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봉화 청량산

봉화군 도립공원인 청량산을 찾은 것은 이 번이 두 번째이다. 지난방문 때는, 눈내린 겨울철, 청량사에 올라 병풍처럼 둘러 싼 산봉우리들을 보며, 그 능선들을 걷고 싶었었는데, 이번에 드디어, 그 소망을 아루게 되었다. 멀기도 먼 4시간의 거리를 달려 도착한 청량산, 토요일인에도, 깊은 산이라 그런지 등산객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선학정 주차장에 내려, 등반 시발점인 입석으로 아스팔트 포장로를 따라 이동했다. 청량사 일주문이 보였다. 아름다웠던 청량사를 생각하며 바쁜 걸음으로 일행들의 뒤를 쫓았다.

 

등반 안내도를 쳐다보며 등반코스를 그려 보았다. 입석에서 출발하여 김생굴, 경일봉,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 하늘다리, 장인봉, 장인봉에서 청량폭포로 하산하는 코스로 4시간30분 정도로 예상했다.

 

선학정에서 입석까지 이동, 하늘의 구름이 변화무쌍하다. 맑은 날을 기대했었는데, 몰려드는 구름이 심상치 않았다. 맞은 편 산봉 위에는 정자가 아름답게 앉아 있었다. 거리가 멀어 아득해 보였는데,사진으로는 너무 작게 나타난 것 같다.같이 간 사람들에 의하면, 산성의 누각이란다. 이 깊은 산속에까지 산성이 있었다니, 과거 이곳에도 전쟁의 화가 미쳤나 보다.

 

가파른 등산로를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모퉁이 돌며, 탁 트인 벼랑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수목 사이로 우리가 올라왔던 골짜기 도로가 뱀이 꿈틀거리는 것 처럼 보였다.하늘과 맞닿은 먼 산의 능선들도 시원한 모습이었다.

 

구비구비 산길을 돌아가자, 문득 높이 솟은 암벽 아래로 아담한 기와집이 나타났다. 현판에 무위당이라 씌였다. 이 높은 곳 험한 벼랑 아래 도를 닦는 도량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아마도 청량사와 연계된 곳이 아닌가 싶다. 나 혼자 제멋대로 상상하는 데 뭐, 거칠 것이 없다. 아니면 그만이고... 노자의 '무위자연'과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수행 중이라는 작은 푯말 하나가 담장에 걸려 있었다. 절벽에 붙은 담쟁이 색깔이 붉다. 그 아래 작은 맞배지붕의 도량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 옆으로는 대충 간단하게 임시로 지은 듯한 누옥이 이어져 있었다.



 

응진전 위 모퉁이를 돌아서서 왼쪽이 터진 벼랑 위에 서니, 연적봉 아래 청량사가 단풍잎 사이로 한 눈에 쏘옥 들어왔다.청량사는 예쁜 절집으로 기억된다. 저곳에서 '동이'를 비롯하여 드라마 촬영도 많이 했다고 들었다. 단풍잎을 보니 이제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나 보다.

청량사 http://blog.paran.com/fallsfog/37030297


 

청량사와 주위의 산들을 넓게 바라 보았다.


 

신라시대, 김생이 살았다는 김생굴, 통일 신라 시대 명필인 김생이 은둔하여 살며 서도를 수련 했다는 곳이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듯, 허술해 보였다.


 

 김생굴 옆에 김생폭포가 있는데, 폭포라 하기에는 무리인 듯 하다. 물방울이 맺혀 뚝뚝 떨어지는 정도이니, 큰 비가 내려야 폭포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다.



다시 경일봉을 향해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숲이 우거졌기 때문에 그늘 속, 산행이었지만 땀이 많이 흘렀다.



경일봉을 지나, 점심 식사를 하고, 숲이 울창한 능선 위를 계속 걸었다. 숲 때문에 좌우의 전망이 가려져산 위를 걷는 실감이 제대로 나질 않았다. 가끔 전망이 트인 곳을 보면 그저 반가워,먼 산들을 조망하곤 다시 숲길을 재촉하였다. 산 위에 오르는 것은 사방으로 탁트인 세상을 내려다 보며 호연지기를 느끼는 것인데, 숲 때문에, 사방을 조망할 수 없다면 그 어찌 산에 오른 것이라 할 수 있을까?비기 내리거나,구름이 덮혀도 마찬가지로, 등산의 보람이 별로 없다. 그러기에 나의 산행에는 날씨가 첫째 조건이 되었다. 청량산에서는 숲 때문에 산 아래 풍경을 실컷 맛볼 수 없었다.



 

숲 사이 트인 곳으로 산봉우리가 보였다. 그 위(자소봉)에 서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서야 비로소 높은 산 정위를 걷는다는 것이 실감났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 이곳에서 떠올랐는데, 전망 좋은 산봉우리를 멀리서나마 보게 되니, 숲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소봉 올라가는 턱밑 삼거리였는데, 이곳부터는 등산객들이 붐비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우리 일행 뿐으로 호젓했었는데, 여기에서는 팔도의 사투리가 모두 들려왔다.

 

드디어 가파른 돌계단과, 철계단을 딛고, 자소봉에 올랐다. 사람들로 혼잡해서 오래 있기 어려울 성 싶었다.

 

자소봉에서 멀리 이곳저곳을 조망했으나, 특징적인 곳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 지리를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산봉우리처럼 안내문이 없어 다소 허전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청량산 너머의 풍경.

 
우리가 지나온 곳, 출발점 건너편의 산 능선에 산성의 띠가 보인다.

 

아쉬운 마음으로 자소봉을 내려가 바로 고개를 넘는데, 그뒤에 커다란 암봉이 솟아 있었다. 이름하여 탁필봉이다.

