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斷想

뿌리 깊은 나무 - 드라마와 소설의 차이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라 중간부터 관심 있게 보았다. 제법 구성도 탄탄하다 싶어 즐겼었는데, 역시나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시청률은 최고라는데, 이야기의 전개가 중반이 넘어가면서부터 너무나 허술하다. 줄거리가 너무 궁금해서 원작은 어떨까. 하루 만에 두 권을 독파해 버렸다.

 

sbs 홈페이지에 있는 드라마 메인 포스터 

 

 

 

소설 "뿌리 깊은 나무"는 극중 전개가 치밀하다. 겸사복이라는 말단 근위병이 궁중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사건들을 추적하며, 죽은 자들이 남긴 흔적으로 범인들을 찾아 나선다. 죽어가는 집현전 학사들... 첫 번째 희생자는 분서관(책을 태우는 사람) 장성수로 우물에서 시신이 발견되는데, 그를 조사하던 강채윤은 마방진을 발견하고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두 번째 희생자는 주자소에서 고려가요를 수집하며 활자를 연구하던 연구관 윤필, 그는 주자소 안에서 불탄 시체로 발견되고, 세 번째로 정밀한 지도를 제작하던 허담학사는 철퇴에 맞아 절명한다. 네 번째 희생자는 농사직설을 편찬한 정초대감으로 경회루 대들보에서 목 매달린 시신으로 발견된다. 죽은 이들의 시신에는 점 찍힌 문신들이 있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강채윤은 오행(水-火-金-木-土)의 순서에 의한 살인임을 알고 다음 살인을 예측하여, 땅에 묻혀 죽기 직전의 성삼문을 살려낸다. 채윤은 그가 추적해 왔던 마방진 풀이에서 마방진의 달인인 소이로부터 마방진의 비밀을 알게 된다.

 

채윤이 발견한 처음의 마방진 

 

소이를 통해 밝혀진 마방진의 비밀은 훈민정음의 기본체계였다.- 자음의 기본자 다섯과 모음의 기본자 셋(여기엔 'ㄹ'이 하나 더 추가되었음) 훈민정음 기본체계를 마방진에 적용한 작가의 추리력이 놀랍다.

 

살인자들은 고군통서를 훔쳐 세종을 압박하고자 세종의 침전으로 난입하지만, 채윤이 그들을 가까스로 막아 주상은 자객들의 수리검에 부상을 당하게 되고, 살아남은 자객 하나가 세종이 젊은 시절에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군통서'를 훔쳐 명나라 사신관으로 도망친다. 뒤쫓던 채윤이 활을 쏴서 자객을 절명시켰지만, 그는 고군통서를 가슴에 품은 채, 치외법권 지역인 명나라 사신관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명나라 사신은 필체감정사를 대동하고 고군통서를 들고와 세종을 압박한다. 고군통서는 젊은 시절 세종이 사대주의를 비판하고 조선의 얼을 되찾아야 한다는 내용의 저술이다. 장성수를 비롯해 허담, 윤필 등이 금서인 이 책을 지키려다 죽었다."예로부터 이 나라는 고유의 말과 풍속을 지녔으니 중국의 속국이 아니고... 그러니 왕이여 명심하소서. 어설픈 흉내로 작은 중국이 되려 하지 말고 격물로 치지하시와 이 나라가 온전한 나라로 곧추서게 하소서..."라는 고군통서는 한 마디로 중국 성리학과 사대사상에 빠져 있는 당시 사대부 입장에서는 너무도 불경스러워 용납할 수 없는, 금서일 수밖에 없다. 세종이 쓴 것으로 드러난다면, 명나라로서는 도저히 세종을 묵과할 수 없는 증거가 되는 책이기도 했다. 절박한 위기에 빠진 세종을 구해낸 것은 세종의 호위감인 무휼이다. 무휼은 이런 일을 예견하고, 그동안 세종의 서체를 연습해 왔기에, 필적감정사에게 세종의 글씨를 써 보이며 고군통서가 자신의 글이라 주장하고는 세종대신 명나라 사신에게 잡혀간다.

