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斷想

1971, 춘천, 소양로 2가

시간이 멈춰버린 곳. 그것도 40년 동안이나... 강산이 바꿨어도 네 번 이상은 변했을 텐데...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없었다.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면 폐가처럼 돼버린 골목 안의 퇴락한 집모양에서나 가능할 일이었다.

골목길에 들어서서는 40 년 전에 내가 살았던 집 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동안 집주인도 몇 번은 바뀌었을 터, 낯선 사람들이 집 앞에 서서 뭣인가를 골똘히 의논하고 있었다.

 

집 앞에 가지런히 세워 놓은 화분에서 지금 주인의 부지런함을 조금 엿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달라진 것은 미닫이 문을 현대식 철문으로 바꿔 달아 놓은 것뿐, 골목 안 풍경도 옛날 그대로이다. 다만, 골목에서 조금 떨어진, 지붕 위로 보이는 아파트가 적어도 70년대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큰길에서 한 블록 떨어진 이 골목이라 세월이 이곳만 비껴갔는가 보다.

 

바로 이웃 골목, 친구가 살았던 골목이다. 왼쪽이 친구네 집이었는데, 옛날 그대로였다. 그런데, 오른쪽 집은 큰 길가에 붙었다는 이유에서인지 담장을 새로 쌓고, 담장 안에 정원수도 심어 세월에 순응하고 있었다.

 

조금 더 지나 등교길이었던 이 길은 이젠 폐허가 되었다. 아마도 재개발을 꿈꾸고 있는지도...

 

기와집골로 넘어가던 골목길인 듯싶다. 이젠 기억이 가물거려 확실성은 없다. 지금 이 골목 안 사거리에서 위쪽으로 저 집들을 넘어가면, 겨울연가에 나오는 준상이네 집이 있을 터이다. 준상이네 집은 지금도 현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난 한 때, 일본 관광객들로 붐빈다고 하더만...

 

구릉 위의 집들은 낡고 초라하지만, 새로 보수한듯한 파란 지붕의 집은 제법 운치가 있었다. 담쟁이넝쿨이 벽을 덮었다. 담쟁이넝쿨 사이 빼꼼히 뚫린 공간으로는 북한강 풍경이 한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과거엔 미군이 진주하던 캠프 페이지에 이륙하고 착륙하던 헬리콥터들의 굉음과 회전익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을 것이고... 미군 떠난 지금은 유유히 흐르는 북한강과, 中島, 그리고 북한강 건너 西面의 들과 싱그러운 산 능선들이 6월의 녹색 향연을 펼치고 있을 것이다.

 

큰 길가에서 들여다본 소양로 2가 골목...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골목길...

춘천 들어가는 입구와 중앙고속도로 나들목 주변의 고층 아파트들이 춘천의 현대의 모습이라면, 옛날부터 번화했던 중앙로 명동골목, 중앙 시장 주변의 골격은 옛날 그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다만 변화하는 세태에 따라 겉모양만 화려하게 치장했을 뿐으로, 건물들의 키는 난장이 그대로였다.

춘천 가는 도로는 이제 사통팔달, 뻥뻥 뚫렸는데, 40년 전 내가 살았던 그 동네는 변함없이 옛날 그 모습을 그대로란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던가 젊은 시절을 반추할 나이가 되자, 옛것에 대한 향수가 일어난다. 옛날과 변함없는 어린 시절의 초라한 풍경에 대해 감사함을 느껴야 하는 건지, 미안해해야 하는 건지 초스피드 시대에 사는 오늘, 내 상념은 그저 착잡하기만 하다.

'斷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존  (0) 2010.11.03
동네 반 바퀴  (3) 2010.10.15
버림으로써 얻는 사람  (6) 2010.03.13
봄꽃망울  (4) 2010.02.28
봄을 기다리며  (0) 2010.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