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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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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산성 독산성(세마대) 주차장 벚꽃은 아직 만개하지 않았다. 오랜 만에 찾은독산성엔 아직 봄꽃이 만개하진 않았다.제법 가파른 비탈길을 먼지를 피우며 타박타박 올라 갔다.조금 오르다 보니, 산성의 모습이 뚜렷하게 시야에 들어 왔다. 전에 보지 못했던 모습이라 퍽이나 놀랐다.작년 태풍 곤파스의 영향이 아닐까 퍼뜩 생각했던 것이 잘못된 것이었다. 성의 윤곽을 드러내기 위해 성벽을 가렸던 나무들을 모두 잘라 버렸기 때문이었다. 군대시절 사계청소처럼 눈앞을 가리던 잡목들을 시원하게 제거해 버렸기 때문에 전망이 상쾌해졌다. 휑하니 드러난 주변이 을씨년스럽긴 했지만 몇 년이면 다시 키작은 잡목들이 무성하게 될 것이다. 토요일 오후라 성을 찾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근자에 다듬은 흔적이 뚜렷한흰 돌들이 성벽을 보수한 세월이..
제암리를 아시나요? 지진과 해일로 일본 열도가 난리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부숴진 원전 때문에 또 일본사람들은 공포에 떨고 있기도 하구요. 한류스타들의 기부행렬과우리나라 방송사에서 걷은성금들이 그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했겠지요? 그런데, 그 와중에도 일본 정부는 중학교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등재한다네요. 화성시 제암리를 지나다가 문득 가슴이 아려와서, 차를 멈추고 한 바퀴 돌아 보았습니다. 자주 지나는 곳이라 별 느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기분이 묘해지더군요. 지울 수 없는 일제의 악랄한 만행의 흔적들과, 일본 열도의 재앙에 대한 측은함과, 독도 영유권을 자손들에게 각인시키려는 일본정부의 간악함이 동시에 떠올랐습니다. 놀랍게도 3월의 하늘은 푸르고 맑았습니다. 차갑긴 했지만 봄바람이 정신을 맑게 해주었구요. 순백..
상당산성 청주에 볼 일이 있어 갔다가 그냥 되돌아오기가 아쉬워서 상당산성에 올랐다. 봄바람이 살랑이는 산성엔 많은 청주시민들이 때이른 봄맞이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아름답게 조성된 성곽 따라 정상에 올랐다가 시간에 쫓겨 일주하지는 못했다. 겨울의 끝자락인 지금은 무채색의 풍경이었지만, 사시사철시민들의 여가생활에, 쾌적한 기쁨을 줄 아름다운 산성이었다. 산성의 남문인 공남문으로 산성의 정문이다. 이곳의 잔디밭은 문화방송의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 주인공 담덕이 화살을 맞는 장면 등을 촬영한 곳이란다. 남문의 현판 "공남문" 공남문 안에서 내다 본 성밖 풍경, 성문에 그려진 도깨비의 모습이 해학적이다. 성위에서 바라본 청주시가 상당산성이란 이름은 백제의 상당현이란 지명에서 유래된 것이라 하는데, 둘레가 4.2km, ..
백남준 아트 센터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소재 "백남준 아트센터" 경부고속도로 수원 IC에서 3분 거리에 있다. 세계적인 에술가 백남준(1932년 7월 20일 ~ 2006년 1월 29일) 기념 박물관이다. 백남준과용인시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백남준의 관향이 '수원'이기에수원과 가까운 이곳에 그의 기념관을 건립했단다. 그가 주로 활동한 비디오 아트 부분은 나로서 이해하기 어렵지만, 박물관 건립 당시부터 관심이 있었다.바로 이웃에 경기도립 박물관이 있어서 문화체험관으로서의 고급스런 역할도 돈독히 하고 있다. 안내 데스크 로비의 봉황문, 로비에 전시된 물고기 비디오- 어항들을 'ㄱ'자로 연결해서만든 작품으로 어항 뒤의 모니터에서 쉴 새없이 영상들이 움직이며 강렬한 색상들을 쏘아대고 있었다. 전시실 내부- 3면에 대형스크린이 설..
