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3일 오후 6시 40분경 씨엠립 공항엔 폭우가 내렸다. 폭우 속에 베트남 에어라인 항공기에서 트랩을 내려 버스에 탔는데, 빗방울이 세차게 몰아쳤다. 비 때문에 여행이 힘들어지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트랩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청사로 이동했다.
앞서 내린 승객들이 공항 청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난장판이었다. 이유를 몰라 바깥 상황이 궁금해졌다.
문제는 신종 플루 때문, 청사 밖에서 자기 건강진단서를 작성해서 내라는 것인데, 사람들이 대비하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용지를 얻어 들고, 볼펜을 꺼내 들었지만 짧은 영어 실력 때문에 역시 허둥대지 않을 수 없었다. 어깨너머로 간신히 적어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캄보디아 사람이 여행사 표지를 들고 있어서 그리로 갔더니 비자 발급비 25불과 여권을 내란다. 사람들은 제각기 창구로 가서 비자 발급비 20불을 내고, 입국심사대로 빠져나가고 있었는데, 우리는 일행이 모일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그런데, 일행 중 한 사람이 우리를 보지 못하고 개별적으로 20불 내고 비자를 끊어 온 것이었다. 그러자, 우리 일행 사람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비자료가 20불인데, 왜 5불을 더 달라느냐며, 말했지만 표지 든 그 사람이 우리말을 알아들을 리 만무했고, 그는 기계적으로 "노우 프로블럼"만 외치고 있었다. 급행료 5불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거다. 결국 한 사람을 제외한 우리는 25불을 내고, 개별적으로 입국한 사람보다도 늦게 입국하게 되었다. 그래서, 급행료 5불은 완행료가 되고 말았는데, 그 대신 입국 수속을 면제해 주었다. 단체로 줄 서서 심사대를 우회해 나오니 비자 붙은 여권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돈 걷어간 사람은 바로 출입국 담당 관리란다. 어떻게 생각해야 될까. 관행대로 조금의 편리를 위해 5불을 주는 것이 바람직할까. 오늘은 입국한 사람이 많지 않아 그렇지, 사람 많을 때는 급행료 약발이 최고라는 가이드 말을 듣고는 씁쓸해졌다.
캄보디아 도착 첫 식사로 현지식 수끼를 먹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깥 날씨가 궁금해서 커튼을 제치니, 날씨가 좋았다. 아름다운 숲과 빨간 지붕들이 보였다. 어젯밤 폭우 역시 스콜이라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가이드 말에 오늘 일정이 기대되었다.
조반 후 앙코르 와트트 관람에 나섰다. 먼저 입장권을 사야 하는데, 아예 개인별로 사진을 찍어 입장권에 프린트하여 명패처럼 목에 거는 방식이었다.
드디어 앙코르 왓트에 도착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표지 안내문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버스 하차 지점에는 원주민 장사꾼들이 줄지어 있었다.
앙코르 왓 사원이 보였다. 앙코르와트는 크메르의 고대 도시로 1860년 식물학자 앙리무오가 발견했다. 발견이라는 말이 우습다. 서방 세계에 알려졌다는 것을 발견이라니 주객이 바뀐 셈이다. 이 사원은 12세기 전반에 크메르 왕이 힌두교의 비슈누 신과 일체화한 자신의 묘로 사용하기 위해 이 사원을 건립했다고 한다. 600여 년 동안 크메르 왕국은 이 지역 맹주로 태국, 버마, 베트남을 지배하는 막강한 힘을 지녔었다고 한다.
강만큼이나 넓게 만든 해자를 건너 사원이 우뚝 서있었다. 해를 보니 우리가 들어가는 곳이 서쪽 방향이다. 해를 마주 보고 우리는 서쪽으로 입장하기 시작했다.
사원의 서쪽 좌우에 있는 장서각이다. 파손된 부분을 많이 보수했는데, 보수한 국가가 일본이다. 안내문에 일장기가 있었다. 징글징글한 일장기를 이곳에서도 만났다.
사원 앞 연못. 우리나라 절은 절의 남쪽에 연못을 파 놓는데, 이곳의 연못은 사원 앞의 서쪽이다. 의미는 잘 모르겠다. 서쪽이 정문인 것도 마찬가지다. 아마 부처님 계신 서방 정토를 바라보는 문이라 그렇지 않을까 싶다.
