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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

강화 전적지



1. 고려궁터


  강화도 고려궁지입니다. 고려는 1232년 대몽 항쟁을 위해 강화로 도읍을 옮기고 송도 궁궐의 모양을 본떠 3 년여에 걸쳐 궁궐을 지었답니다. 그 후 1270년 몽고와 화해하고 송도로 천도했는데, 천도 후 불에 타 소실되었다고 합니다.조선시대에에는 이곳에 행궁을 짓고 강화유수부 등 많은 건물들을 세웠는데,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에 의해, 규장각에 있던 주요 서적 문화재가 약탈되고, 건축물들이 불타 없어지게 되었답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고속전철을 팔기 위해,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이 때 약탈해 간 규장각 도서를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돌려주지 않고 시침떼고 있지요.


복원해 놓은 외규장각 건물입니다.



2. 초지진


운양호 사건 때 일본군으로부터 포격당한 흔적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는 초지진입니다.



3.광성보


  병인양요, 신미양요 때 격전지인 광성보 안해루입니다. 조선시대  지키는 중요한 해안 요새로서 프랑스군, 미군과의 전투에서 조선군 몇 명을 제외하고 대부분 전사한 곳입니다. 1977년 유신시절에 복원했습니다.


광성보 안에 복원해 놓은 포대


신미양요 때, 순국하신 무명 용사들을 기리는 비각입니다.

 

  광성보 전투의 처참함을 보여주는 사진 자료입니다. 시련 많은 우리 역사의 흔적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곳이 강화도가 아닌가 합니다. 외적의 침략 때마다 강화도는 왕들의 피난처였고, 근세에 들어서는 서구 열강들이 조선 왕조의 숨통을 노리던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확대사진



  광성보 안의 해협을 따라 용머리처럼 돌출한 자연 암반을 이용하여 축조한 용두돈대입니다.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와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를 치르면서 외국 함대들과 벌인 치열한 전투로 성벽이 크게 파괴되었으나, 1977년 강화 중요 국방유적 복원정화사업으로 다시 복원하였습니다.


용두돈대에서 바라본 강화해협입니다.


바닷가 작은 논에 벼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과거의 상흔을 모두 잊은 듯, 활기찬 표현을 벼포기에 심었습니다.


  평화스럽고 아름다운 해협에는 처절한 아픔이 서려 있습니다. 강화도에는 아름다움보다는 대륙과 해양 세력들로부터 위협 받던 우리 슬픈 역사가 쌓여 있습니다. 오늘날, 북한과 갈등이 고조되면서, 미국과 중국 틈바구니 속에서 새로운 냉전적 갈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현실의 난관을 슬기롭게 극복해서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의 참화를 당하지 말아야 할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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