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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영화 차이 `이끼`

 

영화 '이끼'를 보고 왔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력이 대단한 스릴러물이란 평을 듣고 영화관으로 달려갔죠. 영화관에 자주 가는 편은 아닙니다만, 좋아하는 유해진씨의 연기가 신들린 듯하다는 얘기를 듣고, 두 말 않고 달려갔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이 싫어하는 앞자리 줄에서 대형 화면에 푹 묻혀서 보았습니다. 뒷자리 중앙 좌석에서 봐야 화면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제법 객관적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좌우간, 3시간여를 보았는데 정말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생리작용 때문에 중간에 한 번 화장실에 갔다 오기도 했는데, 그 시간도 아까웠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뛰어났습니다.

원작 속에서 노인으로 등장하는 ‘천용덕 이장’ 역할에 정재영과 이장의 수족노릇을 하는 김덕천역에 유해진, 살인범 출신의 전석만역에 김상호, 포주출신의 하성규역에 김준배 등의 연기는 가히 전율할 만했습니다만, 배우들의 소름 끼치도록 뛰어난 연기력과 중년과 노년을 뛰어넘는 나이를 아주 자연스럽게 표현해 낸 정재영의 분장술에도 불구하고 극적 긴장감이 부족해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입맛이 약간 썼습니다. 왜 주인공 류해국을 마을사람들이 죽이려 했는지를 영화에서는 충분히 설명해 주지 못합니다. 사건의 인과구조에 필연성이 떨어지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 구성 자체가 약해져 버리는 거지요. 영화는 만화보다도 스토리가 단순합니다. 3시간여의 긴 이야기임에도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점 때문에 뒷맛이 씁쓸해지는 겁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개운하지 못한 뒷감정을 정리하고자, 인터넷을 검색해서 다음넷에 연재된 만화를 보았습니다. 로그인 절차도 없이 그 장대한 분량을 무료로 보여주었습니다. 이따금 그림이 깨어져, 뜨지 않기도 했지만 인내심을 갖고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며 단숨에 읽어 버렸습니다.

그제야 등장인물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스토리 전체의 구성도, 인물간의 갈등구도도 확실히 납득이 된 겁니다. 영화의 아쉬운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류해국을 왜 죽이려 했으며, 류해국의 아버지 집에 있는 지하 땅굴의 용도도 무엇인지 확실히 이해되었습니다. 영화에서는 누가 왜 땅굴을 파게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류해국 아버지인 류목형에 의한 압박감으로 마을 사람 전석만이 팠다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절대 선으로 존재하는 류목형과 악인의 본성을 지울 수 없는, 마을 사람들의 위선적 존재 방식은 같은 집단 속에 함께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화의 세세한 줄거리를 다 옮길 필요는 없겠지만 필연성만은 압축해서라도 반드시 있어야 하겠지요.

만화와 영화의 종결은 다릅니다만 그것은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영화 "이끼"는 만화 이끼의 내용에 비교적 충실했습니다. 굵직한 대사들은 그대로 살렸더군요.

'이끼' 만화를 보고만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렸습니다. 소설보다도 탄탄한 이야기 구조에, 현실을 상징적으로 재현해 놓은, 정밀한 그림들에 탄복하고 말았습니다. 작가의 놀라운 창의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영화를 보시고, 성에 차지 않으신다면 원작 이끼를 꼭 보시기 바랍니다.

사족 : 원작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를 보시는 것이 훨씬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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