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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

재인폭포

  주차장에서 계단으로 협곡 아래로 내려가 바윗길을 조심조심 올라가노라면 폭포가 나타나는데, 물은 맑고 깨끗하지 않았다. 군부대 관리지역이라 관광지답게 관리되고 있지는 않다. 바위틈을 조심해서 걸어 상류 쪽으로 조금 오르니 폭포가 나타났고, 그 아래엔 사람들이 엉성하게 쌓아 놓은, 작은 돌탑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었다. 이런 오지까지 찾아왔다가 그냥 돌아가기 섭섭해서일까? 아마도 저 마다의 소망을 빌며 정성껏 하나둘 쌓았으리라. 동네 입구에도, 산길에도, 강가에도, 폭포 아래에도 이런 돌탑을 쌓기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으로 정성과 소망이 많은 백성들인가 보았다.

  폭포 주변의 암벽은 주상절리였다. 절벽 아래 풍화작용으로 뚝뚝 떨어져 내린 절리의 파편들이 어지러이 뒹굴고 있었다. 폭포 가까운 곳에 홍수조절용 댐이 건설되고 있었는데, 완공되면 폭포 아래까지 물이 차 오를 것이라 한다. 자연 상태에서 수많은 세월을 흐르고 흘렀을 폭포와 강인데, 인위적으로 댐을 막는다는 것이 자연을 너무 쉽게 훼손하는 행위라 생각되었다. 댐으로 얻는 이익이 더 크다는 논리일 텐데, 후손들에게 물려줄 아름다운 자연 경관 하나가 또 사라지는 것 같아 섭섭한 생각이 많았었다.




   폭포 입구에 서있는 폭포 안내문인데, 슬픈 사연이었다. 봉건시대 탐관오리의 횡포에 압살된 서민들의 한이 서려 있었는데, 지금보다도, 더했을 절대 권력의 횡포에 눈시울이 뜨거울 정도였다.

   공정 사회, 평등 사회라고 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오늘에도, 서민들의 피땀 어린 예금으로 호사 부리며, 제 것처럼 쓰다가 파산 직전에, 힘 있는 자들에게만 원금을 돌려줬다는 일부 저축은행들의 만행에 우리나라는 선진 국가, 깨끗한 사회가 되기엔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건 시대에만 탐관오리들의 학정과 가렴주구가 있는 것만은 아니란 것이 매일 뉴스를 통해 쏟아지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예쁜 아내 둔 죄로 탐관오리에게 비명 횡사한 재인과 탐관오리의 코를 물어 응징하고 자결했다는 재인 아내의 비극적 설화가, 오늘의 민초들이 폭포 아래 정성으로 쌓아 올린 수많은 돌탑들이 누란지세(累卵之勢)처럼 쓸쓸하기만 한 것은, 우리가 각성해야 할 현실과 너무 닮아 있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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