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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청량사 봉화군 청량산 청량사 경북 봉화군 청량산 도립공원 안에 있는 절이다. 청량산 연화봉 아래, 양지터에 자리잡고 있는데, 신라시대 민중불교 창시자인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법당인 약사여래불을 모셨다는 유리보전은 고려 공민왕의 친필 현판이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종이로 만든 지불(紙佛)이 있는데, 지금은 금칠을 했다. 절의 규모는 크지 않으나, 연화봉의 자태가 수려하여, 아름다운 산세와 어울리는 그윽한 풍경이었다. 해마다 가을철이면 이곳에서 산사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단다. 또한, 청량산에는 김생(金生)이 공부하던 김생굴과 공민왕당, 퇴계 이황이 즐겨 머물며 수학하던 정자 오산당이 있다는데, 직접 가보지는 못했다. 수려한 산세 덕분에 드라마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는데, mbc "선덕여왕"에서 어린 천명공주가 후..
김해수로왕릉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그렇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그 유명한 가락국 건국신화 중, 김수로왕을 맞이하며 불렀다는 '영신군가'이다. 신화와 역사속의 가락국 시조이자 현전하는 김해김씨 시조인 수로왕릉 참배를 위해 김해를 찾았다. 김수로 왕릉에 도착했을 땐 오전 8시밖에 안된 이른 시간이라 능문이 잠겨 있었다. 지키는 분에게 들어가기를 청했더니, 9시가 지나야 한다는 거였다. 9시에 능참봉이 수로왕께 참배를 마쳐야 비로소 능문을 연다는 거다. 왕조시대도 아님에도 현실에서 듣는 능참봉 이야기가 퍽이나 재미있었다. 하는 수 없이 되돌아 나와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추운 날 일찍 조반을 파는 집을 찾을 수 없어서 한참을 배회하다가 시장 안 깊숙히 들어 가서야, 복국 끓이는 집을 겨우 찾았다...
봄길 눈 녹은 삼나무 숲 저 편에 아지랑이라도 올라올 듯하다. 자동차 다니는 큰 길을 피해 삼나무 나목 사이를 걷는다. 오늘 햇살은 밝고 찬란한데, 바람이 차다. 예보에 의하면,비나 눈이 내린단다. 이번 겨울은 참 눈이 많이 내린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풍년이라지만. 그제 3월 1일 하루 종일 비가 내렸는데,또 내린다니, 생활이불편해진다. 가는 세월 막을 수 없다는데, 따뜻한 봄을 이렇게 기다리면, 오늘 하루들의 의미들이 적어진다. 그만큼 세월은 빠르게 지나가니, 내 인생사가 덧없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나는 소식도 별로 없고, 좋지 않은 경기와 어수선한 정치판 소식 탓에, 유난히도 눈이 많았던 이 번 겨울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봄꽃망울 2월의 마지막날, 동네 뒷산입구엔 개나리가 망울졌다. 눈으로 얼어붙고, 녹으면서 질척했던 산길도 이젠 꾸둑꾸둑해져서 산책하기에 아주 좋았다. 날씨가 다소 흐렸지만 대지 위에서 봄기운이 솟아오른다. 이름 모를 풀잎들이 머리를 삐죽삐죽 내밀며, 3월의 따스한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기예보는 오늘밤 비 아니면 눈이 내린다는데, 머리내민 새싹과 꽃망울들이 걱정이었다. 예년보다 4-5일 빨라진다는 꽃소식이 바로 눈앞에 닥쳤는데, 추운 한파는 없었으면 좋겠다.
천북 석화구이 가스불판에 생굴을 통째로 듬뿍 올려놓고 익어서 쩍 벌어진 굴을 집어든 후, 칼로 껍질을 따고 잘 익은 굴을 젓가락으로 쏙 빼서 먹는다. 요즘엔 대부도 쪽에서도 길옆에 비닐하우스 지어놓고 굴구이 한다고 간판을 걸어 놓았다. 그런데, 원조 굴구이는 바로 보령 천북 굴구이 단지이다. 굴을 굽다 보면 껍질이 탁탁 터지며 수류탄 파편 튀듯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데, 스릴까지 있다. 잘 익은 굴을 젓가락으로 집어 초고추장에 찍어서 소주 한 잔 안주로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보령시 천북항 겨울철엔 천북의 석화구이가 제맛이다. 가스불에 굴을 올려놓고 탁탁 튀는 굴껍질 가루를 뒤집어쓰며, 익혀진 굴을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그 맛이 감칠맛이다. 7 0-80년대가 연상되는 풍경으로 주변의 상점들이 엉성한 철골구조의 가건물..
