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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想

되돌아오신 충무공

 

보수되어 되돌아오신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영하의 추위에 온 세상이 꽁꽁 얼어도, 조국을 수호하는 장군의 위용은 서릿발보다도 더 당당하다.

 

 

 

 

 

 

세간의 논란 끝에 보수되고 정비되어 그 자리에 다시 서게 된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

논란의 시비를 떠나서 이순신 장군의 입장으로 생각해 보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될 것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으로 외면한다고 문제의 근본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 국적불명, 정체불명의 동상을 세우고, 장군의 위업을 기릴 수는 없다.

일제 총독부 건물을 허물어 버릴 때처럼, 대통령의 결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가? 그때도 미사려구로 총독부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아도 백 번 잘한 일이었다.

공원처럼 잘 정비된 광화문 광장에 이제는 우리 후손들이 대대로 존경할 수 있는, 성웅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더욱 당당한 모습으로 서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동판 안의 새겨진 글 - 이은상

 

한국민족의 역사는 이웃 민족의 침략에 항쟁한 고난의 역사다.

그러나, 매양 그 고난을 헤치고 이겨낸 극복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극복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의 힘이 움직였음을 볼 수 있으니,

그 힘이 바로 민족을 죽음 속에서도 건져낼 수 있는 민족정기요,

이 정기의 가장 대표적인 발양자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시다.

서기 1545 년 4 월 28 일 음력 3 월 초 8 일 서울에서 탄생.

1598 년 12 월 16 일 음력 11 월 19 일 노량에서 순직.

54 년 동안의 일생을 통해 오직 정의에 살고 정의에 죽은 이다.

특히 1592 년으로부터 7 년 동안 싸운, 저 유명한 인진란 때,

왜적의 침략으로 종사는 위태롭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을 적에,

쓰러지는 국가 민족의 운명을 한 손으로 바로잡아 일으켰으니,

창생의 생명을 살리고 역사의 명맥을 잇게 한 크신 공로야말로,

천추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요, 만대에 겨레의 제사를 받으리라.

비록 육신의 몸은 마지막 해전에서 최후의 피를 흘렸을지라도,

꽃다운 혼은 저 태양이 되어 조국과 함께 길이 살아 계실 것이니,

과연 우리 역사의 면류관이요, 또 빛과 힘과 자랑이 아니겠느냐.

아! 님이 함께 계시는 이 나라여. 복이 있으라.

 

  이은상 관련 기사 - 경남 마산시 신포동에 가곡 〈선구자〉의 작곡가 조두남을 기리기 위해 지난해 5월 29일 문을 연 ‘조두남 기념관’은 시민단체들이 친일인사가 쓴 가사를 받아 작곡하는 등 친일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고 나서, 문을 연 지 나흘 만에 휴관해 8개월째 문을 닫은 상태다. 또 마산시는 지난해 〈가고파〉 시인 노산 이은상의 문학 업적을 기리기 위해 상남동 노비산 공원에 120여 평 규모의 ‘노산문학관’을 지으려 했으나, 역시 친일 행적과 독재정권 협력 문제가 불거져 이름조차 결정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마산시는 지난해 11월 각계 인사 16명으로 ‘지역 쟁점사항 해결을 위한 시민위원회’(위원장 남부희 경남대 교수)를 구성해 지난달 9일 ‘조두남 기념관’은 ‘마산음악관’으로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현재 마산음악관은 조두남의 유품·악보를 일부 치우고 마산 출신 다른 음악가들의 유품을 전시하는 등 내부 구조 변경 공사를 마쳤으며, 곧 개관할 예정이다. ‘노산문학관’은 ‘마산문학관’으로 이름을 바꿔 짓기로 했다....... - 2009년 3월 29일 자 한겨레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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