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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회동, 벽파진 팽목항에서 진도 동남쪽의 회동 '신비의 바닷길'로 향하는 도중, 내비게이션 오류로 잠깐의 혼란이 있었다. 마을 주민들에게 직접 길을 물어, 목적지를 수정할 수 있었다. 바닷길이 열린다는 회동, 뽕 할머니상 앞에서 하차하여,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이미 수년 전 방문했던 곳이라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할머니 상 앞으로 보이는 섬까지 바닷물이 열린다. 그래서 이곳을 현대판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라고도 한단다. 1. 신비의 바닷길 누군가가 뽕할머니를 위해 음료수와 사탕을 올려놓았다. 호랑이 석상 뒤로 보이는 곳은 진도 학생 수련원이 있는 해수욕장으로 야영하기에 매우 편리한 시설을 갖추었다. 2. 벽파진 기념비 회동에서 진도를 나가는 길목에서 벽파진에 들러, 충무공의 명량대첩을 이루신 벽파진기념비를..
진도 대몽항전 유적지 팽목항을 가던 도중 이정표를 보고 따라간 곳은 굴포의 배중손 장군의 사당이었다. 배중손 장군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고려 무인 정권 말기의 장수로 몽고 침략 시 삼별초로 반몽세력을 규합하여 이곳 진도에서 대몽항전을 벌였다. 제주도를 배후 기지로 확보하여 왜와 연합하여 항전하였으나, 끝내 몽고 진압군에게 진도가 함락되어 삼별초, 배중손 정권은 몰락하고 말았다. 1. 배중손 사당 2. 남도석성 고려 원종(元宗) 때 배중손(裵仲孫)이 진도에 와서 1270∼1273년에 걸쳐 몽골에 항쟁할 때 근거지로 삼았다. 그러나 성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성은 남도포(南桃浦)에 만호부(萬戶府)가 처음 생긴 것이 조선 세종 20년 정월이므로, 1438년 이후에 축성하였다고 추정된다. 기록에 따르면, 121..
진도 세방 낙조 전망대 진도읍에서 하룻밤 숙박을 했다. 피서철이라 그런지, 숙박지마다 사람들로 붐볐다. 사람 많은 곳이면 따르는 불친절함에 운림산방에서의 아름다웠던 감흥이 사라져 갔다. 퉁명스런 표정과 쇳소리 섞인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방값을 흥정하던 진도 교육청 부근의 모텔 여주인의 냉랭함이 가슴을 쳤다. 결코 편안하지 않을 숙박지 같아서 방을 나와 몇 군데를 찾아다녔으나 업소주인들의 불친절은 대동소이했다. 겨우 찾아든 모텔 방안엔 선풍기가 고장 나 있었다. 선풍기 날개가 보호망을 스치며 뼈를 가는 소리를 내는 바람에 깜짝 놀라기도 했었다. 다시 보지 않을 사람들이긴 하지만, 그들의 무성의가 어찌 보면 우리의 현실인 것 같아 서럽기까지 했다. 덕분에 집에서는 전기세 아까워 잘 켜지 않던 에어컨을 밤새 틀어놓고 잤다. 한밤 중에..
진도 첨찰산 쌍계사 운림산방 바로 뒤에 있는 사찰로 신라 문성왕 때 도선이 창건했다는 대한 불교 조계종 대흥사의 말사이다. 가람의 배치가 결코 예사롭지 않았다. 늦은 시각이라 사방에 땅거미가 저물어 아쉬움이 컸다. 운림산방과 이웃하고 있어서 산방에 들렸던 손님들의 방문으로 인적이 끊이지 않았다. 해탈문, 사천왕을 모셔, 천왕문과 함께 쓰고 있었다. 때마침 저녁 예불에 맞추어 범종이 울렸다. 대웅전에서 외는 스님의 독경소리와 어울려 그윽함 종소리가 온몸 안으로 밀려드는듯했다. 저녁하늘에 은은히 번지는 범종 소리를 들으며, 절문을 나섰다. 생각지도 못했던 낯선 여행지에서 자연과 조화로운 아름다운 삶의 공간을 보았다. 비록 세속의 생활현장은 무질서하고 투박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산수의 아름다움을 예술로 승화하고, 자비로움을 구하..
