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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화성(2) 구름덩이가 두껍고 커서, 해가 나올 때 끼지 40여 분을 기다렸다. 가을바람은 며칠 사이 차가워져서 구름 그림자 아래에서는 서늘함까지 느껴졌다. 푹신한 풀밭 위에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쓰쓰가무시가 염려되어 성 아래를 천천히 거닐었다. 사진 찍는다고, 오랫동안 햇빛을 기다려보긴 또 처음이었다. 중간에 포기하고 철수하려다가 모처럼 보게 되는 구름풍경이라 인내심을 가져 보았다. 무작정 기다리기가 무료해서 구름 그늘 아래에서 몇 컷 셧터를 눌러보았다. 동북공심돈
가을 화성(1) 뭉게구름이 두둥실 피어올라 너무 고와서 화성의 방화수류정에 들렀다. 방화수류정의 용연은 물을 빼고 청소하는 중이라 밑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하는 수 없이 1번 국도변에 있는 동북공심돈으로 나갔다. 구름 모양이 변화무쌍했다. 동북 공심돈 부근에 머무는 동안, 드문드문 모여있던 작은 구름들이 큰 덩어리로 몰려왔다. 때로는 그늘을 만들기도 해서, 해날 때까지 한참을 기다리기도 했는데, 지루하진 않았다. 때마침 갈대 군락지도 갈꽃들이 고개를 주욱 내밀어 시원한 바람에 살랑이고 있었다. 성안에는 체험학습차 소풍 나온 학생들의 조잘거림이 끊임없이 들려왔고, 성밖의 풀밭 위엔 간헐적으로 불어오는 바람과 오후의 햇살, 그리고 구름 구림자들이 한가롭게 지나고 있었다. 1 2
사육신 묘 죽림님의 블로그에서 "사육신 묘"를 보고, 단숨에 달려갔다. 구름이 많아 날씨는 썩 좋지 않았다. 묘역에 있는 동안 먹구름이 몰려들어 행여 비가 내리지 않을까 노심초사,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인간의 탐욕은 어디까지일까?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 그중에 권력에 대한 탐욕과 집착이 서럽게 가슴을 친다. 권력에 대한 욕심에는 인정사정이 없어 혈육조차 개의하지 않는다. 수양대군은 자신의 앞길에 방해가 될까 염려하여, 어린 단종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좌의정 김종서 부자를 참살하는 계유정난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의 친동생이었던 안평대군마저 죽이고, 자신을 제거하려 했던 아버지의 충신들을 악랄한 고문 끝에 참살하고, 그 충신들의 가족 중 남자들은 모두 몰살하고, 여자들은 노비로 몰아버렸다. 그리고는 수족 떨어진,..
화성열차 모처럼, 화성에 나가 화성열차를 타고, 연무대에서 팔달산 서장대까지 갔다. 연무대 옆 활터에서 활 쏘는 구경도 하고, 편도 1500원 표를 사서 열차를 탔다. 두 대가 한 조를 이루어 운행하는 열차에서, 느긋하게 스치는 풍경을 감상하려 했으나, 의외로 속도가 빨라 사진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였다. 가을답지 않게 태양빛이 뜨겁게 내려쬐었다. 그 뜨거운 태양 아래에도 화성 성길을 걷는 여행객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은 보수공사로 서울 숭례문처럼 겉집을 뒤집어쓰고 있어서 흉물스럽기까지 했다. 공사하는 곳마다 이것저것 빼고 보니, 단조로운 여정이 되어버렸다. 연무대 활터, 아마추어용 활은 10발에 2000원이다. 활은 국궁인데 아마추어를 위해 카본을 이용해 제작했단다. 화성열차..
귀향 철 이른 추석이라지만 날씨는 벌써 완연한 가을 날씨다. 하늘은 높아지고 일교차가 크다. 반팔 셔츠로는 외출이 민망할 정도로 서늘해진 기온에 스스로 놀란다.여름내내 비만 내려 작황이 좋지 않다는데, 가을은 성큼 다가왔다. 쏟아져 시장으로 나오는 빨간 사과나 배들이 탐스럽게 여물었다. 물가는 오르고 경제도 어렵다는데, 농촌만은 풍성했으면 좋겠다. 대부분의 도시민들의 뿌리도 농촌이기에, 어렵다는 금년에는 농촌이라도 풍요로운 결실이 있어야, 우리 모두가 마음만이라도 넉넉해질 것이다.1 노을 속으로 빨려가듯 날아가는 여객기, 노을 끝지지점인 인천방향으로 사라져간다. 출장 후 돌아오는 사람, 유학을 끝내고 돌아오거나, 아니면 고국의 친지를 방문하러 오거나, 또는 관광차 오거나... 아무튼 제각각의 삶의 길은 다를지..
