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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

비내리는 광한루

 오랜만에 광한루로 나들이했는데, 새벽부터 비가 하염없이 내렸다. 어머니 품 같은 지리산과 기름진 평야를 가진 남원땅이다. 예로부터 천혜의 고장이라 춘향이 이야기 같은 고전이 나왔나 보다. 그런데, 광한루 부근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70년대 토속적인 광한루의 풍경은 간데 없이 사라졌고, 깔끔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멀리 지리산을 휘감은 구름들이 무겁게 누르고 있었지만, 춘향전의 배경이기도 한, 광한루 풍광을 즐기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비가 내려서인지 오히려 한적한 분위기가 더 좋아 보이기도 했다. 더욱이 지금 내리는 비는 내게는 잠시 불편하지만, 봄 가뭄에 많은 도움을 주리라 싶다. 농사짓는데 더없이 소중한 비라 생각하면 오히려 감사해야 하겠다.

 춘향이 뛰었다는 그네터가 없었다. 이도령이 광한루 위에서, 멀리서 그네 뛰는 춘향을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다는데, 그 터도 없어졌고, 그 옆에는 월매집도 있어서 춘향주와 월매주도 팔곤 했었는데, 자취 없이 사라졌다. 하기야 70년대 학창 시절, 함께 광한루를 찾았던 친구도 이젠 세상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처지가 되리 만큼 수많은 세월들이 흐르기도 했지만... 그러고 보니 오작교도 시원하게 넓혀졌다. 비단잉어들은 비 때문인지 연못 깊은 곳에서 떼를 지어 잠수만을 즐기고 있었다.

 얼마 전 춘향전의 파격인 '방자전'이란 영화가 나왔던데, 케이블 TV에서 보았지만 그런대로 재미가 있었다. 열녀 춘향이 보면 까무러칠 정도여서, 고전 춘향전을 매도하지 않았나 싶어 세간의 평을 살펴보았지만, 별 이야기가 없어 보였다. 어찌 보면 천한 쌍것들 사는 세상, 정조가 뭐 그리 대단하겠냐 싶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춘향이도 남원 사또 아들이라 냉큼 이몽룡을 받아들인 거니까. 이도령을 향한 사랑보다는 쌍것을 벗어나 신분세탁을 하고픈 춘향의 욕망이 더 컸던 결과일 것이다. 다행히 춘향이는 성공했지만, 당시 상황으로는 성공하기 어려운 도박이었다.

 독재권력이 기승을 부리던 오랜 시절에 읽은 적이 있는 평론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만약에 춘향이 수절하다 변학도에게 맞아 죽었더라면, 동학혁명은 성공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동학혁명이 성공했더라면 우리나라 민주화는 더 일찍 이루어졌을 것이고... 역사에 가정은 필요 없다고 하지만, 탐관오리들에게 수탈받는 민중들의 한이 그만큼 컸었다는 것이다. 민중들의 한이 춘향이의 한으로 응집되어 폭발력을 가졌더라면 동학혁명이 성공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춘향이는 양반을 위해 절개를 지켜 제 팔자를 고쳤다. 쌍것들은 그대로 탐관오리 휘하에서 신음하면서, 성공한 춘향이 이야기로 위로나 받았던 형국이다.

 그런데, 민주화되었다는 오늘의 세상도 가관이다. 서민들은 서민을 위한 서민들을 뽑아야 될 테인데, 상위 1%에 해당하는 부자들을, 먹고살기 힘들다는 가난한 서민들이 뽑아준다. 더 이상 해 먹지 말라고 뽑아주는지는 몰라도 이건 아니다 싶다. 서민도 아닌 사람이 서민 행세를 하면서 양의 얼굴을 하고 선거 때만 고개 숙이는 나리들도, 가여운 서민들은 잘도 찍어준다. 그 선량들은 선거 때만 몇 번 허릴 굽히지만, 뽑힌 뒤엔 4-5년 동안, 백성 위에 군림하며 온갖 특혜들을 다 누리는데... 오호, 통재라. 비가 오니 애꿎은 춘향탓만 하고 있는 내가 우습다.


춘향의 사당 안에 모신 열녀 춘향의 초상 - 친일 화가로 알려진 이당 김은호 그림, 진주성의 논개 초상도 김은호가 그렸으나, 친일행적이 문제가 되어 현재는 다른 초상화로 대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