운림산방(雲林山房) 먹구름 속에 오락가락하는 비를 맞으며, 남도의 끝자락 진도 속의 운림산방에 섰다. 짙은 구름 탓으로 6시 조금 지난 저녁 무렵 산방은 벌써부터 어두워지고 있었다. 남도로 내려오는 찻속에서 우연히 생각해 낸 운림산방이었었다. 조선의 산수화에 대하여 아는 것은 없지만 조선말 남도화의 대가 소치 허련 선생이 기거하던 곳으로 알려진 곳이라 진도의 첫 번째, 방문지로 주저하지 않았다. 이미 산방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퇴근 후라서, 산방 아래 남도전통미술관도 문을 닫았다. 미술관 옆 계단을 따라 주인 없는 산방을 때늦은 나그네들과 함께 찾아들었다. 산방은 잘 정비된 공원처럼 뒷산을 안산으로 하고, 단아한 연옆들이 뿌리를 내려 연꽃과 열매를 맺는 연못을 앞에 두고, 선생의 작업실과 집이 그림처럼 들어앉았다. 선생을 추..
운젠 료칸 운젠은 나가사키에서 동쪽으로 2시간 30분 정도 거리이다. 나가사키에서 셔틀버스로 해안을 끼고 달리다 보면 빽빽한 산림지대로 오르는데, 운젠(雲仙)은 유황 냄새가 진동하는 국립공원온천지대였다. 운젠지구 유메이(有明) 호텔에서 내렸다. 2층 숙소는 온천의 전형적인 료칸 다다미방이었다. 실내구조는 몇 년 전에 방문했던 후쿠시마현 아이즈와카마츠시의 아시노마키 온천 료칸과 유사했다. 금년 봄의 지진과 쓰나미로 엉망진창이 되었을 후쿠시마의 그 료칸은 지금쯤 어찌 되었을지... 침실 앞 발코니 세면대 욕실인데, 욕조가 특이했다. 누을 수 있는 공간은 없었고, 대신 앉으면 전신을 담글 수 있을 만큼 수조가 좁고 깊었다. 숙소에 짐을 놓고 지역 관광에 나섰는데, 이름 모를 새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우리나라에서 들어본..
나가사키 공항에 나가면 언제나 마음이 설렌다. 미지의 세상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저마다의 가방을 메고, 또는 끌고, 세상의 각지로 떠나는 사람들의 앞길은 생각만 해도 흥미롭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일본어도 전혀 못하면서 가이드 없이 내 스스로 지도를 보며 돌아다니는 자유여행이다. 제대로 찾아다닐 수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비행기는 대지를 박차고 인천대교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불과 한 시간여 만에 나가사키 상공에 도착했다. 섬이 많은 우리 남해안처럼 복잡한 해안선이 시야에 들어왔다. 제주보다 10여분 더 비행하는가 싶다. 바닷가에 조성된 나가사키 공항, 야트막한 산 위에 조경수로 '나가사키'를 새겼다. 작고 깔끔한 공항청사였다. 300여 명의 한국인들이 입국하는데, 한 시간은 족히 걸렸..
서울 오토 살롱 2011 지루한 장마 탓인지, 기분이 내키지 않아 카메라를 들지도 않았다가, 먹구름으로 덮여있던 상공은 파란 제 빛을 조금씩 드러내 보이던 7월 9일 토요일, 모처럼 카메라를 메고 외출을 했다. 일산 킨텍스 모터쇼에서의 볼거리가 생각나 코엑스 3층 서울오토살롱 전시장에 입장했다. 튜닝 관련 전시회여서인지 전시장은 매우 어수선했다. 고가의 비싼 차량들이 번쩍거리는 휠을 달고 앉았거나 수 개의 모니터를 곳곳에 달고 엄청난 스피커로 무장하고 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튜닝에 관해선 문외한이라 헛걸음했나 싶었지만, 입장료 일만 원이 아까워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휠, 비디오와 오디오, 블랙박스, 열차단 필름류, 자동차 관련 잡지 등이 대부분이었기에 대충 돌아보고 나와 버렸다. 출구 쪽은 주로 자동차 정비와 관련된 기계류 전..
인천대교 월미도에서 유람선 관광 중에... 월미도 관광 정보 주차료 - 대부분의 주차장이 종일주차 3000원, 식당 딸린 주차장은 밥 먹으면 주차료 공짜. 유람선 승선료 - 1만 5000원, 유람선 운항시간 1시간 30 분. 인근 자유공원 바로 아래가 차이나 타운이고, 월미도 까지 승용차로 약 5분 정도의 거리.
