 독버섯처럼 피었던 고급요정이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간직한 채, 이제는 도심 속에서 중생들의 離苦得樂을 위해 맑고 향기로운 부처님의 사랑을 펼치고 있다. 김영한은 1916년 서울 관철동에서 태어나, 일찍 부친을 여의고 할머니와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금광을 한다는 친척에게 속아 가정이 파산하게 되자, 1932년 조선 권번에 들어가 한성 기생 '眞香'이 되었다. 한국 정악계의 대부였던 금하 하규일 선생의 지도를 받아 여창 가곡, 궁중무 등 가무의 명인으로 성장했다. 1935년 조선어학회 회원이던 해관 신윤국 선생의 후원으로 일본에 가서 공부하던 중, 해관 선생이 투옥되자 면회차 귀국하여 함흥에 일시 머물렀다. 그 때,1936년 함흥에서 영생고보 영..
남북통일 염원을 담은 천안 각원사 한 때 동양 최대좌불을 봉안했다는 각원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10여 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천안을 지나니, 각원사 이정표가 나타났다.천안 외곽의 큰 길에서 작은 도로로 한참을 달려가니 각원사 아래, 눈에 익은 작은 저수지가 눈에 띄었다. 포장된 도로를 따라 절의 경내까지 차량이 들어갈 수 있었다. 전혀 차량을 통제하지 않는 여유로움이 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규모의 장대함이었다. 1975년에 창건했다는 이 절은 전후 좌우에 즐비한 전각들의 크기가 유명한 전통사찰을 능가했다. 이 절을 창건한 경해법인 큰스님께서는 한국전쟁(6.25사변)때 통일염원 성전 건립의 서원을 세우고 오랫동안 교학과 수행정진 과정에서 태조산에 인연되어 재일동포 ‘김영조(金永祚) 거사’와 ‘ 부인 정정자(鄭貞子)보..
백범의 얼이 서린 공주 마곡사 마곡사는 백제 무왕 때 신라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고려 명종 때 중수하고 재건했다는천년 사찰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부처님을 모신법당이 두 개이다. 또한, 구한말 백범 김구선생께서 일본군 장교를 살해하고, 탈옥하여 몸을 피하실 때, 잠시 이곳에서 삭발하고 불문에 귀의하셨던 적이 있던 유서깊은 곳이기도 하다. 이번 마곡사 방문이 두 번째였는데, 전에 없던 김구선생 명상길을 재현해 놓은 것이 특별히 눈에 띄었다.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면 돌다리인 극락교를 건너는데, 이 다리를건너면 진행방향 우측으로 범종각, 심검당, 대광보전, 대웅보전 등이 차례로 있다. 돌다리 아래 자라석상 두 쌍이 있었는데, 야구선수 김태균이 시주한 것이라 한다. 돌다리 건너 마곡사 경내, 우로부터 심검당, 대광보전, 대..
천안 광덕사 - 호두나무 시배지 천안 명물이라는 '천안 호두과자'를 먹으며, 왜 하필 천안호두과자일까 궁금했었는데, 비로소 그 까닭을 알았다. 우리나라에 호두나무가 최초로 전래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백제사찰이래서 들렸던 광덕사에서 재미있는 역사적 사실 하나를 얻어간다. 버스 정류장 가까운 곳에 일주문이 있다. 평소 태화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은 듯, 입구부터 식당들로 붐볐다. 한적한 시골임에도 막걸리집이나, 음식점이 많은 것을 보면, 그 만큼 사람들의 왕래도 많다는 것일 터이다. 이정표를 보고 따라가니, 작은 돌다리 너머로 광덕사로 보이는 절집이 보였다. 광덕사 들어가는 계단 우측에 400년 묵은 호두나무가 있다. 우리나라 광덕사에 최초로 호두나무가 전래되었는데, 저 호두나무는 생물학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제 398호로 ..
파주 용미리 석불입상-용암사 어렸을 때, 그러니까 국민학교시절 미군이 발행하던 '자유의 벗'이란 잡지가 있었다. 당시에 그 사진 잡지는 사진화보 중심이었기에, 어린애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충족시켜 주었었다. 더욱이 그 잡지는 종이가 두껍고 질겨서 책을 싸는데 아주 좋았다. 그때 그 잡지에서 보았던 사진이 용미리 석불입상이었다. 그 후, 군생활하던 때, 추운 겨울날, 작전트럭 적재함에 실려 작전지로 이동하다가 이 석불입상을 보았었다. 시간이 있었더라면 내려가서 보았을 텐데, 쫄병으로 볶이며 얽매인 탓으로 찬 바람 속에 석불입상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다만 보면서 아쉽게 지나치고 말았다. 그 때문인지 아직도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던 석불입상이었다. 멀지도 않은 가까운 곳에 두고서 이제야 찾아보게 된 것은 기억 저편에 너무나 깊..