감은사지, 그리고 문무대왕릉 정초부터 하늘빛이 변화무쌍하다. 깜깜한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더니, 파랗게 열리기 시작했다.그리고, 엷은 구름이 약간 번져있는 하늘로 산봉우리에서 빨간 태양이 솟아올라왔다.산 속을 달리는 차속에서 바라보는태양이라 선명하지 않았다.지나치는 산그림자들이 태양을 가리는가 하면,갑자기 나타나는 터널들이 시야를 가로 막았다. 다행스럽게도 흐리지 않았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었다. 그런데, 경주를 지나서 구불구불한 산길로 감포를 향해갈 때, 하늘엔엷은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1. 감은사지 바다로 향한 직선의 좁은 도로를 달릴 때, 차창 왼편으로 야트막한 산 아래에 서있는두 개의 석탑을 발견했다.전에도 이 길을몇 차례 지났는데, 그 때 보지 못했던 것은 왠 일일까, 스스로 반문하며, 탑의 아래 동쪽 주차장에 차를 세웠..
당포, 그리고 충렬사 1. 당포항 맑고 깨끗하고 상쾌하다. 박경리 기념공원에서 되돌아나와 미륵도 해안을 달린다. 박경리 공원 가까운 곳에 당포항이 있었다. 당포항이 한 눈에 보이는 포인트를 그만 스쳐 지나버렸다. 순간의방심으로 놓쳐버린 포인트를 아쉬워하며 당포항 안으로 깊숙히 들어갔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답고 평화로운 포구였다. 이순신 장군의 전승지 당포,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포구가 매우 아늑해 보였다. 맑은 해역이라 그럴까, 부두에 근접한 곳에 가두리 양식장이 널려 있었다. 대형 활어트럭들이 끊임없이 들락거리며 활어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어지러히 갈매기들이 날아다니며 활어를 탐내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400년전에 이곳은 더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 평화스런 마을을 탐욕스런 섬나라 도적깡패들..
통영항과 통영중앙시장 애석하게 거가대교를 통과하지 못하고, 해떨어진 직후 통영에 도착했다. 통영시내 좁은 도로는 서울 한 복판보다도 차가 많은 듯 싶었다. 통영 IC부터 통영항까지 40분 이상 소요되었다. 통영항 부근에서 차를 돌려 숙소를 잡고, 통영 중앙시장에 가서 활어회로 저녁식사를 하고 곧바로 잠자리에 빠져 들었다. 하루종일 차 안에서 보낸다는 것도 보통일이 아닌 듯 하다. 2일 아침 해 뜬 후식사를 위해 다시 통영항으로 나왔다. 이른 아침부터 관광객들로 식당마다 만원이었다. 1. 아침 햇살이 퍼질 무렵의 통영항 2. 통영 중앙시장 시장 입구부터 통영 사람들과 관광객들로 엉키고 설키어 무척이나 어지러웠다. 시장 입구에선 수입 냉동갈치를 팔고 있었는데, 한 마리에 만 원, 엄청난 크기에 값이 참이나 헐해 보였다. 맛은 어..
차창(車窓)밖 풍경 여행을 하다보면 차창 밖 풍경에 넋을 잃을 때가 종종 있다. 내가 운전을 할 때면 어쩔수 없지만, 두 손이 자유로울 때도, 순간을 놓치고아쉬워할 때가 많다. 그야말로 순발력과 타이밍이 중요하다. 모처럼 뒷좌석에 앉아 차창밖 풍경을 시도해 보았다. 거가대교를 보려고 부산을 떨며, 업데이트 하지 못한 네비 탓에,길을 물어 가며 도로를 달려갔다. 광안대교 위를 달리며 차창 밖 풍경에 감탄한다.처음 달려가는, 이 다리 위에서아름다움에 취해서 위험을 무릅쓰고카메라를 내밀었다. 1. 광안대교 거가대교 가는 길에 부산 광안대교를 지난다. 지난 번 불이 났던황금색 오피스텔도 스치듯 빠르게 지나쳐 갔다. 불현듯, 영화 '해운대"에서 광안대교 위로 콘테이너가 떨어지고, 유조차가 폭발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2. 진해가도 엄..