오천城 보령시 오천城, 오천항, 토정 이지함의 묘 충남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성. 1509년(중종 4)수군절도사 이장생(李長生)이 서해를 통해 침입해 들어오는 적을 감시하고 물리치기 위하여 쌓았으며 1896년(고종 33) 폐영되었다. 오천항(鰲川港)은 백제 때에는 중국·일본과 교역하던 항구로서 회이포(回伊浦)로 알려졌으며 고려 때부터는 왜구가 자주 침범하자 이를 물리치기 위하여 군선(軍船)을 두었다. 축성 당시에는 사방에 4대 성문과 소서문(小西門)이 있었다는데,동헌을 포함해영보정(永保亭)·대섭루(待燮樓)·관덕정(觀德亭)·능허각(凌虛閣) 등의 건물은 허물어져 사라졌고 서문인 망화문(望華門)을 비롯해 진휼청(賑恤廳)·장교청(將校廳)·공해관 등의 건물만이 남아 있다. 망화문은 화강암의 아치형 출..
봄을 기다리며 날씨가 완연한 봄날씨다. 뒷산에 올랐다가 봄기운을 만끽했다. 꽁꽁 얼었던 얼음눈길도 희미한 차취만을 남기고 있었다. 유난히도 추웠고, 많은 눈이 내렸던 이번 겨울도 이젠 물러가나 보다. 눈녹은 응달길이 미끄럽고 질척거려 조금은 불편하지만 봄을 기다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산을 걸었다. 아직 꽃소식은 먼 것 같고, 지난 사진을 뒤적이다, 봄꽃사진 하나를 발견했다. 꽃샘 추위도 한두 번 더 있을 것 같은데,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다른 해보다도 유독 금년에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더 커진 것은 아마도 날씨탓 만은 아닌 것 같다.
용인 미리내 성지(09.04.24) 가끔 방문하곤 하는 김대건 신부님을 모신 용인 미리내 성지. 주변의 자연이 아름다워, 전원풍경을 맛볼 수 있으며, 인근에 조병화 시인 기념관도 있다. 봄 여름 가을 풍경마다 아름다워,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도, 드라이브 후 산책하기에 좋다.
덕유산 향적봉 2월 4일, 향적봉을 향해 길을 나섰다. 10시 30여분, 덕유산 국립공원 삼공지구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다리를 건너며 바라본 덕유산정엔 흰 눈이 쌓였다. 덕유산 산행이 이 추운 겨울 마지막 눈꽃산행이었다. 국립공원 안내 표지. 부지런하게도 벌써 내려오는 분들도 있었다. 덕유산 국립공원 전체 안내도. 백련사까지는 포장도로였다.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는 산행이 어색해서, 산길을 택할까 고심하다가 포기하고 사람들 뒤를 따라 올라갔다. 도로 위에는 눈 뭉친 얼음 덩어리들이 간간 있었고, 추운 날씨답게 가끔 강풍이 큰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노출된 귀와 볼을 싸매고 모자를 뒤집어 쓴 채 얼음 계곡을 따라, 도로를 한참 걸었다. 그늘 쪽엔 눈길이 얼어 있었고 간간 모래를 뿌려 놓았으나 미끄러웠다. 계곡의 경..
겨울비 월초에 내린 눈은 아직 녹지 않았다. 쌓인 눈은 아파트 그늘에 가려, 행인들의 발에 밟혀, 밟혀져 얼음이 되어 바닥에 단단하게 얼어붙었다. 한달 일찍 황사가 불어오고, 싸락눈이 내리다가 오늘은 궂은 비가 하염없이 내린다. 추운 겨울에 꽁꽁 얼어버린 가슴에 촉촉한 봄비가 되었으면 좋겠다. 봄은 아직 멀었지만 오늘 내리는 이 비가 얼어붙은 얼음눈을 녹이고 있었다. 꽃소식과 함께 따스한 봄을 이 겨울 빗속에 기다려 본다.