여수 오동도, 그리고 향일암 장흥, 보성, 순천을 지나여수반도로 방향을 돌리자 구름 안개 속에서 굵은 빗방울이 사납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날이 어두워 오동도 입구에서 여장을 풀고, 주인에게 저녁 식사할 곳을 의뢰했더니, 여수 특화시장을 추천해 주었다. 사나운 빗줄기가 어둠 속에서 하얀 궤적을 보이며 무섭게 떨어졌다. 택시를 타고 여수 수산시장을 지나 이른바 여수 수산물 특화시장으로 갔다. 부산 자갈치시장처럼 아래층에서는 횟감을 팔고, 2층에서는 양념과 식사, 주류를 파는 일종의 회센타였는데,대부분의 상인들이 친절해서, 무엇보다도 다행이었다. 횟감을 광어와 장어류로 5만원어치 사서 맡기고 2층으로 올라 갔다. 1. 여수 수산물 특화시장과 오동도 오동도에서 돌아 본 여수항 특화시장 1층 활어시장 광어와 장어회 5만원, 채소와 양념 값은..
진도 첨찰산 쌍계사 운림산방 바로 뒤에 있는 사찰로 신라 문성왕 때 도선이 창건했다는 대한 불교 조계종 대흥사의 말사이다. 가람의 배치가 결코 예사롭지 않았다. 늦은 시각이라 사방에 땅거미가 저물어 아쉬움이 컸다. 운림산방과 이웃하고 있어서 산방에 들렸던 손님들의 방문으로 인적이 끊이지 않았다. 해탈문, 사천왕을 모셔, 천왕문과 함께 쓰고 있었다. 때마침 저녁 예불에 맞추어 범종이 울렸다. 대웅전에서 외는 스님의 독경소리와 어울려 그윽함 종소리가 온몸 안으로 밀려드는듯했다. 저녁하늘에 은은히 번지는 범종 소리를 들으며, 절문을 나섰다. 생각지도 못했던 낯선 여행지에서 자연과 조화로운 아름다운 삶의 공간을 보았다. 비록 세속의 생활현장은 무질서하고 투박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산수의 아름다움을 예술로 승화하고, 자비로움을 구하..
신륵사 명성황후 생가를 지나, 신륵사로 향했다. 신륵사는 여러 번 방문했던 곳이라 정겨운 곳이기도 했는데, 주차장 입구에서부터 예상은 빗나가 버렸다. 신륵사 앞으로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변에는 블도저와 포클레인들이 굉음을 내며 먼지들을 뿜어내고 있었다. 게다가 강변의 수양버들은 꽃가루들을 하루살이 떼처럼 뿌옇게 먼지에 섞어 날려댔다. 일주문으로 통과하려니, 과장 없이 그대로 표현한다 해도, 절로 들어가는 도로 위에 흙먼지가 5cm 이상 쌓여 도저히 걸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흙먼지를 피해 도로 옆 풀밭 뚝으로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청아한 풍광을 보려는데, 흙먼지구덩이 속으로 기어 든 셈이었다. 강둑은 사방으로 어지럽게 파헤쳐져 있었다. 게다가 절안까지도 공사판이었다. 사방에 흙더미와, 출입을 제한하는 비닐끈들..
청량산 문수사 비구름이 내려 앉아 불안한 가운데, 문수사에 올랐다. 고창읍에서 30분 이상 달려 왔다. 이리 먼 길이었다면 고창읍에서 이미 포기했을 것이었다. 우산도 준비하지 않았기에 곧 쏟아질 것 같은 장대비도 겁이 났었다. 옷 젖는 것은 감수한다지만 카메라에 빗물이스며들면 대책이 없겠기에 매우 조심스러웠다. 경북 봉화에만 청량산이 있는 줄 알았더니, 이곳의 산도 청량산이었다. 하기사 맑은 기운에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곳이 우리나라에 한두 곳이겠는가. 상쾌한 숲이 우거지고 서늘한 바람 불어오면 그곳이 바로 청량리 아니겠는가. 이곳엔 단풍나무가 우거져 가을철엔 무척이나 아름답겠다. 단풍숲을 통해불이문 근처에 이르니, 오른편으로 현판이 나타났는데, "청량산 문수사"라 이름하였다. 사찰의 유래를 들어보면 오대산 상원사처럼 ..
