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에서 벗어나 장터 구경 후, 다리 건너에 있는 세미원으로 갔다. 洗美苑이란 이름이 너무 예쁘다. 물과 연꽃들을 보고 마음을 씻어내면 어떤 경지일까. 씻고 씻으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無의 세계, 즉 色是空의 세계는 아닐까. 입장료 3000 원을 내고 표를 끊으니, 입장권은 관람 후에 음료나 선물로 교환해 주니까 절대 버리지 말란다. 참으로 재미있는 발상이었다. 모두가 한 푼이라도 더 뜯으려고 야단인데, 이런 서비스로 관람객들에게 베푸니, 세미원을 만들고 이런 배려까지 해주는 양평 지자체 사람들이 참으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미원 4층 건물은 연꽃 박물관이란 현판을 달았다.
세미원 입구, 뒤 건물은 연꽃 박물관
매표소, 매표소 뒤의 출입문에는 태극기 문양이 그려졌고, 그 문 이름은 不二門이었다. 연꽃에서 깨우침을 얻으라는 것일까. 작은 정성과 배려 하나하나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유상곡수, 포석정에서 돌에 도랑을 내고 물을 돌려 풍류를 즐겼다는 것처럼, 냇물을 돌아 흐르게 하여 자연경관을 조화롭게 만들었다. 개울 가운데 징검다리를 밟으며 걸으니, 더위도 조금 가시는 듯싶었다.
항아리로 만든 분수대.
세미원 윗부분에는 고가도로가 가설되어 수많은 차들이 굉음을 내며 달려간다. 교통의 편리성을 인정하긴 하지만 안타까운 일이다.
그야말로 연밭 세상이다. 철이 조금은 늦었나 싶다. 시들은 연꽃 들고, 폭우와 태풍 때문인지 고개 숙인 연꽃들이 많이 보였다. 꼿꼿하게 머리를 들고 탐스럽게 피어난 연꽃을 찾아보기 어렵다. 망원렌즈를 가져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 무게 때문에 지니지 못한 것이 종내 아쉽기만 했다.
세미원 위를 횡단하는 고가도로가 역시 흠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다리 아래 그늘에 평상들을 펼쳐 놓아, 관람객들에게 쉼터를 마련해 주었다. 다리 밑이 의외로 서늘했는데,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와 더위와 땀을 날려 주었다.
세미원 끝머리로 나가니, 조금 떨어진 서쪽으로 두물머리가 보였다.
동남아시아에서 들여온 듯한, 이국적 용모의 불상 머리가 작은 연못 속에서 명상에 잠겨 있다.
연꽃 박물관에 들어갔다. 2층은 연꽃과 관련된 유물을, 3층은 일반적인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다.
계단에 설치한 물고기와 연등
연꽃 박물관에 어울리는 다소곳하고 소박한 연등이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입장권으로 원두 냉커피를 받았다. 여러 가지 다양한 음료를 골라서 서비스받을 수 있었다. 처음 경험해 본 이런 서비스에 잔잔한 감동까지 밀려왔다.
세미원 위치도 -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용담리 632, 031-775-1834
세미원은 "물을 보면 마을을 깨끗이 씻고, 꽃을 보면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라는 "관수세심, 관화미심(觀水洗心, 觀花美心)"라는 말씀에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흐르는 한강물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씻으라고, 상징적으로 대부분의 길들을 빨래판으로 만들었고, 수련과 연꽃들을 보고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는 뜻으로 수련과 연을 심어 그야말로 물과 연꽃의 정원이 되었다. 우연히 찾아간 세미원에서, 현대 일상생활에서 탁해진 심신을 씻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