간절곶 1월 1일, 우리나라에서 해가 제일 먼저 뜬다는 울주 간절곶! 바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쉼없이 해안으로 밀려와서 장렬히 부서지는 파도를 보면서 금년엔 모든 일이 파도처럼 장쾌하게 이루워지길 소망했다. 새해 첫날이라 소망을 품고 이곳을 방문한 수많은 인파에 차를 댈 곳도, 서있을 공간도 모자랐다. 가벼운 마음으로 소망 우체통에 소망엽서로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염원하였다. 간절곶 북쪽, 들어오는 길. 간절곶 해안, 파도의 물보라로 가득했다. 하얗게 일궈내는 포말처럼 우리 모두의 행복도 이곳에서 간절하게이루어졌으면... 몰려드는 엄청난 힘! 행복을 밀어주는 추진력이 되었으면... 간절곶 끝 자락, 해맞이하는 곳. 새 천 년 거북탑과 신묘년의 주인공 토끼 가족이 고래를 타고, 방문객들을 새해 인사로 맞이하..
통영 미륵산 정상에서 미륵산 정상에서 바라본 남쪽 전경. 누워있는 하트 모양의 솔숲이 박경리 선생묘소 공원, 그 앞이 당포, 오른 족 끝, 멀리 보이는 섬이 남해도.... 한려수도 정상에서 바라 본 통영항과 거제도 멀리서 바라보는 통영의 모습... 옛말대로 숲만보고 나무는 보지 못하는 처지이고 보면, 이번 산행도 안타까움이 많은 걸음이었다. 정상에 세워 놓은 안내도를 보며 대강 눈앞 전경들을 맞추어 보면서 눈짐작을 해 보았다. 통영 방문은 다섯 번이 넘는데, 아름다움을 아직도 다 느껴보지 못했다. 그 아름다움을 느껴보려면, 1년 이상은 이곳에서 살아봐야 할 것 같다. 충무공의 유적지에 친일파 예술가로 지목되는 유치진 유치환 형제의 기념관이 버젓이 세워져 있단다. 우 리주변에서 발견되는 모순이 어찌 한둘 뿐일까마는 일본인들이 ..
덕수궁 뒷길 모처럼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덕수궁 정문에는 덕수궁 수문 교대식이 막 끝난 후였다. 덕수궁 돌담길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서울시청 별관을 지나 정동 교회, 서울시립문화관에 들려 전시회를 보고, 돌담길을 계속 걸어 덕수 초등학교를 통과하여 서울시 역사박물관까지 갔다. 맑은 날씨와 모처럼 깨끗한 공기때문에 걷는 일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 이곳저곳을 거닐며, 뚜벅이 탐방을 했는데 의외로 재미 있었다. 북한산 둘레길만 좋은 산책길만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회라는 정동제일교회... 서울시립미술관, 피카소전 포스터를 보고 들어 갔다가 미디어전을 관람하였다. 피카소전은 다음 전시회란다. 전시실 - 비디오 아트는 너무 어려워, 대충 둘러보곤 이동했다. 인상 깊었던 작품 "나는 칼 막스를 증오한다." -2..
경희궁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다가 시립미술관에서 "미디어 시티 서울 2010"을 관람했다. 사진들과 비디오아트 등 현대미술 전시회였는데, 그 내용이 난해하여, 이해하기 어려웠다. 비가 온다는 예보와는 달리 가을 하늘이 너무나 맑고 푸르러 뚜벅이 탐방 끝에 서울시 역사박물관을 거쳐 경희궁에 들렀다. 경희궁! 얘기는 많이 들었으나, 직접 방문해보기는 처음이어서 설레임까지 있었다. 정문인 흥화문 앞에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어 사진을 포기하고 조금 더 걸어 올라갔다. 천막으로 꾸민 시립 미술관을 지나니 나타난 곳이 숭정문이었다. 궁궐치고 규모가 작아,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안내문을 보고는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은 일제의 만행이었다. 경희궁은 임란 후 광해군이 지어 사용했는데, 그 후 10대에 걸쳐 왕궁으로..