법성포 마라난타사 법성포 서쪽 끝 동산은 백제 불교최초 도래지였다. 법성(法聖)이란 마을 이름은 본래 백제에 불교를 전해준 인도의 중 마라난타가 맨 처음 들어왔던 곳이란 데서 유래한다. 동산 높은 곳에는 사면불상이 동서남북을 굽어보고 있었다. 동산 위에 사면불상이 서 있는 곳, 그곳이 백제불교 최초도래지 마라난타사였다. 이곳은 마치 불교 성지처럼 정성스럽게 시설되었다. 정문은 보수 공사중이었고, 산꼭대기 4면 불상의 받침대도 외벽의 돌을 덧대어 쌓는 중이었다.기우는 석양에 부처님의 자비로움이 노을빛을 머금고 사방에서 은은하게 저물어가고 있었다.사면불상 아래 부용루와 존자정이 우리 고유 건축양식이고, 나머진 특이한 모습이었다. 간다라 유물관도 있었으나,이미 문 닫은 후여서 관람할 수는 없었다.건물의 외벽은 작은 돌조각들을 ..
백제의 미소 백제의 미소, 서산 마애 삼존불상을 찾았다. 이 번이 세 번째 방문인데, 전에는 전각 속에 삼존불이 보호되고 있어서, 부조에 나타나는 그림자가 흐렸기 때문에 미소를 찾아보기 어려웠었다. 그런데, 전각을 철거했다는 얘기를 듣고, 이제 백제의 미소를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컸었다. 마침 시간도 오후였기에, 안성맞춤이라 조바심까지 일었다. 단지 날씨가 흐렸다는 것이 조금 섭섭했지만... 골짜기 개울을 건너 삼존불상에 오르는 길, 나무다리를 건너 지나 돌계단으로 올랐다. 오르면서 삼존불 방향인 왼쪽을 바라보니, 전각을 세웠다가 철거한 흉터가 볼상 사나웠다. 돌담 위로 부처님 옆얼굴이 살짝드러나 있었다. 아아! 부처님, 아니, 고대 백제의 우리 할아버지! 관리 사무실 앞마당으로해서 작은 대문을 지나면, 바로 삼..
서산 개심사 마음을 여는 절집 "開心寺"에 다녀 왔습니다. 유명한 사찰로 세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해서 두 번 째로 방문했습니다만, 제 짧은 미감으로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절집에 들어가는 길에 들은 바람소리는 무척이나 청아했습니다. 나목 가지들을 통과하며 갈라졌다가 이어붙는 바람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흐린 날씨에 늦은 오후라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어서 한기를 더 느껴며 산길을 걸어 올라갔습니다. 불행하게도 지난 여름 태풍의 피해로 거목들이 부러지고 뿌리채 뽑힌 잔해들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상왕산 개심사 일주문입니다. 천왕문이 없습니다. 일주문에서 주욱 걸어 오르면 절집에 닿게 되는데, 직사각형 연못이 길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마당에는 나무들을 가지런하게 잘라 쌓아 놓았습니다. 아마..
백양사 제 철에 백양사를 방문해서 단풍을 본 것이 처음이다. 사진에서 보면 새빨간 단풍에 나무와 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물들어 버릴 것 같던데, 백양사에서 본 단풍은 전혀 그것이 아니었다. 물들기 시작한 것이 있는가 하면 새파란 단풍도 있고, 혹은 벌써 말라 오그라든 단풍도 있었다. 벚꽃처럼 일제히 온세상을 물들이는 단풍은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제천 정방사 천년고찰 '정방사' 소문만 듣고 가을 구경하러 불원천리 멀다 않고 찾아 갔는데, 정방사 가는 길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고속도로로 달려 중앙고속도로 남제천 나들목으로 나와 청풍명월단지부근을 거쳐 금수산 정방사 입구 2km 전 지점까지 갔다. 큰 길에서 좌회전해서 들어가자마자 비포장도로가 나오고 시멘트 다리를 지나니, 포장된 도로가 좁디좁은 1차선로였다. 때마침 정방사에서 내려오는 차량 4 대를 만나, 다리 위까지 후진하여, 사이드 거울까지 접은 뒤 교행하도록 했다. 좁은 1차선로 때문에 차를 되돌려 입구에 세워놓고, 2km의 산길을 타박타박 걸어 올라 갔다. 40분여를 걸어올라 갔는데, 시멘트 포장로라 산길다운 운치는 적었다. 다행하게도 도로 양편에는 큰 나무들이 빼빽하게 이어져 있어서 그늘을 만들어 주..
