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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왕봉


  5월 5일, 어린이날. 하늘은 푸르렀다. 작년 가을엔 구름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해서, 천왕봉 등정길에 다시 올랐다. 겨우내 큰 산행을 미루어 왔기에 다소 부담이 되었지만 맑은 날씨에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소형차 주차장 가는 대로에서도 천왕봉의 흰 머리는 가슴을 설레게 했다. 백두산 다음으로, 남한에서는 제일봉이 천왕봉이 아니던가.



  며칠간 황사 때문에 걱정도 많았었는데 날씨가 맑아 기분에 상쾌했다. 문제는 주차장이 넘치도록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좁은 산행길이 몹시 붐빌 것 같았다. 중산리 소형주차장에서 법계사에서 운행하는 소형셔틀버스를 탔다.


  법계사입구에서 내렸다. 주차장에서 이곳까지 3km 정도라 그 만큼의 시간 덕을 본 셈이었다. 차비는 1000원. 작년에는 시주함에 성의 표시로 제각기 차비를 넣었는데, 내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할 수 없이 돈을 받는단다.


버스는 먼지를 남기며 출발점으로사라지고, 비로소 본격적인 산행길에 접어 들었다. 이때 시각 오전 11시.


법계사 입구라 해도 여기서 2.8km이다. 산길 2.8km는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니다. 천왕봉까지는 4.8km!


등반경로는 천왕봉에서 장터목으로, 장터목에서 칼바위 방향으로 하산하여 출발원점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올라가는 등반로 숲 사이로 천왕봉이 숨바꼭질하듯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고도가 높아지자 아직까지도 나뭇잎이 나오지 않았다. 철쭉꽃도 시들어가는 마당에 이제서야 진달래가 피고 있었다.


잡티 하나 없이 맑은 계곡물앞에 서니 천왕봉이 바로 지척 위에 앉아 있었다.


평탄한 길대신 바위길이 나타났다. 앞으로는 계속 이 바윗길을 걸어야 한다.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산길을 걸었다.


  언제부터인가 가파른 산길을 오르려며는 내 심장과 싸워야 했다. 가빠지는 호흡 속에 쿵쾅거리는 심장의 압박을 달래며 숨을 골라야 했다. 하산길에는 무릎의 압박을 견뎌야 하고... 이제 오르는 길인데, 내려갈 걱정까지 하는 것은 그 만큼 힘이 들어서이겠다.


로타리 대피소도착, 아직 여력이 있긴 하지만... 점점 앞길이 걱정스러워졌다. 이제 천왕봉까지 절반을 왔을 뿐인데...


휴일이라 사람들이 많았다. 점심식사에 분주해 보였다. 여기서부터는 등산길이 너무 혼잡했다.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들이 외줄기 등산로에서 엉키곤 했다.


적멸보궁, 법계사를 또 스쳐 지난다. 부처님 진신사리는 다음 기회에 뵙기로 했다. 입구 아래 약수터에서 간단하게 목을 축였다. 깊은 산 속의 물이라 물맛이 참 좋았다.


법계사를 휘돌아 전망이 탁 트인 마당바위에서 잠깐 휴식을 취했다. 저 멀리 속세의 골짜기가 보였다.


가파른 돌길이라 조금만 올라도 심장이 요동친다. 그러다보니 쭈그리고 앉아 진정을 시키는데, 저절로 눈길은 아래를 내려다 보게 된다.


다시 잡목 우거진 상행길...


자주 주저 앉아 자꾸만 아래를 바라보았다.


능선을 하나 넘어 개선문에 도달했다. 참, 이름도 잘 붙인다. 개선문이라... 내려오는 길이라면 개선문이라해도 좋겠다. 그러나, 나는 이제 오르는 길이기에 개선문은 과해 보였다.


개선문 위에서 천왕봉이 또 나타났다. 개미처럼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쉬면서 내려다본 지나온 길...


천왕봉 목 아래 도착했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또렷이 보였다. 기운을 내보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벌써 600cc 물 한 통을 다 비웠다. 준비해 간 오이 한 개를 씹으며 기운을 북돋아 보았다.


턱밑에 다달았다. 천왕샘, 남강의 발원지란다. 앞으로 300m... 300m가 왜 이리 힘들던지...


이제 저 계단을 오르면 천왕봉... 천왕봉이다.


천왕봉 코아래에서 또 주저 앉았다. 앉으면 역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마지막 계단...계단...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오후 2시. 3시간 걸렸다. 정상석에는 사람들이 몰려 혼잡스러웠다. 정상석 옆 오똑한 바위로 롤라가 천왕봉 아래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촬영했다. 청명한 날이었기에 전망이 짜릿했다.


차가운 골바람이 세차게 올려 불었다. 순간 콧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찬 때문일까. 아니면 내 코가 지나치게 민감한 것일까. 안내도를 내려다 보며 저 멀리 능선들을 바라 보았다.


정상석 뒷방향.


정상의 기쁨은 이제추억으로 남기고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가는 길... 능선 따라 걷는 등반객들의 모습이 정겨운 이웃같았다.


가파른 하산길도 만만치 않다.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 나는 하늘에서 이문을 통해 지상으로 내려간다.


제석봉을 왼쪽에 끼고 내려가는데, 뒤를 돌아보니 천왕봉이 지척의 등 뒤에 서있었다. 산줄기를 따라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산능선이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듯 했다.


돌길... 돌길에 지쳤다. 그래도 시야가 좋으니 그나마 위로가 된다.


제석봉 아래 고사목들...


장터목 대피소가 선명하게 보였다. 작년가을에는 구름 때문에 흐릿한 윤곽만 더듬었는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아래로 내려간다. 3시 06분. 작년 백무동 방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중산리로 방향을 꺾어 내려갔다.


돌길에 지쳐 앉았다 걷다 하기를 수십 번. 주변을 둘러 볼 여력조차 없어 카메라를 배낭에 넣어 버렸다. 다리를 건너며 아름다운 계곡 물줄기를 바라보며 배낭을 풀고 세 컷을 찍었는데,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려가는 길은 심장의 압박에서는 벗어났지만 무릎 관절에 부딪치는 고통이 상상을 초월했다.


계곡을 건너 지른 홀바위다리를 지나니 산객들이 쌓아놓은 돌탑들이 나타났다. 나는 기운이 쇠진하여 돌맹이 하나 들어 올릴 여력조차 없는데... 산객들의 소망들이 모여 올려진 소망탑들을 바라보며, 산행의 마무리를 지어갔다.


출발원점 도착시간은 오후 6시05분. 다리가 후들거려 정신이 없었다. 목소리까지 변해버렸다던가...

정상 위에 선 것까지는 좋았는데, 사람의 기운이, 진액이 다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아름다웠던 산 위에서의 한 순간이 모든것을 상쇄해 주리라 생각하며 정말로 기인 산행을 마치었다.

산길에서 참 많은 것을 배운다. 인생이란 것이 결국 내 혼자 지고가는 삶의 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나를 지켜주는 것은 내 몸 뿐이다. 내가 걷는 이 산길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원시의 모습으로 오직 내 두 다리로만 이동할 뿐이다. 내 인생도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없듯이, 내가 걷는 이 산길도 누가 나를 대신할 수 없다.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지듯, 내 몸도 내가 책임져야, 온전한 산행을 마무리 할 수 있다. 큰 산을 오를 때마다 내 몸의 소중함과 내 인생의 책임감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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