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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寺

인드라 공동 생명체의 지리산 실상사

  하늘이 점차로 맑아지더니, 쨍하니 햇볕이 났다. 하루 만에 보는 햇살이지만, 전날 하루종일 폭우 속에 차를 달렸기 때문에, 마치 여름 장마 때 맑은 하늘을 보는 것처럼 반가웠다. 산청에서 국도를 타고 함양까지 올라갔다가, 문득 실상사를 찾기로 했다. 신라 고찰로 유명한 절이라는 얘기에 지도검색을 하니, 함양에서 20여 km로 40분여 소요된단다. 목적지를 실상사로 맞추고 차를 돌렸다. 국도로 달려 고갯마루에서 경상도계를 넘어 전라도로 들어섰다. 고개 마루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투리를 사용할까. 좁은 나라에,  가까운 지역에서 고갯마루 하나로 경상도와 전라도로 갈리게 되는데, 두 지역의 갈등이상극처럼 첨예화되어 있으니, 궁금하기 이를 데 없었다.  모처럼의 여행이 남해까지 점찍고 오긴 했지만,  결국은 지리산을 한 바퀴 비잉 돌아온 셈이 되었다. 게다가 명승지 탐승보다도 사찰 순례가 되고 말았다.

 

  친한 벗들과 차 안에서 잡담하며 파안대소하다 보니 어느덧 지리산 골짜기 언덕배기로 접어들었다. 내비의 안내로 목적지 부근에서 내렸는데, 깊은 산 골짜기가 아니라 큰 개울을 끼고 있는 평범한 산촌이었다. 매표소를 통과해서 다리를 건넜다. 다리 건너 실상사는 작은 동산을 오른쪽에 두고 평지에 담을 길게 둘러치고 앉아 있었다.

 

  논둑길을 걸어 가는데, 오른쪽 논에서는 젊은이들의 모판작업이 한창이었다. 이들은 인드라망 공동 생명체라는 영농단체로, 도시인들이 귀농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작업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실상사 어귀에 서있는 돌장승 - 사찰 입구의 돌장승은 제주도 하루방 빼고 여기서 처음 보았다. 눈망울이 하루방과 흡사한데, 코가 주먹코로 얼굴의 반이나 차지하고 있었다..

 

귀농공동체의 모판 작업

 

실상사 천왕문 들어가는 길에 인드라망 공동생명체란 글이 쓰여 있었다.

 

보광전과 신라 3층 석탑(보물 37호)

 


신라시대 세운 3층 석탑

 

석등과 법당인 보광전

 


극락전

 


극락전 앞의 귀부와 이수

 

 실상사 : 신라시대 창건한, 남원시 산내면(山內面)의 지리산(智異山) 기슭 평지에 있는 사찰.

 인드라망 공동생명체 :

 인드라망은 불교 화엄경에 불법(佛法)을 지키는 신 중의 하나인 제석천(帝釋天)의 궁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궁전에 있는 투명한 유리구슬이다.

 “제석천 궁전에는 투명한 구슬 그물이 드리워져 있다. 그물코마다의 투명 구슬에는 우주삼라만상이 휘황찬란하게 투영된다. 이 구슬은 저 구슬에 투영되고, 저 구슬은 이 구슬에 투영된다. 정신의 구슬은 물질의 구슬에 투영되고, 물질의 구슬은 정신의 구슬에 투영된다. 인간의 구슬은 자연의 구슬에 투영되고, 자연의 구슬은 인간의 구슬에 투영된다…”. 

 이 구슬 그물은 우주의 모든 것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하며 ‘인드라망’이라고 불린다.

 전북 남원시 실상사 인근에는 3만여 평의 넓은 농지가 펼쳐져 있다. 이곳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농사짓는 법을 배우고 있다. 현재 20여 명이 유기농법을 배우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배우는 것은 단순한 농사 기술이 아니다. 이들은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몸에 익히고 있다. 유기농법을 고집하는 이유도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길을 모색하기 때문이다.

 실상사가 이같은 사업을 추진한 것은 1998년 ‘귀농전문학교’를 세운 뒤부터. 영농에 뜻을 둔 사람들을 모아 현장 체험을 통해 구체적인 영농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근본취지는 “자연과 인간이 화합해 살아가자”는 불가의 가르침을 전하는 데 있다. 그동안 80여 명이 ‘귀농전문학교’를 마쳤으며, 이 중 60여 명이 실제 농사를 짓고 있다.

 실상사의 ‘귀농전문학교’는 ‘우주만물이 한 몸이며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불가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 구성된 ‘인드라망 생명 공동체’(상임대표 도법 실상사 주지)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 중 하나이다.

 ‘인드라망 생명공동체’는 여러 불교 단체들이 산발적으로 벌여 오던 사업들을 한데 묶어 일관되게 추진하기 위해 지난해 출범했다. 조계사를 포함해 25개 사찰 및 불교 단체가 연계해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인드라망 생명 공동체’는 ‘생활협동사업’ 도 펼치고 있다. 서울 조계사 봉은사 도선사 등 사찰을 통해 귀농전문학교를 마친 사람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한다. 이 과정에서 농산물이 생산된 과정을 설명하며 거기에 깃든 사상도 설명한다. 교육사업도 펼쳐 ‘더불어 사는 삶’을 가르치는 청소년 대안교육기관을 2001년 설립할 예정이다.

 ‘인드라망 생명 공동체’의 이정호 사무처장. “현대의 위기는 대립적인 세계관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인간은 자연과 화합하지 않고 정복의 대상으로만 여겨 현재의 환경위기를 초래했습니다. 또 인간과 인간끼리도 대립한 결과 경쟁위주의 사회를 낳았고, 많은 갈등을 낳고 있습니다.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래서는 인간은 물론, 모든 생명체들이 더 이상 그 존재를 지속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같이 총체적인 ‘생명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인드라망 생명 공동체’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이 대립하지 말고 상생과 화합의 길을 모색하는 곳에 새로운 시대의 비전이 있다고 제시한다. 출처 <2000. 5. 11. 동아일보 기사>

 사족 :인근에 초 중학교가 있어서 귀농인들의 자녀 교육에도 전혀 장애가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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