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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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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젠 료칸 운젠은 나가사키에서 동쪽으로 2시간 30분 정도 거리이다. 나가사키에서 셔틀버스로 해안을 끼고 달리다 보면 빽빽한 산림지대로 오르는데, 운젠(雲仙)은 유황 냄새가 진동하는 국립공원온천지대였다. 운젠지구 유메이(有明) 호텔에서 내렸다. 2층 숙소는 온천의 전형적인 료칸 다다미방이었다. 실내구조는 몇 년 전에 방문했던 후쿠시마현 아이즈와카마츠시의 아시노마키 온천 료칸과 유사했다. 금년 봄의 지진과 쓰나미로 엉망진창이 되었을 후쿠시마의 그 료칸은 지금쯤 어찌 되었을지... 침실 앞 발코니 세면대 욕실인데, 욕조가 특이했다. 누을 수 있는 공간은 없었고, 대신 앉으면 전신을 담글 수 있을 만큼 수조가 좁고 깊었다. 숙소에 짐을 놓고 지역 관광에 나섰는데, 이름 모를 새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우리나라에서 들어본..
나가사키 공항에 나가면 언제나 마음이 설렌다. 미지의 세상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저마다의 가방을 메고, 또는 끌고, 세상의 각지로 떠나는 사람들의 앞길은 생각만 해도 흥미롭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일본어도 전혀 못하면서 가이드 없이 내 스스로 지도를 보며 돌아다니는 자유여행이다. 제대로 찾아다닐 수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비행기는 대지를 박차고 인천대교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불과 한 시간여 만에 나가사키 상공에 도착했다. 섬이 많은 우리 남해안처럼 복잡한 해안선이 시야에 들어왔다. 제주보다 10여분 더 비행하는가 싶다. 바닷가에 조성된 나가사키 공항, 야트막한 산 위에 조경수로 '나가사키'를 새겼다. 작고 깔끔한 공항청사였다. 300여 명의 한국인들이 입국하는데, 한 시간은 족히 걸렸..
자이푸르에서 델리로 오전 8 시경 델리로 가기 위해 호텔을 떠났다. 델리까지 동북쪽으로 가야 한다. 차창 밖으론 따가운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며칠 동안 오가며 보았던 언덕 위 옛 고성 위에도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떨어지고 있었다. 인도 마을은 어딜 가나 대동소이했다. 흙더미가 여기저기 쌓여 있고, 쓰레기들이 널려 있다. 그 사이를 소떼들이 어슬렁거리며 쓰레기 더미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소처럼 들개들도 한가롭게 너무나 태연히 사람 가까이에서 떠돌아 다니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 자이푸르는 야산들이 종종 눈에 띈다는 것이었다. 공터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어비야스 말에 따르면 낙타 가죽시장이란다. 보따리를 풀어 땅바닥에 가죽들을 펼쳐 놓고 매매하고 있었다. 오른쪽 창으로 계속 햇빛이 들어 왔다. 커튼을 내리고 이따..
자이푸르 파괴의 신인 시바의 아들, 가네샤 Ganesha). 시바와 파르바티의 아들이며 코끼리 머리를 한 힌두교의 신 부와 복을 주는 신이며, 장애를 제거해 준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다. 예배를 할 때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제일 먼저 찾는 신이며 그의 형상은 사원이나 주택의 입구에서 볼 수 있다. 문학과 학문의 보호자이고,〈마하바라타〉(바라타 왕조의 대서사시)를 받아 적었다고 하는 전설적인 서기(書記)이다. 또한 가나(시바의 시종)들의 우두머리이기도 하다. 가네샤는 보통 붉은색으로 묘사된다. 배는 항아리같이 튀어나오고 엄니 하나가 부러져 있고 4개의 팔로는 올가미와 막대기, 쌀이나 사탕을 담은 단지, 부러진 엄니를 들고 있기도 하며 사람들에게 은총을 베풀고 보호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쥐 위에 올라타고 있는..
