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악산 대청봉

수원 ic에서 춘천고속도로 동홍천을 지나 한계령 휴게소까지 두 시간 반밖에 걸리지 않았다. 몇 년을 벼르기만 했던 대청봉 장정에 나섰다. 한계령부터 서북능선을 통하여 중청 대청봉에 올랐다가 오색으로 내려오는 코스인데, 대략 7시간 반 정도 예상했다. 9시 30분에 드디어 한계령 탐방로 입구에 들어섰다. 날씨는 쾌청했으나 바람이 거셌다.

 

 

설악엔 이제 봄이 시작이었다. 애기손같은 앙증맞은 연두색 어린잎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조금 오르다 뒤돌아보니 한계령 구비구비 휘어진 도로가 강물처럼 골짜기를 흐르고 있었다.

 

어린 잎사귀들과 머리 위로 거친 바람들이 떼 지어 지나갔다. 몸에서 송골송골 맺힌 땀들을 힘센 바람들이 식혀주었다.

 

산행 때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 터란 말이 생각난다. 작은 한 걸음들이 긴 여정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 내가 내딛는 이 한 걸음의 대가가 너무나 아름답다.

 

다행하게도 황토길에 이따금 돌무더기가 나타났다. 산행에 그리 험한 산길은 아니었다.

 

고도가 높고 바람이 차기 때문인지 진달래가 한창이었다. 아직도 잎이 나지 않은 나무들도 많았다.

 

진달래 사이로 숨박꼭질하듯 앞사람들을 부지런히 쫓아가는데, 볼 것이 너무 많아 좌우전후를 두리번거리다 보면, 그사이에 거리가 까마득히 멀어지곤 했다.

 

한참을 오르고 내리다가 다시 오르니, 탁 트인 전방에 나타난 산정이 나타났다. 대청봉과 비슷하게 생긴 귀때기 청봉이었다. 한계령 방면에서 바라보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뻗은 능선이다. 귀때기의 유래가 재미있다. 설악산에서 제일 높다고 으스대다가 소청 중청 대청봉 삼 형제에게 귀싸대기를 맞았다고 해서 귀때기 청봉이란다.

 

서북능선 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났다. 좌측(서쪽)으로 가면 귀때기, 우측(동쪽)으로 가면 대청봉이다. 예상시간보다 훨씬 빨리 올라 왔다. 2시간 30분을 생각했지만 실제 소요시간은 2시간 정도.

 

서북능선 동쪽 방향으로 쭈욱 진행하다가 우측방향의 남설악 풍경이 퍽이나 아름답다.

 

지나온 귀때기 청봉의 모습이 들어온다. 서북능선은 귀때기를 뒤로 하고 앞으론 중청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었다.

 

진달래 꽃길을 걸어 능선을 타고 동쪽으로 전진했다. 능선길은 기분 좋은 황토길...

 

간혹 돌무더기가 나타나 악산임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날카롭기도 한 암석들을 조심스럽게 건너뛰며 앞으로 나가는데, 자칫 몸의 균형이라도 잃으면 대형사고라도 날 듯싶다.

 

뒤편 귀때기의 주능선이 남에서 북쪽으로 주욱 뻗어있다.

 

큰 나무들이 많아 시야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촬영하기도 역시 쉽지 않았다. 서북능선에서 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뒤쪽 귀때기와 멀리 둥근 안테나 두 개가 서있는 중청이었다.

 

뒤편 귀때기봉 남북으로 쭈욱 뻗은 능선자락

 

능선 우측의 남설악 방향, 우측의 높은 산봉이 가리봉.

 

좌로부터 가리봉과 주걱봉, 귀때기 청봉

 

나무숲 사이를 지나는 길, 아직 나뭇잎이 나오지 않아 햇살이 따가웠다. 숲 사이로 빼꼼히 보이는 것이 중청봉이다.

 

반가운 이정표, 이제 중청이 가까워진다.

 

길은 아직도 기분 좋은 황톳길...

 

끝청에서 바라본 울산암(우측 끝)

 

끝청의 안내도

 

끝청을 지나 조금 오르니 좌측 북쪽으로 봉정암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다가온다. 20대 때 들렸던 봉정암! 석가님의 진신사리가 있는 적멸보궁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봉정암 위에 소청봉 산장

 

드디어 중청 뒤에 숨었던 대청봉이 나타났다. 둥근 안테나가 서있는 좌측이 중청봉, 우측이 대청봉이다.

