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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

용경협, 천단, 이화원

1. 용경협

 

  만리장성 다음 행선지는 북경에서 85㎞ 정도 떨어져 있고, 자동차로는 1시간 정도 걸린다는 용경협이었다. 용경협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던 차라, 하나의 협곡으로 생각했었는데, 협곡을 가로막아 댐을 만들고, 댐 위에 보트를 띄워, 유람할 수 있도록 한 관광명소였다. 1973년에 계곡을 막아 댐을 건설하면서 생긴 인공 호수(저수지)로, 중국과 홍콩이 합작으로 건설하였다고 한다. 댐 높이는 70m, 전체 면적은 119㎢, 총길이는 21㎞이란다. 1996년 댐 위에까지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생기면서 북경의 16 명소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7㎞를 운행하는 유람선이 특히 유명한데, 유람선을 타고 주위 절경을 감상하는 데 총 8시간 정도 걸린다. 협곡의 좌우로 기기묘묘한 봉우리들이 잇따라 펼쳐져 장관을 이루는 까닭에 일명 작은 구이린[小桂林], 작은 싼샤[小三峽]로 불린다고 한다.

 

  협곡을 가로막은 거대한 댐이 눈에 확 들어왔다.그리고 댐 위로부터 아래로 기어 내리는 황금 용의 구조물도 놀라웠고...  다리를 건너면 용의 입으로 들어가 댐 위로 오르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게 된다. 용의 입으로 들어가 꼬리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용 구조물 내부, 댐 위까지 관광객들을 실어 올리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었다.

 

댐 위의 용경협 안내도

 

협곡을 가로질러 곤도라가 연처럼 부진런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고 유람을 시작했다. 협곡의 절벽에 새겨진 것은, 전 중국 주석 강택민의 휘호다. 겨울철에 절벽에 얼음을 쌓고 그 위에서 휘호 작업을 했다고 한다. 제주 한림공원에도 강택민의 방문기념 휘호가 있는데, 중국 지도자들도 자신의 치적과 존재감 표현에 적극적인가 보다.

 

협곡 위로 조금 올라가자, 갑자기 사람들이 허공을 보고 탄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나도 시선을 쫓아 바라보니, 협곡을 가로질러 공중에 줄을 띄우고, 광대들이 줄 위에서 자전거를 타는 묘기를 부리고 있었다.

 

한 바퀴 돌고 난 뒤 선착장 반대편에서 배를 내려 동굴 계단으로 아래로 내려 가게 된다.

 

내려가는 동굴 입구에서 본 3륜 화물차, 우리나라 60년대 생각이 나서 한 장 찍어 보았다. 연탄 배달차로 꽤나 많이 굴러다녔었는데...

 

용경협 아래에서 물놀이하는 어린이들

 

낯익은 사진이 있어 들여다 보니 가평 남이섬을 소개하는 그림이었다. 남이섬과 용경협이 서로 자매결연을 맺혔다고 전해 주었다.

 

용경협에서 내려와 차창으로 만리장성을 바라보며 북경으로 귀환하였다.

 

저녁 식사는 양고기 샤브샤브였다. 우리나라에서 구경하기 힘든 양고기...

 

차창을 통해 본 북경의 야경이다. 무슨 관공서라고 하는 것 같던데...

 

버스 2대를 이어 붙인 굴절 버스

 

2. 천단공원

 

아침에 기상하여 호텔 창밖을 보니 아래 마을 주민이 아침 세면을 하고 있었다.

 

주변 마을

 

건너 마을, 공산주의 국가임에도 빈부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아마도 재개발 지역인 듯...

 

아침 식사 후, 천단으로 향하는 길거리 풍경...

 

마티즈 짝퉁 체리...

 

천단공원

 

놀러 나온 북경 시민들...

 

남녀 짝짓기, 길바닥에 자기의 신상을 적은 종이를 펴놓고 여자들을 기다리는 중년 사내들이 많았다. 사진을 찍으려 하자 정색으로 화를 내며 못 찍게 했다.  남녀가 서로 춤을 추고 있는데, 대부분이 처음 만난 남녀들이란다. 우리보다도 더욱 개방적이라 놀라고 말았다.

 

한가하게 장기 두는 사람들

 

천단으로 들어가는 문

 

황제가 하늘에 제사 지내던 천단, 제사를 주재하는 사람은 하늘의 아들 천자. 곧 중화의 황제이다. 3단의 석축 계단 위에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 건물로 건축되었다.

 

천단 내부

 

천단 옆의 제천예의관 내부

 

 우리나라도 하늘에 제사 지내던 제천의식이 고대부터 전해져 온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등이 바로그 의식인데, 조선조에도 태조3년 1394년과 세종 원년 1419년에 원구제를 올렸으며, 세조 때는 천제를 국가 최고 행사로 제도화하여 세조 3년인 1457년부터 매년 원구제를 올렸으나, 천자가 아닌 왕이 천제를 지내는 것이 불가하다는 중국의 압력과 사대주의자들의 망발로 인해 1464년에 마지막 원구제를 지냈단다. 그 후 고종 때에 이르러 대한제국을 수립하면서 천제제천권을 회복하며, 소공동에 원구단을 세우고 자주독립을 만천하에 선포하였다.