아그라의 타지마할 1. 아그라까지 여정 카주라호에서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까지도 험난한 여정이었다. 오전 11시경 카주라호 사원 관광을 마치고 또다시 작은 SUV에 몸을 맡기고 잔시역으로 이동했다. 엉성한 포장도로는 노지의 오프로드 같았다. 작은 7인승 SUV 맨 뒷자리에 이틀 동안 타고 이동한 탓에 온몸이 쑤셨다. 잔시역에서 특급열차를 탄다고 해서 편안한 여행을 기대했었으나, 말로만 특급열차였다. 잔시역에서 오후 3시 20분 기차를 타고 3시간 30 분여를 달려, 7시경 어둠 속에 아그라역에 도착했다. 엄청난 강행군에 몸은 극도로 피곤해져,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속까지 니글니글해서 식사도 거의 하지 못해, 몸 컨디션은 말이 아니었다. 푸르고 아름다운 강도 건넜다. 그리고, 수많은 작은 마을들을 지났다. 마을마다 왜 ..
카쥬라호 애로틱 사원 카쥬라호는 우리나라 면소재지만한 작은 마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로틱 사원이 22개나 있어서 하루 한 차례 오가는 여객기를 운항하는 유명 도시이다. '카쥬'란 '야자'나무란 의미이며 라호는 뒤(後)라는 뜻이다. 옛날 성곽 뒤에 황금야자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카쥬라호 사원들은 힌두 예술이 융성하던 9 세기 경에 달(月) 신의 후예라는 찬델라 왕조가 세웠는데, 이슬람교 세력이 이곳을 지배하면서 우상숭배라며 85개나 되는 사원들을 부숴버리고 22개만이 남아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1. 카쥬라호까지 여정 바라나시로부터 소형 SUV로 9시간을 달려야만 했다. 산이 거의 보이지 않는 인도의 지형이지만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매우 불편했다. 때로는 움푹 파이고, 때로는 역주행하는 차량까..
바라나시 사르나트와 갠지스 강 1. 델리에서 바라나시까지 델리에서 바라나시 가는 야간열차 속에서 새벽부터 에어컨 바람 때문에 발이 시려워 잠을 자지 못하고 3층 침대에서 내려와 오들오들 떨었다. 좁은 침대칸에서 뒤적거리다가 열차 이음새 통로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시간을 보냈다. 동터 올 무렵 열차의 출입문을 열고 안개 낀 들녘을 몇 컷 찍었다. 이른 새벽 원주민 한 명이 철로를 향해 쭈그리고 앉아 큰일을 보고 있었다. 야간 열차는 3층 침대 열차로 중앙 등받이 부분을 들어 올리면 3단 침대칸이 된다. 열차 칸은 벽으로 구분된 독립 공간이 아니라 커튼으로 가림막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통로가 좁아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리를 뚝뚝 건드리고 지나가기도 했다. 열차는 공간을 극대화하여 6인용 침대칸 옆으로 작은 통로를 두고 그 옆에 세로로 만든..
델리 영하 15도를 밑도는 추위 속에 미지의 나라, 인도로 간다. 기껏해야 '물레 젓는 간디'의 나라로만 알고 있는 인도,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 중국 다음의 인구를 가진 나라...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인도에 대한 상식이었다. 2011년 1월 인천 공항의 날씨는 눈까지 내린 가운데 춥고도 맑았다. 델리행 여객기는 마니산 상공을 빙 돌아 서남향으로 떠올랐다. 델리까지 9시간 비행... 지루했다. 비행기의 창문마저 닫아버리고 모든 승객들이 피로에 지쳐 좁은 좌석에서 뒤척거릴 때, 누군가가 '에베레스트 산'이 보인다고 말했다. 나도 창밖을 보았다. 처음에는 구름과 눈에 덮인 산맥들이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비행기는 가로로 길게 뻗은 히말라야 산맥을 멀리 옆으로 끼고 날고 있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
용경협, 천단, 이화원 1. 용경협 만리장성 다음 행선지는 북경에서 85㎞ 정도 떨어져 있고, 자동차로는 1시간 정도 걸린다는 용경협이었다. 용경협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던 차라, 하나의 협곡으로 생각했었는데, 협곡을 가로막아 댐을 만들고, 댐 위에 보트를 띄워, 유람할 수 있도록 한 관광명소였다. 1973년에 계곡을 막아 댐을 건설하면서 생긴 인공 호수(저수지)로, 중국과 홍콩이 합작으로 건설하였다고 한다. 댐 높이는 70m, 전체 면적은 119㎢, 총길이는 21㎞이란다. 1996년 댐 위에까지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생기면서 북경의 16 명소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7㎞를 운행하는 유람선이 특히 유명한데, 유람선을 타고 주위 절경을 감상하는 데 총 8시간 정도 걸린다. 협곡의 좌우로 기기묘묘한 봉우리들이 잇따라 ..
