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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寺

궁예의 전설이 깃든 쌍미륵사

  대한불교 법상종 본산인 안성시 삼죽면 쌍미륵사. 규모는 작은 절이었지만, 궁예의 전설이 살아깃든 유서깊은 사찰이었다. 법상종이란 종파도 금시초문이었지만, 이 작은 절이 법상종의 총본산이라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황석영 소설 "장길산"을 읽으며, 소설 속에 미륵신앙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화순의 운주사를 일부러 찾아 가보기도 했지만, 수도권인 안성에 거대한 쌍미륵불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미륵불은 불교에서 석가모니불의 뒤를 이어 56억 7000만년이란 까마득한 훗날 홀연히 출현해 세 번의 설법으로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불이다. 가늠할 수조차 없는 긴 시간. 그러나 아무리 먼 시간이라도 미륵 출현은 날은 잡혀 있는 것이니 도래의 희망만큼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 오랜 시간 뒤 미륵이 도래하는 미래세상은 고통이 없는 낙원의 땅임은 물론이다. 미륵불의 하생을 기다리는 땅. 안성에 남아 있는 미륵불에는 현실의 고통에서 신음하는 이들이 닿고자 했던 이상세계의 꿈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하필 안성 죽산 땅에 수많은 미륵이 남아 있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역사를 뒤적여보면 죽주는 그야말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삼국시대 백제의 땅이었다가 고구려 영토가 됐고, 한때 신라의 땅이 되기도 했다.고려말, 조선 초 죽주 땅에는 탐관오리들의 패악이 그치지 않았고, 임진란 때는 왜구의 피해가 극심했다. 전쟁과 내전이 있을 때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곳, 이렇듯 시대가 어지럽고 고통스러웠던 만큼 이곳의 백성들은 희망에 매달려 다가올 이상세계를 기다렸다.

  그래서일까. 죽산에는 스스로를 미륵으로 자처했던 궁예의 자취도 남아 있다. 궁예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이곳에서였다. 궁예는 안성의 죽산땅에서 일어난 기훤의 수하에 들면서 비로소 역사에 모습을 드러낸다. ‘삼국사기’나 ‘고려사’를 들춰보면 궁예는 강퍅하고 잔인했던 인물이었다. 3척이나 되는 쇠 방망이를 달궈 하루에도 수백 명씩을 죽였다. 그러나 역사는 늘 ‘승자의 기록’인 것이니 이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는 일. 궁예가 그토록 포악한 인물이었다면 어찌 자신의 세력을 이끌며 태봉국을 열 수 있었을까. 그렇게 잔인했던 인물이었다면 그가 죽고 난 뒤 안성의 백성들이 미륵도래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궁예미륵 석불에 치성을 드려온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문화일보.2011.1.5>


  왕복 2차선의 강원도 산골같은 산길을 돌아 쌍미륵사에 도착했는데, 인적이 없어 적잖이 당황했다. 마침 스님 한 분이 오히려 궁금한 듯 우리를 쳐다보셔서 무안할 지경이었다. 그 만큼 방문객도 뜸할 터였겟다싶어, 간단히 인사를 드리고, 경내로 들어섰다. 보통의 살림집 같은 작은 건물에 세로로 걸린 쌍미륵사 현판이, 대형사찰의 현판만 봐왔던 오늘날의 현실에서 오히려 어색해 보였다. 다듬어지지 않은 조경에, 쌍미륵불과 용화전, 천불각, 산신각 만이 멀리 산중턱을 향해 트여있는 양지바치에 자리잡고 있었다. 쌍미륵불 앞에 새로 조성한 듯한 십일면천수관음상이 앉아 있었다.


  궁예가 30세에 죽주로 귀향했을 때, 백성들을 위해 세웠다는 쌍미륵불, 궁예는 미륵신앙에 심취하여 말년에는 살아있는 미륵으로 자처했다고도 한다.


쌍미륵사 입구, 종무소인 듯...


종무소 위의 용화전과 쌍미륵불. 법상전에서는 부처님 모신 곳을 대웅전 대신에 용화전이라 하는가 보다.


용화전


용화전 안의 부처님


앉아있는 십일면 천수관음상과 쌍미륵불. 주석으로 조형한 것같은 십일면 천수관음은 어찌보면 인도 힌두의 신 가네샤를 닮은 것 같아 어색해 보였다.

사진의 오른쪽이 남미륵불이고 왼쪽이 여미륵불이다. 남 미륵불은 근엄한 표정으로 잡귀를 제압하는 항마상이라고 한다.


  여미륵불의 안면엔 얇은 미소가 흐른다. 그래서인지 환희의 미륵으로 추앙받고 있단다.


쌍미륵불 앞에 붙여놓은 안내문


산신각


산신각 안의 산신상


산신각 뒤측면


산신각 앞에서 내려다본 풍경


천불전, 왼쪽 위가 산신각

천불전 앞에서 바라본 용화전과 쌍미륵불, 그리고 전경.


미륵불 뒤에서 바라본 천불전, 용화전


  나도 미륵부처님의 시선을 쫓아 전방을 바라 보았다. 전방은 산줄기가 가로막혀 탁 트이지 않았다.  옛날엔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큰 마을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필 이 자리에 미륵님을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


종무소 앞에 도열해있는 작은 석상들...


  법상종 : 우리나라 불교 18개 종단의 하나이다. 신라시대의 진표(眞表)를 종조(宗祖)로 하여 전영동(全英東)이 1969년 3월 15일전라북도 금산사(金山寺)에서 창종하고 대한불교법상종포교원이라 하였다. 1970년 2월 20일 「불교재산관리법」에 의하여 불교단체등록을 하였고, 1977년 3월 8일 ‘대한불교법상종’으로 개칭하였다. 1993년 11월 8일 강남·북으로 양분되었던 종단이 분규를 종식하고 다시 통합되었다. 이 후 1994년 10월 14일 제5대 우영명종정이 취임하였으며, 1997년 11월 20일 제10대 법륜스님이 총무원장으로 취임하였다. 총본산은 경기도 안성시 삼죽면의 쌍미륵사(雙彌勒寺)에 있으며,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 총무원이 있다.

  미륵불의 자비실천, 십선(十善)을 통한 재가실천(在家實踐), 국가사회를 위한 공헌, 지상낙원 구현의 이상을 도모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근본경전은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미륵하생경』·『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미륵성불경(彌勒成佛經)』 등이고, 본존불로는 미륵불을 봉안한다.

  주요행사로 음력 2월 15일의 열반절, 4월 15일의 석탄절, 12월 8일의 성도절 행사가 있다. 종단기구로 집행기관인 총무원과 감사기관인 감찰원, 기타 참선원·교육원·연구원이 있으며, 대의기관(代議機關)으로 승려대회와 신도대회가 있다.

  사회사업기관으로는 충청남도 계룡시 신도안면 부남리에 있는 불암보육원(佛巖保育園)이 있다. 1997년 말 현재 사찰 229개, 승려 382명, 신도 41만 4,921명이 있다. <네이버 지식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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