 탁필봉을-정확히 말하면 고개- 넘어 바로 산봉이 있었는데, 연적봉이다. 어떤 이들은 오르기 힘들다며 그냥 지나쳤데, 이곳까지 와서 오르지 않는다면 후회할 것 같아 단숨에 올랐다.

 방금 지나온 탁필봉과 그 아래 등산로가 보였다. 그 왼편으로는 먼 산의 능선들이 아득하게 보였다.

 

 탁필봉 건너로 우리가 걸어왔던 방향

 

우리 일행이 전진해야 할 방향, 멀리 청량산의 명소 하늘다리가 아주 작게 보였다. 그 뒤에 있는 산봉우리가 장인봉,우리의 최종 목적지이다.

 

 

연적봉에서 내려와 다시 걷는데, 고개마루에 삼거리 이정표가 나타났다. 하늘다리가 500m! 거의 다 온 듯 싶었다.

 

드디어 하늘다리. 이름이 멋있다. 청량산의 명물이다. 다리 입구에서 많은 사람들이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계곡 사이를 건너질러 쇠줄로 매달아 놓은 철교였는데, 장관이었다. 월출산 구름다리와 사못 비견할 만 했다.

 

구름 다리를 건너서, 건너 온 쪽 방향이다.

 

구름 다리를 건너 다시 내려갔다가, 철계단 돌계단을 거쳐 도달한 장인봉. 김생의 글자들을 집자해서 돌 위에 새겨 넣었다는데, 문외한인 내 눈으로는 김생의 글씨가 그리 명필 같지는 않았다. 미학적 관점이 부족한 아둔한 눈으로 명필을 평가하려한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그러나, 신라 사람의 글씨를 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었다.

 

정상석의 뒷면, 조선 중종 때 인물로 소수서원을 창시했다는 주세붕 선생의 시가 적혀 있었다. 그러고 보면, 청량산이 있는 봉화가 영주, 풍기, 안동 지방과 가까워서 퇴계 선생을 비롯한 영남의유림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겠다. 인자(仁者)는 요산요수(樂山樂水)라 했으니, 이 아름다운 청량산을 그냥 지나쳤을 리 없었겠다. 주세붕 선생은 청량산 장인봉에 올라 도학자를 꿈꾸었나 보다. 신선의 몸으로 인간세계에 귀양왔다가 도를 깨치고는 다시 학을 타고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른다는 시구절로 미루어 조선시대 양반들의 이상적 생활이 바로 아름다운 산을 찾아 풍류를 즐기는 것이었겠다. 송강 정철도 관동별곡 끝부분에서 자신을 인간세계로 귀양 내려 온 신선으로 묘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장인봉 정상은 아예 숲이 울타리를 쳐놓은 형상이었다. 정상에서 아레의 풍경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더 나가면 전망대가 있단다. 전망대 소리에 반가워 앞으로 나아 갔다. 

 

장인봉에서 가던 방향으로 조금 더 직진, 이른바 전망대가 나타났다. 앞으로 조금 내려 가는가 싶더니, 천만 길 낭떠러지로 길이 뚝 끊기었다. 벼랑 끝을 우회하여 내려가는 길이 있는가 싶더니, 등산로 폐쇄라는 경고문 하나로 길은 끝나 버렸다. 벼랑가 철책으로부터저 멀리 일망무제, 막힌 곳 없이 탁 트여, 전망이 호탕하였다. 이른바 호연지기를느낄 수 있는 곳이겠다. 등산의 맛은 바로 이 맛이다. 'ㄱ'자로 흐르는 낙동강 구비 바로 위 산등을 자세히 보면 우리 한반도 모양의 개간지가 있었다. 그것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볼거리이라면 명물이겠다.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풍경이기에 파노라마 사진으로 만들어 보았다. 클릭하면 원본 크기!


 

장인봉에서 바로 하산하는 등산로가 폐쇄되었기 때문에, 왔던길로 되돌아와 장인봉 고갯마루에서 바로 하산하였다. 그런데, 그 하산길은 급경사에다, 둥근 통나무로 만든 계단이 산 중턱까지 이어졌다. 통나무에 습기까지 차 있어서 몹시 미끄러웠다. 어찌나 힘들고 기운이 빠지는지, 중턱의 민가에 내려왔을 때는 두 다리가 사정없이 후들거리며 떨렸다.

그렇게 내려온 곳이 청량폭포. 폭포라고하기는 하나, 떨어지는 수량이 넉넉하지는 못했다.



종착점인 주차장에서 올려다 본 청량산! 가을색이 조금씩 물들어 간다. 4시간 30분 정도의 비교적 짧은 산행 코스임에도 오르막 내리막 길이 많아, 많이 힘들었다. 구름이 많은 날씨였기에 사진 촬영도 그리 쉽지 않았다.


 

  

깊은 산이어서인지 구들이 변화무쌍했다. 구름이 보다 적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청량산을 벗어나 사람들 많은 도시로 접어들자, 구름들의 모습이 거의 자취를 감췄다. 사람들은 도시에 몰려 살고, 구름들은 산 속에 모여산다. 언제 다시 이곳을 찾을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번, 못다 푼 소망을 이제서야 풀게 되어 내심, 뿌듯한 산행이 되었다. 종아리와 허벅지에 알이 박혀 몹시 피곤했지만, 그 덕에 귀가길에 편안하게 잠을 청할 수도 있었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름 속을 걷다 - 지리산 천왕봉  (6) 2010.11.12
백양사 가는 길  (1) 2010.11.08
관악산에서 조망 파노라마  (4) 2010.09.09
관악산  (0) 2010.09.08
주왕산과 주산지  (8) 2010.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