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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가야산이라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합천, 그리고 해인사 팔만대장경이다. 그런데, 해인사 보다 더 유명한 것이 가야산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도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학교 교육 때문인 것 같다. 빼어난 산을 찾아 스님들이 찾아들어 터를 잡고 절을 세웠을 게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을 우리의 전부로 여기는 것이 현실인가 보다. 그래서 몇 번이나 마음만 먹었었던 가야산을 찾기로 결심했다. 도착한 곳은 합천이 아니라 참외로 유명한 성주군 백운리였다. 차에서 내리기 전 차창으로 얼핏 본 구름에 휘감기는 준봉들의 모습에서 이미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주차장에서 내려 산행을 준비하며, 위로 올려다본 가야산 산세가 벌써 예사롭지 않다. 설렘을 안고 출발했다. 2009-09-03-10-20

 

백운동 휴게소

 

 탐방 안내소 여직원이 상냥하게 인사를 건넸다. 요즘 같은 각박한 세상에 처음 보는 등반객에게 인사라니. 황송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탐방길에 올랐다. 안내도를 보며 등반로의 대강을 머릿속에 그려 넣었다. 안내도의 빨간색 경로가 오늘 산행 코스다. 백운동에서 칠불봉-상왕봉-해인사로 이어지는 여정이다.

 

숲을 지나니 경계가 탁 트였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어느덧 세속과 멀리 떨어진 느낌이다.

 

가파른 철계단을 오르며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다. 아비를 따라나선 아들이 대견스럽다. 속으론 매우 미안했지만. 산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그리 많지 않으니 험한 산행을 따라나선 아들아이에겐 그저 미안할 따름이었다.

 

칠불봉 바로 밑이라는 이정표다. 위를 올려 보니 산정이 까마득하다. 가파른 철계단이 엄청나다.  

 

드디어 산정 칠불봉이다. 칠불봉의 유래가 표지석 아래 새겨져 있었다. 내용은 가야의 시조왕 김수로의 열 아들 중 일곱이 어머니 허황후의 오라버니 장유화상을 모시고 이 봉우리 아래에서 삼 년간 수행을 하고 생불이 되었단다. 그들이 수행한 곳이 칠불암인데, 지금은 그 흔적만 있단다. 표지석 앞에 이르니 날파리 떼가 극성을 부렸다. 이렇게 높은 곳에 벌레들이 극성을 부릴 줄은 생각도 못했기에 퍽이나 놀랐다. 주차장에서 이곳까지 2시간 10분여 소요되었다. 12-30

 

칠불봉에서 지척의 상왕봉을 바라보았다. 운무가 몰려든다. 상왕봉 정상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른다. 산에서 소리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데. 가운데 둥근 바위 봉우리가 상왕봉이다. 소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우두봉이라고도 한단다.

 

상왕봉 턱밑에서 산자락을 내려다 보았다. 길게 세속으로 늘어진 준봉들이 썩 볼 만했다.

 

 

상왕봉에 올랐다. 이젠 반대로 저편의 칠불봉을 바라보았다. 밑에서부터 구름이 올라 욌다. 봉우리 맨 끝자락에 칠불봉 표지석이 아련하게 서있었다.

 

구름이 멀리 있는 칠불봉 표지석을 감싸 돌았다. 청명한 가을날 산행의 즐거움이 바로 이런 가 보았다.

 

저 멀리 해인사가 있겠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곳으로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상왕봉에서 점심을 먹고 벼랑을 내려오다가 암벽에 붙어 핀 야생화를 발견했다. 끈끈한 생명력에 경외감을 느꼈다.

 

상왕봉 아래에서 뒤돌아 올려 보니 봉우리 전체가 거대한 암석덩이였다.

 

내려가는 길 오른편의 기암괴석군이 장관이었다.

 

바위산길을 내려오니 울창한 숲이 이어졌다. 신우대 사이의 등산로가 정겨웠다.

 

드디어 해인사 도착. 상왕봉에서 약 2시간 30분여 소요.(15-30) 세속을 떠나 산사로 들어온다는데 깊은 산에서 내려오니, 오히려 해인사가 속세의 초입 같은 느낌이었다. 하루의 등반이 이처럼 인간의 마음을 교만하게 하나 보았다.

 

팔만대장경고를 배경으로 한 컷. 안에서는 사진을 못 찍게 하니 밖에서 아쉬움을 달랜다. 팔만대장경! 이름은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지만, 그 상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다. 해인사는 개인적으로 네다섯 번 왔던 것 같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 직후 대구를 거쳐, 고교시절수학여행 왔을 때는 캄캄한 밤에 꼬불꼬불한 벼랑길을 돌아 돌아왔었는데... 그때 물레방아도 보고, 해인사 바로 아래 여관에서 계곡물 흐르는 소리 때문에 잠도 자지 못하고 긴 밤을 새웠었다. 엣 기억이 새로웠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그 시절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삶을 살아가는 내 자신을 되돌아보며, 살아가는 일상들이 참 별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문을 아들과 함께 나섰다. 인근에 최치원 선생의 유적도 보고 가면 좋으련만 아쉽게 떠난다. 최치원 선생은 당나라에서 귀국한 후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았던 경주 사람들을 등지고 이곳에 오셨다. 그의 유명한 7언 절구가 생각난다.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 "웅장한 물소리 첩첩한 바위를 달려 겹겹의 봉우리를 울리니, 지척의 사람소리도 분별하기 어렵구나. 사람들이 시비하는 소리 들릴까 두려워, 흐르는 물을 시켜 온 산을 둘러싸네." 역시 사람들이 많으면 이전투구하는 것이 인지상정인가 보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시비만을 일삼는 당대의 지식인들이 몹시 미웠을 것이다. 깊은 산속에 은거하여 물소리로 세상과 담을 쌓고 은거하는 자신의 고독감이 가득 배어 난다. 그해서, 자신의 호도 고운(孤雲)으로 이름 지었나 보다. 가야산, 그리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아기자기하고 어디서 전설이라도 하나 툭 터져 나올 것 같은 곳이었다. 다음에 다시 한번 와야겠다고 다짐하며 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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