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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

정몽주 선생의 묘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에 있는 포은 정몽주(1337∼1392) 선생의 묘소입니다. 선생은 고려말 이성계 회유에 동조하지 않아 죽임을 당한 만고의 충신으로 알려져 있죠.
 포은의 묘는 선생이 순절한 후, 개성 풍덕군에 묘를 썼다가, 후에 고향인 경북 영천으로 이장할 때, 경기도 용인시 수지면 풍덕천리에 이르자 앞의 명정이 바람에 날아가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 이곳에 떨어지자, 영정이 떨어진 이곳에 묘를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성계의 다섯 째 아들인 이방원(후에 조선조 태종)에게 자기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타살된 포은은 만고의 충신으로 추앙을 받게 되고,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세우고 나라의 기초를 다졌던 개국공신 삼봉 정도전은 이방원의 왕위 쟁탈 정변 때 제일 먼저 피살된 후, 역적으로 몰려 그의 현란한 업적까지도 폄하되고, 행장이나 신도비, 묘비의 글까지 없어지게 되는 수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고려 왕조를 죽음으로 버리지 않았던 선생을 시해했던 조선 왕조에 의해 만고에 충신으로 추앙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할까요? 아니면,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까요?

  아무튼 정몽주 선생의 유해가 이곳에 묻힘으로써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 살아서는 진천에 머물고, 죽어서는 용인에 묻힌다는 설화를 '용인에 명당이 많다.'라는 의미로,오늘에 인식시킨 것 같습니다. 조광조, 허균, 유형원, 민영환 등, 유명한 분들의 묘가 용인에 있습니다. 작년에 돌아가신 김대중 전대통령도 대통령 되기 전에 부친의 묘를 용인에 옮기셨다지요.






선생은 조선조에 영의정으로 추증되고, 시호가 내려졌는데도, 묘비에는 고려 시대의 벼슬만을 쓰고 조선의 시호를 쓰지 않아 두 왕조를 섬기지 않는 뜻을 분명히 하였답니다.


  묘 아래 쪽엔 인위적으로 연못을 파 놓았습니다. 연못 속에는 수련이 한창입니다. 능 앞에 파 놓은 연못은 명당을 만들기 위한 배산임수를 인위적으로 만든 건가요? 뜨거운 유월의 햇살 아래 포은선생께서는 은은한 뻐꾸기 울음소리를 배경으로 한가롭고 평화로운 산 속에서, 만고의 충절로 그의 마지막 시조 '단심가'가 새겨진 돌비석과 함께 영면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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