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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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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망울 2월의 마지막날, 동네 뒷산입구엔 개나리가 망울졌다. 눈으로 얼어붙고, 녹으면서 질척했던 산길도 이젠 꾸둑꾸둑해져서 산책하기에 아주 좋았다. 날씨가 다소 흐렸지만 대지 위에서 봄기운이 솟아오른다. 이름 모를 풀잎들이 머리를 삐죽삐죽 내밀며, 3월의 따스한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기예보는 오늘밤 비 아니면 눈이 내린다는데, 머리내민 새싹과 꽃망울들이 걱정이었다. 예년보다 4-5일 빨라진다는 꽃소식이 바로 눈앞에 닥쳤는데, 추운 한파는 없었으면 좋겠다.
봄을 기다리며 날씨가 완연한 봄날씨다. 뒷산에 올랐다가 봄기운을 만끽했다. 꽁꽁 얼었던 얼음눈길도 희미한 차취만을 남기고 있었다. 유난히도 추웠고, 많은 눈이 내렸던 이번 겨울도 이젠 물러가나 보다. 눈녹은 응달길이 미끄럽고 질척거려 조금은 불편하지만 봄을 기다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산을 걸었다. 아직 꽃소식은 먼 것 같고, 지난 사진을 뒤적이다, 봄꽃사진 하나를 발견했다. 꽃샘 추위도 한두 번 더 있을 것 같은데,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다른 해보다도 유독 금년에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더 커진 것은 아마도 날씨탓 만은 아닌 것 같다.
겨울비 월초에 내린 눈은 아직 녹지 않았다. 쌓인 눈은 아파트 그늘에 가려, 행인들의 발에 밟혀, 밟혀져 얼음이 되어 바닥에 단단하게 얼어붙었다. 한달 일찍 황사가 불어오고, 싸락눈이 내리다가 오늘은 궂은 비가 하염없이 내린다. 추운 겨울에 꽁꽁 얼어버린 가슴에 촉촉한 봄비가 되었으면 좋겠다. 봄은 아직 멀었지만 오늘 내리는 이 비가 얼어붙은 얼음눈을 녹이고 있었다. 꽃소식과 함께 따스한 봄을 이 겨울 빗속에 기다려 본다.
눈 오는 날 새 해 들어 많은 눈이 내렸다. 칠십몇 년 만의 폭설로 육해공 교통이 한 때 마비되었었다고 전한다. 개인적으로는 눈이 싫다. 군대시절, 제설작업 때문에 고생했던 일이며, 눈길에 미끄러져 교통사고를 겪었던 경험들이 눈을 진저리치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가슴 한 구석에 남아있는 눈에 대한 작은 낭만으로, 눈을 맞으며 눈 덮힌 산길을 올랐다. 벌써 부지런한 등산객들의 발자국이 찍어 있었다. 정강이까지 빠지는 산길에서 눈을 헤치고 산에 오르는데, 옛 추억들이 새로 찍히는 발자국 따라 조금씩 기억 저편에서 스멀스멀 걸어 나왔다. 어린 시절의 추억에 즐거워하며, 사람들의 흔적 없는 샛길로 최초의 발자국을 찍으면서 어린애처럼 산에 올랐었다. 눈은 동심을 부른다. 벌벌 기는 자동차와 달리 어린이들은 제 세상을 만났다...
새 해에는 새 해에는 얼굴 서로 맞대고, 그 대 두 손 꼬옥 잡고, 두 뺨 서로 비비대며 환하게 웃었으면... 얼룩진 얼굴 손등으로 씻어주며, 흐르는 그 대 눈가, 서러운 눈물도 어루만져 닦아주고, 서로를 얼싸안고 어깨를 두드리며, 힘차게 웃었으면... 내 마음 빗장 풀고, 닫힌 마음 활짝 열어, 그 대, 내 품 안에 꼬옥 안고나서, 그 대 상처 난 삶의 조각들을, 내 가슴으로 하나 가득, 웃음보다 더 큰 울음으로 따스하게 덥혔으면... 새 해에는...
겨울서정 지구 온난화로, 아열대 기후가 된다는데도 날씨는 몹시 춥다. 게다가 날씨도 변덕스러워 화창한 날도 보기 힘들고, 연일 젖빛 연무에 오후가 돼서야 비로소 마른 햇살이 조금 비친다. 예전엔 추운 3일을 버티면 따뜻한 4일을 즐겼던 삼한사온의 리듬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잊혀진 옛말이 돼버렸다. 게다가 금년 봄부터 불어온 신종 플루는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살이에 더 찬 바람을 일으킨다. 모처럼 날려 쌓이는 하얀 눈발처럼, 마음만이라도 따스한 금년 겨울이 되었으면 좋겠다. 눈 덮인 땅 속에서도 부지런한 뿌리들이 새 생명을 준비하듯, 우리네 가슴속에도 파란 희망들이 싹트길 소망한다.
가을 서정 - 블러그를 시작하며 비 뿌린 후, 여름날의 풍요는 과거 속에 묻혀가고 있다. 공원엔 뼈대만 남은 나무들이 여름살이 흔적들을 선명한 색깔들로 떨어낸다. 우리네 하루하루의 일상들도 가을 빗속에 씻겨 흘러간다. 조금 더 세밀하게 나타나는 주름살들과 희끗희끗 탈색되는 머리칼들이 삶의 자취들을 일깨워 준다. 바람에 날리는 여름날의 껍질들을 보며 또 한 해가 그렇게 지나감을 새삼 느껴 본다. 사진을 찍으면서, 컴퓨터 하드 한 구석에 쌓여만 가는 데이터들을 활용해 볼 생각을 하다가 정리해 보기로 했다. 정리의 한 방법이 바로 블로그에 사진들을 정리하여 내 일상들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 보지만, 쉽지만은 않다. 그동안의 산행이나 여행 중에 찍은 사진들에 생활의 단상들을 적어보기로 했다. 블로그에 서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