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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寺

여수 오동도, 그리고 향일암

장흥, 보성, 순천을 지나여수반도로 방향을 돌리자 구름 안개 속에서 굵은 빗방울이 사납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날이 어두워 오동도 입구에서 여장을 풀고, 주인에게 저녁 식사할 곳을 의뢰했더니, 여수 특화시장을 추천해 주었다. 사나운 빗줄기가 어둠 속에서 하얀 궤적을 보이며 무섭게 떨어졌다. 택시를 타고 여수 수산시장을 지나 이른바 여수 수산물 특화시장으로 갔다. 부산 자갈치시장처럼 아래층에서는 횟감을 팔고, 2층에서는 양념과 식사, 주류를 파는 일종의 회센타였는데,대부분의 상인들이 친절해서, 무엇보다도 다행이었다. 횟감을 광어와 장어류로 5만원어치 사서 맡기고 2층으로 올라 갔다.


1. 여수 수산물 특화시장과 오동도

오동도에서 돌아 본 여수항


특화시장 1층 활어시장


  광어와 장어회 5만원, 채소와 양념 값은 1인당 3 천원으로 가격이 매우 저렴했으나 상차림이 매우 푸짐했다. 2층 남쪽 끝집인 '봉자네' 안주인의 인심도 시원시원해서 여행의 노독이 절로 풀리는 것 같았다.


  광어는 아래층 아줌마가 두툼하게 썰어서 2층으로 담았다. 부산 자갈치 시장보다도 인심이 넉넉해 보였다. 용산 용팔이보다도 사납던 통영 중앙시장에서의 쓰라린 기억과 묘한 대비가 되었다. 회 5 만원어치와 약간의 소주에 모처럼 포만감을, 사나운 빗소리를 들으며 만끽할 수 있었다.


여수 특화시장에서 포식을 한 탓으로 늦잠을 잤다. 밤새 사납던 빗줄기는 다행스레 소강상태였다. 우산을 챙겨 오동도로 걸음을 옮겼다. 오동도 입구에서 본 꽃거북선, 다양한 여름꽃으로 치장을 해서 분위기를 북돋았다.


  이순신 장군이 호남을 중히 여기며 말씀하셨다는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글 귀가 기념비처럼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왜적의 무리들이 울돌목을 통과하여 서해로 진입하려할 때, 장군은 호남땅을 나라와 동일시하여, 목숨을 바쳐 호남을 굳게 지켰다.왜적의 서해진출은 왜군 보급선을 보다 원활하게 할 터이었다. 장군의 의지로 왜적의 야욕은 꺾기고 말았지만, 장군은 소중한 목숨을 잃었고 수많은 백성들은 7년 동안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도탄에 빠지고 말았다. 임진란의 승자와 패자는 누구일까. 한 때 이슈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었다. 우리가 승자라고 말한다해도, 전란의 고통을 몸소 겪은 백성들의 아픔은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어떤 전쟁도 결코 일어나서는 안된다. 교토 히데요시 신사 앞에서의 코무덤이 상기되었다. 과거를 생각하면 결코 상종하지 못할 종자들이다 싶다.


호남의 기름진 땅은 오늘날에도 귀중한 우리 국민들의 젓줄 같은 식량자원이기에, 장군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오동도에서 바라본 여수, 시커먼 구름이 잔뜩 내려 앉았다. 높은 크레인과 쿵쾅거리는 기계음이 내년도 엑스포 개최지임을 대변하고 있었다.


해돋이 등대에서 바라본 오동도


내년 여수 엑스포 조감도




3.향일암

빗방울이 간헐적으로 떨어졌지만, 향일암 방문을 강행하기로 했다. 오동도에서  향일암 아래까지는 28km에 40여분 거리였다. 향일암 공영주차장에 내렸으나, 향일암과 너무 떨어져 있어서 입구에 가까운 곳까지 다가갔다. 빗방울은 떨어지는데, 웬 차량들이 그리 많은지 좁은 2차선 도로에서 두 대의 차량이 교행할 틈도 넉넉하지 않았다. 주차할 곳을 찾아 헤매다, 넓은 주차장 때문에 찾은 곳이 아래 식당이었다. 어제 밤 과식한 탓에 10시 넘어 늦은 아침 식사를 하는 셈이니, 오히려 잘 된 셈이었다.


