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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

하롱베이 가는 길

  9년 5월 11일 오전 5시 50분

  인천행 리무진에 올랐다. 밖에 비가 내리고 운전기사는 아직 승차하지 않았다. 운전석 뒤에 자리 잡고 앉았다. 

  베트남! 어린 시절 파월국군아저씨들께 위문편지 무지 썼다. 답장도 한 번 받았었는데, 답장 주신 그분, 몹시도 외로웠던 분이었나 보았다. 남자 중학생이 상투적으로 쓴 위문편지에 답장을 받는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 답장 속에 동봉되었던 사진은 야자수 아래 선글라스 쓴 멋진 국군 아저씨였었다. 그 후 그분은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무사히 귀국하셨으리라 믿고 싶다.  또, 그 시절 소풍 가서 노래 부르라면 "남~남쪽 섬에 나아라 월남에 다알밤, 시입자 성 저 벼얼비츤 어머어님 어얼굴. 그 누우가 불러 주~우는 하모오니카아냐? 아리랑 멜로디가 향수에 젖네. 가슴에 저었네~~"라는 게 최고였는데, 제목은 잘 모르겠다. 월남이 섬나라가 아닌데 왜 섬의 나라라고 했는지 가사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잘 알 지도 못하는 월남을 동경하며, 좌우간 많이 불렀다. 그리고 베트콩 때려잡는 무용담이 극장에, 신문에, 유비통신에 넘치기도 했었다. 내 또래 아이들이 20세 넘어 야자수 아래 선글라스 끼셨던 아저씨 또래가 되었을 때, 정의와 자유의 십자군들은 월남에서 철수하고, 월남은 빨간 나라로 통일되었다. 열대의 야자수는 환상, 그 자체였는데 우리는 그 꿈을, 비쩍 말라 힘도 없다는 콩들에게 뺏겨버렸던 것이다. 그 후로 보트 피플이니, 라이 따이한이니 좋지 않은 소식들만 가득했드랬는데, 88 올림픽 이후, 군대 출신 무서운 각하들이 물러나고, 시름시름 빨간 나라들이 맥도 못쓰고 주저앉기 시작했다. 무서운 도깨비 같던 소련이 물 탄 러시아가 되고, 마오쩌뚱의 살벌했던 중공이 상냥한 등소평 할아버지의 중국이 되어, 우리 곁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콩들의 월맹도 베트남으로 바뀌어 색깔은 변하지 않았지만, 친구처럼 다시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때 나보다 몇 년 오래되신 파월 경험이 있던 따이한들은 향수병에 걸린 듯, 월남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가보시길 소원했다. 그때, 나 역시 별 인연도 없는 월남을 다시 동경하기 시작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공, 나트랑 등이... 우리나라 빼고 제일 친숙한 지명이었드랬다. 그런데, 세상살이가 만만하지 않은지라 갈 수 없었다. 얼떨결에 직장 동료들과 태국은 한 번 가보았는데, 그렇게 그리던 월남을 못 간 것이었다. 그래서 드디어 이번에 그 시간을 잡았다.

 

 

이른 시간이어서 거의 빈자리였다.

 

비가 내린 탓에 전송객들도 더러 보였다. 그들을 보니 여행을 떠나는 실감이 났다. 비가 내리니까 조금은 우울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상하의 나라 워얼남! 드디어 간다아~.

 

공항에 도착했다. 오전 8시. 아직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출국 수속을 끝낸 후, 공항 청사를 지하로 건너갔다. 이건 처음 보는 지하철이다. 입구에 서서 기다려 보았다. 5분 간격이라 기다림이 지루하진 않겠다.

 

마침 맨 앞부분에 승차했다. 터널 전방을 바라보며 무의식 중에 한 컷 눌러보았다.

 

우리가 나갈 탑승구 표지다. 우리가 탈 여객기는 베트남 에어라인인데 대한 항공으로 표시되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좌우간 미군이 B-29(맞나?)로 융단 폭격했다는 월맹의 수도, 이젠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로 가는 것이다.

 

빗방울이 묻어있는 대기실 창밖엔 연꽃 문양을 그린, 청색의 베트남 에어라인이 대기하고 있었다. 빨리 타고 싶은데, 시간이 더디게 간다. 비행기 탈 때면 공항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 짜증 나는 건 나만이 아니겠지...

 

드디어 비행기에 탔다. 시간에 맞춰 탑승구에 줄 서있었는데 갑자기 줄이 두 개가 되었다. 대한항공 직원들이 안내하는 줄과 빨간 아오자이 입은 베트남 항공사 직원들이 안내하는 줄로 나누어졌길래, 당황한 나머지 섰던 줄에서 벗어나 베트남 항공사 쪽으로 옮기려다 물었다. 하노이행 맞냐고 물었더니 두 줄 모두 맞단다. 이유를 물으니 베트남 에어라인과 대한 항공이 연합했단다. 그렇다 해도 항공권 표지대로 안내하면 헛갈리지 않을 텐데. 베트남 에어라인의 VN을 그냥 썼으면 좋았을 텐데,  왜 KE를 썼는지 모르겠다. 조금 아는 것이 병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혼자 이것저것 생각도 많이 해보았다.

