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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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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소재 용주사를 찾았습니다. 용주사 천황문을 지나면 홍살문이 나타납니다. 절에 웬 홍살문? 당연히 이런 질문이 나오겠지요. 용주사는 정조대왕께서 비운에 돌아가신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었던 절입니다. 그렇다면, 용주사는 정조대왕의 효심으로 미루어, 효도의 대표적 표상으로 봐도 되겠지요? 입구부터 도로 양쪽에 도열된 돌들은 부모은중경을 조목 조목새겨 넣은 비석들입니다. 절 안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는것이 석탑과 천보루입니다. 천보루 좌우측에는회랑모양의 건축물들이 이어져 있는데, 이는 왕릉을 돌보는 사찰임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천보루 아래에서 바라본 대웅전입니다. 대웅전의 내부입니다. 부처님 뒤에 걸린 탱화는 김홍도 그림입니다. 우리나라 회화사에서 처음으로 원근법이 적용된 그림으로..
안성 청룡사 안성 최남단, 충청도와 경계를 이루는 곳, 서운면 청용리에 있는 청룡사. 저수지를 끼고 구불구불한 길을 돌아가면 1900년대 남사당 무리들이 겨울을 지내곤 했다는 사찰, 청룡사가 나타난다. 고려시대 1265년, 서운산 기슭에 명본국사(明本國師)가 창건한 절로, 창건 당시에는 대장암(大藏庵)이라 하였으나 1364년에 나옹화상이 크게 중창하고 청룡사로 고쳐 불렀다. 청룡사라는 이름은 나옹화상이 불도를 일으킬 절터를 찾아다니다가, 이곳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보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절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계곡 건너 울창하게 우거진 숲 속에 자리하여, 절터 또한 풍수설을 모르는 문외한이라도 명당자리임을 한 눈에 알아챌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웅전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은 곱게 가공한 목재가 아..
서산 부석사 고려시대 건축묵물로 유명한 무량수전의 영주 부석사가 아니라 충남 서산에 있는 부석사입니다. 소재지도 충남 서산시 부석면입니다. 어쩌면 중국과 마주 보고 있는 이곳이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애절한 이야기의 실체가 깃든 곳 같기도 합니다. 일찌기 신라시대, 원효대사와 함께 중국유학을 준비했던 의상대사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습니다. 두 스님은 중국유학을 위해 당성 부근 산 속에서 노숙을 하다가 갈증이 나자 바가지로 물을 떠먹었는데, 날이 밝고 보니 그 바가지가 사람의 해골이었다는 것이죠. 이에 무상감을 느낀 원효대사는 유학을 포기하고 신라에서 민중 중심의 불교를 창시하고, 포교활동을 하게 됩니다. 반면에 의상대사는 중국으로 가서 원하던 유학을 하게 됩니다. 그 때 의상대사를 사모했던 여인이 생겼더랍니다...
운길산 수종사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까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수종사, 거기에 절에서 제공하는 향기 좋은 차 한 잔까지 공양받을 수 있는 곳, 수종사까지 길은 가파르고 험했다. 거친 시멘트 포장도로에 승용차 두 대가 겨우 교행할 수 있을 만큼 좁은 도로에 많은 차량들이 다녀서 먼지와 배기가스 냄새가 풀풀 솟아올랐다. 차량들이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서 거친 시멘트 도로와 타이어가 미끄러지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뿜어내는 굉음과 연기도 걸어서 올라가는 사람들에겐 고역이었다. 쉬엄쉬엄 올라가 절에서 내려다본 전경은 올라올 때의 괴로움을 한 순간에 씻어주었다. 때마침 차공양 시간이 끝나가 직전이어서 운 좋게 향기로운 차 한 잔을 얻어 마실 수 있었다. 오후 5시가 공양의 마감 시간인데, 다실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이 ..
봉화 청량사 봉화군 청량산 청량사 경북 봉화군 청량산 도립공원 안에 있는 절이다. 청량산 연화봉 아래, 양지터에 자리잡고 있는데, 신라시대 민중불교 창시자인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법당인 약사여래불을 모셨다는 유리보전은 고려 공민왕의 친필 현판이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종이로 만든 지불(紙佛)이 있는데, 지금은 금칠을 했다. 절의 규모는 크지 않으나, 연화봉의 자태가 수려하여, 아름다운 산세와 어울리는 그윽한 풍경이었다. 해마다 가을철이면 이곳에서 산사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단다. 또한, 청량산에는 김생(金生)이 공부하던 김생굴과 공민왕당, 퇴계 이황이 즐겨 머물며 수학하던 정자 오산당이 있다는데, 직접 가보지는 못했다. 수려한 산세 덕분에 드라마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는데, mbc "선덕여왕"에서 어린 천명공주가 후..
직지사 김천의 황악산 직지사. 본사(本寺)의 초창(草創)은 신라 눌지왕(訥祗王) 2년(418) 아도 화상(阿道和尙)에 의하여 도리사(桃李寺)와 함께 개창(開創)되었단다. 절이름을 직지(直指)라 한 것은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선종(禪宗)의 가르침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창건주(創建主) 아도 화상이 일선군(一善郡, 善山) 냉산(冷山)에 도리사를 건립하고 멀리 김천의 황악산을 가리키면서 저 산 아래도 절을 지을 길상지지(吉祥之地)가 있다고 해서, 직지사(直指寺)라 이름했다는 전설(傳說)도 있고, 또 고려의 능여 화상이 직지사를 중창할 때 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자기 손으로 측지(測地)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 설도 있다. 신라시대 창건하였으나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