구름 좋은 날 구름 좋은 날,동네 한 바퀴...
일출과 일몰의 명소, 당진 왜목마을 바다 위 일출과 일몰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당진 왜목마을. 게으른 탓으로 직접 일출과 일몰을 볼 수는 없지만, 그곳에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오후의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며, 구름이 간간이 몰려들었지만, 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빛이 유난히 고와 보였다. 수년 전, 바람이 세차게 불던 겨울날, 외투깃을 세우며, 서있었던 시멘트 선창에서 삼면을 둘러보았다. 맑고 깨끗해 보이는 바다 위에는 낚싯배들이 한가롭게 떠 있고, 바닷물 빠져나간 뻘밭에는 철 늦은 피서를 즐기는 피서객들이 조개를 캐며 한낮을 보내고 있었다. 이미 왜목항에는 수많은 차량들로 차댈 곳도 없어 한참을 헤맨 후에야 공터 한구석에 겨우 주차할 수 있었다. 북적이는 관광객들로 넘치는 한편, 왜목항 주변..
`상록수`의 산실-筆耕舍 고등학교 다닐 때, 우연한 기회에 심훈 선생의 "그날이 오면"이란 시를 읽고는 나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돋았었다. "조국 광복이 오기만 한다면 내 가죽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메고는 행렬의 앞장에 서서 거꾸러 죽어도 한이 없겠다."는 선생의 피 맺힌 외침은 어린 내 가슴을 불덩이로 만들어, 지금까지 도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지난 6월, 최용신 생가(http://blog.paran.com/fallsfog/44925027)를 방문했을 때, 필경사를 가보지 못했다는 회한에 날 좋은 일요일,당진행 여로에 나섰다. 충남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 소재, 필경사, 심훈 선생의 작업실이다. 선생은 1932년 이곳에 내려와, 밭을 갈 듯 붓으로 글을 경작하는 집이란 이름으로 이 집을 짓고 창작에 몰두했다. ..
단장중인 수원의 화성, 방화수류정 날씨가 좋아 방화수류정에 갔는데, 아직도 공사 중이었다. 봄부터 방화수류정 일대를 포클레인으로 파헤치고 흉물스러운 출입금지 띠로 둘러치더니, 비로소, 공사가 거의 마무리 되어가고 있나 보다. 막바지 작업으로 인부들이 보도블록을 깔고 파헤쳐진 땅 위에 잔디를 심고 있었다. 마른 땅에 심는 잔디라, 제대로 뿌리를 내릴지 염려스럽다. 작년 태풍 곤파스로 연못인 용연과 주변의 운치있는 수양버들이 부러져 보기에 좋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부러진 나무를 걷어내고, 용연 가운데 섬에는 소나무를 심었는데, 버드나무보다 경관이 떨어지는 듯싶다. 다행인 것은 주변의 민가들을 헐어내고, 공원을 만들어, 시야가 시원해졌다. 화성은 우리나라 성곽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이 방화수류정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즐..
어섬 풍경 1882년 임오군란 이후 대원군이 청나라로 끌려 갔던 마산포는시화 방조제로 내륙이 되어 이웃섬이던 어도와 붙어버렸다. 바닷물이 빠지면 마산포에서 징검다리로 건너가곤 했던 어도는 이제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의 천국이 되었다. 경비행기를 \즐기는 동호인들과 페러글라이딩 동호인들로 붐비는 섬이 바로 어도, 어섬이다. 고기잡던 마을에서 유명한 송산포도의 산지로 변해버린 마산포, 그곳으로 가는 도중 들판을 가득 덮은 포도밭엔 탐스런 포도들이 익고 있었다. 한 집 건너 도로 양편에는 포도가판대가 즐비하다. 가판대에서 판매하는 포도 값이 시중보다 약간 비싼 듯 했다.상전벽해가 되버린 마산포와 어도, 언제라도 그곳에 가면 라이트 형제를 꿈꾸며 창공으로 비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북통일 염원을 담은 천안 각원사 한 때 동양 최대좌불을 봉안했다는 각원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10여 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천안을 지나니, 각원사 이정표가 나타났다.천안 외곽의 큰 길에서 작은 도로로 한참을 달려가니 각원사 아래, 눈에 익은 작은 저수지가 눈에 띄었다. 포장된 도로를 따라 절의 경내까지 차량이 들어갈 수 있었다. 전혀 차량을 통제하지 않는 여유로움이 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규모의 장대함이었다. 1975년에 창건했다는 이 절은 전후 좌우에 즐비한 전각들의 크기가 유명한 전통사찰을 능가했다. 이 절을 창건한 경해법인 큰스님께서는 한국전쟁(6.25사변)때 통일염원 성전 건립의 서원을 세우고 오랫동안 교학과 수행정진 과정에서 태조산에 인연되어 재일동포 ‘김영조(金永祚) 거사’와 ‘ 부인 정정자(鄭貞子)보..