순천만 순천만 자연생태관, 천문대와 전시관 건물로 주변과 잘 어울렸다. 주차장 시설이며, 공원들이 예뻐 보였다. 자연 생태관에서 구름다리를 건너면 갯벌의 갈대밭이 나타난다. 갈대밭 사이로 나무 산책로를 만들었다. 전망대에 가려고 했으나, 현재 공사중이었다. 전망대 직전, 임시 전망대에서 순천만을 조망하였다. 임시전망대는 앞에 큰 나무들이 시야를 가려 전망이 그리 좋지 않았다. 갈대밭 입구, 순천만 사진
자갈치와 광복동 소싯적에 친구들과 자갈치 시장에 갔었는데, 그땐 좌판마다 붕장어가 넘치고 있었다. 그 시절, 불행하게도 부산역 앞 아리랑 호텔 길 건너 선술집에서 조총련 재일동포 모국방문단이라는 자칭"신따로"라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했었다. 부산도착 첫날이라 정말 난감했었는데, 모두의 돈을 털어보니 겨우 집으로 돌아갈 여비만 있었다. 자갈치 좌판마다 하얗게 썰어 놓은 붕장어회를 눈으로만 바라보며 침만 삼키고 돌아서서 해운대 모래사장에서 값싼 홍합국물로 배를 채웠었다. 오늘 자갈치시장은 옛 모습과 달리 현대식 건물이 떡 버티고 있어 놀랐지만, 안에 들어가니 재래 수산물시장과 비슷했다. 시장 들어가는 초입에는 고래고기 파는 식당이 많았다. 시장 건물 앞은 그저 평범했다. 좁은 길에 차량들이 붐볐고, 바닷물이 바닥에 흥건히 젖..
직지사 김천의 황악산 직지사. 본사(本寺)의 초창(草創)은 신라 눌지왕(訥祗王) 2년(418) 아도 화상(阿道和尙)에 의하여 도리사(桃李寺)와 함께 개창(開創)되었단다. 절이름을 직지(直指)라 한 것은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선종(禪宗)의 가르침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창건주(創建主) 아도 화상이 일선군(一善郡, 善山) 냉산(冷山)에 도리사를 건립하고 멀리 김천의 황악산을 가리키면서 저 산 아래도 절을 지을 길상지지(吉祥之地)가 있다고 해서, 직지사(直指寺)라 이름했다는 전설(傳說)도 있고, 또 고려의 능여 화상이 직지사를 중창할 때 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자기 손으로 측지(測地)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 설도 있다. 신라시대 창건하였으나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
봉하마을 전설의 마을, 봉하. 고인께서 손녀를 자전거에 태우고 다니실 때, 먼발치로라나 뵈었어야 했을 것을 돌아가신 뒤에야 찾았다. 대통령 생가와 봉화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대통령이 계시지 않는 마을은 겨울의 따스한 햇살에도 불구하고 쓸쓸해 보였다. 복원한 노대통령생가와 새로 마련하신 저택. 담장 안의 복원 생가. 대청 마루 벽에 걸려있는 사진, 대통령의 어린 시절, 군시절, 결혼 사진들... 사랑방. 횃대에 걸린 옷가지와 물레, 등잔불. 옛날 유년의 추억들이 물씬 피어올랐다. 봉화산으로 가는 길, 방문객들을 위한 추모의 공간. 이 뒤편에 고인의 유언대로 자그마한 비석을 건립한다고 한다. 공사가 한창이었다. 뒤편의 봉화산 사자바위 생전 마지막 오르셨던 부엉이 바위. 바위 밑에는 추모의 리본이 고인과 함께 ..
타이뻬이-화련-야류 우리의 이웃인 타이완 방문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일본과 중국엔 갔었는데, 우리나라 경제 수준과 비슷하다는 대만은 어떤지 궁금했다. 십 년 전 태국 갈 때 한 번 타이베이 공항에만 잠깐 내려 환승한 일이 있긴 했는데, 그거 가지고 대만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옛날 국어교과서에서 읽은 오봉선교사의 고산족 교화 이야기가 지워지지 않았고, 한 때 동병상련 격으로 서로를 아끼던 나라였다가 국교단절 이후 웬수진 나라로만 알고 있었다. 2010년 1월 10일 아침은 너무 추운 날이었다. 아침 일찍 서둘러서인지 공항 안에도 추운 건 마찬가지였다. 창밖엔 눈 덮인 활주로에 꽁꽁 얼어버린 것 같은 비행기가 대기하고 있었다. 무료한 가운데 대합실에 앉아서 두리번거리노라니 투터운 옷을 입은 승무원들이 먼저 비행기에 오르..
