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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

아그라의 타지마할

1. 아그라까지 여정

 

  카주라호에서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까지도 험난한 여정이었다. 오전 11시경 카주라호 사원 관광을 마치고 또다시 작은 SUV에 몸을 맡기고 잔시역으로 이동했다. 엉성한 포장도로는 노지의 오프로드 같았다. 작은 7인승 SUV 맨 뒷자리에 이틀 동안 타고 이동한 탓에 온몸이 쑤셨다. 잔시역에서 특급열차를 탄다고 해서 편안한 여행을 기대했었으나, 말로만 특급열차였다.  잔시역에서 

오후 3시 20분 기차를 타고 3시간 30 분여를 달려, 7시경 어둠 속에 아그라역에 도착했다. 엄청난 강행군에 몸은 극도로 피곤해져,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속까지 니글니글해서 식사도 거의 하지 못해, 몸 컨디션은 말이 아니었다.

 

  푸르고 아름다운 강도 건넜다.

 

  그리고, 수많은 작은 마을들을 지났다.

 

  마을마다 왜 그리 피폐한 모습들인지... 서민들의 삶터는 너무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많지는 않았지만 오토바이도 잠깐씩 여정을 함께 했다.

 

  모처럼 버스를 만났는데, 버스 지붕 위까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안전에 이상이 없을지 몹시 위태로워 보였다.

 

  잔느 시내에 접어들자, 길가에 이름 모를 조각상들이 도열해 있었다.

 

  바라나시부터 잔시역까지 2박 3일 동안 우리를 태우고 수고해 준 운전기사. 당년 27 세로 두 아이 아버지라는데, 그에게 세월은 훨씬 앞서 가는 듯했다. 유쾌한 사람으로, 자기 집에 초대까지 하겠다고 했었는데... 아쉽게 잔시역에서 마지막 작별을 했다.

 

잔느역 광장

 

  아그라행 특급 열차

 

  특급 열차는 이름과 달리 낡은 열차였다. 의자도 좁고 망가져 불편했지만, 기차 여행이라 험로를 달렸던 소형 SUV보다는 편안했다.

 

 7시경 아그라역에 도착했다.

 

 아그라 역 광장

 

  다음 날 호텔의 아침

 

 

2. 타지마할

 

  인도 아그라 교외의 야무나 강 남쪽 연안에 있는 무덤이다. 무굴 제국 황제인 샤 자한이 셋째 아내인 아르주만드 바누 베감을 기리기 위해 지은 이 영묘는 뭄타즈 마할('선택받은 궁전'이라는 뜻)이라고도 하는데, 이 이름이 와전되어 타지 마할이라고 한다. 아르주만드 바누 베감은 1612년에 황제와 결혼한 뒤 서로 떨어져 살 수 없는 반려자로 지냈으나 1631년 부란푸르라는 도시에서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 타지마할은 인도,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온 건축가들의 공동 설계에 따라 1632년경에 착공되었다. 매일 2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동원되어 1643년경에 영묘가 완공되었고, 1649년경에는 모스크·성벽·통로 등 부속건물이 완공되었다. 타지 마할 전체가 완공되기까지는 22년의 세월과 4,000만 루피의 비용이 들었다.

 

  붉은 시크리 사암으로 지은 모스크와 자와브에는 대리석을 두른 돔과 아키트레이브(평방)가 있으며 일부 표면이 단단한 돌(pietra dura)로 장식되어 있어, 순수한 하얀색 마크라나 대리석으로 지은 영묘와는 색깔과 감촉에서 대조를 이룬다.

 

  영묘는 높이 7m의 대리석 대좌 위에 지어졌으며 사방이 똑같은 모습으로, 모서리는 정교하게 깎여 있고 각 면마다 높이 33m로 우뚝 솟은 거대한 아치가 있다. 높은 원통형 벽(drum)으로 떠받친 양파 모양의 2중 돔이 이 건물을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있다. 영묘의 각 아치 위에 있는 난간과 각 모서리 위에 있는 장식 뾰족탑 및 돔을 덮은 원통형 정자는 영묘의 스카이라인에 율동감을 준다. 대좌의 각 모서리에는 3층 미나레트가 서 있는데, 대좌와의 대리석 접합부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영묘의 대리석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영묘의 내부는 8 각형 방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얕은 부조 무늬와 아름다운 돌로 장식된 이 묘실에는 황제 부부의 기념비가 있다. 이 대리석 무덤은 아름다운 돌로 장식되어 있으며, 여기저기에 보석을 박은 투각(透刻)한 대리석 막이 둘러 쳐져 있다. 정원과 같은 높이에 있는 지하 납골당에는 진짜 석관이 있다.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 최고 건축물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의 하나로 여겨진다. <다음 백과사전>

 

타지마할은 인도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듯 싶었다. 매연과 공해를 예방하기 위해서 2km부터 일반 차량들을 통제하여, 전기차로 관광객들을 이동시켰다. 출입문의 경비는 어찌나 삼엄하던지, 마치 공항의 검색대를 빠져나가는 듯했다. 일체의 먹을 것은 허용되지 않고, 화장품까지도 금지하고 있었다. 내 카메라 가방에 넣었던 작은 계산기까지도 별도로 보관하도록 했다.

 

  출입구에서 바라본 타지마할로 들어가는 정문

 

  타지마할로 들어가는 거대한 아치형 건축물, 문안에서 바라보는 타지마할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정면으로 보는 타지마할, 타지마할은 좌우대칭이 기막히게 들어맞는 세계 최고의 걸작 건축물이란다.

