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斷想

환구단의 봄

 서울시청 근처에 갔다가 환구단을 찾았다. 환구단 주변의 나무들에 녹음이 깊어 겨울 분위기와 사뭇 다르게 보였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후, 제대로 된 가치관의 정립도 없이, 외형적으로만 치달아 온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환구단이 아닌가 싶다. 민족 자존의 자긍심은 현대식 빌딩들의 뒷골목에 묻어 버리고, 도시의 겉만 화려하게 치장하고는 세계 선진국으로 진입했느니 어쩌니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에게 과연 '정의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집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수한 사건 사고들에 온몸이 움츠려 들기도 한다. 믿을 곳이 점점 사라지는 현실에 공포감마저 일어나 잠자기 전에 현관문의 잠금장치를 확인하는 버릇까지 생겨났다. 별로 가진 것도 없이 사는 주제에 외부세계에 대한 겁만 늘어나서 내 스스로에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아파트 현관 게시판에 붙은 도둑들의 희미한 CCTV 영상이 자꾸만 떠오른다.

 

 충청도 어느 마을 상수도 수조엔 누군가가 농약을 풀었으며, 전라도 어느 광역시에서는 상수도가 오염되어 15시간이나 시민들이 마실수도 없었다는 소식은, 엄격히 관리되는 도시의 수돗물조차 믿을 수 없이, 위험에 빠진 우리 현실을 보여준다. 공공의 장소인 전철 안에서는 담배녀와 대변녀가 등장하고, 손녀뻘 어린 처자에게 돌림빵이 좋겠다는 늙은이의 망발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원자로의 부품을 가짜로 끼워 넣었고, 군용기를 서류만으로 정비하고 돈을 가로챘으며, 내부의 부정선거로 비례대표 상위에 등재되어 국회의원이 될 거라는 어느 진보정당의 정치투쟁까지 뉴스로 덤덤하게 회자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세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고 보면, 무슨 일이 없을까마는, 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세상의 몰가치관적 삶의 방식 때문이라 생각하며 가슴을 친다. 인간이 짐승과 구별되는 것은 인성 때문일진대, 인성보다는 동물적 본능을 키워 나가는 우리의 삶의 태도가 가장 큰 문제다. 문명이 발달하고, 물질적으로 풍요한 세상에 살게 되었지만, 가슴 조이며 살아가는 것은 소득과 반비례하는 것이 오늘날의 삶이라 생각하면 더욱 가슴 아프다.

 

 작은 것 하나부터 올바르게 정립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급선무라 생각하며, 뒷길에 방치되어 외면받는 문화재 하나하나가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어야 하며, 가슴 조이고 사는 서민들도 문단속 걱정이 없이 사는 세상이 되어야, 세계화 시대에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는 국격을 지닌 나라라고 생각해 본다.

 

 

 

 

'斷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질풍노도  (3) 2023.01.29
경회루 야경  (0) 2012.05.23
온통 꽃동네  (0) 2012.05.11
윤삼월  (4) 2012.05.09
앗싸, 새우깡!  (5) 2012.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