백범의 얼이 서린 공주 마곡사 마곡사는 백제 무왕 때 신라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고려 명종 때 중수하고 재건했다는천년 사찰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부처님을 모신법당이 두 개이다. 또한, 구한말 백범 김구선생께서 일본군 장교를 살해하고, 탈옥하여 몸을 피하실 때, 잠시 이곳에서 삭발하고 불문에 귀의하셨던 적이 있던 유서깊은 곳이기도 하다. 이번 마곡사 방문이 두 번째였는데, 전에 없던 김구선생 명상길을 재현해 놓은 것이 특별히 눈에 띄었다.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면 돌다리인 극락교를 건너는데, 이 다리를건너면 진행방향 우측으로 범종각, 심검당, 대광보전, 대웅보전 등이 차례로 있다. 돌다리 아래 자라석상 두 쌍이 있었는데, 야구선수 김태균이 시주한 것이라 한다. 돌다리 건너 마곡사 경내, 우로부터 심검당, 대광보전, 대..
천안 광덕사 - 호두나무 시배지 천안 명물이라는 '천안 호두과자'를 먹으며, 왜 하필 천안호두과자일까 궁금했었는데, 비로소 그 까닭을 알았다. 우리나라에 호두나무가 최초로 전래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백제사찰이래서 들렸던 광덕사에서 재미있는 역사적 사실 하나를 얻어간다. 버스 정류장 가까운 곳에 일주문이 있다. 평소 태화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은 듯, 입구부터 식당들로 붐볐다. 한적한 시골임에도 막걸리집이나, 음식점이 많은 것을 보면, 그 만큼 사람들의 왕래도 많다는 것일 터이다. 이정표를 보고 따라가니, 작은 돌다리 너머로 광덕사로 보이는 절집이 보였다. 광덕사 들어가는 계단 우측에 400년 묵은 호두나무가 있다. 우리나라 광덕사에 최초로 호두나무가 전래되었는데, 저 호두나무는 생물학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제 398호로 ..
화성시 송산 공룡알 화석산지(2) 화성 공룡알 화석이 발견된 것은 시화 방조제 건설 이후이다. 방조제를 막음으로써 바다가 육지가 되었다. 바닷물에 깎여 나가던 바위가 드러나면서, 공룡알이 발견된 것이다. 한반도에서 찾을 수 없던 공룡화석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발견되었다. 2008년 5월에 전곡항 방파제를 걷던 여성(공무원)이 사람들이 무심히 밟고 다니던, 축대돌에서 화석을 발견했단다. 최초로 발견된 이 공룡화석을 토대로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공룡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데, 그분의 이름과 사진이라도 남겨 기념했어야 했을 텐데, 더 이상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외국의 경우 최초 벌견자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짓기도 하던데... 아무튼 위대한 발견이었다. 화성시 송산면 공룡산지 방문자 센터 - 입장료와 주차료 모두 없고, 우리..
화성시 송산 공룡알 화석산지(1) 망가져 간다는 우음도 이야기를 듣고, 그곳을 찾았다. 멀지도 않은 곳이라 훼손되고 나면 이름난 명소를 다시 볼 수 없겠다는 안타까움 이조바심을 내게 했는지 모르겠다. 우음도는 시화방조제 안에 있는 옛적의 섬이었다. 가는 길이 공교롭게도 공룡알 화석 출토지를 경유하는 길이어서 너무 좋았다. 화성시 송산동 사강에서 우회전하여 한참 들어가니, 공룡화석지 안내 이정표들이 나타났다. 방조제를 막기 이전엔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가던 뻘 가운데 비포장 도로에 들어섰다. 그곳엔 송산 그린시티 건설을 위한 도로 공사가 광활한 뻘밭을 가로질러 바다 쪽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빗물로 파여 울퉁불퉁한 도로를 곡예하듯 달려가니, 말로만 들었던 화성 공룡알 화석산지 방문자 센터가 나타났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방문자 센터 안에 ..
