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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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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 남수문 복원 수원화성 축성과 함께 1796년 완공된 남수문은 일제강점기인 1922년 대홍수로 유실된 후, 1927년 완전 철거되어 사라진지85년 만에 복원되었다.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인근의 남문시장과 지동시장 사이를 흐르는 수원천에 세워진 남수문은 북쪽의 수문인 화홍문과 짝을 이루는 화성의 수문이다. 남수문 아래 수원천은90년대 복개되었다가, 작년에 복개구간을 해체하여, 예전의 하천으로 되돌린 바 있다.
구름 많은 봄날, 수원 화성 구름이 많은 날이었다. 맑은 날보다 구름 풍경이 좋아 보여 화성으로 나갔는데, 구름 무게가 너무 무거워 보였다. 구름이 해를 가려, 한참을 기다리다가 지쳐, 여름 같은 더위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늘진 모습도 그대로 담아 버렸다. 화성의 백미인 방화수류정은 영산홍이 빠알갛게 핀 요즈음이 가장 아름다울 때라고 생각한다. 2 년 전 태풍의 피해만 없었다면 한껏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을 텐데, 아쉬운 일이었다. 새로 조성한 방화수류정 주변에 나무들의 부목들이 볼상 사납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뿌리도 활착 되리라 싶다. 그러면 아픈 과거의 상처도 잊고 새로운 모습으로 예전의 아름다움을 찾아갈 것이다. 방화수류정 암문에서 올려본 동북포루 영산홍과 방화수류정 용연에서 올려본 방화수류정 동북포루와 방화수류정 방화수류..
수원, 서호공원 서호는 정조대왕이 화성을 축조하며 만든 수원 화성의 서쪽에 있는 인공 호수이다. 수원에는 강이 없기 때문에 정조대왕은 화성을 중심으로 서남북쪽에 인공 저수지를 조성했다. 그때 서쪽에 축조한 저수지가축만제인데, 화성의 서쪽에 있어서 서호로 불린다. 정조대왕이 축조한 저수지는 북쪽에 만석거, 남쪽에 만년제가 있다. 북쪽의 만석보는 현재 만석공원으로 조성되었고, 남쪽의 만년 제는 농업용 저수지가 아니라 조선왕실이 축조한 최대 규모의 방지원도라는 설이 있다. 방지원도는 경복궁 향원정 연못처럼 네모난 연못 중앙에 둥근 섬이 있는 민족 고유의 연못 조성방식이다. 학계에서는 방지원도의 탄생 배경을 음양오행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 성리학 등에서 찾고 있지만 정작 중국에는 방지원도가 없다고 한다..
수원 화성의 밤 모처럼의 밤나들이였는데, 성곽을 비추는 불빛에 고색창연한 화성이 참 곱게 보인다. 화성의 서문인화서문부터 북문 장안문까지의 공원을 불빛 따라 성곽 따라 한참을 걸었다. 간간이 날리는 꽃가루 향기가 밤하늘에 은은하게 번졌다. 공원 한쪽에서는 경쾌한 대중음악을 틀어놓고 아낙네들이 에어로빅 춤을 추고 있었다. 무대 위의 시범을 보며,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가볍게 날아갈 듯 율동하고 있었다. 보통 때 같았으면 시끄러워 피해 갔을 텐데, 밤경치에 취했는지 그다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성곽을 바라보며 바쁠 것 없는 걸음을 걸었다. 화성열차라도 타고 밤공기를 가르며 경치를 즐기고도 싶은데, 애석하게도 화성열차는 이미 끊겼다. 한양성 숭례문보다도 더 크고 아름답다는 장안문을 반환점 삼아 빙 돌아서 성 위로 올라서서 ..
용주사의 봄 봄햇살에 나른해진다. 화성시 송산동 성황산 남쪽기슭에 있는 용주사를 찾았다. 용주사에도 봄꽃이 활짝 피었다.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갈양사로 창건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정조대왕이 양주군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영우원을 지금의 화산으로 이장하고 사찰을 중건하여 융릉(사도세자의 묘)의 원찰로 삼았다. 정조의 효성은 지극하여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긴 뒤 자주 행차하면서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을 슬퍼하였다. 용주사에는 국보 제120호인 범종을 비롯하여 정조의 애절한 효심이 깃든 "불설부모은경"등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사찰 명칭은 낙성식날 정조가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어 용주사라고 개칭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용주사 표지석, 용주사 오른쪽으로 신도시..