북경, 자금성, 정릉, 만리장성 1. 북경공항 오전 11시경 도착한 북경 공항, 하늘은 스모그 때문인지 뿌옇게 흐려 있고, 찌는 더위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청사 밖으로 나오자, 더위에 숨이 턱 막히었다. 스모그로 하늘이 뿌옇게 가려 답답했고 후덥지근한 것이 불쾌감이 밀려왔다. 점심을 먹으로 들른 북경 시내, 현대 아반테 택시들이 많이 보였다. 2. 천안문과 자금성 천안문 가는 길에 만난 도로 위의 승려들, 더운 날씨 탓인지 길거리에 주저 앉아 있는 모습이 몹시 지쳐 보였다. 천안문 앞 광장 중국의 상징인 천안문과 광장, 그 광활함에 놀랐다. 천안문 뒤 자금성 입구인 남문인데, 현판에 12간지를 써서 오문으로 표현했다. 천안문이 광화문처럼 궁궐의 정문이란 사실을 이곳에 와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왜 봉건적 산물인 청나..
연길, 두만강, 백두산 입국절차를 마치고 빠져나온 연길국제공항. 작고 아담했는데, 외양이 비행기 모양을 하고 있었다. 공항 밖 풍경 미니버스에 올라 여정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항을 빠져나와 대륙을 달렸다. 도로 양 편엔 가도 가도 끝없는 옥수수밭이 이어졌다. 드디어 도착한 곳은 두만강가 도문이었다. 중국에서는 투멘, 북한에서는 난양이라고 하는 표식이 서있었다. 공산주의 국가는 왜 별들을 국기에 다는 걸까. 북한 깃발의 상징적 의미는 무엇일까 나루 건너편이 바로 북한 땅이다. 강 폭이 약 100여 미터 정도나 될까. 대나무 뗏목을 타고 두만강을 유람했다. 전면이 북한 땅이다. 북한 땅 가까이 다가가도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았지만, 가슴은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얼핏 숲 속에 몸을 숨기고 우리를 주시하고 있던 누런 군복의 인..
타이뻬이-화련-야류 우리의 이웃인 타이완 방문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일본과 중국엔 갔었는데, 우리나라 경제 수준과 비슷하다는 대만은 어떤지 궁금했다. 십 년 전 태국 갈 때 한 번 타이베이 공항에만 잠깐 내려 환승한 일이 있긴 했는데, 그거 가지고 대만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옛날 국어교과서에서 읽은 오봉선교사의 고산족 교화 이야기가 지워지지 않았고, 한 때 동병상련 격으로 서로를 아끼던 나라였다가 국교단절 이후 웬수진 나라로만 알고 있었다. 2010년 1월 10일 아침은 너무 추운 날이었다. 아침 일찍 서둘러서인지 공항 안에도 추운 건 마찬가지였다. 창밖엔 눈 덮인 활주로에 꽁꽁 얼어버린 것 같은 비행기가 대기하고 있었다. 무료한 가운데 대합실에 앉아서 두리번거리노라니 투터운 옷을 입은 승무원들이 먼저 비행기에 오르..