파주 용미리 석불입상-용암사 어렸을 때, 그러니까 국민학교시절 미군이 발행하던 '자유의 벗'이란 잡지가 있었다. 당시에 그 사진 잡지는 사진화보 중심이었기에, 어린애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충족시켜 주었었다. 더욱이 그 잡지는 종이가 두껍고 질겨서 책을 싸는데 아주 좋았다. 그때 그 잡지에서 보았던 사진이 용미리 석불입상이었다. 그 후, 군생활하던 때, 추운 겨울날, 작전트럭 적재함에 실려 작전지로 이동하다가 이 석불입상을 보았었다. 시간이 있었더라면 내려가서 보았을 텐데, 쫄병으로 볶이며 얽매인 탓으로 찬 바람 속에 석불입상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다만 보면서 아쉽게 지나치고 말았다. 그 때문인지 아직도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던 석불입상이었다. 멀지도 않은 가까운 곳에 두고서 이제야 찾아보게 된 것은 기억 저편에 너무나 깊..
어쩌다 갠 날(2)-일산 호수공원 오후가 되자, 엷은 구름들이 몰려들었다. 구름 속으로 햇살이 숨어 뜨겁지 않았지만, 습도가 높아서 후덥지근했다.파주에서 내려오다가 일산 호수공원에 들렸는데, 인공적으로 꾸며논 공원이 보기에 매우 좋았다.조경이 잘된 인공호수라는 점에서 북경 교외에 있는 이화원과 비슷하다는 생각부터 들었다.호수 가운데 외줄기 분수기둥이 솟구치는 것을 보면 제네바의 레만 호수를 흉내낸 것 같기도 하고... 도시마다 이러한 공간을 갖고 있다면, 삶에 지친 심신을 추스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부러워지기까지 했다. 나무그늘 아래 은박매트를 깔고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원한 호수 전경과 우창한 숲, 잘 가꾼 산책로, 정자... 공원 안에서는 잠시 도시의 일상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신도..
어쩌다 갠 날(1), 파주 헤이리에서 어제,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밤엔 천둥 번개까지 무섭게 내리치더니, 아침녘에 창문으로 햇빛이 스며들어왔다.오랜만에 만난, 진실한 친구처럼 아침햇살이 반갑고 고왔다. 창을 열고 멀리 내다보니 산에는 구름이 두둥실 걸려 있고,먼 곳의 고층 아파트 정수리들이 햇살에, 벗겨진 이마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모처럼에 만나는 가시거리 무한대의 날이다. 이런 날엔 산엘 가야하는데, 산행은너무 더울 것 같아 꾀가 났다. 그래서, 방문한 곳이 파주 헤이리 마을. 인터넷으로 대충 들어본 마을이었다. 네비게이션의 도움으로 자유로를 타고 올라가다가 오두산 통일전망대 부근인 마을에 도착했다. 헤이리는 예상보다 큰, 여러 개의 마을이었다. 마을엔 출입로도 많았는데, 처음으로 찾아들어 간 곳이 어린이 마을이었다. 그런데, 하늘 빛..
아산 공세리 성당 지나가는 길에 들른 충남 아산군 인주면 공세리 천주교. 동산 위의 우뚝 선 첨탑이 석양빛에 빛났다. 차를 샛길로 돌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언덕 위에 올랐다. 1922년, 초대 드비즈 본당 신부님이 직접 설계하여 완공했다는 본당 건물로 중세 유럽풍으로 매우 아름다웠다. 본당 내부는 공개하지 않아 애석하게도 들어가지 못했다. 성모 마리아 상 왼편으로 뚫린 하늘의 모습이 우연하게도 하트 모양이었다. 1800년대 아산지방에서 순교하신 28명을 모시고 있는 순교성지이기도 하다. 좌로부터 성당 측면과 성모 마리아상, 순교자 추모비, 박물관이다. 저녁 무렵이라 사진이 어둡다. 더군다나 구름 속의 석양을 바라보고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 흐린 하늘빛마저 제대로 표현되지 않고, 색감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기념으로 올려..