화성 반 바퀴-팔달문에서 행궁까지 화성의 남대문인 팔달문을 보러 갔는데, 아직도 보수 중이었다. 서울 숭례문처럼 커다란 겉집 안에서 그 모습을 감춘 채 수리하고 있는 중이어서 아쉬웠다. 겉집 밖에 팔달문의 사진을 크게 붙여 이해를 도왔으나 실물보다 아름답지 않았다. 과거 수원의 중심이었던 남문시장이 있어서, 대부분의 수원시내버스가 이곳을 지나간다. 4통 8달(四通八達)하여 모든 곳의 중심이 되라는 정조대왕의 뜻으로 화성의 主山은 팔달산이 되었고 화성의 남문은 팔달문이 되었다. 팔달문에서 서쪽 방향인 팔달산을 가파른 성벽을 끼고 타박타박 올랐다. 오르는 중간에 홍난파의 '고향의 봄'노래비가 보였다. 한 때 팔달산의 명소로 유명했으나, 홍난파의 친일행적이 드러난 지금에는 그저 빛바랜 비석이 되었나 싶다. 성벽 아래 계단으로 오르는데, 이 성..
연무대와 동북 공심돈 화성의 연무대는 화성의 꽃인 방화수류정에서 동쪽으로 1Km 정도의 거리에 있다. 이곳에 종합 주차장과 화성 관람 종합 센터, 국궁체험장 등이 있고, 이곳에서 화성열차가 출발한다. 화성에서 제일 넓은 초원이 바로 이곳에 있어, 활쏘기 체험과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되기도 한다. 1795년(정조 19년)에 지어진 조선 시대 군사들이 훈련하던 곳으로 넓은 잔디광장은 현재 국궁 체험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연무대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 합각기와지붕 구조로 돼 있고, 주변으로는 동북공심돈, 창룡문 등 수원화성의 동쪽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연무대는 말 그대로 군인들의 무예를 훈련하는 곳이다. 논산 훈련소의 이름도 연무대인 것을 생각하면, 화성에서 이곳의 역할은 설명 없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연무..
화성 창룡문 구름이라도 받쳐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날씨는 쾌청한데, 바람이 셌다. 모처럼 망원줌렌즈를 준비해 갔는데, 구도를 잡을 수 없어서, 광각줌으로 갈아 끼웠다. 표준 줌은 무게 때문에 가져가지 않았다. 시험 못 본 놈이 연필 탓한다고, 렌즈 탓만 할 수 없어, 자주 번갈아 끼우며 촬영했는데, 망원으로는 건진 게 하나도 없었다. 추운 날 잔디밭에 쭈그리고 앉아 손을 불어가며 고생한 것에 비해 소득이 없으니, 조금은 허망했다. 날씨가 춥고 보니, 내국인보다 외국인들이 더 많아 보였다. 단체 관광객들은 일본사람들이었다. 얼굴 하얀 백인들은 둘 아니면 셋, 오손도손 둘러보는 모습이었다. 창룡문은 화성의 동문이다. 성문을 외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에 반달모양의 옹성이 있다. 이 옹성 때문에 밖에서는 성문이..