 

  왼쪽 부속 건물에서 바라본 타지마할

 

  붉은 사암으로 만든 부속 건물도 타지마할 못지 않은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

 

  타지마할 뒷 편의 야무나 강, 멀리 듬성듬성 고색창연한 건축물들이 보였다.

 

  타지마할

 

  타지마할 오른 쪽에서 바라본 정문 주변

 

  타지마할 정면에서 바라본 정문 주변

 

  타지마할에서 바라본 오른쪽 부속 건물

 

  타지마할엔 각양각색의 여행객들이 많았다. 

 

  아쉬움에 정문 오른쪽 회랑을 거닐며 한 번 더 바라보았다.

 

 정문 오른 쪽 회랑

 

  한 사람의 무덤을 위해 22 년간 공들여지었다는 타지마할. 대리석 창살로 막아 놓은 내부에 왕비의 대리석 관이 있었다. 하얀 대리석관에 누운 그녀는 그녀를 향한 남편의 지극한 정성에 행복한 저승 생활을 하고 있을까. 호사의 극치로 부귀영화를 누리고, 세계 건축사에 전무후무한 건축물을 남겼으나, 한 여인의 무덤을 위해 피땀을 흘렸을 수많은 백성들의 피와 땀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결국1657년, 샤 자한이 병고에 시달리는 사이, 셋째 아들 아우랑제브는 형 다라 시코를 공개 참수형에 처하고 아버지 샤 자한을 인근 아그라 성 안에 있는 탑에 감금했다. 아우랑제브는 이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 번도 아버지를 만나지 않았다. 탑에 갇힌 샤 자한에게는 사랑했던 아내가 묻힌 타지마할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라면 위안이었을까. 실의에 빠진 샤 자한을 곁에서 돌본 것은 첫째 딸 자하나라 베굼 사히브였다. 샤 자한은 1666년 1월 22일 코란의 구절을 암송하면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자하나라는 성대한 국장을 준비하려 했으나 아우랑제브는 허락하지 않았다. 샤 자한의 시신은 백단향 관에 안치되어 강을 통해 타지마할까지 운구된 뒤, 아내 곁에 묻히고 말았다.

 

  3. 아그라성

 

  타지마할을 세운 무굴제국 5대 황제 샤 자한이 세운 성으로, 샤 자한은 만년에 그의 셋째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폐위되어 이곳에 연금되었다가 운명하였다.

 

  아그라 성 앞의 동상

 

 아그라 성 정문,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한 해자를 건너는 다리 위에서 가이드 어비야스가 안내 설명을 하고 있다.

 

  성문 안으로 들어가는 길

 

  성 안으로 들어가 양벽으로 세워진 긴 통로를 지나면 아름다운 성채들이 나타난다.

 

  사암으로 만든 추녀 아래 정교하게 조각한 돌조각들- 우리나라 전통 한옥 건축의 추녀 아래 나무 조형물처럼 돌을 나무보다 더 정교하게 조각하여 받쳐 놓았다.

 

성벽 너머 저 멀리 타지마할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아들에 의해 황제 샤 자한이 갇혔던 방으로 방 앞에는 분수가 있고, 창문을 통해 타지마할을 볼 수 있다. 샤 자한은 아들에 의해 이 방에 갇혀서, 사랑하는 아내의 영묘를 바라보며 죽음을 맞이했다.

 

  성 밖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통로, 좌우의 벽이 공명통 역할을 하기 때문에, 울려 퍼지는 말발굽 소리를 성안에서 쉽게 들을 수 있었단다.

 

4. 시크리 성

 

  시키리성은 무굴제국의 3대 황제였던 악바르가 아들을 낳을 것을 예언해 준 슬림진스키 성자의 예언에 감동하여 아그라에 있던 수도를 이곳 시키리에 옮기기 위해 세운 성이다. 이곳에 도읍을 옮긴 지 불과 14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붉은 사암과 대리석으로 지은 건축물은 오늘날에 보아도 경이롭다. 물이 부족한 탓에 수도를 다시 아그라로 옮겨간 후 400여 년 동안 이곳은 폐허가 되어 방치되었다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오늘에 보존되어 전하고 있다.

 

 

나무 하나 없이 돌로만 정교하게 조각된 시크리 성

 

  한 소년이 돈을 주면 녹조 낀 수조에 뛰어내리겠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러나, 호응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물이 깨끗해 보이지 않았다.

 

  돌 하나로 만들었다는 두 마리의 코끼리 조각

 

  지진에도 끄떡 없었다는 5층의 석조 건축물

 

  시크리성을 빠져나와 허물어진 성곽을 바라보며 인간사의 흥망성쇠를 생각하며 착잡한 마음으로 마지막 여정인 자이푸르로 이동했다.

  샤 자한의 사치로 위대한 타지마할이 세워졌고, 그 타지마할 덕분에 수많은 세계의 여행객들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으니, 오히려 오늘의 인도 사람들은 샤 자한에게 감사드려야 할 것 같다.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핵무기를 개발하며, 세계 강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인도의 위정자들의 모습이 어쩌면 샤 자한과 같은 생각은 아닐까? 억지로 내 나름대로 생각을 이어 붙어 보았다. 그래도 그래도... 도탄에 빠져있는 백성들의 삶이 너무나 고달파 보여, 애처로운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한국에는 영하의 매서운 추위가 엄습할 텐데, 이곳에는 한낮의 뜨거운 태양빛이 그렇지 않아도 골치 아픈 내 머리를 내리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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