하꼬네, 닛코, 토쿄 가깝지만 먼 나라, 미워하고 싫어하지만, 어쩔 수없이 기대는 나라, 일본. 옛날부터 왜구들은 노략질과 조선조 7년간 왜란과 근세에 이르러 강제병합하여 식민지 수탈 등, 우리 역사를 오욕으로 물들였다. 아직도 그들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못하고, 적반하장으로 독도가 지네 땅이라 우기는 소인배들이기도 하고... 그러나 한편, 우리 경제개발의 모델이 되었고, 지금도 우리가 의존하는 경제 대국으로, 손잡지 않을 수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일본은 두 번째로 방문하는데, 이번에는 후쿠시마에서 도쿄로 여행했다. 비행기는 한적한 시골 마을 후쿠시마 국제공항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후쿠시마공항에서 입국 수속. 입국 수속이 간단하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작성한 입국신고서 양식이 잘못되었다고 다시 쓰란다. 기분이 좋을 리..
씨엠립-앙코르와트 5월 13일 오후 6시 40분경 씨엠립 공항엔 폭우가 내렸다. 폭우 속에 베트남 에어라인 항공기에서 트랩을 내려 버스에 탔는데, 빗방울이 세차게 몰아쳤다. 비 때문에 여행이 힘들어지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트랩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청사로 이동했다. 앞서 내린 승객들이 공항 청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난장판이었다. 이유를 몰라 바깥 상황이 궁금해졌다. 문제는 신종 플루 때문, 청사 밖에서 자기 건강진단서를 작성해서 내라는 것인데, 사람들이 대비하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용지를 얻어 들고, 볼펜을 꺼내 들었지만 짧은 영어 실력 때문에 역시 허둥대지 않을 수 없었다. 어깨너머로 간신히 적어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캄보디아 사람이 여행사 표지를 들고 있어서 그리로 갔더니 비자 발급비 25불과 여권을 내란다. 사람..
하롱베이와 하노이 아침식사 후 곧장 하롱베이 선착장으로 갔다. 물을 좋아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인자는 요산요수라 했으니 물을 벗 삼아 지내는 것이 사람의 심성을 너그럽게 하나 보다. 이곳은 물 좋고 아름다운 기암괴석들로 가득하니 금상첨화라 하겠다. 선착장 대합실을 빠져나가 계단으로 내려가 대기하고 있는 유람선에 올랐다. 오늘은 이 배에서 하루종일 선상유람할 예정이다. 비슷 비숫하게 생긴 수많은 유람선들이 즐비하다. 그 사이로 우리를 태운 유람선은 바다로 나갔다. 바다라고 하지만, 잔잔한 물결이 호수 같다. 이 넓은 바다 호수에 기암괴석으로 된 무인도가 수천이란다. 참으로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이라 하겠다. 유람선은 목선으로 2 층 구조였는데 아래층은 식당으로 꾸며졌고, 2층은 갑판으로 사방을 조망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
하롱베이 가는 길 9년 5월 11일 오전 5시 50분 인천행 리무진에 올랐다. 밖에 비가 내리고 운전기사는 아직 승차하지 않았다. 운전석 뒤에 자리 잡고 앉았다. 베트남! 어린 시절 파월국군아저씨들께 위문편지 무지 썼다. 답장도 한 번 받았었는데, 답장 주신 그분, 몹시도 외로웠던 분이었나 보았다. 남자 중학생이 상투적으로 쓴 위문편지에 답장을 받는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 답장 속에 동봉되었던 사진은 야자수 아래 선글라스 쓴 멋진 국군 아저씨였었다. 그 후 그분은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무사히 귀국하셨으리라 믿고 싶다. 또, 그 시절 소풍 가서 노래 부르라면 "남~남쪽 섬에 나아라 월남에 다알밤, 시입자 성 저 벼얼비츤 어머어님 어얼굴. 그 누우가 불러 주~우는 하모오니카아냐? 아리랑 멜로디가 향수에 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