아침식사로 주문한 것이 간장게장 백반이었는데, 1인당 1만원이었다. 된장찌게 하나도 7천원인데, 간장게장 하나에 1만원이면 매우 저렴하다 싶었다. 게장의 양이 넉넉하여 입이 떠억 벌어질 지경이었다. 곁들인 바지락 국은 국물 자체만으로도 시원했는데, 송송 썰어 넣은 청양고추 덕에 톡 쏘는 매운 맛이 또 입맛을 당겼다. 한 공기로 부족해 추가 주문해서 배를 불렸다. 말로만 추구하는 다이어트, 체중이 불어 걱정인데, 여행 중 체중이 2kg은 더 늘었을 것 같다. 넉넉한 여수 인심에 포만감이 더하나 보았다.


고봉으로 쌓아 올린 것이 간장 게장이다.


다행스럽게도 식사하는 동안 비는 그쳤다. 역시 우산을 하나씩 들고 향일암에 오르는데, 들어가는 입구부터 가팔랐다. 주변엔 각종 상점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가장 많은 곳이 식당, 그 다음엔 돌산 갓김치 가게, 모텔 등등등... 향일암 암자 하나가 먹여 살리는 입들이 참으로 많다 싶었다. 어지러운 상가 건물들을 보면서, 다른 유명 사찰들처럼 이곳도 정비가 필요하겠다 싶었다. 비탈길 좌우에 들쭐날쭉한 상가 건물들, 하늘을 거미줄처럼 가로질러 얽혀 있는 전깃줄. 도로 한 복판에서 갓김치를 손에 들고 먹어보기를 권하며 호객하는 상인들의 모습은, 보기에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아름다운 암자에 걸맞지 않은 풍경들이 조화롭지 않아 안타까웠다.


향일암 매표소- 어른 2000원의 입장료를 낸다. 오르는 길은 두 갈래로 계단으로 오르거나 밋밋한 언덕길을 선택할 수 있다.우리는 언덕길을 택했다.


비가 내려 언덕길은 촉촉히 젖었고, 경사가 가팔라 미끄러웠다.


언덕 위의 약수, 빗물이라 싶어 지나쳤는데, 기인 용의 몸통이 뱀 같아서 징그러웠다.


암자로 가는 길이 복잡하고 험하다. 몇 개의 천연석굴을 지나쳤는지 모를 정도로 기괴한 바위굴을 지나야만 했다.


계단을 올라 첫 번 째 마주친 것이 삼성각이었다. 난간 위에 올려 놓은, 무수한 자라 석상들이 흥미롭다. 삼성각 뒤 대웅전은 2009년 12월 화재로 소실되어 지금 중축공사 중이라, 건축자재와 비닐천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삼성각 아래 전망대 앞  전경, 날씨가 맑았으면 전망이 매우 좋았을 텐데...


관음전에 오르려고 음침한 바위굴을 지났다.


벼랑 위에 얹힌 듯한 관음전.


관음전 아래 직사각형의 넓은 바위는 원효대사가 좌선하던 곳이란다. 그 아래 또 다른 암자 지붕이 보인다.


관음 석상과, 그 옆의 연리근. 연리지는 드물지만, 뿌리가 붙어있는 나무는 많이 본 것 같은데...


벽화 앞의 황금색 관음보살.


내려오면서 돌아본 계단 길, 이 험한 산 중에 길을 내고 암자를 세운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좁은 바위틈으로 오르내리는 계단을 내고 길을 만든, 스님들의 조화가 오묘해 보였다.


관음전에서 또다른 관음전으로... 관음전이 두 개(?) 이상하다. 그러나, 분명 둘 다 관음전이었다.


관음전 앞의 공간이 좁아 전경을 찍을 수 없어 모서리에 붙어서 파인더로 들여다 보았다.


관음전 내부


관음전 측면 뒤쪽에서 바다를 향해서 한 컷.


관음전 옆, 바위에는 사람들이 바위 벽에 동전을 세워 놓았다.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내려올 때는 계단 길로... 나무 사이로 보이는 전망이 좋았다.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바위틈길


일주문엔 금오산 향일암 현판을 달았다. 황금자라산이라서인지 사찰엔 돌로 만든 무수한 자라들이 있었다. 일주문 계단 아래에는 양 옆에 커다란 자라 석상이 앉아 있었다.


돌산도 명물인 갓김치, 돌산 갓김치 가게들이 참으로 많기도 했다.


향일암을 떠나,돌산대교를 바라보며 북상중...


3일간의 여행길이 끝나가고 있었다. 차를 타고 다니는 여행은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갈 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조급한 마음 때문에 한 자리에서 오래 머물지 못해 여기저기 떠돌아 다녀, 그야말로 주마간산격이었다. 여수만해도 시간을 두고 명승지를 찾는다면 더 볼 것도 많을 텐데...바쁜 도시인의 일정에 쫓겨 다시 내 삶의 터전으로 둘아가야 하기에 더 이상 머물 수 없겠다. 내년에 엑스포가 열리면, 그 때 다시 한 번 방문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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