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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

고창읍성

강풍과 호우가 예보되는 가운데, 읍성 가까운 곳으로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읍성 앞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읍성의 정문으로 향했다. 입장료는 고창 주민은 무료, 타향인은 1000원이었다.우리는 타향인이니까 당연히 1000원씩을 지불하고 들어갔다. 첫인상은 무척 깔끔하다는 것이었다.성곽도 자연산 돌들로만 쌓아 올렸다. 시멘트가 섞이지 않아 여간 다행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때마침 붉은 철쭉꽃들이 만개하여 읍성을 떠받치고 있어 보기에 좋았다.토속적 내음새가 물씬 피어난다.



읍성의 정문인 공북루, 2층 누각이 하늘을 날아 오르듯 날렵하게 솟았다.


동편으로 오르며 뒤돌아본 북문인 공북루. 성문을 보호하고 감싸는 옹성의 곡선이 예뻐 보였다.


동편의 성안.휘어진 소나무들의 자태가 고왔다.


동북쪽의 하늘엔 구름이 몰려드는데, 구름 사이로 비치는 하늘빛이 곱다. 예측할 수 없는 변덕스런 날씨다.


철쭉꽃과 어우러진 성곽의 담쟁이에서 한국적 소박함과 곡선미가 넘쳐 났다.


남쪽 성 위를 걷는데, 햇살이 따가웠다.겨울 뒤에 바로 여름인가 보다.


읍성의 서문을 내려다 보며 돌아 걸었다.


공북루로 진행하면서 뒤돌아 본 서문과 옹성.


약 2km 정도의 성곽을 한 바퀴 돌아 나와,출발 원점에서 다시 읍성 전면을 하나로 묶어 펼쳤다.



  낙안읍성, 해미읍성과 또다른 모습이었다. 고창읍성은 자연적 지형지물을 잘 이용한 일종의 산성이었다. 둥그렇게 둘러 싸인 둘레 2km 정도의 산세를 이용하여 돌을 쌓아 올렸다. 가운데 움푹 파인 골짜기가 바로 관청과 주민들의 대피소였다. 성곽 안에는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져 소박한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내부엔 몇 개의 관청이 복구되어 있으나, 옛날 모습으로 모두 재현된 것은 아니다. 왜적으로부터 군민을 보호하려는 선인들의 지혜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읍성이었다.


  고창읍성 : 옛 고창 고을의 읍성으로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하는데, 백제 때 고창 지역을 모량부리로 불렀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나주진관, 입암산성 등과 더불어 호남 대륙을 방어하는 요충지로, 단종 원년(1453)에 세워진 것이라고도 하고 숙종 때 완성되었다고도 한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최근 보수공사를 하여 원형에 가깝도록 복구하였다. 성 둘레는 1,684m이며, 동·서·북문과 옹성이 3개소, 장대지 6개소와 해자들로 된 전략적 요충 시설이 갖춰져 있다. 성 안에는 동헌·객사를 비롯하여 22동의 관아 건물들로 되어 있었으나 대부분 손실되었다. 


  이 성은 조선 시대 읍성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주초와 문짝을 달던 홈이 파인 누문(樓門)을 가지고 있어, 평양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성문, 보은의 삼년산성이나 강화읍성 등에서 볼 수 있는 양식과 비교되어 성곽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여성들의 성벽 밟기 풍습으로 유명한데, 한 해의 재앙과 질병을 쫓고 복을 비는 의식의 하나로 좋은 민속자료가 된다.
<문화재청 홈피 - 고창읍성 소갯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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