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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향기

밀레를 닮은 화가, 박수근 미술관

 박수근, 그는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며 세상으로 나왔다. 어려서부터 그림솜씨가 뛰어나 그의 실력을 인정받았기에, 궁핍한 그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준 후원자들이 있었다. 국민학교시절 일본인 교장 선생님, 청년시절엔 춘천의 일본인 지방관리와 한국전쟁 이후 미국인 밀러 부인 등, 이들은 진흙 속에 묻혀 있던 박수근을 도와,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만들었다. 한국전쟁 중, 금강산 아래 금성(지금의 금화)에서 가까스로 월남하여 처남 집에 얹혀살며 생계를 위해 미군부대 PX에서 미군들의 초상을 그렸다는 사실은 과거 100여 년의 우리 역사가 이 땅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과 시련이 있었는지를 알게 해 준다.

 박수근 미술관에 들렸다가, 그의 행적을 찾아 읽으며, 눈시울이 얼마나 붉어졌는지 모르겠다. 어려운 가운데도, 남을 원망하지 않고, 가난한 이웃을 배려하며, 올곧음으로 가족을 사랑하고 아끼며, 부부간에도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평생을 살았다는 이야기는 물질만능주의에 찌든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더불어 사는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 어린 시절엔 밥보다 수제비를 더 많이 먹어, 유복하게 자랐던, 그의 아내보다도 더 얇게 수제비를 빚었다는 대목은 당시의 가난을 짐작하게 한다. 가난 때문에 자식들을 위해 동화책을 직접 그려 만들어주기까지 한 그의 자녀 사랑은 앞으로도 전무후무할 일일 것이다.

한 끼니의 생계를 도왔던 그의 그림은 이제, 한 점에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명화가 되었다. 가난 속에서 마음을 터놓고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림뿐이었기에, 세상을 향한 그의 외침은 폭주(爆酒)였을 것이다. 그림과 술로써 세상에 대한 울분을 달래었을, 천재화가 박수근은 결국 술 때문에 간경화로 1965년 5월, 51세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나갔다.

그가 떠난 이 세상에, 그를 기억하기 위해, 그가 태어난 생가에 그를 기념하는 미술관이 건립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유작들을 감상하며, 그의 넋을 기리고 있다. 그는 비록 열악하고 간난한 질곡의 삶 속에서 한평생을 살았으나, 그의 예술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길이 빛날 것이다.

 

박수근 미술관 제2 전시실로 가는 길목

 

제 2 전시실

 

 

 

박수근을 닮은 화가, 김용철이 그린 '박수근 이야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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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의 소품전, 돌에 그린 박수근 풍의 그림

 

 

박수근 미술관 본관(제1전시실)

 

 

 

 

 

 

 

제1 전시실 복도에서 내다본 출입구

 

박수근 안내실


자녀들에게 그려준 동화책 그림 전시회, 박인숙은 이 동화책을 읽고 자란 그의 장녀, 내부는 사진촬영금지 구역...

 

 

 

 

미술관 안내도, 양구군에서 그의 생가터에 공원을 조성하여 화가 박수근을 기리고 있다.

 

박수근 바로 이해하기 : http://www.parksookeu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