사원에 막 들어가려는데, 뜻밖에 핏덩이 아기로 깜짝 놀랐다. 막 태어났음직한 갓난아기가 어린애 품에 안겨 있었다. 이 어린애는 갓난아기를 안고 구걸하고 있었다. 불쌍해 보이는 이들에게 일행 중 한 분이 돈을 주었다. 나중에 버스에 올라 이들에게 돈을 주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에 갓난아기를 안고 버스 창 안을 기웃거리며 구걸하는 젊은 아낙과, 젊은 애비도 꽤 많이 보았다. 안타깝게도 갓난아기들이 앵벌이 도구가 되고 있었다.
입구의 조각상
사원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조물. 압살라라고 하던데, 상반신을 노출시킨 크메르 여인이 성장한 모습이다.
입구를 지나 2층에 오르니, 이른바 천국의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의 경사가 급했다. 계단을 오르려면 결국 어쩔 수 없이 엎드리게 되어, 자연스러운 복종의 의미가 된다고 한다. 3층 보수 중이라 그런지 계단 입구를 막아 놓았다.
압살라 부조
2층을 한 바퀴 돌다가 남쪽에서 잠깐 쉬며 위를 보니, 떨어져 나간 외벽의 구조물 사이로 빨간 속살이 보였다. 비바람에 퇴락해 가는 사원의 조형물 재료는 사암이다. 보기에 단단해 보이진 않았다. 단단하지 않아 조각하기가 우리나라 화강암보다 쉬웠을 것 같다.
2층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서쪽으로 왔다. 사원의 웅장한 모습을 가까이에서 한눈에 볼 수 있었다.
2층에서 내려와 1층 회랑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압살라 부조물이다. 관람객들의 손때로 상반신이 까맣게 변색되었지만,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노출시킨 상반신과 달리 하반신에 두른 것은 실크란다. 당대의 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부조물이라고 가이드가 전한다.
사원을 둘러싼 1층 회랑 안쪽 벽과 천장에 당대의 기록을 담은 부조가 가득하다. 이 부조에 담긴 당대의 전쟁, 삶의 이야기들을 가이드가 설명하지만, 건성으로 들었다. 그저 엄청난 규모에 감탄할 뿐이었다.
회랑을 반 바퀴 돌아 동쪽으로 나갔다.
동쪽 문에서 사원을 보니, 서쪽보다 단순해 보였다. 이곳에서 앙드레 김이 패션쇼를 했었다.
동문 밖 호수
앙코르의 미소로 잘 알려진 비이욘 사원. 54개의 탑에 조각된 200여 개의 부처님 얼굴은 보는 각도와 빛의 방향에 따라 때로는 위엄 있게 때로는 온화하게 보이단다.
안으로 들어가니 사원을 보수하고 있었다.
방치된 유적들, 아직 보수하기엔 여력이 부족한 듯...
담을 타고 올라가는 나무들... 뿌리가 담을 타고 넘었다. 안젤리나 죨리의 툼레이디 1에 서 보았던 장면이었다. 영화에선 이 아래 지하에 거대한 석상들이 칼을 들고 공격하던데, 그런 석상은 없었다. 인상이 깊었었는데 그 장면은 상상의 산물인 듯...
통곡의 방, 이 방 안에 들어서서 가슴을 치면 그 소리가 사방에 울린다.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한 왕이 이 방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해서 통곡의 방이다. 체험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저 신기한 눈으로 유적들을 보며 사원의 뒤로 나왔다.
퇴락한 사원의 담장이 고풍스럽다. 그 담장 아래 캄보디아 어린이가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었다.
점심식사차 들린 평양친선관, 이국만리 타향에서 북한 음식으로 점심을 먹는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북한 여성들이 서빙하며 막간을 이용해서 노래도 하고 춤도 추었다. 음식맛은 썩 뛰어나지 않았다. 만날 수 없는 북한 여성들을 보며 이역만리 캄보디아에서 달러를 지불하고 구경했다. 노래와 춤 솜씨는 아마추어 수준이었다. 관광객들이 일부러 그들에게 말을 걸어 친근감을 보이기도 했다. 어처구니없는 우리 한민족의 현실이었다. 과거 캄보디아는 북한과 매우 돈독한 관계를 가졌다. 과거에 권좌에서 쫓겨났던 수상 시누아크가 북한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망명생활을 했었다.
점심식사 후 오토바이 한 대에 두 명씩 타고 투어를 시작했다. 씨클로 보다 속도감도 나고, 덜 미안했다.
바푸욘 사원, 사람 크기의 석상들이 줄다리기하는 모습으로 난간을 세운 다리를 건너서 문을 통과했다.
