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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과 산수유

1. 동백꽃(생강나무 꽃)

 

2. 산수유 꽃

 

나는 약이 오를 대로 올라서 두 눈에서 불과 함께 눈물이 퍽 쏟아졌다. 나뭇지게도 벗어 놀 새 없이 그대로 내동댕이치고는 지게막대기를 뻗치고 허둥허둥 달려들었다. 가까이 와 보니 과연 나의 짐작대로 우리 수탉이 피를 흘리고 거의 빈사 지경에 이르렀다. 닭도 닭이려니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 없이 고대로 앉아서 호드기만 부는 그 꼴에 더욱 치가 떨린다. 동네에서도 소문이 났거니와 나도 한때는 걱실걱실히 일 잘하고 얼굴 예쁜 계집애인 줄 알았더니 시방 보니까 그 눈깔이 꼭 여우 새끼 같다. 나는 대뜸 달려들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큰 수탉을 단매로 때려 엎었다. 닭은 푹 엎어진 채 다리 하나 꼼짝 못 하고 그대로 죽어 버렸다. 그리고 나는 멍하니 섰다가 점순이가 매섭게 눈을 홉뜨고 닥치는 바람에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이놈아! 너 왜 남의 닭을 때려죽이니?""그럼 어때?"하고 일어나다가, "뭐 이 자식아! 누 집 닭인데?"하고 복장을 떼미는 바람에 다시 벌렁 자빠졌다. 그리고 나서 가만히 생각을 하니 분하기도 하고 무안도스럽고, 또 한편 일을 저질렀으니, 인젠 땅이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고 해야 될는지 모른다. 나는 비슬비슬 일어나며 소맷자락으로 눈을 가리고는, 얼김에 엉 하고 울음을 놓았다. 그러나 점순이가 앞으로 다가와서, "그럼 너 이담부텀 안 그럴 테냐?"하고 물을 때에야 비로소 살길을 찾은 듯싶었다. 나는 눈물을 우선 씻고 뭘 안 그러는지 명색도 모르건만, "그래!" 하고 무턱대고 대답하였다."요담부터 또 그래 봐라, 내 자꾸 못살게 굴 테니.""그래 그래 이젠 안 그럴 테야!""닭 죽은 건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너 말 마라!""그래!"조금 있더니 요 아래서, "점순아! 점순아! 이년이 바느질을 하다 말구 어딜 갔어?" 하고 어딜 갔다 온 듯싶은 그 어머니가 역정이 대단히 났다. 점순이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 꽃밑을 살금살금 기어서 산아래로 내려간 다음 나는 바위를 끼고 엉금엉금 기어서 산 위로 치빼지 않을 수 없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던 김유정님의 "동백꽃" 마지막 부분이다. 마름의 딸인 점순이의 춘정에 끌려 우둔한 소작인의 아들인 나는 멋도 모르고 점순이게게 떠밀려 안겨버린다. 점순이의 일방적인 사랑이 미움으로, 미움이 다시 사랑으로 해소된다는 소박한 이야기이다. 봄을 맞은 영악스런 산골 처녀의 애정공세에 애꿎은, 처녀네 수탉이 제물이 되고, 우직한 총각애는 수동적으로 처녀애의 꾐에 넘어가게 되면서 신분의 차이에서 오던 갈등도 없어지며, 소설은 행복하게 끝난다. 있는 집 딸 점순이는 낭만인 사랑을 꿈꾸며 현실로 만들지만, 없는 집 소작인 아들인 나는 먹고사는 문제가 사랑보다 더 큰 현실이기 때문에 사랑도 이차적인 문제가 되고 만다. 토속작가 김유정님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명작 "동백꽃"을, 이때쯤이면 더욱 잊을 수 없다. 따스한 남녘에서 봄기운을 담뿍 받아 빨갛게 멍이 든 적동백이 아닌 노란 동백꽃, 바로 요즈음 이른 봄에 야산에서 피어나는 생강나무 꽃이다. 나무에서 생강 냄새가난 다고 생강나무라고 한다는데, 강원도 지방에서는 동백, 또는 동박이라고 한다. 말로만 들었던 노란 동백꽃을 실제로 보게 된 것은 불과 2-3년밖에 되지 않았다. 드디어 노란 동백꽃이 피기 시작했다. 오늘은 날씨가 다시 쌀쌀해져서 음지엔 성애발까지 섰던데, 양지바른 남쪽 골짜기에서 꽃망울을 터트렸다. 하도 반가워서 한참을 서서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산길을 거닐면서 자세히 바라보니 여기저기에 동백꽃 꽃망울이 부풀어 있었다. 봄을 시샘하는 추위 때문에 꽃망울을 터트리지 못하는 것이 조금은 안쓰럽기는 했다만. 그런데, 요즈음에 때 맞추어 피어대는 산수유꽃과 동백꽃이 아주 유사해서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산에서 내려와 동네입구에 왔는데, 문득 바라보니 동네 아파트 정원에 노란 꽃들이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리로 다가가서 자세히 살폈더니, 이놈은 가지에 바짝 달라붙어 꽃을 피우는 동백과는 달리 나뭇가지에서 조금 고개를 내밀어 꽃을 피우고 있었다. 바로 산수유이다. 예전엔 그저 봄에 피는 노란 꽃은 대충 산수유로만 알았었는데 말이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동백꽃과 산수유꽃을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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