가을 화성(2) 구름덩이가 두껍고 커서, 해가 나올 때 끼지 40여 분을 기다렸다. 가을바람은 며칠 사이 차가워져서 구름 그림자 아래에서는 서늘함까지 느껴졌다. 푹신한 풀밭 위에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쓰쓰가무시가 염려되어 성 아래를 천천히 거닐었다. 사진 찍는다고, 오랫동안 햇빛을 기다려보긴 또 처음이었다. 중간에 포기하고 철수하려다가 모처럼 보게 되는 구름풍경이라 인내심을 가져 보았다. 무작정 기다리기가 무료해서 구름 그늘 아래에서 몇 컷 셧터를 눌러보았다. 동북공심돈
가을 화성(1) 뭉게구름이 두둥실 피어올라 너무 고와서 화성의 방화수류정에 들렀다. 방화수류정의 용연은 물을 빼고 청소하는 중이라 밑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하는 수 없이 1번 국도변에 있는 동북공심돈으로 나갔다. 구름 모양이 변화무쌍했다. 동북 공심돈 부근에 머무는 동안, 드문드문 모여있던 작은 구름들이 큰 덩어리로 몰려왔다. 때로는 그늘을 만들기도 해서, 해날 때까지 한참을 기다리기도 했는데, 지루하진 않았다. 때마침 갈대 군락지도 갈꽃들이 고개를 주욱 내밀어 시원한 바람에 살랑이고 있었다. 성안에는 체험학습차 소풍 나온 학생들의 조잘거림이 끊임없이 들려왔고, 성밖의 풀밭 위엔 간헐적으로 불어오는 바람과 오후의 햇살, 그리고 구름 구림자들이 한가롭게 지나고 있었다. 1 2
화성열차 모처럼, 화성에 나가 화성열차를 타고, 연무대에서 팔달산 서장대까지 갔다. 연무대 옆 활터에서 활 쏘는 구경도 하고, 편도 1500원 표를 사서 열차를 탔다. 두 대가 한 조를 이루어 운행하는 열차에서, 느긋하게 스치는 풍경을 감상하려 했으나, 의외로 속도가 빨라 사진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였다. 가을답지 않게 태양빛이 뜨겁게 내려쬐었다. 그 뜨거운 태양 아래에도 화성 성길을 걷는 여행객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은 보수공사로 서울 숭례문처럼 겉집을 뒤집어쓰고 있어서 흉물스럽기까지 했다. 공사하는 곳마다 이것저것 빼고 보니, 단조로운 여정이 되어버렸다. 연무대 활터, 아마추어용 활은 10발에 2000원이다. 활은 국궁인데 아마추어를 위해 카본을 이용해 제작했단다. 화성열차..
단장중인 수원의 화성, 방화수류정 날씨가 좋아 방화수류정에 갔는데, 아직도 공사 중이었다. 봄부터 방화수류정 일대를 포클레인으로 파헤치고 흉물스러운 출입금지 띠로 둘러치더니, 비로소, 공사가 거의 마무리 되어가고 있나 보다. 막바지 작업으로 인부들이 보도블록을 깔고 파헤쳐진 땅 위에 잔디를 심고 있었다. 마른 땅에 심는 잔디라, 제대로 뿌리를 내릴지 염려스럽다. 작년 태풍 곤파스로 연못인 용연과 주변의 운치있는 수양버들이 부러져 보기에 좋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부러진 나무를 걷어내고, 용연 가운데 섬에는 소나무를 심었는데, 버드나무보다 경관이 떨어지는 듯싶다. 다행인 것은 주변의 민가들을 헐어내고, 공원을 만들어, 시야가 시원해졌다. 화성은 우리나라 성곽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이 방화수류정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즐..
수원 화성 날씨가 썩 좋지 않았다. 구름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성 안에는 체험학습 나온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놀토 전날, 금요일이라서인지 유치원 어린이들까지 단체로 나들이 나왔다. 좁은 길에 관광버스들이 차로를 점령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성밖으로 나갔다. 동북공심돈부근 1번 국도는 지하차도 공사로 어수선했고, 화성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방화수류정 앞 용연도 마구 파 헤쳐져 있었다. 아마도 작년태풍 곤파스로 부러져 나간 나무들 때문에 조경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나 보았다. 세계문화유산이라고 해외에서 방문한 관광객도 일을 텐데... 가림막도 없이 비닐 끈으로 울타리를 둘러놓고 공사하는 모양새가 흉물스러웠다. 차를 되돌려 화성의 동북쪽으로 나가 골목길에 주차하고 성 앞으로 걸어갔다. 1. 동북공심돈..
수원 화성 하늘이 너무 맑아 화성에 나갔다. 가는 날이 장날인지 방화수류정 앞, 용연 주변은새단장을 위해서인지 흉측한 울타리를 둘러치고 보수공사를 하는 중이었다. 작년에 태풍 곤파스에 나무들이 무참히 부러져 나간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찼다. 봄이 오다가 되돌아 갈 것 같다. 화홍문 앞에서 몇 컷 담고, 창룡문으로 이동했는데, 창룡문 옆 동북공심돈대도 해체 보수 중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보다도 중국 관광객 숫자가 더 많아 보였다. 하기사 바람이 너무 차니 내국인들의 봄나들이는 성급하다 할 수밖에... 그래도 버드나무 끝에는 봄이 찾아 들었다. 잔뜩 물먹어 파르스름한 빛이 감도는 것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화홍문(북수문)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 - 內城 창룡문 - 外城 창룡문 - 外城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문밖에 반..