`상록수`의 모델 `최용신` 기념관 안산시 전철역인 상록수역은 그 유래가 심훈의 상록수의 주인공 채영신의 실제 모델이었던 최용신 선생의 활동지역이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상록수역의 유래를 듣고부터 최용신선생의 묘를 꼭 찾아보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십 년도 훌쩍 지난 후에야, 비로소 찾아보게 되었다. 애석하게 내비게이션에 나오지 않아 상록수 역 부근에서 행인들에게 물어물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의외로 최용신 선생의 묘역엔 묘뿐만이 아니라 기념관까지 있었음을 도착해서야 알 수 있었다. 샘골강습소 부근은 상록수공원으로 지정되어 인근의 아파트와 상가 건물 한가운데서, 겨레의 정신을 일깨우는 배움의 터로 새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문맹률 75%였던 시절(여자는 20명 중에 1명이 글을 아는 정도), 1930년 10월에 신교육을 받은 '모던..
아산 현충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기념관을 4월에 준공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모습을 보기 위해 현충사를 찾았다. 현충사 경내에 흙을 올려 봉분 모양의 기념관을 지었다. 기념관 안에는 예전에 현충사 사당 바로 아래 있던 유품들을 옮겨 전시하고 있었고, 각종 자료들을 영상물로 전시하여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었다. 지하 2층에서는 충무공 영화를 4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여 무료로 보여 주었다. 4D 애니메이션이란 호기심 때문에 들어가서 구경했는데, 놀이동산 입체 영화관처럼, 3D 입체 영화에 의자가 움직이고, 해전 장면에서 의자 앞 파이프에서 물이 뿜어져 나와 현실감을 더해 주었다. 박대통령 시절에 성역화되었기에 명암이 있는 곳이지만, 충무공을 기리며 하루를 산책하며 보낼 수 있는 겨레의 성지이기에 방문할 때마다 ..
여주 영릉 신륵사에서 아쉬웠던 마음을 온천에서 씻어내고, 세종대왕 영릉에 갔다. 4대 강 공사로 막은 수중보 때문에 세종대왕의 묏자리에 물이 찰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바 있어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었는데, 강에서 제법 떨어져 있어 내 보기에는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그런데, 묘역에 들어서자마자 도로 양쪽에 철판으로 울타리를 둘러놓아 울창한 솔숲들을 볼 수 없었다. 무슨 유물을 발견하기 위한 작업장 울타리라고 하는데, 왜 이리 가는 곳곳마다 공사판인지 모르겠다. 세종대왕의 사당인 정자각, 그리고 능묘인 영릉. 정자각 지붕 영릉 좌측 영릉 앞의 무인석 문인석 영릉 우측에서 정자각 방향 영릉 바로 아래 정자각 뒷면 제사음식을 준비하던 수랏간과 정자각, 그 사이로 영릉. 세종대왕 당시 제작했던 여러가지 관측기구 영릉..
신륵사 명성황후 생가를 지나, 신륵사로 향했다. 신륵사는 여러 번 방문했던 곳이라 정겨운 곳이기도 했는데, 주차장 입구에서부터 예상은 빗나가 버렸다. 신륵사 앞으로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변에는 블도저와 포클레인들이 굉음을 내며 먼지들을 뿜어내고 있었다. 게다가 강변의 수양버들은 꽃가루들을 하루살이 떼처럼 뿌옇게 먼지에 섞어 날려댔다. 일주문으로 통과하려니, 과장 없이 그대로 표현한다 해도, 절로 들어가는 도로 위에 흙먼지가 5cm 이상 쌓여 도저히 걸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흙먼지를 피해 도로 옆 풀밭 뚝으로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청아한 풍광을 보려는데, 흙먼지구덩이 속으로 기어 든 셈이었다. 강둑은 사방으로 어지럽게 파헤쳐져 있었다. 게다가 절안까지도 공사판이었다. 사방에 흙더미와, 출입을 제한하는 비닐끈들..
명성왕후 생가 날 맑은 5월의 마지막 일요일, 여주에 있는 명성왕후 생가를 찾았다. 비운의 왕후, 명성왕후 생가는 여주 나들목 근처에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여주 나들목을 빠져나가자마자 주유소를 끼고 우회전해서 700m 정도 달리면 바로 왕후가 태어난 곳이었다. 생가에 도착하기 전에 커다란 고택을 발견했는데, 그곳이 생가인줄 알고 담벽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들어갔다. 들어가려다 보니 매표소가 있었는데, 생가는 100m 정도 더 가야 한단다. 주차료 1000원, 입장료 1인당 1000원을 지불하고 고택 먼저 들렸다. 처음 보았던 고택은 감고당이란 현판을 대문 위에 걸었다. 고택의 대문 앞에 흙더미가 쌓여 있어 전경사진은 생략했다. 1. 감고당(感古堂 ) 조선시대 제 19대 숙종이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친정을 위하..
