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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想

`곰치국`에 대한 단상

  십여년 전, 삼척에 들렸을 때, 삼척에 사는 절친으로부터 곰치국 얘기를 들었는데, 비위가 약하면 먹기 어렵다고해서 겁먹고, 대신에 콩나물 해장국을 먹었었다.

그 때, 곰치국은 삼척에만 있었던 것으로 생소한 것이었는데, 불과 몇 년 후,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서, 오늘날엔 숙취해소용 음식 중 으뜸으로 꼽히고 있다.

 

  엊그제 신문에서 송아지 한 마리 일만 원, 곰치 한 마리 12만 원이란 기사가 대서특필된 것을 보았다. 그 전엔 생긴 모양이 흐물흐물하고 흉칙해서,어물전 천덕꾸러기였던 곰치가, 이젠 없어서 못파는 귀하신 몸이 되었다. 4-5 년 전 낙산에서 1박하며 과음해서, 속초의 유명하단 곰치국집을 찾았는데, 문전성시 발 디딜 곳조차 없었다. 좁은 자리에 가슴펴지도 못하고 모잽이로 겨우 앉았는데, 아뿔사, 주인장은 '파도가 험해, 배가 못 떠서 곰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곰치국대신 생태탕을, 울며 겨자먹기로 억지로 먹고 나왔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모처럼 곰치국의 원조라는 삼척에서 곰치국으로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 집에 우리가 갔을 때는 차를 세워둘 공간도 없어서 맞은 편 다른 가게 앞에다 주차하고 들어 갔는데, 여기서도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단체 손님들이 방마다 가득차서 눈치보듯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십여년 전의 한을 푸는 것 같아 잔뜩 기대하고 일만이천 원이나 하는 곰치국을 주문했는데, 이런 맙소사, 곰치 두세 작은 조각에 김치를 썰어넣고 끓인 그야말로 김치국이였다. 곰치는 육질이 부드러워 입안에서 흐믈흐믈 녹아버렸고, 이내 곧, 버얼건 국 속에 김치 건더기만 남았다. 정말 실망이 컷다. 발가벗은 임금님처럼, 나도 맛있다고 맞장구를 쳐줄까 생각했다가도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었다. 세상 물가가 올라 인플레이션이 심한 요즈음이지만 12000 원에 차려진 곰치국 밥상, 정말 이건 심했다. 맛이란 것이 본디 개인차가 심해서 저마다 입맛이 달라 차이가 크긴 하지만, 나는 이제 다시는 곰치국 근처에도 가지 않을 결심이다.

 

 

  음식점마다 즐비하게 붙은 맛자랑 집, 각 TV방송사 로고가 잔뜩 붙어있는 것을 정말 믿어도 될까?  작년엔가 이들 맛집 자랑 음식점들의 실체를 다룬 다큐멘타리 영화도 나왔다는데, 그들 맛집에서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TV의 영향력과 대중적 인기를 빌미로 방송사마다 뒷거래로 맛집을 소개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대한민국의 모든 맛집이 그럴 리 없다고 믿고 싶다.

 

  방송에서 볼 수 있는 맛집들이, TV 방송국의 명성을 빙자하거나 과장으로 연출되지 않은, 순수하고 진솔한 맛으로, 언제나 모든 이들이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업소였으면 좋겠다. 방송사에서는 과장 연출로 대중들을 현혹할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정성껏 제공하는 맛으로 평가할 수 있는 맛집을 소개해야, 자신들의 신뢰성을 높이고 공정하게 보도하는, 언론 본연의 일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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