눈 내린 화성 수북하게 쌓인 눈 위에 또 눈이 내렸다. 금년 겨울에는 혹한과 폭설이 많을 것이란 예보가 맞는 모양이다. 방한모와 두툼한 파카로 중무장을 하고 나서 길을 나섰다. 큰길은 염화칼슘덕인지 다 녹았는데, 이면도로는 마치 스키장 같다. 조심스레, 천천히 차를 몰아 화홍문 아래 주차하고 방화수류정으로 걸어갔다. 금년 여름, 태풍 곤파스덕에 나무들이 꽤나 사라져, 풍경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바람이 차가웠음에도 탐광객들이 많았다. 용감한 것은 카메라 든 진사님들이었다. 수북하게 쌓인 눈 속을 거침없이 밟고 들어가 포인트를 찾느라고 애쓰고들 있었다. 다행히 햇살이 퍼져 하늘빛이 고왔다. 1. 방화수류정과 화홍문 방화수류정 앞 용연 안에 버드나무 섬이 휑하여 쓸쓸해 보였다. 태풍으로 부러져 나간 나무들 때문에 속알머리..
수원 화성, 2010, 가을 1. 서북각루 화성의 서문인 화서문에서 화성장대로 오르는 첫 번째 각루이다. 성밖에 갈대를 심어 고풍스러운 정취를 더했다. 2. 화성장대 수원 화성의 총 지휘소로 서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서장대라고도 한다. 화성의 주산인 팔달산 정상에 있으며, 몇 년 전에 노숙자가 방화, 소실된 것을 다시 복원하였다. 당시 세계문화유산이 방화에 의해 소실되었다는 외신보도에 오히려 관광객이 증가했었다고 전해진다. 화성장대 아래 화성 행궁 : 정조대왕이 아버지의 묘소에 참배하기 위해 수원에 능행차했을 때, 머무르던 궁으로 사극 드라마 촬영지로 애용되고 있다. 화성장대 동남 방향 : 클릭하여 큰 사진으로 보면, 화성 성곽과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2002년 월드컵 축구 경기장도 찾을 수 있다. 오른쪽 끝자락의 고층빌딩들은 동탄..
융건릉 추석전날 폭우가 내리더니, 추석 지낸 다음날은 햇볕이 쨍했다. 하늘은 전형적인 가을이고, 날씨도 제법 쌀쌀해졌다. 날씨가 좋아 찾은 곳이 융건릉이었다. 비운의 왕세자였던 장조의 능인 융릉과 그의 아들 정조내왕의 건릉, 합해서 융건릉이다. 불쌍한 아버지를 잊지 못해 풍수까지 공부하며 아버지의 유택을 마련한 곳이 지금의 융릉이다. 아버지를 화산아래 융릉에 모시고,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위해 용주사를 중건하고, 아버지 곁에서 머물고자 수원 화성을 조성하여 천도까지 하려고 했었던 정조대왕이었다. 융건릉 입구의 매표소다.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표지석이 입구에 서있다. 입장료는 어른 기준으로 1000원이다. 입구를 들어서서 오른 족으로 가면 사도세자의 융릉이다. 왕릉답게 소나무를 비롯한 나무들이 울..
창룡문 주변 수원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입니다. 모처럼 맑은 날 오후, 가시거리가 꽤 나올 것 같습니다. 성안 왼편의 활터가 연무대, 성밖 뒤쪽으로 멀리 보이는 산이 광교산입니다. 연무대 밖, 외성의 모습입니다. 멀리 화성장대(서장대)가 한 점 점으로 나타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방화수류정, 화홍문(여름) 장마가 그치지 않았는지, 오전엔 흐렸다가 오후엔 햇살이 따갑게 내리 비춘다. 7월도 막바지, 한 여름 중간이다.멸리 갈 수 없어 해질 무렵 화성 방화수류정에 나갔다. 더위를 피해 많은 사람들이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기울어 가는 햇살이지만 어찌나 따갑던지 얼굴이 화끈 달아 올랐다. 다행스럽게도 사진 찍는 분들이 더러 눈에 띄어 쑥스러움이 덜 했다. 그래도 아직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이 어색하고 멋적어 부자연스럽다. 연무대부터 창룡문으로, 창룡문에서성밖 산책로를 걸어 화홍문에 갔다. 가는 길에 햇살은 더욱 기울어졌다. 열기가 조금 가라앉아 이동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화홍문 아래 분수대에선 물을 올리지 않았다. 물 올라가는 모습이 아름답던데... 구름 모양이 예쁘다. 눈으로 보는 것만큼 잘 찍힐 지......
