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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향적봉

  2월 4일, 향적봉을 향해 길을 나섰다. 10시 30여분, 덕유산 국립공원 삼공지구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다리를 건너며 바라본 덕유산정엔 흰 눈이 쌓였다. 덕유산 산행이 이 추운 겨울 마지막 눈꽃산행이었다.

 

 

 국립공원 안내 표지. 부지런하게도 벌써 내려오는 분들도 있었다.

 

 덕유산 국립공원 전체 안내도.

 

  백련사까지는 포장도로였다.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는 산행이 어색해서, 산길을 택할까 고심하다가 포기하고 사람들 뒤를 따라 올라갔다. 도로 위에는 눈 뭉친 얼음 덩어리들이 간간 있었고, 추운 날씨답게 가끔 강풍이 큰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노출된 귀와 볼을 싸매고 모자를 뒤집어 쓴 채 얼음 계곡을 따라, 도로를 한참 걸었다.

 

 그늘 쪽엔 눈길이 얼어 있었고 간간 모래를 뿌려 놓았으나 미끄러웠다. 계곡의 경치를 바라보며 가끔씩 칼바람을 마주 받으며 올라 갔다.

 

 계곡물이 얼어붙었으나 경치가 좋았다. 여름철 피서지로 그만일 것 같다. 과거에 삼수 갑산, 양구 방산과 함께 삼대 산골이라는 무주 구천동 계곡이니 어련할까마는... 70년대 여름에 이곳에 들려 한참을 놀다 갔는데,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백련사 일주문부터는 아예 얼음길이었다. 옛날 이곳이 개발되기 전에는 산길을 넘어 백련사에 왔었다.  이제 도로가 포장되고 없었던 일주문도 듬직하게 앉아 있었다. 달라진 주변의 모습에 옛날의 기억도 가물가물해서 세월 저 편에서 맴돌았다

 

  얼음길을 간신히 올라 오른 편의 백련사로 접어들었다. 산골짜기에서도 양지바른 남쪽에 터를 잡은 스님들의 혜안이 놀라울 뿐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절들은 산골짜기 깊은 곳에 있어도 남쪽이 탁 트이고 햇볕이 잘 들며. 좌우로 산등성이들이 청룡과 백호처럼 법당을 감싸 안고 있다. 스님들은 풍수에도 능통하신 탓이겠다.

 

 백련사 대웅전. 왼쪽에 약수가 있었는데, 날씨가 추운 까닭으로 그냥 지나쳤다.

 

대웅전을 지나자 확 트인 계곡 앞에 앞산 능선들이 나타났다. 시원한 전경에 가슴까지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백련사를 지나니 비로소 산길이 나타났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백련사 경내가 끝났다. 좁은 산길에 눈이 살짝 뿌려졌다.

 

산길이 점점 가파르게 전개되었다. 나무 계단을 숨 가쁘게 올라간다. 다행히 나무 계단이라 다리에 무리는 덜 할 것 같긴 하지만...

 

  고도가 높아지자 산길은 눈길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아이젠을 착용하고 등반했다. 산 너머로부터 내려오는 등반객들의 아이젠 소리가 눈길을 밟는 경쾌한 소리로 들린다. 준비해 간 아이젠을 끼울까 하다가 그냥 올라가기로 마음먹었다. 조심조심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 한 걸음씩 옮겨 갔다.

 

 오르는 계단에 사람들의 발자국이 눈길에 파여 있다. 앞선 이들의 발자국을 조심스레 밟으며 한 걸음씩 올라갔다.

 

 무리져 떼로 등산하는 것도 좋지만 혼자 하는 산행이 일품이었다. 조용히 산세를 감상하며, 새롭게 전개되는 풍경에 신들린 듯, 빠져들었다, 단지 이정표 없는 양갈래 길을 만날 때 몹시 당황스럽긴 하지만...

 

눈길을 조심조심 올라가다 정상 부근에서 이정표를 만났다. 대피소 쪽으로 갈 것인가 향적봉 정상으로 갈 것인가 갈등이 일었다. 갈등 끝에 대피소 코스를 버리고 정상을 향해 방향을 돌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잘못된 선택 때문에 고생을 해야만 했다. 산행도 좀 즐기지 못하게 되었고... 산행 전 정보 수집이 중요하다는 것을 여기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나무들의 키도 점차 작아졌다. 작은 나무 사이로 얼어붙은 등산로를 조심조심 올랐다.

 

 짙푸른 하늘에 강풍에 실려 구름이 몰려왔다 흩어졌다. 가까워진 구름을 보며, 정상이 임박했음을 느껴 보았다. 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어왔고...

