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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씁쓸한 추억에 대한 연민 에버랜드, 아니 자연농원도 없었던 1960년대 중반, 어린 시절엔 창경원 나들이가 꿈같은 소원이었다. 전기도 없었던 시절, 보고 싶던 사자나 호랑이는 그림에서만 봐왔기에 창경원 구경 한 번 하고 온 애는 또래의 우상이었다. 그래서인지 국민학교 6학년 때 수학 여행지는 창경원과 남산 팔각정, 거기에 조금 보태서 배 타고 건너가던 강화도였다. 그것도 돈이 없어서 나는 가지 못했지만... 수학여행 갔던 애들이 어찌나 부러웠던지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도시락 싸가지고 한 나절 창경원을 나들이한 적이 있었다. 그때 회전 비행기와 목마도 타보았는데, 회전 비행기는 밖에서 볼 때만 화려했지 비행기 안은 드럼통에 널빤지 의자여서 어린 마음에 너무 실망하기도 했었다. 나이 들어 느낀 것이기도 ..
종묘(2) 토요일은 종묘 자유 관람하는 날, 자유롭게 종묘 구석구석을 돌아보기 위해 다시 방문했다. 내외국인이 한데 섞여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관람하고 있었다. 날은 흐리고 쌀쌀했으나 그리 춥지는 않았다. 음기가 잔뜩 서려있다는 종묘엔 밝은 햇살 대신 서늘한 냉풍이 흐르고 있었다. 산책하듯 지난번에 보지 못했던 곳을 돌아다니며 두루 살펴보았다. 지난 방문에 대한 미련감 때문에 찾았지만, 감동은 첫 대면만큼 크지 않았다. 무엇이든 첫인상이 제일 중요한가 싶다. 종묘 정전, 17mm로 한 컷에 담을 수 없어 3 장을 이어 붙였다. 우리나라 최장 건축물로 폭이 101m이다.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神道 - 제사를 받는 혼백들이 다니는 길이므로 신성한 지역이다. 관람객들이 신도 위로 걸어 다니지 말라는 안내문이 곳곳에 ..
수원 칠보산 1월 1일, 정월 초하루. 날씨가 흐려 거실에서 뒹굴고 있던차에 반가운 전화를 받고 산행에 나섰다. 가는 도중 눈발이 휘날려 걱정했으나, 큰 눈 예보는 듣지 못했기에 함박눈을 맞으며 산에 올랐다. 정상이 236m라 동네 뒷산이라 생각하면 꼭 맞겠다. 바위가 없고, 완만한 능선 산행이라 많은 사람들이 산책코스로 안성마춤인 곳이다. 3-40년 정도 되는 나무들이 무성해 여름철에도 햇볕에 노출되지 않고 그늘 속에 산행하며 상쾌한 공기를 호흡할 수 있는 산이다. 화성시와 수원시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주변이 논과 밭이었는데, 개발 붐을 타고 산의 동쪽인 수원에 아파트들이 하나 둘 무리지어 들어서고 있다. 눈발 속에 호매실 LG빌리지 뒤에 차를 두고, 개심사란 작은 절이 있는 골짜기에서 등산을 시작했다. 새해 첫날..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2011.12.31. 명동성당...
치악산 상원사 눈내리던 치악산 상원사
White christmas 송년회를 마치고 밖에 나오니 어둠 속 가로등 불빛 사이로 함박눈이 봄나비 떼처럼 바람에 날렸다. 순간 눈길 운전을 해야 할 두려움도 잠시 잊고 동심으로 돌아갔다. 모였던 동료들도 모두 어린아이들처럼 순진무구하게 활짝 웃었다. 모처럼 바쁘고 지친 일상에서 벗어난 표정으로 행복한 모습을 지었다. 3차로 들린 생맥주집엔 선점하고 있던 중년의 손님들이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십년지기라도 대하듯 친절하게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여전히 눈은 창밖에 바람을 타고 내려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속이 좋지 않아 금주하는 중이라 병아리 물먹듯 조금씩 술잔을 빨고 있던 나는 맨 정신으로 눈과 술에 취해 행복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웃사이더로, 늘 중심에서 한 발짝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곤 했던 나는 술자리..
