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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想

온통 꽃동네

"내가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이른 봄 풍경은 이미 지나고 여름 같이 무르익은 오월의 봄이 되었다. 해마다 이삼 월이면 남녘의 소리에 귀를 쫑끗 세우고 꽃소식을 기다리는데, 산길을 걷다 이름 모를 풀꽃을 바라봐도 감격하고 만다. 그러나 벌써 지천으로 널린 꽃에 무감각해져서는 웬만해선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사람 마음이 이토록 간사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욱 시세에 민감한 것은 우리나라 기후 때문인 것 같다.

 

 몇 달 전, 겨울에 동남아 골프여행 갔다 오신 분 말씀이 그 쪽 사람들은 쉬 늙어 보인단다. 연세가 70이신데 그쪽 사람들은 50 정도밖에 쳐주지 않아 20여 년 젊어져서 보름동안 재미있게 지내셨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TV에 등장하는 동남아시아 쪽 50 안팎 부모들이 7-80 먹은 노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생 때문인지, 기후 때문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쉬 늙어 보이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하기야 내 어렸을 땐, 우리나라도 50 넘으면 모두 꼬꼬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지만...)

 

초파일 연휴에 설악산에 올라 중청대피소에서 1박하려고, 보름 전인 오늘 아침 9시 40분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대피소 예약 사이트를 띄어 놓고, 1분마다 새로고침을 누르며 대기했는데, 9시 55분 넘어가니 대기자가 1000 명이 넘더니 10시 지나자마자 아예 화면이 다운돼 버렸다. 어쩌란 말인가. 인터넷 선착순이라는데... 한동안 접속도 되지 않아 12시 넘어 재접속해보니 120명 인원이 다 차서 예약이 마감되었단다. 예약한 120명은 무슨 요령으로 뜻을 이루었을까. 우리 집 인터넷이 초고속망이 아니라서 그런가 별 별 생각을 다해 보았다.

 

 매사가 그렇다. 유명한 벚꽃 구경 한 번 하러가면, 꽃보다 사람들이 더 많다. 또 여름철에 해수욕장 한 번 갈라치면, 발 들일 틈조차 없고, 단풍구경 한 번 해보려고 유명 단풍지를 찾으면, 사람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떨어진 단풍처럼 짓밟히고 구겨져 녹초가 돼버린다. 계절만이 아니다.  휴일마다 고속도로는 차량으로 인산인해, 유명하단 곳은 모두 난장판이다. 옆집에서 좋은 차를 사면 내 차도 바꿔야 하고 옆집 애가 좋은 학교에 가면 우리 애는 더 좋은 데로 보내야 한다. 옆집사람들이 좋은 옷을 입으면, 우리도 좋은 옷을 입어야 하고,  옆집에서 맛있는 요리를 먹으면 우리 집도 냄새를 풍겨야 사는 맛이 난다.

 

춥고 더운 것이 확실하고 분명해서 그런지, 그 때를 놓치면, 일 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인지 몰라도, 휴가철도 모두 같은 달, 같은 날이다. 냄비처럼 금방 펄펄 끓다가 이내 식어 버린다. 예전에 한국인들의 특성은 '은근과 끈기'라고 했건만, 오늘에 와서는 냄비중에서도 가장 얇은 양은 냄비가 돼버렸다. "제대로 살아보세" 대신에 "잘 살아 보세"만을 외쳤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네 계절을 아우르는 혜안보다는 오늘 날씨에만 민감하게 대응하는 일천한 자기중심적 사고 때문에 오늘도 냄비처럼 펄펄 끓으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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