 

 드디어 향적봉 정상. 오후 1시 30여분, 3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강풍에 몸이 날아갈 듯 휘청거렸다. 발밑은 얼음으로 몹시 미끄러웠다. 향적봉 표지석 바로 그 뒤가 정상이었다.

 

 정상에 올라 사방을 조망했다. 바로 아래로 스키장과 리프트와 곤돌라 타는 설천봉이 있었다. 저리로 가면 따스한 휴게실이나 식당도 있을 것 같았다. 산정에 오래 있고 싶었지만 추위 때문에 더 버티기도 힘들 것 같았다. 장갑 낀 손가락 끝이 아리도록 시렸다.

 

 산정의 안내 그림 따라 대둔산이 있다는 곳을 바라봤지만, 역광과 구름 때문에 대둔산으로 추정되는 산봉들은 볼 수 없었다.

 

 덕유산 전망도. 이 그림에 따르면 왼쪽 가야산부터 오른쪽 계룡산, 서대산까지 볼 수 있다.

 

 너무 추워서 하산하기로 했다. 그런데, 하산로에서 눈꽃들을 발견했다. 산 너머 양지쪽은 햇볕과 강풍에 눈꽃들이 다 떨어져 버렸지만, 바람을 정면으로 받는 이 길은 오히려 강한 바람에 날린 눈가루들이 나무에 붙어 눈꽃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산길에 눈이 더 많았다. 매우 미끄럽기도 했고,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상승기류가 몹시 차고, 거셌다. 바람 때문에 눈보라가 날리고, 그 눈보라들이 나뭇가지에 붙어 눈나라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주목인지 향나무인지 키 큰 나무가 절벽 끝에 서있었다. 벼랑 쪽은 나뭇가지가 바람 때문에 뻗지 못했다. 눈보라를 뒤집어쓰고 의연하게 서있는 모습이 아름다워 금줄을 넘어가 조심스럽게 산정을 향해 한 컷 남겨 보았다.

 

눈이 쌓여 얼어붙은 길이라 미끄러웠지만 겨울 풍취를 비로소 만끽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눈보라가 날렸다. 작은 사진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눈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오니, 설천봉으로 스키장 꼭대기였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온 젊은 스키어들이 스키를 타고, 또는 보드를 타고 급경사진 코스를 거침없이 할강해 내려갔다. 보기만 해도 오금이 달라붙는데, 실제 기분은 어떨까? 젊음이 마냥 부럽기만 했다.

 

 설천봉에는 곤돌라 타는 곳과 리프트 내리는 시설물들이 있었다. 따뜻한 물이라도 함께하며 준비해 간 도시락을 먹으려고 식당에 들렀는데, 출입문에는 외부 음식물 반입 금지라는 안내문이 큼직하게 붙어 있었다. 높은 산 꼭대기에 건물을 짓고 장사해야 먹고사는 심정을 모를 바 아니지만, 추운 겨울날에 등산객들을 위한 따뜻한 물 한 모금 제공하는 곳은 없었다. 다른 곳은 없나 하고 주변을 찾아보았지만 허사였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식당에서 잠시 몸을 녹인 후 곤도라를 타고 내려왔다. 곤도라 편도 탑승료 8000원. 등산 갔다가 하산 길에 곤도라 타고 내려오는 우스운 일이 되었다. 스키어들의 머리 위를 내려다 보며 10여분간 곤도라 여행을 하게 되었다.

 

  곤도라에 같이 탔던 중년 부부에게 어떻게 식사하셨냐고 했더니, 식사를 안 하셨단다. 그래서 내가 싸 온 도시락도 먹지 못했다니, 대피소로 갔으면 먹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또, 그곳엔 주목들도 많아 사진 거리도 많다고 얘기했지만 이미 지난 일이 되어 버렸다. 안타깝고 아쉬웠다. 밥은 그렇다지만 아름다운 경치들을 놓쳐버려 모처럼 산행이 헛수고가 돼버린 느낌이었다.

 

  설천봉 무주 리조트에 등산객들을 위한 쉼터가 한 곳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스키장이야 겨울 한 철이지만 등산객들은 사철인데 말이다. 설천봉 아래 리조트는 스키어들로 난장을 이루고 있었다. 그곳 역시 등산객들이 쉴 곳은 없었다. 설악산 권금성 케이블카와는 달리 스키장이 있는 무주 리조트는 한 마디로 흥청거리는 곳이었다. 다음에 또 덕유산을 오른다면 무주리조트가 있는 설천봉 코스는 꼭 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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