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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

방화수류정과 장안문(가을)

 수원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묻는다면 대부분 방화수류정을 그 첫째로 답할 것이다. 화성의 지휘대인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도 아름답지만 아름다운 정자와 그 아래 인공적인 연못, 그리고 수원천을 건너는 화홍문, 이들의 조화만으로도 조선조건축물 중에 압권이다. 이 방화수류정의 아름다움에 몇 번 출사를 나왔지만, 마음에 드는 사진 하나 얻지 못했다. 오전에 햇살을 등에 지고 순광으로 촬영해야 할 것 같다. 10월 25일, 오후. 역시 역광이다. 조심조심 구도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결과물은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다. 사진을 찍고 정자 위에 올라갔다. 사진 뒤쪽 희미한 산이 팔달산이고 산 위에 작은 점처럼 찍힌 것이 바로 화성의 지휘대인 서장대(화성장대)이다. 몇 년 전 취객의 방화로 소실된 것을 다시 복원했다. 숭례문의 전조라고나 할까. 세계문화유산인 서장대 방화사건은 국내보다도 해외 언론에 크게 보도되어, 오히려 화성을 찾는 외국 관광객이 더 늘었었다는 풍문도 있었다.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풍경

 

 한양성 숭례문보다도 웅장하다는 화성의 북문 장안문. 한양성 성문과 다른 점은 성문을 보호하는 옹성이 있다는 것이다. 성문을 둘러싼 옹성이 적의 공격으로부터 성문을 보호한다. 장안문은 화성의 북쪽에 있지만 건축미는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보다도 뛰어나다. 팔달문 동쪽으로 시장이 있어서 조금 옛날엔 수원의 상업 중심이었다. 수원에서 제일 붐비는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팔달문을 화성을 대표하는 문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견문이 일천한 내 눈으로는 팔달문과 자웅을 가르기 어렵지만, 전에 읽었던 어떤 기록에는 장안문이 조선의 성문 중 으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장안문은 한국전쟁 때 부서진 것을 전쟁 후 화성의궤의 도면을 따라 복원했다. 그래서 수원 아이들은 노래도 말했다. 북문은 부서지고 남문(팔달문)은 남았다고... 장안문 성문아래 가까이 가보면 성벽에 남아있는 총알자국들을 볼 수 있다. 전쟁의 상처가 아직도 장안문에 남아 있다.

 

 장안문 동북쪽에서 촬영했다. 차도로 끊어진 성곽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육교처럼 이어 놓았다. 예전엔 로터리였다. 성문을 둘러싸고 도로가 교차되어 사고도 많았었는데, 지금은 성문 왼편을 성벽으로 복원하여 보기도 좋고 도로가 단순화되어 사고도 줄어들었다.

 

 위 사진과 정반대 방향인 장안문 서북쪽

 

 도로를 건너가 가까이에서 도로와 함께 바라본 풍경

 

성위로 올라가 장안문을 통과하여 성문 동쪽에서 바라본 성 안쪽.  성곽을 따라 방화수류정과 동북포루, 동북공심돈이 보인다. 아래쪽에 자동차만 없다면 제법 옛스런 풍경이다.

 

 북동포루. 그를 지나면 곧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이다.

 

다시 화홍문으로 돌아왔다. 수원천의 수문이기에 북수문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 오른쪽이 방화수류정이다.

 

  일요일 오후라 탐방객들이 많았다. 깃발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일본 관광객들과 부모님 쫓아 수첩 들고 열심히 메모하는 초등생, 그늘에서 자녀를 안고 망중한의 여유를 갖는 시민들의 모습에, 역시 화성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유산임에 틀림없다.

  화성은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정조께서 수원 행차 시 머무르던 행궁이 복원되었고, 행궁의 모습에 걸맞게 주변 경관들이 놀랍게 개선되었다. 그러나, 화성 안의 무분별한 건축물들은 화성의 아름다움을 반감시킨다. 점차로 개선될 것이라고 시정 책임자들은 말하지만, 성곽 바로 밖으로 고층 아파트와 건물들이 성곽의 아름다운 곡선을 훼손하고 있다. 기존의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자꾸만 새롭게 솟아나는 건물들은 조정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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