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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

용주사의 봄

 

 봄햇살에 나른해진다. 화성시 송산동 성황산 남쪽기슭에 있는 용주사를 찾았다. 용주사에도 봄꽃이 활짝 피었다.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갈양사로 창건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정조대왕이 양주군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영우원을 지금의 화산으로 이장하고 사찰을 중건하여 융릉(사도세자의 묘)의 원찰로 삼았다. 정조의 효성은 지극하여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긴 뒤 자주 행차하면서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을 슬퍼하였다. 용주사에는 국보 제120호인 범종을 비롯하여 정조의 애절한 효심이 깃든 "불설부모은경"등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사찰 명칭은 낙성식날 정조가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어 용주사라고 개칭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용주사 표지석, 용주사 오른쪽으로 신도시 조성작업이 한창이다.

 


활짝 핀 목련 꽃 뒤로 천왕문

 

비파를 든 사천왕, 매우 정교하고 사실적이어서 자리를 박차고 튀어 나올듯 했다.

 

 


부모은경을 돌에 새겨 세운비석. 맨 앞에 (부모의 은혜를 잊지 말고) 그 의미를 마음에 새기라는莫存知鮮(막존지선) 문구가 암각 되어 있다.

 

용주사 정문 앞 오른쪽에 있는 효행박물관, 정조대왕의 아버지를 향한 효심이 발원되어 있는 절이기에 효행박물관을 설립하였다.

 


절의 정문 앞에 세워진 홍살문, 사찰입구에 홍살문이 세워진 것은 매우 특이한 경우로, 정조대왕께서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용주사를 창건하고 호성전(護聖殿)을 건립하여 아버지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이다. 용주사 정문에는 문이 3 개가 있는데, 동쪽문은 들어가는 문, 서쪽문은 나오는 문, 가운데 문은 왕이 출입하는 문이다.

 

용주사 현판

 


들어가는 문 앞에 놓인 석물

 


석탑과 천보루

 


범종각

 


용주사 고려동종을 확대 재현한 것으로, 이보다 규모가 작은 고려동종은 대웅전 오른편에 있다.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에 그만 안습, 공명통 아래엔 낙엽이 잔뜩 쌓여 있었다. 그러고 보면 보여주기 위한 범종은 아닐는지... 저 큰 종이 우렁차게 울려 중생들을 제도해야 할 터인데, 먼지만 뒤집어쓴 채, 화려한 범종각에 갇혀있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내부공사 중인 대웅전

 


바야흐로 봄이 무르익고 있었다. 뒷 담장 아래 뜨락에 활짝 핀 수선화, 제비꽃, 그리고 또 무수한 봄꽃들...

 

 


시방칠등각 안의 칠성탱화로 1935년에 제작되었단다. 화면 중앙에 치성광여래가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하였고, 좌우보처로서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시립하고 있다. 상단 좌우에는 칠 여래가 있고, 하단 좌우에는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칠원성군(七元星君)이 있다. 원래 칠성신은 중국의 도교신앙에서 형성된 후 우리나라에 유입되어서 여러 신중(神衆)의 하나로 보고 신중탱화 속에서만 묘사하였다고 한다.

 

 

대웅전과 천불각

 


대웅전과 천불각, 시방칠등각

 


부모은중경탑

 


사진 오른쪽으로부터 지장전,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의 위패를 모신 호성전, 그리고 대웅전...

 


절집 담장 밖에 있는 구옥.

 


절집 앞담장 밖에서 넘어본 봄꽃 풍경

 


효행박물관 앞의 목기러기 솟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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