눈 오는 날 새 해 들어 많은 눈이 내렸다. 칠십몇 년 만의 폭설로 육해공 교통이 한 때 마비되었었다고 전한다. 개인적으로는 눈이 싫다. 군대시절, 제설작업 때문에 고생했던 일이며, 눈길에 미끄러져 교통사고를 겪었던 경험들이 눈을 진저리치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가슴 한 구석에 남아있는 눈에 대한 작은 낭만으로, 눈을 맞으며 눈 덮힌 산길을 올랐다. 벌써 부지런한 등산객들의 발자국이 찍어 있었다. 정강이까지 빠지는 산길에서 눈을 헤치고 산에 오르는데, 옛 추억들이 새로 찍히는 발자국 따라 조금씩 기억 저편에서 스멀스멀 걸어 나왔다. 어린 시절의 추억에 즐거워하며, 사람들의 흔적 없는 샛길로 최초의 발자국을 찍으면서 어린애처럼 산에 올랐었다. 눈은 동심을 부른다. 벌벌 기는 자동차와 달리 어린이들은 제 세상을 만났다...
새 해에는 새 해에는 얼굴 서로 맞대고, 그 대 두 손 꼬옥 잡고, 두 뺨 서로 비비대며 환하게 웃었으면... 얼룩진 얼굴 손등으로 씻어주며, 흐르는 그 대 눈가, 서러운 눈물도 어루만져 닦아주고, 서로를 얼싸안고 어깨를 두드리며, 힘차게 웃었으면... 내 마음 빗장 풀고, 닫힌 마음 활짝 열어, 그 대, 내 품 안에 꼬옥 안고나서, 그 대 상처 난 삶의 조각들을, 내 가슴으로 하나 가득, 웃음보다 더 큰 울음으로 따스하게 덥혔으면... 새 해에는...
`추노(推奴)`- 청풍호 9월 13일 충북 제천부근의 청풍호. 일지매 세트장 쪽에서 농악소리가 울려 내려갔다. 장터 어물전의 굴비들이 눈을 부릅뜨고 올려다보았다. KBS 촬영차량이 있어 호기심에 가까이 갔더니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었다. 스텝들에게 물으니, "추노"라고 말하길래, 호기심에 카메라를 들자, 스텝이 달려와서 찍지 못하게 했다. 멀리서 적당히 몇 장 찍었다. 최대로 줌인했더니 장혁이 보였다. 장터 활극 장면이어서 몇 장 찍는데, 또, 스텝들의 제지를 받았다. 머쓱하고 무안해서, 촬영을 포기하고 카메라를 접었다. 세트장 한 부분 촬영 현장을 보았다는 것외 별로 신통한 것도 없었다. 연결되지도 않는 몇 개의 씬을 보다가 지루하고 재미없어 되돌아 나왔다. 청풍단지에서 아래를 보니 청풍호에서 분수가 시원하게 솟구쳐 올랐다.
하꼬네, 닛코, 토쿄 가깝지만 먼 나라, 미워하고 싫어하지만, 어쩔 수없이 기대는 나라, 일본. 옛날부터 왜구들은 노략질과 조선조 7년간 왜란과 근세에 이르러 강제병합하여 식민지 수탈 등, 우리 역사를 오욕으로 물들였다. 아직도 그들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못하고, 적반하장으로 독도가 지네 땅이라 우기는 소인배들이기도 하고... 그러나 한편, 우리 경제개발의 모델이 되었고, 지금도 우리가 의존하는 경제 대국으로, 손잡지 않을 수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일본은 두 번째로 방문하는데, 이번에는 후쿠시마에서 도쿄로 여행했다. 비행기는 한적한 시골 마을 후쿠시마 국제공항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후쿠시마공항에서 입국 수속. 입국 수속이 간단하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작성한 입국신고서 양식이 잘못되었다고 다시 쓰란다. 기분이 좋을 리..