방화수류정과 화홍문(봄) 1234 5 궂은 날씨 때문에 4월에도 봄기운을 느끼기 힘듭니다. 날씨도 변덕스러워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대니 외출도 쉽지 않습니다. 모처럼 햇살이 비치고,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니 기분이 절로 상큼해졌습니다. 얼른 촬영도구를 챙겨서 화홍문으로 나갔는데, 도착해서 보니 역시나 오늘도 바람이 거셉니다. 다행히 기온이 어제보다 올라가 그리 춥지는 않았습니다. 방화수류정 앞에 연산홍이 유명한데, 금년은 꽃도 활짝 피우지 못한 것 같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건지 어쩐지... 날씨가 풀리고 정상적인 봄날씨를 되찾았으면... 가뜩이나 어려운 세상에 날씨만이라도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화성의 봄 모처럼 날씨가 화창하여 화성에 봄맞이 나갔습니다. 맑은 햇살과는 달리 바람이 제법 차가웠으나, 이젠 봄인걸 바람이 어쩌겠습니까. 연무대 활터부터 걸어서 도보순례하기로 하고, 화성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방화수류정으로 갔습니다. 연못가 버드나무에 연두색 잎이 망울졌습니다. 마침 산수유가 만발했기에 화면에 함께 넣었습니다. 방화수류정은 영산홍이 만개했을 때 가장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연분홍 꽃들이 어우러진 연못의 풍광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날개돋친 정자, 그 정자가 바로 방화수류정입니다. 화보에서 많이들 보셨지요. 성밖에서 본 방화수류정과 화홍문입니다. 성안에서 본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화서문에서 화성장대에 오르는 성밖의 길 화성 전체를 조감하고, 전쟁시 총지휘하는 화성장대. 행궁 중심으로 서쪽에 있어서 서장대..
서장대, 장안공원, 화홍문, 연무대, 창룡문, 봉돈대 등 화성의 지휘소인 화성장대. 화성의 서쪽 팔달산정에 있어서 일명 서장대라고도 한다. 몇 년 전 방화로 소실된 것을 다시 복원했다. 2층 누각의 웅장하고 호탕한 기운이 장대의 지붕을 타고 사방에 넘치는 화성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장대의 남쪽 방면. 서쪽에서 본 장대의 뒷면. 화성장대에서 성곽을 따라 북쪽으로 내려가 화서문 쪽에서 성벽 밖 풍경. 화서문 밖 장안공원. 성벽의 왼쪽에 지붕만 보이는 것은 화성의 서문인 화서문. 성안의 수원천을 가로막은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성밖 풍경. 동일포루 군인들의 훈련장인 연무대. 창룡문 남쪽에서 창룡문 방향. 창룡문 밖, 성문을 보호하는 옹벽. 창룡문 남쪽 방향에 있는 봉돈대 북쪽에서 바라본 남쪽의 봉돈대. 화성을 순회하는 화성열차 연무대와 화성열차, 연무대에 화성 안내소..
방화수류정과 장안문(가을) 수원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묻는다면 대부분 방화수류정을 그 첫째로 답할 것이다. 화성의 지휘대인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도 아름답지만 아름다운 정자와 그 아래 인공적인 연못, 그리고 수원천을 건너는 화홍문, 이들의 조화만으로도 조선조건축물 중에 압권이다. 이 방화수류정의 아름다움에 몇 번 출사를 나왔지만, 마음에 드는 사진 하나 얻지 못했다. 오전에 햇살을 등에 지고 순광으로 촬영해야 할 것 같다. 10월 25일, 오후. 역시 역광이다. 조심조심 구도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결과물은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다. 사진을 찍고 정자 위에 올라갔다. 사진 뒤쪽 희미한 산이 팔달산이고 산 위에 작은 점처럼 찍힌 것이 바로 화성의 지휘대인 서장대(화성장대)이다. 몇 년 전 취객의 방화로 소실된 것을 다시 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