 

중청 오르는 길

 

모퉁이 뒤로 나타나는 대청봉 산마루

 

거센 바람 때문에 나무들이 자랄 수 없나 보다. 키 작은 나무 사이 산길이 참 예쁘다. 대청봉 위의 사람들이 가물가물 움직이는 것이 마치 꿈결처럼 느껴진다.

 

중청산장과 대청봉 오르는 길. 그동안 저 산장에서 하룻밤 보내려고 몇 번을 예약하고 취소했었는지 모른다. 비가 와서, 일정이 뒤틀려, 교통편이 마땅치 않아 취소했던 일들이 부지기수였었다.

 

소청봉으로 봉정암, 수렴동을 지나 백담사로 내려갔었던 옛 기억이 이제는 까마득하다.

 

중청 산장 마루에서 바라본 북설악 공룡능선과 울산암

 

중청 산장에서 대청봉 오르는 길, 산마루 위에 반달이 정겹다. 그러고 보니 음력 사월 칠일이다. 내일이 초파일. 바람이 거침없이 몰아쳐 불었다.

 

대청봉 8부 능선, 그 위로는 정겨운 반달이 손에 잡힐 것 같다.

 

드디어 대청봉 정상에 서다. 강풍은 사람조차 날려버릴 듯했다.

 

똑바로 서서 촬영하지 못할 정도로 바람이 거세게 불어 댔다. 휘청거리며 중심을 잡으려 애쓰지만 헛일이었다.

 

대청봉 산마루에서 바라본 중청봉과 중청 산장

 

바람 때문에 더 머무를 수도 없었다. 아쉽지만 하산하는 수밖에...

 

오색 내려가는 돌계단

 

돌길...

 

돌길, 돌길 돌계단... 오색까지 돌계단에 정말 지쳤다. 돌계단에 지쳐 촬영을 접어버렸다. 마의 5km 돌계단... 목과 어깨에 걸었던 카메라를 배낭 속에 집어넣었다. 그동안 목을 심하게 압박했던 카메라의 중압감은 사라졌으나, 아쉬움보다 무릎의 고통이 더 컸다.


  오색까지 돌계단을 내려오면서 곰씹은 것은 선진국이 되려면 돌계단부터 없애야 할 것이라는 것과 등산로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이었다.

 

  돌계단은 손쉽게 보수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별생각 없이 만들어 놓는데, 그 돌길을 밟고 다니는 백성들은 무릎이 모두 작살난다는 것이다. 차라리 통나무 계단에 황토를 깔던지, 아니면 나무계단에 폐타이어 그물을 얹어 놓던지 하라는 것이다. 국립공원 등산길이 백성들의 무릎을 아작내야 할 것은 아니기 때문에 관리들의 각성을 촉구해 본다.

 

  등산길에서는 누구나 걸어야 한다. 개인의 신체 능력에 따라 잘 오를 수도 있고,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다. 지위도 부귀도 두 발 이외엔 모두 소용없는 일이다.

 

  오색 약수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5시 20분 정도.

  내려오는 시간이 세 시간 더 걸렸다. 총 소요시간이 대략 8시간 정도여서 한 시간 정도 지체해 버렸다. 애석하게도 내 다리와 무릎에 대한 신뢰감이 점점 떨어져 간다. 그럼에도 미련이 남아 다음에는 산장에서 하룻밤을 머물면서 신흥사 방면이나 백담사 쪽으로 등반해 보리라 욕심부려 보았다.

 

사족 : 대포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들이 대청봉으로 소풍을 왔다. 내려가는 길에 어린이들과 동행하게 되었는데,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힘들어했다. 선생님들의 열정이 대단해 보였다. 아이들은 지금은 힘들었지만 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쩌면 대청봉 봄소풍은 앞으로의 어려운 난관들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왕산과 주산지  (8) 2010.05.29
광교산 이모저모  (4) 2010.05.27
영암 월출산  (9) 2010.04.16
군포 수리산  (2) 2010.04.08
해남 달마산  (2) 2010.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