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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

융건릉

  추석전날 폭우가 내리더니, 추석 지낸 다음날은 햇볕이 쨍했다. 하늘은 전형적인 가을이고, 날씨도 제법 쌀쌀해졌다. 날씨가 좋아 찾은 곳이 융건릉이었다. 비운의 왕세자였던 장조의 능인 융릉과 그의 아들 정조내왕의 건릉, 합해서 융건릉이다. 불쌍한 아버지를 잊지 못해 풍수까지 공부하며 아버지의 유택을 마련한 곳이 지금의 융릉이다. 아버지를 화산아래 융릉에 모시고,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위해 용주사를 중건하고, 아버지 곁에서 머물고자 수원 화성을 조성하여 천도까지 하려고 했었던 정조대왕이었다.



융건릉 입구의 매표소다.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표지석이 입구에 서있다. 입장료는 어른 기준으로 1000원이다. 

 

입구를 들어서서 오른 족으로 가면 사도세자의 융릉이다. 왕릉답게 소나무를 비롯한 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졌다.


돌다리를 건너면 융릉이다. 왕궁에 들어서도 냇물을 건너게 되듯, 여기도 마찬가지다. 물을 건넘으로써 심신을 정갈하게 하라는 의미이다.


홍살문을 중심으로 수랏간, 정자각, 융릉, 그리고 비각이 있다.


대한제국 때 세운 비각이다. 비석에 총알 자국이 있었다. 아마도 6.25전쟁 때 상흔일 것이다. 비석에새겨진 글씨는 "대한, 장조 의황제 융릉, 헌경의황후 부좌"라고 썼다. 세워진 시기는 대한제국 광무 4년, 서기 1900년이다. 헌경황후는 '한중록'으로 잘 알려진 혜경궁 홍씨이다.


능 위로 올라갈 수 없기에 가까이서 볼 수밖에. 계단을 옆에 만들어 좀더 가까이 볼 수 있게 하면 좋을 것을...


능 앞을 건너질러 산책로를 따라 정조대왕의 건릉으로 가면서 융릉을 다시 한 번 돌아 보았다.


태풍 곤파스로 수많은 나무들이 부러지고 뿌리가 뽑혔다. 아직 정리되지 않아 그 모습이 흉물스럽다. 그러나 시간의 역사로 본다면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 자연이 나무들을 솎아내었다고 생각하면 인위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초자연의 질서로 여겨진다.


융릉의 서쪽에 있는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대왕의 묘소인 건릉에 도착했다.


건릉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융릉보다 못하다. 정조대왕 승하후에 조성되었기에 아무래도, 불쌍한 아버지를 위로하고자 하는 아들의 정성을 능가하지 못했나 보다. 


능 뒤의 소나무들도 많이 쓰러졌다. 쓰러진 소나무들을 보니, 정조대왕에 대한 연민의 정이 더 크게 일어난다. 독살설도 있던데... 조선의 부흥기라 할 수 있는 정조의 시대가 오래 지속되지 못했음이 바로 우리 역사의 슬픔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비석에는 "대한, 정조 선황제 건릉, 효의 선황후 부좌"라고 새겼다. '대한'이라는국호와 '황제' '황후'의 표현으로 미루어 이도 역시 대한제국시절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건릉에서 산책로를 따라 왕릉 옆으로 우회하여 다시 융릉에 이르는 산책로를 찾아 걸었다.


왕릉 뒤 높은 산 등성이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멀리수원의 광교산과 관악산, 북한산까지 보인다. 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시계로 한양성 뒷산까지 보이는 것을 보니, 왕궁에서 항상 화산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그리워했을 정조대왕의 효심이 그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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