종묘(1) 많이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쉽게 찾지 않는 곳이 종묘라, 모처럼 작심하고 방문했다. 종묘는 조선시대 역대왕과 왕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이다. 조선 개국 후 한양으로 천도했던, 태조 3년부터 조성을 시작하여 그 이듬해, 정전, 신실 7칸 좌우 익실 2칸 규모로 완공하여 정전에 추존 4대(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신주를 봉안하였다. 그 후 세종 3년 별묘인 영녕전을 신실 6칸 규모로 건립하였고, 역대 왕들이 증축해 나갔는데, 임진란 때 소실된 것을 광해군 때 중건하였고 1863년 현종 2년에 정전 19칸, 영녕전 16칸으로 증축하여 오늘의 모습을 이루었다. 1995년에 종묘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고, 2001년에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북한산 파노라마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은 특이하게도 바위산이다. 커다란 바위 봉우리들이 희끗희끗 솟아올라 서울을 울타리처럼 감싸고 있다. 그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강이 흘러, 산과 물, 그리고 사람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도시를 이루었다. 북으로는 우람한 삼각산 흰 암봉들과 남으로 관악산의 거대한 바위들이 복작거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굽어보고 있다. 높은 빌딩 없이 한옥들만 있었던 조선의 한양을 상상해 보면 그 정경이 너무 아름다울 것 같다. 북한산 자락 아래 성을 쌓고 도읍을 만들어, 한강을 앞에 두고 자연과 더불어 살았을 모습은 한 폭의 풍경화처럼 아름답게 그려진다. 모처럼 북한산 최고봉인 백운대에 올라 동서남북 사방을 조망하며 아름다운 풍광을 맛보았다. 도시의 거대한 빌딩들의 높이도 한 점,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북한산 모처럼 날씨가 너무 좋아 산행길에 올랐다. 늘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뿐이어서 낙엽진 북한산의 속살을느껴보고 싶기도 했다. 송추행 704번 시내버스를 타고 은평뉴타운을 지나 북한산성 입구에 내렸다. 일찍 출발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첫이정표 앞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30분이었다. 정상인 백운대 까지는 3.4KM...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나홀로 산행에다 추운 겨울 산행이므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수년전 이곳을 등반할 때는 포장도로를 이용했기 때문에 요번엔 계곡을 따라 올라가기로 했다. 북한산성입구 들머리 첫 이정표, 등산 출발시간 12시 30분. 계곡은 깨끗이 정돈되어 자연으로 되돌아 왔다. 계곡사이로 무수한 가게들이 행락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는데... 다리를 건너지 않고 오른쪽으로 올라갔다..
삼각산 길상사 시궁창에서 연꽃이 피는 것처럼, 독재정치의 어둠 속에서 독버섯처럼 피었던 고급요정이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간직한 채, 이제는 도심 속에서 중생들의 離苦得樂을 위해 맑고 향기로운 부처님의 사랑을 펼치고 있다. 김영한은 1916년 서울 관철동에서 태어나, 일찍 부친을 여의고 할머니와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금광을 한다는 친척에게 속아 가정이 파산하게 되자, 1932년 조선 권번에 들어가 한성 기생 '眞香'이 되었다. 한국 정악계의 대부였던 금하 하규일 선생의 지도를 받아 여창 가곡, 궁중무 등 가무의 명인으로 성장했다. 1935년 조선어학회 회원이던 해관 신윤국 선생의 후원으로 일본에 가서 공부하던 중, 해관 선생이 투옥되자 면회차 귀국하여 함흥에 일시 머물렀다. 그 때,1936년 함흥에서 영생고보 영..