 

 그러나, 일제와 친일파들이, 천제는 일본 천황만이 지낼 수 있다며, 원구단을 헐고,그 자리에 철도호텔을 지어 버렸다. 가장 성스런 제천단이 일본의 철도 호텔로 둔갑되었고, 일제패망 후 그 자리에 조선호텔이 세워졌다. 원구단은 1967년 사적 157호로 지정되었으나, 일제에 의해 훼손된 원형복원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재 그 자리에 남아있는 황궁우와 석고단 만이 민족의 진정한 해방을 갈구하며, 조선호텔 정원에서 방치된 채 초라하게 미래를 꿈꾸고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아직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오는 8.15에 다시 세워지는 광화문으로도 민족의 정기는 되살려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다. 반 만 년 유구한 겨레의 역사라고 화려한 수식어만 나열하여 민족의 미래를 빛낼 수 있을 것인가? 아직도 우리나라 서울 호텔 정원에서 억눌려 신음하고 있는 원구단이 있음에도, 우리는 그런 사실조차 알려하지 않고, 회복하려 하지 않으며, 눈 먼 장님처럼 잘 사는 나라, 선진국을 지향한단 말인가. 한심한 노릇임에 틀림없다. 원구단의 회복은 종교적 차원이 아니라 국가의 자존심 문제임을 어찌 모르고 있단 말인가.

 

 점심 먹으러 가던 길가

 

식당옆의 올림픽 스타디움

 

 

3. 이화원

 

 이화원( 頤和園)은 북경 서북부의 해정구에 위치한 정원 공원이자 궁전이다.주로 60m 높이의 만수산과 쿤밍호에 많은 공을 들여서 공사를 하였다. 이화원의 면적은 2.9㎢이고 이중에 3/4이 호수로 구성되어 있다. 쿤밍호는 2.2㎢를 차지하며, 사람을 동원해서 바닥을 파낸 완전 수작업 호수이다. 파낸 흙은 만수산을 쌓는 데 사용되었다. 7만㎢의 공간에 궁과 정원 그리고 고전적인 건축을 살려낸 것이 특징이다. 이화원으로 바뀌기 이전의 이름은 청의원(淸漪園)이다.

 

 1750년 건륭제 재위 15년에 공사를 개시하였다. 솜씨좋은 장인들은 정원양식의 다양한 궁궐을 창조해 내었다. 쿤밍호는 기존의 작은 연못을 확장하여 항저우의 서호를 모방하여 만들어졌다. 1860년 제2차 아편 전쟁으로 영프연합군의 공격에 의해 수난을 당했고, 모조리 약탈당했다. 1900년 의화단 운동 때도 8개국의 서양 열강에 의해 공격당하였다. 다행히도 완파되지는 않아서, 1886년과 1902에 서태후에 의해 재건되었다. 1888년 현재의 이화원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서태후는 이곳을 여름 피서지로 사용하였다. 서태후는 이곳을 재건하기 위해, 해군 예산 30만 은을 유용하여, 재건과 확장에 쏟아부었다고 한다. 1998년 12월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록된 곳이다.

 

 말로만 들었던 이화원을 방문하면서, 중국인들의 통 큰 배포에 내심 놀라고 말았다. 서태후의 무소불위의 사치에 대한 공과는 접어 두고라도, 광대한 인공호수를 만들고, 퍼낸 흙으로 높은 인공산을 만들어 인간의 자연을 창조했다는 것이 아마도 천제를 꿈꾸며 이루어낸 행위가 아닐까? 대륙의 호탕한 호연지기를 보는 듯 하였다.

 

4. 북경의 명동, 왕부정 거리

 

 과거 왕가의 우물터가 있었던 자리에 명동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쇼핑타운이다.

 

옛날 우물터임을 밝히는 바닥의 표식

 

길거리에 즐비한 먹거리 노점으로, 갖가지 희귀한 음식물들이 모두 있는 음식 백화점이라 하겠다.

 

까만 것은 그 유명한 전갈꼬치. 비위가 약해 차마 저걸 먹을 수는 없었다. 일행들은 술안주로 맛있게 먹었다고 자랑들 하던데...

 

다시 북경 공항, 벼락과 폭우로 비행기 시간이 자꾸 지연되었다. 탑승구도 수시로 바뀌고... 중국어도 모르지 영어도 잘 모르지... 사람들 눈치 보며 열심히 쫓아 다녔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탑승구 앞에서 우리가 타고 갈 대한항공 여객기를 놓칠세라 지켜보고 있었다.

 

중국은 관광지로 무궁무진한 곳이라 생각한다. 차창 밖에 바라다 보이는 거대한 탑들도 부지기수였고, 광활한 대륙에 산재한 문화재들이 얼마나 많을까 상상이 되질 않는다.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문화재를 비롯하여 뛰어난 명승지들도...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라면? 어떤 사람은 중국은 절대로 공산주의가 성공할 수 없는 나라라고 말하긴 하던데, 정경분리 후 잘 돌아가는 듯한 그들의 정치와 경제를 보면 대국으로서의 존재감이 무겁게 다가온다.

 

그러나, 자본이 축적되면 자본에 대한 미련에 인권에 욕심이 생겨난다면, 그렇게 되면 자연히 공산당이 붕괴되거나 시민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제2의 천안문 사태가 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이 자본주의 국가가 된다면 소비에트 연방 붕괴 후 분리된 많은 국가들처럼 각 소수 민족들이 독립을 할 것이고, 끈 떨어진 북한은 저절로 파멸하여 결국 우리는 통일을 이룰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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