영월 청령포와 장릉 단종의 유배지였던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 이곳을 방문하기 전에는 여기서 단종이 돌아간 줄 알았었는데, 이곳에서 지낸 것은 1457년 6월부터 두 달이었다고 한다. 유배 중 여름 장맛비에 청령포가 범람하자, 영월읍에 있는 관풍헌으로 옮겼다가, 그해 10월에 그곳에서 비참한 죽임을 당했다. 그때가 우리 나이로 17살, 어린 소년이었다. 청령포는 3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고립된 지형으로 유배지의 전형이었다. 나루터에는 청령포를 건너는 배 두 척이 여행객을 맞아 좁은 강폭을 부지런히 왕복하고 있었다. 배를 타고 건넌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을 정도의 넓지 않은 강이었다. 동력선이 방향을 바꾸어 건너편에 접안하는 시간이 오히려 지루할 정도로 강폭은 좁았다. 영조대왕이 친필로 썼다는 '단묘재본부시유지비'이다. 단종이 ..
오산 독산성(세마대) 임진왜란의 유적지인 오산시 독산성 세마대.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이 왜적에게 포위되자, 성안에 물이 많음을 과장하기 위해 왜적이 볼 수 있는 성위에서 흰쌀로 말을 씻었다는 바로, 그 역사의 현장이다. 역사의 현장치고 복원 수준이 요란하지 않고 그저 수수한 시골 토담 같은 느낌을 주었다. 세마대 주차장에서 올라가면 제일 먼저 만나는 독산성 서문, 서문에서 성벽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한 바퀴 일주한다. 서문에서 북쪽으로 오르는 길 성벽의 높이는 높지 않으나, 성밖의 경사가 매우 급하기 때문에 효과적인 방어전을 펼칠 수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아카시아 나무 숲이 우거져 아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 북쪽 성벽 아래에 한신대가 있다. 북쪽 성벽의 암문. 이 역시 거창하게 축성한 것이 아니어서 매우 얌전해 보인다..
아산 공세리성당 아산만 방조제를 조금 지나 평택만과 삽교천 언덕에 있는 공세리 성당. 이 성당은 1922년에 드비즈 초대 본당 신부님이 직접 설계하여 완공하였다. 본디 세곡 창고가 있던 자리에다 성당을 지었는데, 공세리란 지명도 세곡 바치던 창고가 있던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중세 유럽풍의 이 성당은 아름다워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고스트 맘마', 드라마 '모래시계' '불새' 등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그래서인지 평일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성당을 방문하고 있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국군병원으로, 부상당했던 원빈이 원대복귀하는 장면이 생각난다. 고풍스러운 성당의 내부. 1800년대 후반 천주교 박해 때 순교하신 28분의 순교자들을 모신 곳이다. 이곳에 안장되신 28분은 아산에 사시던 분들로 서울과..
겨울서정 지구 온난화로, 아열대 기후가 된다는데도 날씨는 몹시 춥다. 게다가 날씨도 변덕스러워 화창한 날도 보기 힘들고, 연일 젖빛 연무에 오후가 돼서야 비로소 마른 햇살이 조금 비친다. 예전엔 추운 3일을 버티면 따뜻한 4일을 즐겼던 삼한사온의 리듬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잊혀진 옛말이 돼버렸다. 게다가 금년 봄부터 불어온 신종 플루는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살이에 더 찬 바람을 일으킨다. 모처럼 날려 쌓이는 하얀 눈발처럼, 마음만이라도 따스한 금년 겨울이 되었으면 좋겠다. 눈 덮인 땅 속에서도 부지런한 뿌리들이 새 생명을 준비하듯, 우리네 가슴속에도 파란 희망들이 싹트길 소망한다.
관악산 과천 향교에서 출발하여 오르는 관악산 코스인데, 올라가는 길목에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주인장의 마음씨가 아마도 따스한 듯하다. 올라가야 할 등반로 안내문 저 멀리 산정의 천문대와 송신소가 보였다. 계곡 사이의 다리를 건너고, 등반 계단로를 지났다.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연주암에 올랐다. 멀리 보이는 건 청계산인데 그 정상이 망경대이다. 일찍 올라온 사람들은 연주암에서 점심 공양을 했나 보다. 이 연주암 마루로 건너와 막간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천문대와, 송신소, 그리고 벼랑 위에 지은 연주대. 깎아지른 벼랑 위의 맞배지붕의 빨간 연주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찌 저런 험한 곳에 절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 싶다. 관악산 정상과 연주대 관악산 정상과 표지석. 무르익는 가을빛 속에 등반객들의 옷색깔이..