수원 화성 날씨가 썩 좋지 않았다. 구름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성 안에는 체험학습 나온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놀토 전날, 금요일이라서인지 유치원 어린이들까지 단체로 나들이 나왔다. 좁은 길에 관광버스들이 차로를 점령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성밖으로 나갔다. 동북공심돈부근 1번 국도는 지하차도 공사로 어수선했고, 화성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방화수류정 앞 용연도 마구 파 헤쳐져 있었다. 아마도 작년태풍 곤파스로 부러져 나간 나무들 때문에 조경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나 보았다. 세계문화유산이라고 해외에서 방문한 관광객도 일을 텐데... 가림막도 없이 비닐 끈으로 울타리를 둘러놓고 공사하는 모양새가 흉물스러웠다. 차를 되돌려 화성의 동북쪽으로 나가 골목길에 주차하고 성 앞으로 걸어갔다. 1. 동북공심돈..
대관령 옛길 대관령 아흔 아홉 구비, 엣 사람들은 이 길을 걸어 넘었다. 현대에 이르러 옛 차도를 넓혔던 영동 고속도로가 개통되더니, 이젠 터널을 뻥뻥 뚫어 평탄한 4차선 고속도로로 많은 차량들이 쌩쌩 달려 나간다. 옛 사람들이 걸었다는 그 길은 이젠 등산로가 되어 향수를 더듬는 등반객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버스로 대관령을 넘은 뒤, 대관령 옛길 시작점에서 대관령 박물관까지 약 5km를 걸어서 내려 갔다. 내리막길이 숲길이었기에 숲만 바라보며, 시종 그늘진 길을 시원하게 걸을 수 있었다. 길도 험하지 않았고 계곡의 물이 맑고 시원하게 흐르고 있어 간단한 도보 산책으로는 안성마춤이었다. 출발 시작점에서 굽어본 강릉시와 동해. 연무 때문에 시계가 좋지 않았다. 맑은 계곡물에 발도 닦으며 걸었다. 옛날 주막이 있었다는 ..
재인폭포 주차장에서 계단으로 협곡 아래로 내려가 바윗길을 조심조심 올라가노라면 폭포가 나타나는데, 물은 맑고 깨끗하지 않았다. 군부대 관리지역이라 관광지답게 관리되고 있지는 않다. 바위틈을 조심해서 걸어 상류 쪽으로 조금 오르니 폭포가 나타났고, 그 아래엔 사람들이 엉성하게 쌓아 놓은, 작은 돌탑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었다. 이런 오지까지 찾아왔다가 그냥 돌아가기 섭섭해서일까? 아마도 저 마다의 소망을 빌며 정성껏 하나둘 쌓았으리라. 동네 입구에도, 산길에도, 강가에도, 폭포 아래에도 이런 돌탑을 쌓기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으로 정성과 소망이 많은 백성들인가 보았다. 폭포 주변의 암벽은 주상절리였다. 절벽 아래 풍화작용으로 뚝뚝 떨어져 내린 절리의 파편들이 어지러이 뒹굴고 있었다. 폭포 가까운 곳에 홍수조절..
유럽식 정원 1. 유럽식 정원 흙덩이를 철사로 얽어 공작새 모양을 내고 그 위에 담쟁이를 심었네요. 산책로에 공작새와 딱다구리,거북이 조형을 예쁘게 만들었더군요. 특이하고 예뻐서 한 컷 담아 보았습니다. 영화 '가위손'이 생각났습니다. 거창한 조형물들을 도처에 세운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유럽식 정원이라니 특이한 맛에 한 컷 올려 봅니다. 2. 말린 꽃과 단풍잎, 풀을 이용한 압착화 산림전시관 2층 숲길 겔러리에 걸린 작품들 중, 둘을 골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자연의 냄새가 절로 우러나는 것 같았습니다. 3. 미리보는 가을, 봄의 적단풍 오산시 북단에 있는 물향기 수목원입니다. 경기도립 수목원이라 입장료가 저렴합니다. 어른 1000원, 주차료 3000원으로 쾌적한 한나절을 자연과 함께 조용히 보내실 수 있습니다.ht..
