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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寺

오대산 상원사

  오대산 상원사는 월정사의 말사로 국보인 동종이 있는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월정사 입구에서 주차료와 입장료를 내고 주욱 들어서면 월정사가 나타나고, 이를 지나 비포장도로를 8km정도 올라가니, 상원사 주차장이 나타났습니다. 오랫만에 달려보는 비포장 도로가 오히려 운치있는 산길로 느껴집니다. 그곳에는 맑은 계곡물과 청량한 공기, 모든 것이맑고 그윽한 오대산 깊은 곳에 함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주차장에서 300여m를 우회해서 올라가면바로 상원사입니다. 여기서 산비탈을 1.5km 정도 더 오르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습니다.

  돌계단을 올라서 좌측으로 들어서서 바라본지혜의 샘(약수)인 작은 정자같은누각을포함한 전경입니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로 직진하여 만화루 누각 아래를 통과하면 상원사의 대웅전격인 문수전입니다. 오대산 아래, 세속의 날씨는 쾌청했었는데, 산 속에 들어서니,구름이 많습니다. 세속의 번뇌들이 구름으로 몰려들어 이 청정한 사찰에서 눈물로 번뇌를 씻으려는 듯,진하고 깊은 그늘을 만들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만화루아래를 지나니,소림초당에 이어 'ㄱ' 자 누각인 문수전이 나타납니다.연등을 마당에 터널처럼 걸어 놓았습니다.


  상원사 대웅전격인 문수전입니다. 문수전 앞에는 두마리의 고양이 석상이 있습니다. 안내문에 의하면 세조가 이곳에 왔을 때, 고양이가 위험을 알려, 자객으로부터 대왕의 생명을 구했다고 합니다. 세조는 고양이를 고마워하며 고양이를 위하여, 재산을 하사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세조의 입장에서 보면, 고마운 고양이이겠지만, 세조를 없애려던 측에서 보면 한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세조를 죽이려던 사람들은 다름아닌 사육신의 후예들, 다시 말하면 단종을 불쌍히 여기며 충절을 다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 생각하면 월정사와 상원사는 승자의 편에 서 있는 사찰입니다.그 덕에 조선조 내내 커다란 사찰로그 모습을 유지해 왔을지도 모르겠지만...


  문수전 안에는부처님과 함께 문수동자가 앉아 있습니다. 이 문수동자상은 나무로 만든 것에 금칠을 한 것인데 국보 제 221호로 지정되어 있답니다. 조선조 세조대왕이 피부질환으로 고생하며 전국의 명산을 찾아 다닐 때, 이곳 상원사에 들려 계곡물에 몸을 씻었는데, 문수동자가 나타나 세조의 등를 씻어 주었답니다. 이른바 문수동자가 발현된 곳이라는 것이죠. 그리하여 세조의 둘째딸 부부가 이를 기념하고,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문수동자상을 비롯하여 많은 불상들을 만들고, 발원문을 지어, 상원사에 바쳤다고 합니다.


문수전 끝부분에서 만화루까지의 전경입니다. 마당에 걸어놓은 연등에 사찰의 모습들이 가려진 것이 안타깝습니다.


가까이에서 바라본 문수전, 현판의 글씨는 '상원사'입니다.


  동종각입니다. 아마도 새로 지은 것 같습니다. 단청도 아직 입히지 않았습니다. 동종각 저편으로 새로운 출입로 계단을 조성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다음에 방문하게 된다면 새로 만든 계단으로 상원사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동종각 안에 있는동종입니다. 비천상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비천 무늬가 성덕대왕 신종의 그것과 비슷해 보입니다.


  동종각 처마아래에서 바라본 월정사 방향, 구름이 산 능선에 내려 앉습니다.


  상원사 동종 안내문, 신라 성덕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우리나라에 현전하는 것 중, 제일 오래된 동종이랍니다.


동종각 옆에 있는 만화루 천정 벽화입니다. 문수동자가 나타난 곳임을 그림으로 알리고 있습니다.


  지혜의 샘 곁에 있는 찻집 앞에 있는 자그마한 동상입니다. 푸른 연잎을 머리에 쓴 형상으로 미루어, 현대판으로 문수동자를 구현해 놓은 것 같습니다.  이제 찻집을 스쳐 지나, 적멸보궁을 향해 걸음을 옮깁니다.


  상원사는 문수동자의 발현을 강조한사찰입니다.

문수보살은 보통 석가여래의 왼쪽에 있으며 지혜로 중생의 번뇌를 끊어준답니다.이 보살은 중국의 산시성(山西省) 우타이산(五臺山)에서 1만 보살과 함께 있다고도 하는데, 우리나라오대산에 있다고 하여, 지금도 그 곳의 상원사(上院寺)는 문수를 주존(主尊)으로 모시고 예불하며 수행하는 도량(道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수신앙은 신라의 고승 자장 율사에 의하여 당으로부터 도입되었답니다. 당에서 유학하던 자장 율사는 중국의 청량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게 되고 보살로부터 신라의 오대산에는 일 만의 문수보살이 거주하고 있다는 계시를 받고 귀국하게 되었답니다. 이후 오대산의 문수신앙은 지속되어 왔습니다.조선조에는왕과 관련된 문수신앙이 나타나게 됩니다. 즉,세조대왕은 등극 후 만년에 피부병을 얻어, 명산을 찾아 다니며 요양치료하던 중 오대산까지찾게 되었습니다.마침 세조가 상원사 계곡에서 목욕을 하는데 지나가는 어린아이에게 등을 밀게 했다는 것입니다. 목욕이 끝난 후 세조는 동자에게 왕의 등을 밀었다고 하지 말라고 하자, 동자는 문수동자를 친견하였다고 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문수보살은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들고 왼손에는 꽃 위에 지혜의 그림이 있는 청연화(靑蓮花)를 쥐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형상이랍니다. 문수보살이 사자를 타고 있는 것은 위엄과 용맹을 나타낸 것이구요.
문수보살은 산크리스트 어를 음차한 말로 문수사리(文殊師利)·만수시리(滿殊尸利) 또는 만수실리(曼殊室利) 등으로도 음역되는데, 문수와 만수는 묘(妙), 사리·실리는 두(頭)·덕(德)·길상(吉祥) 등의 뜻이므로 지혜가 뛰어난 공덕이라는 의미랍니다.

  문수보살은 석가가 열반한 후 인도에서 태어나, 만물의 본질을 이해하고 불법의 참다운 이치를 깨닫는 지혜를 의미하는 반야(般若)의 도리를 널리 알렸다고 하며, 항상 반야지혜의 상징으로 표현되어 왔습니다. 반야경(般若經)을 결집·편찬한 보살로도 알려져 있으므로 때에 따라서는 경전(經典)을 손에 쥔 모습으로 묘사되는 일이 많았답니다.


  화엄경에서는 비로자나불의 협시보살(脇侍菩薩)로서 보현보살과 더불어 삼존불(三尊佛)의 일원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보현이 세상 속에 뛰어들어 실천적 구도자의 모습을 띠고 활동할 때, 문수는 사람들의 지혜의 좌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즉, 이 보살은 석가모니불의 교화를 돕기 위하여 일시적 권현(權現)으로서 보살의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문화원형백과사전 참고>


  상원사는 해방후에 중건했다고 하나 대부분의 전각들은 새모습이었습니다. 따라서 고색창연하고, 중후한 멋은 없어 보입니다. 대부분의 탐방객들이 월정사에서 머무르다 돌아가는데, 이왕이면 상원사까지 탐방하여 오대산의 그윽한 정취를 느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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