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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

델리

  영하 15도를 밑도는 추위 속에 미지의 나라, 인도로 간다. 기껏해야 '물레 젓는 간디'의 나라로만 알고 있는 인도,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 중국 다음의 인구를 가진 나라...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인도에 대한 상식이었다.

 

  2011년 1월 인천 공항의 날씨는 눈까지 내린 가운데 춥고도 맑았다.

 

  델리행 여객기는 마니산 상공을 빙 돌아 서남향으로 떠올랐다.

 

델리까지 9시간 비행... 지루했다. 비행기의 창문마저 닫아버리고 모든 승객들이 피로에 지쳐 좁은 좌석에서 뒤척거릴 때, 누군가가 '에베레스트 산'이 보인다고 말했다. 나도 창밖을 보았다. 처음에는 구름과 눈에 덮인 산맥들이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비행기는 가로로 길게 뻗은 히말라야 산맥을 멀리 옆으로 끼고 날고 있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저 가운데는 아마 '에베레스트'도 '안나푸르나'도 있을 것이다.

 

  드디어 9 시간 만에 델리 공항에 도착했다. 시간은 3시간 30분이 늦다. 공항엔 이미 어둠이 내렸다. 종교 냄새가 물씬 나는 입국 심사대로 내려갔다. 저 손바닥과 손가락의 의미들은 무엇일까?

 

  입국 심사대 밖에도 면세점이 있었고, 그 위로 인도의 유명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공항 밖으로 나가니, 순간적으로 매캐하고 탁한 공기가 밀려왔다. 안개인지 스모그인지 잔뜩 내려앉아 답답한 인상이었다.

 

 가이드 미팅 후, 처음 들려 저녁을 먹었던 식당에서 식사 후에 벌어진 풍경들로 잠을 뒤척여야만 했다. 우리가 식당 밖에 나왔을 때, 우리를 반긴 것은 거지들이었다. 헐벗은 아이들과 갓난아이를 안고 먹을 것을 구걸하는, 어린 엄마 거지들 때문에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당황했다. 그들은 우리가 탈 버스까지 따라오며 구걸했다. 캄보디아에서 놀랐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 밖에 나오니, 새벽 달이 밝았다.

 

  곧이어 해가 떠올랐다. 인도에서 처음 맞이하는 태양이었다.

 

  호텔 식당.

 

  조반 후 델리 투어에 나섰다. 관광버스는 운전석과 승객석이 유리벽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가이드는 한국 생활을 했었다는 잘생긴 인도 청년이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델리 시가의 풍경은 너무 낯설었다.

 

  인도 여행은 도로 풍경에서부터였다. 차창밖에 비친 풍경은 50년 전 우리의 모습이라고 가이드가 말했지만, 열악한 그 모습들에 놀라고 말았다. 무너져 내릴 듯한 곳곳의 벽돌집들, 이곳저곳에서 노숙하는 부랑자들, 아무 곳에서나 쭈그리고 앉아 대소변을 보는 사람들... 한 마디로 경악하고 말았다.

 

  폭격맞은 듯한 길거리의 빌딩

 

곳곳에 무장 군인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펼치고 있어 살벌한 분위기였다.

 

 출근 시간과 맞물리는 아침 거리 풍경.

 

  길거리에서 물을 긷는 여인. 거리에 듬성듬성 공동수도가 놓여 있다. 소방전 같기도 하지만 여인들이 이런 곳에서 물을 떠가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아마도 개인 수도 시설이 없는 탓이겠지만, 주변이 너무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도 놀랄 일이었다.

 

 

1. 꾸뚜 미나르

 

  첫 방문지는 유네스코 문화재인 꾸뚜미나르 타워, 높이 72.5m로서 술탄국의 첫 군주이자 노예 왕국의 시조인 ‘꾸둡웃딘에이백’ 세운 승전탑이란다. 인도에서 가장 거대한 탑이면서 힌두교에 대한 이슬람교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잘 생긴 외모에 농담도 잘 하던 인도 청년 가이드 어비야스.

 

  꾸뚜미나르 지역은 마치 로마 시내의 포로 로마노 같은 거대한 유적 곳간이었다.