결국, 채윤에 의해서 사건의 배후 주동자는 절대적 사대주의자인 집현전  직제학 심종수로 사건의 전모는 밝혀지고, 비로소 훈민정음은 세상에 반포된다.

 

이 소설은 정조대왕의 개혁을 주제로 신하들과의 갈등을 다룬  이인화의 소설'영원한 제국'처럼 역사적 인물을 바탕으로 가공 인물들을 내세워 허구화한 소설이다. 정채윤은 드라마와 달리,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서 그 부모가 세금 없는 북방으로 이주하여 농사짓다 야인들에 희생당하자, 관군에 들어가 오랑캐들과 생사를 넘는 전투를 벌이다가 김종서 장군의 배려로 한양에 내려와 겸사복이 된 하급 친위병에 불과하다. 가리온은 그저 궁중에 고기를 대는 백정일 뿐이고, 무휼은 출세를 위해 스스로 내시가 되어 세종에게 충성을 다하는 호위감이다. 이들은 모두 가공인물임은 말할 것 없다. 참고로 무휼은 세종의 외삼촌 이름으로 민무구, 무질에 이어 태종으로부터 사사당한 인물이다.

 

 

 

  드라마는 정도전의 신권주의를 바탕으로 밀본당과 세종의 갈등과 대립을 그리고 있다. 보다 극적 구성을 배려해서인지  백정출신인 가리온이 밀본의 대장이 되고, 기라성 같은 대신들도 거느리는 절대적 인물로 그리고 있는데, 시대적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사무라이 같은 이방지나, 왕권에 도전하는 비밀결사조직인 밀본은 아예 소설에 그림자도 없다. 더구나, 말단 겸사복과 궁녀 소이의 사랑은 꿈도 꿀 수 없는 설정이다. 욕 잘하는 세종이나, 무예고수들의 이야기도 없다. 그 당대에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므로 개연성을 추구하는 소설에는 나타날 수 없는 것이다.

  정채윤과 소이는 태종에게 화를 입은 세종의 장인 심온 대감의 노비의 자식으로 그려졌으나 소설은 그렇지 않다. 소이는 몰락한 고려 충신의 후손으로 떠돌다 양반집 처녀의 몸종이 되었다가, 그 처녀가 세자빈이 되는 바람에 궁궐로 들어오게 된다. 말 못하던 궁녀 소이는 훈민정음의 창제에 관여함으로써 그 이치를 깨달아 소리를 내게 된다는 것인데, 이 설정이야말로 소설의 핵심이다. 어리석은 백성은 문자세계에서는 벙어리나 마찬가지이다. 28자의 원리를 알면 벙어리가 말을 하게 되는 것과 같은 새로운 문자 세계가 열린다는 것이 바로 세종이 추구하는 상징적 의미라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칼을 들고 다니는 검객인 겸사복 장채윤은 소설에서는 육모방망이 하나 달랑 들고 다니는 하급 친위병에 불과하다. 세종을 구하기 위해 침점에 들어갔다가 오히려 불경죄로옥에 갇히기까지 하는 신세이다. 왕권이 하늘 같은 그 시절에 말단 겸사복 졸개가 칼까지 차고 어찌 임금과 맞서며 어찌 자신의 사랑을 얻을 수 있을까?

  드라마에도 고증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사극에 등장하는 말들은 조랑말아닌 유럽산 경주마들이고, 말에 얹혀있는 마구는  미국산이라는데, 이런 건 웃어넘긴다 하더라도, 인물들의 관계나 당대의 현실에는 보다 철저한 고증으로 사실성을 높여야 할 터이다. 그런데 인기에 영합하여, 당대의 최고의 권력자인 임금과 미천한 겸사복이 소이라는 궁녀 하나를 사이에 두고 펼치는, 가당치도 않은 사랑놀음으로 극적요소만 극대화시킨다면, 그것은 사극의 범위를 넘었다는 생각이다.