뿌리 깊은 나무 - 드라마와 소설의 차이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라 중간부터 관심 있게 보았다. 제법 구성도 탄탄하다 싶어 즐겼었는데, 역시나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시청률은 최고라는데, 이야기의 전개가 중반이 넘어가면서부터 너무나 허술하다. 줄거리가 너무 궁금해서 원작은 어떨까. 하루 만에 두 권을 독파해 버렸다. sbs 홈페이지에 있는 드라마 메인 포스터 소설 "뿌리 깊은 나무"는 극중 전개가 치밀하다. 겸사복이라는 말단 근위병이 궁중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사건들을 추적하며, 죽은 자들이 남긴 흔적으로 범인들을 찾아 나선다. 죽어가는 집현전 학사들... 첫 번째 희생자는 분서관(책을 태우는 사람) 장성수로 우물에서 시신이 발견되는데, 그를 조사하던 강채윤은 마방진을 발견하고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두 번째 희생..
만추 잔뜩 흐린 날씨에 뒷산에 올랐다가 주택가에서 오르는 연기를 보고 향수를 느꼈다. 어린 시절, 들판에서 뛰놀다가 허기가 지면,자꾸만 동네를 뒤돌아 보았다. 땅거미 지기 전, 동네에선 집집마다 밥짓는 연기가 피어올라 야트막한 산자락 위에 구름처럼 걸리곤 했다. 연기 구름 걸린 마을을 돌아보면배고픈 또래 동무들도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놀이의 마무리를 지었다. 까스로 취사하는 오늘날엔 멀리서 낙엽 태우는 연기만 봐도 옛시절이 떠올라 왈칵 그리움이 솟구친다. 풍요롭지 못해서 항상 배고프고,전기도 없어서 등잔불에 심지를 돋구고 엎드려서 책을 읽던 시절이었고, 겨울이면 질퍽한 흙 속에서 뒹굴며 놀았기에 손등이 두꺼비 등짝처럼 거칠게 터서 안티푸라민이최고의 명약으로 꼽히던 시절이었었다. 겨울로 들어서는 길목, 도시의..
장욱진 古宅 가을의 마지막 날,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인가 싶다. 갈피 잡을 수 없는 날씨의 변덕은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처럼 종잡을 수 없다. 갑자기 추워져 살을 에는 듯하다가도 땀이 흐를 정도로 더운 훈풍이 거침없이 불어온다. 한동안 추웠으니, 12월 겨울을 맞아 강추위도 다가서리라 싶기도 하다. 한동안 카메라를 쥐지 못했다가 비 오는 날, 그것도 빗속에 장욱진 고택을 찾았다. 두 번째 방문인데도, 난개발 지역인 용인시 구성 마북동에 있는 장욱진 고택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작가의 연보에 따르면 장화백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건 1986년으로, 옛 가옥을 사들여 그 옆에 1989년 양옥을 완성하여 살았단다. 그리고 1990년 12월 27일 타계했으니, 실제 거주기간은 그리 길지 않은 셈이다...
수원화성 볼일이 있어서 수원 팔달문 근처 지동에 나갔다가, 화성의 갈대꽃이 보고 싶어 화서문에 들렸다. 성 아래 갈대 군락지에 갈대들이 역광에 흰머리를 날리며 출렁이고 있었다. 갈대꽃은 순광보다 역광이 아름다운데, 태양을 마주 보자니 자신이 서질 않는다. 태양을 숨겨가며 역광과 순광으로 섞어서 몇 컷을 촬영했는데, 역시나 하늘빛과 갈꽃의 흰색이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하늘빛을 살리면 갈꽃의 색깔이 죽고, 갈꽃의 흰색을 강조하자니 하늘빛이 사라지곤 했다. 찍으면 찍을수록 사진이 어려우니 내가 생각해도 안타깝고 어려운 일이다. 화서문에서 산책로를 따라 올려다 본 서북각루 서일치 앞머리에서 화서문 방향으로 바라본 서일치와 서북각루 서북각루 앞에서 내려다 본 화서문과 서북 공심돈 화서문 앞머리에서 - 서북공심돈과 북포루..