이곳은 바이욘 사원이 건립되기 전까지 도시의 정 중앙에 자리 잡고 있던 사원으로 앙코르 톰 건설 이전에 만들어진 힌두사원이다. 높은 기단에 하나의 신전만 세운 탑산 모양을 하고 있었다.
외벽의 부조물 중 '중국인의 모습'이다. 저들이 짓는 미소가 선해 보이진 않다. 민족의 특성까지 세밀하게 조각한 과거인들의 혜안이 놀랍다.
역시 압살라
건물 안에 있는 사면 조각인데, 미소가 아름다워서 '캄보디아의 미소'라고 불린다. 서산 마애불의 '백제의 미소'가 생각났다.
캄보디아의 미소
다시 사원을 돌아 나왔다.
이번 행선지는 코끼리 테라스다.
테라스의 전면에 코끼리 조각이 매우 사실적이었다.
테라스 앞, 초원에는 역시 미모사들이 지천으로 많았다. 잎을 건들면 오그라들었다.
다시 오토바이로 이동했다.
이동하여 오른 곳은 프놈 바켕... 평야 위에 우뚝 솟은 산 위에 신전이다. 한참을 걸어 올라 신전 앞에 다다르니 깨어진 석상들이 어지럽게 뒹굴고 있었다. 앙코르 제국이 건설한 신전으로 이곳을 중심으로 도시를 건설하고,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산 한가운데, 피라미드 구조로 쌓아 올려 신전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굉장한 유물로 융숭한 대접을 받을 텐데, 흔해서 그런지 도처에 부서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신전에 오르니 사방이 한눈에 들어왔다. 망망한 지평선이 부러웠다. 지평선을 볼 수 없는 나라에서만 살아온 사람으로서, 이곳은 사방을 둘러보아도 수평선처럼 망망한 땅덩어리뿐이라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이곳의 석양 노을이 매우 아름답다지만 우리는 시간관계상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다.
캄보디아 아가씨가 신전의 허물어진 석축에 걸터앉아 핸드폰 통화 중이다. 고대와 현대의 대조적 모습이 묘한 대조를 보이는 것 같다.
신전을 내려와, 언덕에서 허물어진 담장 사이로 한 컷 촬영했다.
언덕에서 내려와,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주변을 관람하며 시내로 돌아왔다.
저녁 식사는 극장식 식당에서 뷔페로 했는데, 무대 위에서 캄보디아 민속춤과 압살라 춤을 추었다. 압살라는 춤추는 여신 또는 천상의 무희를 뜻하는 말로 캄보디아의 전통 춤이다. 느리면서도 섬세하고 움직임 하나하나에 뜻이 담겨 있는데, 힌두교의 전설에서 그 내용을 따온 것이 많다. 춤의 동작은 왕자, 공주, 거인, 원숭이 등의 4 가지 주체에 의해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 준다.
저녁 민속공연 후, 호텔로 돌아와선 고단해서 그냥 잠 속으로 떨어졌다.
씨엥립 3 일째, 조반 후 호텔 주변을 가볍게 산책했다. 캄보디아 마지막 날이라 시간이 아쉬웠다.
호텔 경내에 있는 조각상. 캄보디아 전설을 재현한 것인데, 원숭이가 인어공주를 유혹하는 형상이다.
호텔 안 로비에 걸려있는 앙코르 공사 현장 재현도. 호텔 직원들이 너무 친절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얼굴 표정도 하나같이 순박해 보였다.
앙코르와트 실크 공장
전통 기법으로 짠 비단
킬링필드 기념 사원에 들렸다. 베트남과의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에 학살을 이끌었던 4인방은 숙청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베트남 정부에서 곳곳에 유골탑을 세웠다. 사원 지붕이 태국 사원과 비슷해 보인다. 우측에 있는 흰색 건축물에 그때 학살당한 사람들의 유해가 전시되어 있다.
이념 때문에 학살된 무명의 백성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회의가 들었다. 가까이에서 줌인한 유해인데, 저들도 살아생전에 희로애락의 감정을 지녔던 인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참히 학살된 것도 억울할 텐데, 죽어서도 부서진 머리뼈를 눕히지도 못한 채, 유리탑에 갇혀, 세상의 구경거리가 되고 있었다. 살아서는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어머니였을 것이다. 또는 아들과 딸로서 달콤한 행복을 꿈꾸었을 사람들이었을 터이었다.