씨엠립-앙코르와트 5월 13일 오후 6시 40분경 씨엠립 공항엔 폭우가 내렸다. 폭우 속에 베트남 에어라인 항공기에서 트랩을 내려 버스에 탔는데, 빗방울이 세차게 몰아쳤다.  비 때문에 여행이 힘들어지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트랩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청사로 이동했다.  앞서 내린 승객들이 공항 청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난장판이었다.  이유를 몰라 바깥 상황이 궁금해졌다.   문제는 신종 플루 때문, 청사 밖에서 자기 건강진단서를 작성해서 내라는 것인데, 사람들이 대비하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용지를 얻어 들고, 볼펜을 꺼내 들었지만 짧은 영어 실력 때문에 역시 허둥대지 않을 수 없었다. 어깨너머로 간신히 적어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캄보디아 사람이 여행사 표지를 들고 있어서 그리로 갔더니 비자 발급비 25불과 여권을..
마니산 9월 26일, 민족의 성산이라는 마니산! 그동안 벼르기만 하다가 드디어 날을 잡아 산행에 옮겼다. 함허동천 쪽에서 올라가는 길과 화도면 상방리 코스가 있는데, 화도 쪽 등반이 무난하다는 말을 듣고, 화도면 상방리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서 만난 강화 안내도. 마니산이 있는 이곳은 본디 강화도 남서쪽의 고가도라는 섬이었는데, 조선조 1600년대에 강화유수유수가 강화도의 가릉포와 고가도의 선두포에 둑을 쌓아 강화도와 고가도를 연결한 것으로 전해진다. 등산로 입구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받았다. 국립공원 입장료도 없어졌는데, 왜 받냐고 물었더니 그냥 씨익 웃었다. 하기사 특별하다 싶은 동네 들어가는데도 차단기를 설치해 놓고, 입장료를 강요하는데, 여기선 아름다운 산 관리를 위해 좀 받겠다는데, 뭘. 주차장에서..
서장대, 장안공원, 화홍문, 연무대, 창룡문, 봉돈대 등 화성의 지휘소인 화성장대. 화성의 서쪽 팔달산정에 있어서 일명 서장대라고도 한다. 몇 년 전 방화로 소실된 것을 다시 복원했다. 2층 누각의 웅장하고 호탕한 기운이 장대의 지붕을 타고 사방에 넘치는 화성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장대의 남쪽 방면. 서쪽에서 본 장대의 뒷면. 화성장대에서 성곽을 따라 북쪽으로 내려가 화서문 쪽에서 성벽 밖 풍경. 화서문 밖 장안공원. 성벽의 왼쪽에 지붕만 보이는 것은 화성의 서문인 화서문. 성안의 수원천을 가로막은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성밖 풍경. 동일포루 군인들의 훈련장인 연무대. 창룡문 남쪽에서 창룡문 방향. 창룡문 밖, 성문을 보호하는 옹벽. 창룡문 남쪽 방향에 있는 봉돈대 북쪽에서 바라본 남쪽의 봉돈대. 화성을 순회하는 화성열차 연무대와 화성열차, 연무대에 화성 안내소..
남산골 한옥마을 09년 7월 30일 남산골 한옥마을. 뜨거운 날씨였지만 방문객들이 많았다. 동아시아인들은 외양으론 구별이 안되어 말소리로 알 수 있겠는데, 중국사람들이 많아, 한옥마을이 우리나라를 소개하는 중요한 곳으로 생각되었다. 한옥마을 입구 안내문에는 이곳은 원래 맑은 계곡물이 흘러 푸른 학이 살고 있어 청학동이라 불리던 곳이린다. 이곳에 옛 정취를 살리고자 정자를 짓고 사대부 집과 평민의 집, 모두 다섯 채를 옮겨 한옥마을을 조성했노라고 적혀 있었다. 한국역사의 특수성 때문에 우리에겐 보존된 옛것들이 너무 적다. 이 한옥마을의 첫인상도 박제된 마을 같다.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한국의 전통미를 찾아보려면 서울은 불가능할 것 같고, 안동이나 가야 살아 숨 쉬는 전통가옥들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민속촌이나 박물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