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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想

환구단

 

  몇 년 전, 북경에 갔다가 중국 황제가 하늘에 제사 지내던 천단을 보고, 그 웅대함에 놀란 적이 있었다. 황제는 天子, 즉 하늘의 아들이니, 하늘과 소통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고종황제 때 하늘에 제사지내는 환구단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실체를 본 적이 없어 매우 궁금했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환구단을 검색했더니, 소공동 조선호텔 뒤에 있었다. 독립된 지역이라는 느낌보다는 호텔의 한 구역같아서, 호텔과 거리가 먼 내 처지에 찾아 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그래도 보고 싶은 마음이 커서 상세히 검색한 후, 서울 시청으로 갔다. 가다 보니, 프레지던트 호텔 옆에 환구단 이정표가 있어서 화살표 방향대로 호텔 옆 호텔 주차장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50여 미터쯤 골목길 끝 부분의 계단을 올랐더니, 그곳에 환구단이 초췌한 모습으로 쓸쓸하게 앉아 있었다.

 

  환구단(圜丘壇)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곳으로, 우리나라 제천행사는 농경문화의 형성과 함께 시작되었으며, 삼국시대부터는 국가적인 제천의례가 시행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성종 2년(983) 정월에 제천의식이 시행되어 설치와 폐지를 계속 되풀이하다가 조선초에 제천의례가 억제되자 폐지되었단다.  세조 2년(1456)에는 일시적으로 제도화하여 1457년에 환구단을 설치하고 제사를 드리게 되었다.  그러나 세조 10년(1464)에 실시된 제사를 마지막으로 환구단에서의 제사는 중단되었다.

  환구단이 다시 설치된 것은 고종 34년(1897) 조선이 대한제국이라는 주권국으로 이름을 바꾸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부터이다. 현재 환구단의 터에는 황궁우와 석고(돌로 만든 북) 3개가 남아있다. 황궁우는 1899년에 만들어진 3층의 8각 건물에 신위판(神位版)을 봉안(奉安)하였으며, 석고는 악기를 상징하는 듯한 모습으로 화려한 용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1913년 일제에 의해 환구단은 헐리고 그 터에는 지금의 웨스턴 조선호텔이 들어서게 되었다. 지금은 제사 때 신주를 모셨던 황궁우와 돌에 용을 새겨 만든 북, 그리고 3개의 아치가 있는 석조 대문만이 보존되어 조선호텔 뒤뜰에 남아 있다. 일제에 의해 훼손된 데다가, 주변에 즐비한 고층 건물 울타리 속에 갇혀서 기를 못 펴는 황궁우의 모습에 마음이 착찹해졌다.

 


  황궁우 오른 쪽에 있는 돌을 깎아 만든 석고(돌북)


환구단으로 들어가는 문과 황궁우

 

빌딩들에 둘러싸인 황궁우

 

 빌딩을 제거하고 푸른 하늘을 합성해 본 황궁우

 

 

  황궁우 앞의 조선호텔, 호텔 커피숍 뒤뜰이 환구단이라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환구단을 훼손하고 삼문과 황궁우를 바라보며, 승자의 쾌감을 만끽했을 일본인들과, 커피 숍 유리창을 통해 정원처럼 초라해진 환구단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기분은 어떨까 궁금스러웠다.

 

황궁우로 들어가는 삼문. 사진 찍는 위치가 바로 조선호텔 벽이었다. 임금님만 걸을 수 있는 어도 표시의 문양이 오히려 초라하고 궁색해 보였다.

 

 

 

조선호텔 주차장 쪽으로 걸어 나오면서 바라본 환구단의 황궁우

 

훼손이전의 환구단 - 네이버 이미지 사진

 

일제 강점기 시대의 환구단

 


  경복궁을 가로막았던 조선총독부 건물이 해체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역사적 가치 운운하면서 해체 반대운동을 했던 일부 지식인들의 태도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건축학적 가치보다는 민족과 국가의 자존심 문제이기 때문에 과거 치욕의 상징적 건물을 해체한 것은 백만 번 생각해도 잘 한 일이다.

 

  해방직후, 왜 일제의 흔적을 지우지 못했을까. 미군정 이후, 독립 정부가 들어섰을 때, 과감한 일제청산이 이루어졌다면, 경복궁도 환구단도, 훼손된 숭례문도 일찌기 제 모습을 찾았을 것이다. 또, 한국전쟁때 초토화된 서울을 수복했을 때, 역사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정부에서 훼손된 문화재 복구를 위한 부지만이라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녔던 유신 시대와  5공화국 때, 의지만 있었다면 그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을 텐데...

 

  언감생심, 그런 것 따위는 생각지도 않았을 사람들에게, 그런 미련을 갖는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3.1절을 맞으며 안타까운 마음에 별 생각을 다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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