청량산 문수사 비구름이 내려 앉아 불안한 가운데, 문수사에 올랐다. 고창읍에서 30분 이상 달려 왔다. 이리 먼 길이었다면 고창읍에서 이미 포기했을 것이었다. 우산도 준비하지 않았기에 곧 쏟아질 것 같은 장대비도 겁이 났었다. 옷 젖는 것은 감수한다지만 카메라에 빗물이스며들면 대책이 없겠기에 매우 조심스러웠다. 경북 봉화에만 청량산이 있는 줄 알았더니, 이곳의 산도 청량산이었다. 하기사 맑은 기운에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곳이 우리나라에 한두 곳이겠는가. 상쾌한 숲이 우거지고 서늘한 바람 불어오면 그곳이 바로 청량리 아니겠는가. 이곳엔 단풍나무가 우거져 가을철엔 무척이나 아름답겠다. 단풍숲을 통해불이문 근처에 이르니, 오른편으로 현판이 나타났는데, "청량산 문수사"라 이름하였다. 사찰의 유래를 들어보면 오대산 상원사처럼 ..
풍자와 해학의 대가 - `채만식` 문학관 오락가락하는 빗줄기가 간간이 내리는 가운데, 군산의 금강 하구둑 아래에 있는 채만식 문학관을 찾았다. 선생의 작품 중 '태평천하'를 매우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그의 문학관 방문은 감회가 깊었다. 풍자와 윗트, 판소리 광대처럼 한발짝 떨어져 등장인물들을 조롱하고 비웃으며 집필한 '태평천하'를 읽으면서, 겉으로 웃으면서도, 그풍자 속에 감춰진 일제시대의 사회적 모순과 가진자들의 비도덕 작태에 눈물지었었다. 문학관 입구에 전시된 선생의 연보 첫머리에 쓰인'濁流(탁류)"처럼 금강 하구에는 탁류가 흐르고 있었다. 흐린 오늘의 날씨처럼, 아니 우리의 밝고 희망찰 미래가 안개 속에 감춰진 것처럼 탁한 물이 흐르고 있었다.전시된 선생의 작품들 밀납인형으로 재현된 선생의 생전 집필 모습 선생의 작품들과 동 시대의 문인..
유혹 아름다움으로 치장한 그 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번식을 위한 화려한 유혹 이상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 의미는 쉽게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감추고 있는 의미 중 하나는 생존을 위한 덫이 아닐는지. 나를 위해 아름다움으로 유혹하여 상대를 죽음으로 흡인해 버리는 치명적 덫... 식충식물 - 네펜데스 토바이카 꽃을 위한 서시 김춘수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存在)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追憶)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 얼굴을 가린 나..
법성포 마라난타사 법성포 서쪽 끝 동산은 백제 불교최초 도래지였다. 법성(法聖)이란 마을 이름은 본래 백제에 불교를 전해준 인도의 중 마라난타가 맨 처음 들어왔던 곳이란 데서 유래한다. 동산 높은 곳에는 사면불상이 동서남북을 굽어보고 있었다. 동산 위에 사면불상이 서 있는 곳, 그곳이 백제불교 최초도래지 마라난타사였다. 이곳은 마치 불교 성지처럼 정성스럽게 시설되었다. 정문은 보수 공사중이었고, 산꼭대기 4면 불상의 받침대도 외벽의 돌을 덧대어 쌓는 중이었다.기우는 석양에 부처님의 자비로움이 노을빛을 머금고 사방에서 은은하게 저물어가고 있었다.사면불상 아래 부용루와 존자정이 우리 고유 건축양식이고, 나머진 특이한 모습이었다. 간다라 유물관도 있었으나,이미 문 닫은 후여서 관람할 수는 없었다.건물의 외벽은 작은 돌조각들을 ..
선사 유적지를 찾아서... 1구석기 선사유적지가 있는 연천군 전곡리에서는 구석기 축제가 한창이었다. 축제 때 방문하면 볼거리가 많아야 하는데도, 푸대접 받는 기분은 왜일까? 수많은 차량들이 어지럽게 몰려 들었고, 주차장 주변에는 각설이 품바타령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울긋불긋한 잡상인들의 노점들이 난장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차량을 유도하는 경찰들과 해병전우회원들의 호루루기 소리가 정신을 쏙 빼놓았다.축제라면 모든 사람들이 흥겹고 신나야 할 텐데, 소수의 귀빈들만이 그들의 실적을 빛내고, 일반 서민들은 어수선한 둘러리가 되는 것같은 기분이 들어 마음이 불편했다.중심 행사장인선사유적지를 돌아본 뒤, 금년 4월에 개관했다는 전곡 선사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 건물은 공상영화에 나오는우주선모양으로 금속 건물이었다. 전시물은 대..