내장산 단풍은 이미 떨어져 땅바닥에 칙칙한 잔해를 남기며 부서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파는 내장사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있어서 종종 걸음으로는 앞으로 나갈 수조차 없었다. 전날 비가 내린 까닭으로 웅덩이엔 빗물과 단풍잎들이 엉켜 있었다. 인파를 헤치고 내장사 입구직전까지 걸은 후, 우회전하여 서래봉 가는 비탈길을 올랐다. 내장사 가는 길 가파른 비탈길을 조금 오르니 벽련암(碧蓮庵)이 나타났다. 울창한 숲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서래봉 암벽능선을 보기 위해서라도 암자에 들려야 했다. 본디 백련암이었다는데, 추사 김정희 선생이 벽련암이라 이름하였다고 전한다. 계단을 올라 암자 안으로 들어서자 서래봉 암벽 능선이 병풍처럼 내장산 골짜기를 감싸고 있었다. 암자 앞 다락 위에 올라서서, 벽련암 전경을 조망했다. ..
고궁의 가을 구름이 많은 날이라 햇볕이 오락가락했다. 바람은 스산하여 쓸쓸한 심회를 돋구었고, 가로수들도 잎사귀를 떨구어 나목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스산한 가을 날씨 때문인지 행인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어찌보면 사진 찍기엔 안성마춤인 그런 날이었는데,자주 접하는 대상이라 큰 감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광화문 광장을 가로질러 가을 바람을 쐬다가, 결국 경복궁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내국인보다 일본사람, 중국사람들이 더 많아 보였다. 수학여행 온 일본 학생들을 바라보며, 일제총독부 건물을 들어내기를 썩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훼손된 경복궁을 바라보는 마음이 좋지 않은데, 아직도 총독부 육중한 건물이 서 있다면 민족적 자존심이 아직까지도 비참함 속에 빠져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바라보며 자랑스러워..
청계천 동화 청계천 유등축제가 한창이다. 밤에 봐야 제 맛일 테지만, 낮에 보는 풍경도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다. 비록 물 위에 고정되어 흐르진 않지만 어린 시절,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다. 섬세하게 빚어낸 조형미도 아름답고, 해학적인 모습에 절로 미소를 머금게 했다. 여기가 한양! 도사님과 12지신상 '시집가는 날' 일부 효녀 심청 백조 일본 아오모리 현 협찬 백마 탄 단종 임금-영월 단종릉 사당에 있는 그림으로 영월군 출품 날아라 슈퍼 보드의 손오공과 삼장법사 저팔계
가을비 비 한 번 내릴 때마다 겨울은 한 걸음 더 다가선다. 스산한 바람 속에 날리던 낙엽들이 물기를 흠뻑 머금은 채로 엉켜있다. 제 떨어질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자동차 위에 소복이 쌓이고 말았다. 점점 짧아지는 낮 길이 때문에 하루가 빨리 저문다. 그렇지 않아도 빠르게 지나는 세월인데, 눈 꿈뻑일 때마다 세상이 달라 보이는 것 같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지난 시절, 바쁘게 사느라고 소식 한 번 제대로 나누지 못했던 사람들의 얼굴들이 떠오른다. 흐르는 빗물처럼,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시월의 마지막 날 시월이 간다. 가슴 한 구석이 휑하니 구멍이라도 뚫린 듯 몹시 시리다. 예년에 느끼지 못했던 상념들이 쓸쓸하게 다가온다. 밤늦게 지인들의 부름을 받고 대폿집에서 막걸리를 받아 마시며 지나는 세월을 달래었다. 무성했던 머리칼이 세월 따라 성글어져, 한 올 두 올 셀 수도 있을 것 같다. 서로 마주 보며 한참을 실없이 웃었다. 늘어가는 얼굴의 잔주름과 머리칼은 반비례해서 머리를 살짝 털기만 해도 낙엽처럼 떨어진다, 아까운 청춘들이 마구마구 떨어져 간다..... 아아! 시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잊혀진 계절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를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 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 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
가을 서정 길가의 은행나무에서 노란 잎들이 제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바람에 날린다.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들을 드러내 보이며, 또 한 해를 떠나보낸다. 하루가 다르게 짧아지는 한낮의 길이만큼이나 세월의 걸음이 성큼성큼 지나간다. 배고픈 어린 시절에는 배불릴 수 있는 가을을 손꼽아 기다렸었는데, 반세기 넘은 삶을 떠나보낸 지금에는 계절의 쓸쓸함이 가슴에 저며 온다. 연록의 새순으로 세상에 머리를 내밀어 이파리 큰 녹엽이 되었다가 새빨간 단풍으로 불태우곤 바람에 팔랑팔랑 떨어지며, 우리네 인생을 반추시키는 시월의 마지막 날이 지나고 있었다.