양양 낙산사 - 절경과 조화 이룬 아름다운 사찰 양양 낙산 해수욕장에서 1박하고, 조반 후에 낙산에 올랐습니다. 2005년 4월 산불로 거의 다 타버렸던 낙산사를 찾았습니다.2007년 봄에 들렸을 때, 그 모습은 너무 참혹했었습니다. 낙락장송들은 다 사라지고, 흉측한 암반과 거친 지표면이 뻘겋게 드러나, 아름다웠던 옛 모습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화마를 면한 의상대와 홍련암 만을 애절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돌아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낙산 비치호텔방면으로 올라가니 제일 먼저 나타난 것이 의상대입니다. 불타지 않은 몇 그루의 나무들이 옛날의 정취를 조금이나마 전해 주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탐방객들이 많았습니다. 의상대에서 홍련암으로 가는 길입니다. 불에 타지 않은 노송들 사이로 어린 소나무들을 식재해 놓았습니다. 해당화도 심었구요. 처음 오..
오대산 월정사 산이 좋아 오대산에 갔는데, 이찌 사찰순레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나라 명산 명당 자리마다 부처님을 모셨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만, 불교 교리에 대해서 잘은 몰라도 유명한 사찰은 모두 답사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월정사는 그동안 여러 차례 가보았지만상원사와 적멸보궁은지나쳐 버렸기에 마음먹고 들렸던 것입니다. 생각같아서는 비로봉까지 오르고 싶었지만 일행 때문에 그러진 못했습니다. 어쨌거나 오대산을 빠져 나오면서 월정사에 들렸습니다. 약 15년만에찾아온 것 같은데, 그 동안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상원사에서 내려오다가 포장도로에 접어들면서 계곡이 넓어지는가 싶더니, 커다란 아치형 다리가 나타났습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길옆자리에 차를 세워두었습니다. 주차장까지 가는 것이 번거로워서 역시 빈 공간을..
오대산 적멸보궁 상원사에서 가파른 산비탈길을 돌아돌아1.5km 정도 가면, 적멸보궁입니다. 적멸보궁에서 또 1.5km 오르면 오대산 비로봉입니다. 시간 관계상 비로봉까지는 불가하고, 적멸보궁까지 목표로 삼아 올랐습니다. 적멸보궁 가기전에 만난 중대사자암입니다. 이 암자는 특이하게도 비탈을 그대로 이용하여 전각들을 이어 지었습니다. 그 형상이 특이하여 아래에서 위로 올려한 컷 올려 보았습니다. 맨 위가 사자암 법당입니다. 계단을 통해 맨 위에 올랐는데, 오른쪽이 사자암,왼쪽이 적멸보궁 가는 길입니다. 사자암 끝에서 적멸보궁 가는 방향으로 넓게 바라 보았습니다.계단 양쪽에 사자가 험상궂은 모습으로 법당을 수호하고 있습니다. 사자는 문수보살이 타고 다니는 용맹의 의미를지닌 상징적 존재랍니다. 법당 앞 계단가에서 문수보살을 태..
오대산 상원사 오대산 상원사는 월정사의 말사로 국보인 동종이 있는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월정사 입구에서 주차료와 입장료를 내고 주욱 들어서면 월정사가 나타나고, 이를 지나 비포장도로를 8km정도 올라가니, 상원사 주차장이 나타났습니다. 오랫만에 달려보는 비포장 도로가 오히려 운치있는 산길로 느껴집니다. 그곳에는 맑은 계곡물과 청량한 공기, 모든 것이맑고 그윽한 오대산 깊은 곳에 함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주차장에서 300여m를 우회해서 올라가면바로 상원사입니다. 여기서 산비탈을 1.5km 정도 더 오르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습니다. 돌계단을 올라서 좌측으로 들어서서 바라본지혜의 샘(약수)인 작은 정자같은누각을포함한 전경입니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로 직진하여 만화루 누각 아래를 통과하면 상원사의 대..
해동 용궁사 바닷가 사찰로 유명한 부산 해동 용궁사를 갔다. 용궁사로 들어가는 도로는 공사 중이었는데, 사찰 입구도 좀 정비되어야 할 것 같다. 길가 징수원에게 주차료 2000 원을 낸 뒤, 주차장에 차를 두고, 좌우에 도열한 상점들을 헤치고 아래로 내려가니, 12 지신상을 비롯한 석물들이 즐비했다.불교와 무관한 석조물들도 있어서 종교적 분위기가 다소 산만했다. 용문석굴이라는 작은 석굴을 통과하여 나서니, 탁 트인 전망 아래 사찰 전경이 눈에 들어 왔다. 한 눈에 봐도 절경 그 자체였다. 절에 곧바로 입장하지 않고, 좌측의 작은 길을 따라 바닷가로 나가, 멀리서 용궁사를 조망했다. 경관이 뛰어나게 빼어난 명승지에 우뚝 서있는 아름다운 사찰이었다. 이런 곳에 절을 짓다니 놀라운 발상이었다. 동해의 파도가 굽이치는 기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