 

 

 

 

  드라마의 인기 덕에 잘 쓰여진 소설 한 편을 읽은 것으로 만족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마방진에 얽힌 수학적 이야기나, 음양오행을 비롯한 동양 철학, 당대의 문물이나 인물, 사건, 건축, 사물에 얽힌 해박한  배경지식은 작품의 리얼리티를 높이며, 어쭙잖은 사랑타령으로 인기에 영합해서는 참다운 소설이 될 수 없음을 작품 자체로 말해주고 있다.

 

 

<참고> 마방진 :

(1)1에서 n까지의 양의 정수를 정사각형으로 배열하여 가로, 세로, 대각 선상으로 합계가 모두 같도록 만든 것. 간단히 방진이라고도 한다. 마방진의 각 칸을 셀(cell)이라 하고 각 변에 나열된 셀의 개수에 따라 3 방진, 4 방진, …, n방진이라 한다. 대부분의 마방진에 쓰이는 정수는 1부터의 연속수이며 가로, 세로, 두 대각선의 각각의 합 S=n(n+1)/2로 표시된다.

따라서 3방진은 S=15, 4 방진은 S=34, 5 방진은 S=65가 된다.

 

마방진의 역사는 오래되었으며 전설에 의하면 B.C. 2000년경 우(禹)가 낙수(落水)의 치수공사를 하고 있을 때 등에 [그림 1-(a)]와 같은 도형이 그려진 거북이 나타났다고 하며 이 도형이 [그림 1-(b)]와 같은 3 방진이다.

이 도형을 낙도(洛圖)·하도(河圖)·낙서(洛書)라 하였고, 중앙의 5는 오행수(五行數)에 대응하여 우주를 상징한다.

 

마방진은 그 후 한국과 일본·인도 등지로 전파되었고, 15세기에 비잔틴의 작가 E. 모소플루스에 의해 서양에 소개되었다. 마방진이 서양에 알려진 것은 동양보다 늦었으나 만드는 방법은 서양에서 먼저 발견되어, 기록에 나타난 최초의 것은 A. 뒤러의 동판화《멜랑콜리아》(1514)로, 4 방진으로 제작된 날짜가 맨 아랫 줄 중간에 들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림 2]

 

16세기에 이르러 독일·프랑스에서 마방 전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어 1900년을 전후해 미국에서 유행했다.

중국에서는 양휘(楊輝)의 연구가 유명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수학자 최석정(崔錫鼎)이 절묘한 마방진을 창안하여 그의 저서《구수략(九數略)》에 실었다.

이 책에 있는 마방진은 1부터 81까지의 정수를 중복 없이 배열한 것이며 큰 사각형 전체로도 마방진(가로·세로로만 합이 같다)이 될 뿐 아니라, 그 안에 있는 9개의 정사각형도 역시 마방진을 이루고 있다.

 

(2) 1에서 9까지의 숫자를 3행 3열의 바둑판 눈 속에 그림과 같이 넣으면 세로·가로·대각선의 어느 합도 모두 15가 된다(15 = 1/3(1 + 2 + … + 9)). 이와 같이 1에서 n2까지의 숫자를 n행 n열의 바둑판 눈에 세로·가로·대각선의 어느 합도 똑같도록 제대로 넣은 것을 n차의 마방진이라 한다. n = 2인 것은 만들 수 없다. n = 3인 것은, 뒤집거나 대각선에 관해서 대칭인 것을 같다고 생각하면 한 종류밖에 없다. 그러나 n = 4로 하면 880종, n = 5로 하면 약 7,000만 종이 있다.

 

출처 : 사이언스올 지식백과 http://www.scienceall.com/dictionary/dictionary.sca?todo=scienceTermsView&classid=&articleid=250944&bbsid=619&popissue=

'斷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햇빛바라기  (4) 2012.02.10
White christmas  (0) 2011.12.24
만추  (0) 2011.12.01
유혹  (2) 2011.05.15
거리의 예술가  (0) 2011.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