이 기념물은 크메르 루주군이 베트남군에게 패망한 뒤, 베트남 정부가 크메르 루주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같은 공산주의자들이었음에도 베트남과의 패권 전쟁에서 잔혹했던 크메르 루주는 패망하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은 베트남이 캄보디아의 실질적 지배자가 되어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사원 안의 부처님, 상호가 평범한 인간답다.
점심식사를 했던 한식당
캄보디아의 중앙에 위치한다는 톤레삽 호수에 갔다. 호수가 넓어 이곳 주민들의 쉼터로 놀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멱 감는 모자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였다. 아이는 발가벗은 채 엄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
호숫가 쉼터와 음식 상가
천막 아래 그물 해먹들이 달려 있다.
호숫가의 튜브 대여점과 유람선 선착장,
귀뚜라미와 방게 튀김을 팔고 있는 노점상
호수 뚝 위 상점들인데, 허름한 천막 안에서 꼬치구이와 열대 과일을 팔고 있다. 사람들은 천막 안쪽의 그늘, 마루 바닥에 앉아 과일이나 꼬치를 사 먹는다. 아이들이 몰려와 1달러를 외치며 손을 벌렸다.
호수 옆 마을에 가서 원주민 민가를 방문했다.
거주 공간은 2층인데, 허름했다. 겨울 없는 나라니까 주거비는 많이 들지 않을 것 같다. 그저 비와 바람, 햇살만 피하면 될 것 같은 집이다. 이 집에 3대가 산다. 야자수와 푸른 숲과 어울린 전통 가옥의 모습이 잘 어울려 보였다.
2층 안, 거실 겸 침실. 빨랫줄을 걸어 방을 구분해서 사용한다. 벽에 붙인 기념사진과 만화 그림. 너무나 간단한 구조의 집이다. 가구나 인테리어는 거리가 멀었다.
동남아는 참말로 천혜의 자연을 가진 곳이다. 의식주 걱정 없고, 과일이 지천이고, 일 년에 3 모작이니, 식량도 풍요롭다. 물질문명의 혜택을 덜 본다고 업신여길 일은 아니다. 서구문명의 잣대로만 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가난이 결코 불행은 아닐 텐데, 이들의 초라한 모습을 가엽게 생각하는 우리들의 시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문명이전의 원시적 모습이 오히려 인간답게 사는 것이 아닐까 부질없이 생각해 보았다. 비바람만 가리면 살 수 있는 이들의 생활환경이 부럽다. 자급자족하는 삶이 바로 행복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과잉생산과 부의 축적이 바로 불행의 씨앗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물질에 대한 욕구에는 만족이 없으니까. 탐욕은 갈등을 낳고, 갈등은 미움과 싸움을 낳고, 그 결과는 불행이라는 거다.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났다. 사실 좋은 환경에 사는 사람도 지보다 더 좋은 환경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게 된다. 절제와 분수를 지키지 못한다면, 물질적 탐욕은 끝이 없을 것이다.
시내 전통 조각 공장. 훌륭한 건축과 조각 솜씨를 보인 앙코르의 후예들의 유전인자는 오늘날 과거의 재현에 힘쓴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조상들 덕에 관광수입으로 살아간다는데, 이곳 사람들도 그리 될지 모르겠다. 곳곳에 전통공예 학교가 있어서 그들의 손재주를 상품화하고 있다고 한다.
재래시장을 방문했다. 노점과 긴 상가가 어우러져 있다. 각종 과일과 핸드폰, 첨단 전자기기까지, 다양한 상품들이 혼재해 있었다. 시장 안은 숨 막힐 것 같은 더위로 후덥지근해서 오래 있기 힘들 정도였지만, 보지 못했던 풍경이기에 호기심에 한 바퀴 돌아보았다.
저녁을 먹고 공항에 왔다. 귀국을 위해 출국신고서를 써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준비해 간 서류를 보고 빈칸을 채워 넣었다. 앙코르 사원들을 주마간산으로 돌아보며, 캄보디아를 떠나려 한다. 순박해 보이는 사람들, 아기를 안고 구걸하는 젊은 사람들, 관광객 뒤를 따라다니며 값싼 액세서리를 팔아보려는 어린아이들.... 물질문명 속의 미래로 향하는 전환기 모습이 아닐까 생각헤보지만, 순박한 그 미소만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깊은 밤에 호찌민 공항에 내려 인천행 비행기로 환승을 위해 한참을 머물렀다.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고단해 보였다. 중년의 한국 남자와 앳된 베트남 아가씨 커플들이 왜 그리 많이 보이는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일출을 보았다. 구름 너머로 해가 떠오른다. 구름 그림자가 눈부신 햇살에 길게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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