한국인의 초상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열리는 초상화 전시회에 갔었다. 실물은 아니지만 우리 한국인의 얼굴들을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으로 관람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좋았다. 비록 초상화들의 보존상태가 썩 좋지 않았고, 서양화처럼 입체감이 없어 사실성이 부족한 듯싶었지만, 초상화를 그리는 정성과 정밀함이 뛰어났고, 관심 있는 인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준비성이 부족하여 단렌즈가 아닌 광각렌즈를 사용한 탓에 왜곡이 많았다. 전시장 입구의 타이틀 영조의 즉위 전 초상, 연잉군 시절 강화도에서 나무하고 물고기 잡으며 살다가 세도정치 덕에 제왕으로 즉위했던 강화 도령 이원범, 철종의 초상 비운의 황제 고종 조선을 개국했으나, 자식의 권력투쟁으로 피눈물 나는 아픔으로 불행하게 살았던 태조 이성계, 부분 서산대사..
사유하며 미소짓는 부처님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정신줄을 놓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반가사유상 전시실이다. 어두운 방 안에 홀로 모셔진 미륵반가사유상은 너무나 신비해서 한참을 들여다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침묵 속에 잔잔한 미소로 세속의 때를 씻어낸 듯 고요한 표정은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마치 염화시중의 미소처럼 부처님의 깨우침이 마음속으로 잔잔하게 전해지는 듯하다. 일요일 오후 초상화 전시회에 갔다가 3층으로 달려가 사유상을 찾았다. 본디 연꽃 화관을 머리에 얹고 상체를 탈의한 채, 한 다리를 꼬고 앉은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을 생각하며 달려갔으나, 그 자리엔 아름다운 관을 쓰고 단정하게 의상을 갖춘 78호 반가사유상이 앉아 계셨다. 반가사유상은 우아하고 부드러운 곡선의 흐름이 일품이다. 보일 듯 말듯한 미소와 깨달음의..
홍유릉 조선왕릉을 찾아다니다 보니, 마지막 왕인 고종과 순종의 능에도 관심이 생겼다. 고종과 순종의 능은 그리 멀지 않은 남양주 금곡에 있다. 고종은 몰락해 가는 조선 왕조를 부여 안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이미 썩을 대로 썩은 정부 관리들과, 호시탐탐 조선을 노리는 열강들의 견제와 간섭에 결국 국권을 잃고 말았다. 조선을 두고 러시아와 청나라를 상대로 싸워 이긴 일제는 강제병합으로 500년 조선왕조에 굴욕적 최후를 안겨 주고 말았다. 하루아침에 나라 잃고 망국민이 돼버린 조선의 백성들은 무슨 죄가 있었을까. 나라 잃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과는 달리 일제와 야합한 매국노 친일파들이 부귀호사를 누리며, 활개 치는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참으로 개탄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홍유릉은 조선조 마지막 왕인 고종과 비운의 명..
동구릉(2) 지난 번 갔었던 동구릉을 다시 찾았다. 오후 네시 무렵이라 햇살도 이미 기울기 시작했고, 바람이 쌀쌀해져서 스산한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겨왔다. 때마침 문화해설사를 만나 태조의 건원릉과 선조대왕의 목릉까지 설명을 들었는데 매우 흥미로웠다. 왕릉에 대한 예절이며, 제사상 음식의 의미들을 재미있게 설명해 주셨다. 이를테면, 정자각 계단에 오를 때면 오른발이 먼저 올라가고, 왼발이 그 뒤를 따르며, 내려올 때는 반대로 왼발의 뒤를 오른발이 따른다는 것과 제사상에 올리는 대추의 의미는 씨가 하나라 제왕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밤은 그 밤톨이 뿌리 끝에 매달려 있어서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뜻이며, 밤송이 안의 밤톨이 보통 세 알이라 삼정승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곶감을 놓는 것은 감씨가 육쪽이라 육판서를 상징하여 후..