 

 군복을 입은 것은 학생들이었다. 아마도 보이-걸 스카웃 정도의 단체는 아닐는지... 일요일을 맞아 단체로 구경을 왔나 보았다. 이들은 눈이 마주치면 남녀 불문하고 모두 활짝 웃었다. 

 

 돌구조물 사이를 가로지른 것은 나무란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썩지 않고 시간을 극복하고 있었다.

 

돔 지붕이 날아가버린 무덤의 지붕, 뻥 뚫린 천정으로 보이는 하늘빛은 마냥 고왔다.

 

2.비하이사원(연꽃사원)

 

  이슬람교의 한 분파로 시작된 신흥 종교로 22년 전에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 모양과 흡사하고 어떻게 보면 마치 연꽃 모양이라서 연꽃 사원으로도 불린다고 한다. 이 사원은 ‘침묵’이란 규칙만 따르면 각자 믿는 종교에 따라 기도를 올리면 되며 숫자 9를 신성시하면서 부처나 예수 등 모든 종류의 성인이 하느님의 뜻을 알리기 위해 헌신한 존재라고 하는 종교적 특성이 있단다. 더욱이 전인류의 형제화. 종교의 통일, 모든 국가의 통합을 주장한단다. 마침 일요일이라서 많은 학생들이 이 사원을 참배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이방인임에도 볼 때마다 반갑게 손을 잡으며 활짝 웃었다.

 

연꽃사원 천정의 문양

 

사원 내부

 

3. 자마맛스지드

 

 만 명이 동시에 기도할 수 있다는 거대한 이슬람 사원이다. 유감스럽게 이 사원은 카메라 사용료를 5달러씩 챙겼다. 카메라피로 5달러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빈 손으로 들어갔다. 문밖에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사원 안을 휘둘러 보았다. 이슬람교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 설명을 들어도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여자들에게는 입구에서 머리와 몸을 가리는 천을 나누어 주었다. 규모가 상당히 큰 사원으로 많은 이슬람 신자들이 방문하여 참배하고 있었다.

 

  시장 안 풍경, 무수한 전깃줄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엉켜 있었다. 엉켜 있는 것이 비단 전깃줄 만은 아니었다. 걸어가는 보행자도, 시장 보는 사람들도, 오토바이, 삼륜차, 승용차, 버스들이 뒤엉켜 저마다의 소리들을 내고 있었다.

 

4. 간디의 묘

 

  간디의 유해가 화장되어 모셔진 라지 갓트. 간디를 화장했던 자리엔 국화와 붉은 장미꽃 이파리로 사방을 장식하고 그 가운데엔 다시 백장미 다발을 놓았고 그 앞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타고 있었다. 신을 벗고 들어가야 참배할 수 있다. 신을 벗는 것은 평등의 의미란다. 부자도 거지도 맨발이 되어 이곳에서 평등권을 부여받는다. 넓은 공원으로 꾸며, 마하트마 간디를 추모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간디 묘 주차장에서 만난 인도 중학생들. 초면임에도 눈이 마주치면 누구나가 활짝 웃었다.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친근함이 절로 묻어났다.

 

5. 시크교 황금사원

 

  시크교는 15세기 인도 북부에서 힌두교의 신애(信愛:바크티) 신앙과 이슬람교의 신비사상(神秘思想)이 융합되어 탄생한 종교로서 현재 신도만 전 세계적으로 2천3백만에 이르는 세계 5대 종교 중의 하나란다. 시크교 남자들은 머리에 터번을 쓴다. 이 사원에 들어갈 때는 맨발에 남녀 모두 머리에 황색 두건을 써야 한다.

 

시크교 사원 입구의 노점상

 

저물 무렵 우리는 델리역에서 바라나시로 가는 야간열차를 탔다.

 

  인도의 첫인상은 천당과 지옥이 공존하는 나라였다. 무수한 자동차들의 홍수 속에 핵무기를 보유하고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강국으로 발돋움하면서도, 빈민들과 거지들이 대부분인 참혹한 현실이 가슴 아팠다. 인도를 이해하기 위해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세계적인 IT 강국이라면서 대부분의 국민들이 컴퓨터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현실이 그 단적인 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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