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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향기

`상록수`의 산실-筆耕舍

 고등학교 다닐 때, 우연한 기회에 심훈 선생의 "그날이 오면"이란 시를 읽고는 나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돋았었다. "조국 광복이 오기만 한다면 내 가죽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메고는 행렬의 앞장에 서서 거꾸러 죽어도 한이 없겠다."는 선생의 피 맺힌 외침은 어린 내 가슴을 불덩이로 만들어, 지금까지 도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지난 6월, 최용신 생가(http://blog.paran.com/fallsfog/44925027)를 방문했을 때, 필경사를 가보지 못했다는 회한에 날 좋은 일요일,당진행 여로에 나섰다.

 

 충남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 소재, 필경사, 심훈 선생의 작업실이다. 선생은 1932년 이곳에 내려와, 밭을 갈 듯 붓으로 글을 경작하는 집이란 이름으로 이 집을 짓고 창작에 몰두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신문사 생활과 시나리오 집필, 영화감독, 또, 직접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던 선생은 참으로 다양한 활동을 했던 예술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풍운아였으며, 조국 독립을 위해 민족혼을 추구했던 애국지사이기도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 우승하자 크게 감격하여 "오오, 조선의 남아여!"라는 감격의 시를 쓰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그 해, "상록수" 출판을 위해 상경하여 원고를 교열하던 중 장티푸스에 감염되어, 3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송악 IC에서 큰 길로 10여분 진행하다 보면, 좌측에 필경사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좌회전해서 들어가면 1차선 좁은 포장도로가 나온다. 그 길로 아름다운 솔숲을 지나 조금 지나면, 평화스러운 농촌 끝자락에 단출한 선생의 작업실이 있다. 필경사 앞에 상록수문화관이 있는데, 자료전시와 영상실을 겸하여 관람객들의 편의를 돕고 있었다.

 

전면이 상록수 문화관, 측면의 초가집이 필경사이다.

 

상록수 문화관

 

문화관 측면에서 바라 본 필경사, 필경사 옆에는 방앗간인 듯싶은 민가가 있다.

 

정면에서 바라본 필경사, 문이 잠겨 있어 내부는 보지 못했다.

 

 

심훈 선생의 묘소, 용인 수지에 있던 것을 2007년 12월, 이곳으로 이장했다고 한다.

 

 

선생의 유택과 필경사

 

필경사에서 바라본 상록수 문화관

 

상록수 문화관 입구

 

문화관 내부

 

심훈 선생 연보

 

고등학교 시절 3.1운동에 가담했다가 투옥되어 옥살이하면서, 그 어머니께 올렸던 편지문.

 

시나리오 원고

 

영화 배우, 시나리오 작가, 감독 등 다양한 활동을 했던 선생

 

"그날이 오면" 검열본으로, 일제에 의해 삭제 판정을 받았다. 결국 "그날이 오면" 시집은 해방 후 1949년, 유고집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선생의 원고

 

"상록수" 마지막 장

 

 선생의 마지막 글,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우승에 감격한 자신의 격정을 신문 호외판 뒷장에 적은 유작시. 일제의 강점으로 억압된 조선인으로서의 선생의 삶이 그대로 드러난다. 나라 잃은 비애로얼마나 조국광복을 염원했을지 짐작이 간다. 애석하게도 선생과 민족시인 윤동주님은 자신들이 열망하던 해방을 보지 못하고 타계하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하늘은 불공평하다. 친일하며 일신의 영달을 노래했던 문학가들이나 친일인사들, 그들의 후손들은 오늘도 사회 고위층 인사로그들의 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온갖 교언영색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관리하시는 분에게 부탁해서 선생의 일대기를 영상으로 관람하였다. 그분은 친절하게도 당진의 볼거리까지 상세하게 알려 주었다.

 


필경사를 떠나면서 아쉬운 마음을 남기며되돌아 보았다. 필경사 뒤쪽으로는 당진공업단지가 조성되어 대규모의 공장들이 들어서 있었다.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던 필경사 주변도 앞으로는 개발의 힘에 도시의 변두리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둘러메고는
여러분의 행렬(行列)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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