소나기 마을 황순원 문학촌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소재 황순원 문학촌, 그동안 많이 들어 봤지만 아직 방문은 하지 못했던 곳이라, 세미원 방문 뒤에 그곳으로 향했다. 세미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황순원 문학촌이란 바위 표지석을 보고 그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많지는 않았지만 여러 대의 차들이 이미 주차되어 있었고, 문학촌으로 오르는 길은 일반차량 진입 금지란 푯말이 서있었다. 차에서 내려 200여 m 언덕길을 타박타박 걸어서 올라갔다. 문학촌 앞, 운동장, 소나기에서 소년과 소녀가 비를 피했다는옥수수대 더미는 짚으로 대신했지만, 작품 세계를 재현하려 애쓴 흔적들이 보였다. 광장을 둘러싼 산 허리엔 산책로를 만들고, 선생의 소설의 배경지처럼 '목넘이 고개' 등의 이름을 붙여 놓았다. 분수대는 물이 말라 휴식 중이었다. 비가 ..
세미원(洗美苑) 두물머리에서 벗어나 장터 구경 후, 다리 건너에 있는 세미원으로 갔다. 洗美苑이란 이름이 너무 예쁘다. 물과 연꽃들을 보고 마음을 씻어내면 어떤 경지일까. 씻고 씻으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無의 세계, 즉 色是空의 세계는 아닐까. 입장료 3000 원을 내고 표를 끊으니, 입장권은 관람 후에 음료나 선물로 교환해 주니까 절대 버리지 말란다. 참으로 재미있는 발상이었다. 모두가 한 푼이라도 더 뜯으려고 야단인데, 이런 서비스로 관람객들에게 베푸니, 세미원을 만들고 이런 배려까지 해주는 양평 지자체 사람들이 참으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미원 4층 건물은 연꽃 박물관이란 현판을 달았다. 세미원 입구, 뒤 건물은 연꽃 박물관 매표소, 매표소 뒤의 출입문에는 태극기 문양이 그려졌고, 그 문 이름은 不二門..
두물머리 양평 두물머리 끝에서 두 강이 합수하여 한강으로 흐르는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기만 했었다. 포인트를 찾지 못해서 뜨거운 땡볕만 받다가 허망하게 철수하고 말았다. 더군다나 땀이 흘러 눈을 뜨지 못할 지경이었다. 차가운 음료수 하나로 갈증을 달래었다. 때마침 양수리 장날이어서 장터를 조금 기웃거리다가 그것도 이내 지쳐, 민생고 해결차 들린 장터 식당 에어컨 바람으로 몸을 조금 추스를 수 있었다. 안 쪽으로 파인 곳의 물은 흐르지 못해서 탁하고 부유물이 떠 있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지만, 관리를 좀 했으면 좋겠다. 아무렇게나 매어 놓은 거룻배 역시, 낭만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조금만 신경을 더 쓰면,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꿀 수 있을 텐데... 카메라를 들고 피사체를 찾으려 애쓰지만, 적당한 곳은 없었..
태풍전날 태풍 '무이파'가 북상하며 제주 등 남해안 일대에 엄청난 비바람을 뿌린다는 날 오후, 화성시 들길로 나갔다. 바람이 세게 불어 왔다.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도 듬성듬성 나타나 보이기도 했다. 이름 모를 꽃들이 활짝 피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어서 무심결에 몇 컷 촬영했다. 큰 화면으로 보니흔들린 것이 많았다.
충남 서천 홍원항 오직 회를 먹으러 홍원항에 갔었다. 충남 서천군 서면 도둔리에 있는 홍원항은 어항으로 규모가 제법 크다. 한적한 시골 어촌 마을을 뛰어넘어, 덩치 큰 어선들이 대부분이었다. 금년 들어 벌써 두 번째 방문이다. 접때도 날씨가 흐리고 빗발이 보였는데, 이번에 역시 빗줄기가 오락가락한다. 인근에 동백정이 유명하다고 해서 방문했다가, 정자 바로 옆의 화력발전소를 보고는 망가져버린 풍경에 퍽이나 실망했었다. 그때, 이 홍원항에 들러 횟감을 사려다 시간이 맞지 않아 갈 길로 되돌아갔었다. 그것이 회한이 되어, 이번 방문에는 오직 횟감을 구하기 위하여 활어시장으로 갔다. 무쏘승용차가 바퀴 달린 받침대 위에 보트를 싣고 끌고 있었다. 나도 한 때 저런 로망을 가진 적이 있었다. 푸른 파도를 헤치며 흰 물살 자취를 흩뿌..