 

밖엔 여전히 비가 내린다. 빗물에 얼룩진 창밖의 풍경이 이채롭다. 저들은 무슨 사연으로 어디로 가는 걸까? 에어 프랑스, 쓰리 에이 등 등... 마음으론 저 많은 비행기들을 골라 타고 세계를 둥둥 떠다니고 싶다. 패키지여행으로 베트남 가는 주제에 괜한 상념으로 창밖을 보며 생각하다가 혼자 멋쩍어졌다.

 

빈자리가 많다. 편한 곳으로 옮겨가도 될 것 같았지만, 창가가 좋아 그대로 눌러앉았다.

 

이륙하자 곧 하늘이 맑아졌다.  창밖을 보니 아마도 변산 부근의 새만금 방조제 위를 비행하고 있나 보다.  어쩐 일인지 이 비행기는 GPS와 비행정보 안내도 하지 않았다.  어딘지 궁금해도 알 수 없으니 답답할 뿐이었다.

 

한 참을 자다가 기내식도 먹은 후, 창밖을 보니 구불구불 누런 강이 보였다. 나름대로 메콩강쯤으로 치부했다.

 

고도가 낮춰지고 착륙준비를 한다. 민가와 탁한 강물, 그리고 농가의 오리 떼들이 보였다. 이곳에도 비가 내렸다.

 

비행기 중간 좌석인데 심하게 망가졌다. 수리하지 않고 그냥 운행하고 있었다. 손님들이 많지 않으니 다행이지만 만석이었다면 저 자리에 탄 사람은 분은 정말 불쾌했을 것 같다. 시내버스도 저 정돈 아닐 텐데 너무한다는 생각이었다.

 

하노이 공항. 비가 많이 내렸다. 인천공항에서 이곳까지 4시간 30분가량 비행했다. 우리와 2 시간 시차이다. 하노이 공항청사가 아담해 보였다.

 

입국 수속을 위해 타고 온 비행기를 옆에 두고 출구로 나갔다. 그저 앞사람을 따라 나갔다.

 

베트남 관리들이 야단 났다. 시골 난장처럼 어수선했다. 여행객들 하나하나의 체온을 모두 쟀다. 신종 플루가 문제다. 귓속에 체온계를 집어넣었다. 그것도 잠시 곧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평온을 찾았다.

 

  여권을 들고 입국 심사대에 섰다. 외국을 방문하거나 떠날 때, 제일 기분 나쁜 곳이 바로 이곳이다. 관리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위압적이다.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도, 영국에서도, 독일에서도,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독일 프랑크루트에서는 키가 커 보이는 젊은 아가씨였는데 여권에 스탬프를 찍고는 여권을 휙 던져 주었다. 나한테만 그런가 하고 기분 나빠 지켜보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관리들은 더 세심했었다. 그들은 한참이나 여권을 뒤적거리다가 입국증을 붙여주었다. 그런데 이곳 베트남 관리는 군복을 입었는데, 한참을 버벅거렸다. 얼굴엔 근엄한 표정을 가득 짓고서 거만스럽게 입국 여행자들을 쳐다보았다. 그로부터 빨간 나라 무서운 관리가 연상되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싹수없는 이런 출입국 관리들에게 보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재수 없게 내가 선 줄이 시간이 제일 오래 걸렸다.

 

  공항 청사를 나서니 뜨겁고 끈적끈적한 열풍이 잔뜩 물먹은 채로 훅 충격을 주었다. 비는 소강상태로 쉬고 있었고, 멋진 야자수가 가로수로 우릴 반겼다. 가로수 저편에 삼성 광고판이 서있고, 도로 곳곳에 엘지 광고판이 보였다. 삼승과 락희그룹이 이국 땅에서 기염을 토하고 있었다.

 

  버스 창밖엔 폭우가 내렸다. 버스는 아랑곳 않고 무심하게 물탕을 치며 달렸다. 농가와 나무들이 빗속에 흠뻑 젖어 물기를 뱉어낼 것 같았다. 이 빗속을 비닐 우비 입은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고 있었다. 가이드는 지금 이 비가 바로 그 유명한 스콜이라며, 잠시 후 청명한 하늘을 볼 거라고 예고했다. 마음 같아선 버스 밖으로 나가 한 번 맞아도 보고 싶었지만... 마음 만으론 뭘 못 할까.

 

 비는 멎었고, 차창 밖은 쾌청해졌다.

 

  도로변에 열대 과일 상점에 잠시 내렸다. 바나나와 미니 파인애플, 야자열매, 망고들이 지천이었다. 매달려 있는 노란 비닐봉지는 미니 파인애플을 깎아 포장한 것이다. 

 

길가 바나나 나무

 

차창 밖으로 나타난 하롱베이 풍경

 

장장 3시간 만에 하롱베이에 도착했다.  3시간이면 서울서 대구 정도 거리일까. 가까운 거린 분명 아니다.

 

호텔 창문으로 내다본 하롱베이

 

호텔 주변 풍경

 

저녁 먹으러 갔던 하롱베이의 한식당.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저녁 후, 하롱베이 야시장을 구경했다. 망고 파는 아줌마가 노랗게 잘 익은 망고가 1 달러에 세 개란다.

 

아아아아!  드디어 바라보는 월남에 다알 밤~

 

이틀 밤을 지낼 호텔, 단순하고 깔끔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거지가 없는 나라가 월남이란다. 베이비 붐으로 젊은이들이 넘치는 나라이기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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