고창읍성 강풍과 호우가 예보되는 가운데, 읍성 가까운 곳으로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읍성 앞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읍성의 정문으로 향했다. 입장료는 고창 주민은 무료, 타향인은 1000원이었다.우리는 타향인이니까 당연히 1000원씩을 지불하고 들어갔다. 첫인상은 무척 깔끔하다는 것이었다.성곽도 자연산 돌들로만 쌓아 올렸다. 시멘트가 섞이지 않아 여간 다행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때마침 붉은 철쭉꽃들이 만개하여 읍성을 떠받치고 있어 보기에 좋았다.토속적 내음새가 물씬 피어난다. 읍성의 정문인 공북루, 2층 누각이 하늘을 날아 오르듯 날렵하게 솟았다. 동편으로 오르며 뒤돌아본 북문인 공북루. 성문을 보호하고 감싸는 옹성의 곡선이 예뻐 보였다. 동편의 성안.휘어진 소나무들의 자태가 고왔다. 동북쪽의 하늘엔 구름이 몰려드는..
신탄리역 철원읍에서 도피안사를 지나 북으로 달리면,한국전쟁당시 폭격으로 앙상하게 잔해만 남은 인공시절 북한노동당청사가 도로 우측에 나타나고, 바로 위쪽에 민간인으로 더 이상 갈 수 없는 민통선이 길을 가로 막는다. 민통선에서 좌회전하여 달리다 남녘으로 방향을 돌리면 곧 신탄리에 도착한다. 이 역은 본의 아니게 분단때문에 경원선의 종착역이 되어버린 분단의 아픔이 서린 곳이다. 밤새 내린 비 구름이 아직도 걷히지 않아 신탄리의 아침은 그리상쾌하지 않았다. 작은 역사 앞 공터에 몇 대의 승용차들이 한가롭게 서 있었다. 공터에 차를 대고 역안으로 들어 가, 역무원에게 역안 출입을 허락받았는데, 역무원의 친절함에는시골역의 여유로움이 듬북 묻어 있었다. 역사 안에는 수 많은 솟대가 서있었다. 통일을 향한 염원을 솟대로 표현..
한탄강 1. 순담계곡 밤새 무섭게 비가 내리더니, 아침이 되어서야 비로소 비는 그쳤다.협곡 사이로 흐르는 물이 맑지 않았으나, 기암괴석 사이로 큰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은 마치 장마철을 연상케 했다.레프팅의 명소로 유명한 이 한탄강 계곡은 레프팅 시설 때문에 몸살을 앓는듯 했다. 벼랑위에 세운 건축물과 구조물들이 아름다운 경관들을 헤치고 있어서 안타까웠다. 2. 승일교 한국전쟁 이전에 이 지역은 38이북으로 북한이었다. 북한은 한탄강 협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설하다가 북으로 쫓겨 갔다. 수복후 건설 중단되었던 이 다리를 우리 정부가 완공하여, 그 이름을 승일교라 이름지었다. 이 이름을 당시 지역 주민들은 이승만의 '승'자와 김일성의 '일'자를 따서 승일교라 이름지었다고 믿었다.한탄강 북쪽의 주요한 교통로 역할..
지리산 천왕봉 5월 5일, 어린이날. 하늘은 푸르렀다. 작년 가을엔 구름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해서, 천왕봉 등정길에 다시 올랐다. 겨우내 큰 산행을 미루어 왔기에 다소 부담이 되었지만 맑은 날씨에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소형차 주차장 가는 대로에서도 천왕봉의 흰 머리는 가슴을 설레게 했다. 백두산 다음으로, 남한에서는 제일봉이 천왕봉이 아니던가. 며칠간 황사 때문에 걱정도 많았었는데 날씨가 맑아 기분에 상쾌했다. 문제는 주차장이 넘치도록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좁은 산행길이 몹시 붐빌 것 같았다. 중산리 소형주차장에서 법계사에서 운행하는 소형셔틀버스를 탔다. 법계사입구에서 내렸다. 주차장에서 이곳까지 3km 정도라 그 만큼의 시간 덕을 본 셈이었다. 차비는 1000원. 작년에는 시주함에 성의 표시로 제각기 차비를..
구름 그림자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