진주성 비는 멎었으나, 날씨는 여전히 흐렸다.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쏟아 내릴 것만 같았다. 북상 중 서진주 IC로 빠져, 진주성을 경유지로 삼아 이 고장에 들렸다. 이곳 역시 임진왜란과 뗄 수 없는 고장이다. 진주 시내는 의외로 깔끔했다. 높지 않은 건축물들로 잘 정돈된 시가가 매우 깨끗한 인상을 주었다. 진주성 방문은 이 번이 두 번째, 그 사이가 20년이 넘었나 보다. 촉석루 아래 논개 바위인 의암 위에서 서남방향의 남강을 바라 보았다. 진주성의 주출입문인 공북문 김시민 장군 동상- 이 분의 시호도 충무공이다. 김시민 장군은 1578년(선조 11) 무과에 급제하였다. 1583년 귀화한 여진인 니탕개(尼湯介)가 회령(會寧) 지방에서 난을 일으키자 정언신(鄭彦信)의 부장으로 출정하여 공을 세웠다. 1591년 진..
여수 오동도, 그리고 향일암 장흥, 보성, 순천을 지나여수반도로 방향을 돌리자 구름 안개 속에서 굵은 빗방울이 사납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날이 어두워 오동도 입구에서 여장을 풀고, 주인에게 저녁 식사할 곳을 의뢰했더니, 여수 특화시장을 추천해 주었다. 사나운 빗줄기가 어둠 속에서 하얀 궤적을 보이며 무섭게 떨어졌다. 택시를 타고 여수 수산시장을 지나 이른바 여수 수산물 특화시장으로 갔다. 부산 자갈치시장처럼 아래층에서는 횟감을 팔고, 2층에서는 양념과 식사, 주류를 파는 일종의 회센타였는데,대부분의 상인들이 친절해서, 무엇보다도 다행이었다. 횟감을 광어와 장어류로 5만원어치 사서 맡기고 2층으로 올라 갔다. 1. 여수 수산물 특화시장과 오동도 오동도에서 돌아 본 여수항 특화시장 1층 활어시장 광어와 장어회 5만원, 채소와 양념 값은..
강진기행-다산과 영랑 일찍이 유홍준 선생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강진을 남도기행 1번지로 꼽았었다. 그래서인지 강진엔 여러 번 들렸었는데, 견문이 짧은 내 식견으로는 선생의 혜안을 살피기 어려웠다. 강진이라면 그저 다산초당과 영랑시인 생가, 상감청자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첫 번 째 행선지로 다산초당을 꼽았다. 다산초당은 이번이 세 번 째였다. 1. 다산초당 진도에서 오락가락하던 빗방울은 이제 땡볕으로 바뀌어 뜨겁게 내렸다.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찾아갔는데, 예전과 달리 입구에는 너른 주차장과 웅장한 건물들이 서있었다. 잔디 동산에 조성된 육중한 건물은 다산기념관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념관 전시물들을 관람하고 있었다. 밀랍 인형으로 재현한 다산 선생의 집필 모습 시끄러운 매미 소리를 들으며, 기념관 우측길을 돌아 ..
전라우수영 전적지 2005년에 왔을 땐 진도대교는 외다리였는데, 그사이 쌍다리가 되었다. 진도 주민들의 교통이 편리 해졌겠다. 진도에서 대교를 건너면 해남군이다. 오른편으로 전라 우수영 전적지가 보인다. 잠깐 주차한 후, 충무공을 기리는 여러 가지 기념물들을 둘러보았다. 세계 해전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다는 '명량대첩'의 전승지가 바로 이곳이다. 1597년 9월 16일(음력) 이순신 장군은 이곳에서 13척의 전선으로 왜적선 133척을 수장시켜, 왜적의 서해진출을 좌절시켰다. 원균의 견내랑 패전을 통쾌히 되갚은 승리였는데, 빠른 물살과 조류의 흐름을 이용한 장군의 전략이 승리의 바탕이었다. 명량대첩탑 우리 민족이 존재하는 한, 이 대첩비는 영원히 이 길목에서 그 위용을 빛낼 것이다. 개인의 영달과 출세를 위하여, 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