서오릉(2) 매표소에서 바로 입장하면, 작은 광장과 쉼터가 있고, 작은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수경원 이정표를 보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 순행코스이다. 입구에서 얻은 안내서를 보며, 수경원-익릉-순창원-경릉-대빈묘-홍릉-창릉을 차례로 찾았다. 관람객들도 그다지 많지 않아서 한적한 오솔길을 걸었다. 맑은 하늘, 상쾌한 바람, 선선한 날씨 산책도, 명상도, 상상하기도 좋은 청명한 숲길을 내내 그렇게 걸었다. 1. 수경원 - 사도세자의 친모 영빈 이씨의 묘 서오릉에서 처음 만나는 능원이 수경원인데, 영조의 후궁이자 비운의 세자인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의 묘이다. 영빈 이씨는 어려서 궁중에 들어가 귀인(貴人)이 되었으며, 1730년(영조 6) 영빈으로 봉해졌다. 영조의 깊은 총애를 받았으며, 4명의 옹주를 낳은 ..
서오릉(1) 서오릉은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龍頭洞)에 있는 조선 왕조의 다섯 능으로, 경릉(敬陵)·창릉(昌陵)·익릉(翼陵)·명릉(明陵)·홍릉(弘陵)의 5능을 말한다. 이외에도 명종(明宗)의 첫째 아들 순회세자(順懷世子)의 순창원(順昌園)과 영조의 후궁으로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이씨의 수경원, 숙종(肅宗)의 후궁 장희빈(張禧嬪)의 대빈묘(大嬪墓)가 있다. 묘역이 크게 둘로 나뉘어 숙종대왕의 명릉은 매표소 맞은 편에 뚝 떨어져 있고, 명릉을 돌아 나와서 다시 입장하는 불편이 있었다. 주차장이 비좁아 휴일이나, 공휴일에는 차량주차가 어려울 것 같다. 주변에 주차장을 갖춘 식당들이 많아, 식당주차장을 이용할 수도 있겠다. 명릉은 서오릉을 대표할 수 있는 숙종대왕의 능인데, 서오릉은 숙종과 관련된 여인들이 숙빈 최씨를 빼고..
동구릉 조선의 역사를 실감할 수 있는 곳, 동구릉을 찾았다. 동구릉은 한양의 동쪽, 즉, 구리시에 조선왕조의 아홉 릉이 있는 그야말로 거대한 왕릉군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조선 중기 임진왜란을 맞아 국가의 위기를 맞았던 제14대 선조의 목릉, 당쟁의 어려움 속에서도 근대화의 불씨를 지폈던 제21대 영조대왕의 원릉과 비운의 왕이었던 단종의 아버지 문종의 현릉들이 있는 곳으로 조선왕조의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곳이었다. 가는 길을 검색하니 잠실역 6번 출구에서 1115-6버스를 타면 입구까지 갈 수 있단다. 잠실역 6번 출구 앞에서 막상 버스를 타려고 하니까, 기사님이 승차장소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초행길이라 태워준다며 친절을 베풀었다. 승차장소는 잠실역 9번 출구 앞이란다. 환승지에서 버..
창덕궁 후원 무성한 녹음 속에 가을이 지나는데, 연못 물빛이 제 색깔을 잃은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고여 있는 물이라 항상 깨끗할 수는 없겠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관람객들을 위한 당국의 노력이 부족한 듯 싶었다. 창덕궁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과 내국인들에게 자랑스러운 궁궐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 주어야 할 터인데, 녹조 낀 연못은 그만 두고라도, 궁궐 방문에 구멍 뚫린 문창호지와, 아무렇게나 벗겨 띁져 나간 벽지와 장판지들의 모습에서 조금은 쓸쓸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1. 부용정 주변 과거 시험을 치뤘다는 영화당 앞마당 2.연경당 주변 3. 존덕정 주변 왕자들의 걸음걸이를 가르쳤다는 팔자 걸음 돌판 존덕정 천정의 황룡과 청룡 그림 4. 옥류천 주변 소요정 옆에는 유상곡수(流觴曲水)를 하는 소요암의 곡수구(曲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