장절공 신숭겸 묘 장절공 신숭겸을 아시나요? 신숭겸은 고려의 개국공신으로 왕건을 위해 목숨을 바친 명장이었습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과 싸울 때, 적군에 포위되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신숭겸이 나서서 왕건에게 갑옷 바꿔입기를 간청했다지요.왕건의 갑옷을 입은 신숭겸은 왕건이 지휘하던 수레를 타고 왕건인냥 행세하며 후백제 견훤군과 용감히 싸웁니다. 그 사이 왕건은 샛길로 빠져나가 목숨을 구하게 되지요. 왕건의 갑옷을 입었던 신숭겸은 결국 후백제군에의해 장렬히 전사를 하게 됩니다. 목숨을 구한 왕건은 전투가 끝나고 머리없는 신숭겸의 시신을 끌어안고 통곡을 했답니다. 그리고, 신숭겸의 고향인 춘천에 그의 시신을 묻어 주었습니다. 적들에게 빼앗긴 머리를 찾을 수 없어 황금으로 머리를 만들어 붙여서 장례를 치..
쁘띠 프랑스 앙증맞은 프랑스 마을 쁘띠 프랑스, 청평댐을 지나자 마자 북한강을 끼고 구불구불한 길을 즐기다 보니,잠깐 사이에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고성리 소재 쁘띠 프랑스에 도착하였다. 도로에서 보았을 땐 작은 셋트장처럼 보여 지나치다가, 쁘띠 프랑스 간판을 보고서야 차를 멈추었는데, 네비게이션과 달라서 지나가는 행인에게 확인차 물어보고서야 제대로 찾아온 줄 알게 되었다. 언덕 위의 주차장 시설은 허름한 편으로, 무료 주차였다. 주차장에서 내려가야 입장할 수 있는데, 입장료가 자그마치 8000원이었다. 뜨거운 8월의 폭염 속에, 마을에 칠해진 빨강 노랑의 원색으로 더욱 뜨거웠고 눈이 부셨다. 다행히 건물 안에는 시원하게 에어컨을 틀어 놓아, 밖의 열기를 조금 식혀가며 관람할 수 있었다. 숙박동을 제외하고는 모두 개방..
아! 광화문 65주년 광복절을 맞아 광화문부터 숭례문까지 광화문 복원을 축하하는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뜨거운 뙤약볕에도 불구하고 남녀노소 없이 몰려든 시민들로 밤 늦게까지 북적거렸다. 충무공 동상 뒤로 세종대왕과, 덮개를 벗어버린 광화문의 모습이 북악산 산봉우리와 잘 어울렸다. 덮개를 벗고 모습을 드러낸 광화문 광화문 지나 흥례문 흥례문 지나 근정전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경회루 임금님 내외분의 후원, 향원정. 향원정 뒤, 건청궁 안의 명성왕후가 앉았던 대청 마루 명성황후가 살았던 옥호루, 이곳에서 황후는 1895년 일본 자객들에게 시해되었다. 호기심 어린 관람객들이 문짝 아래 쪽에 뚫려있는 문살 사이로 황후의 침전을 들여다 보고 있다. 궁궐의 안주인이 즐겼을 교태전 후원, 아미산과 굴뚝. 임금께서 주무셨던 ..
봉하의 여름 2010년 8월 10일...
태풍전야 마린시티 8월 9일 저녁, 부산 동백섬에서. 먹구름이 심상치 않더니 기어코 큰 비를 뿌렸다. 늦은 저녁을 먹으며, 태풍 텐무가 내일 한반도에 상륙할 것이라는 TV 뉴스를 보았다. 어쩔 수 없이 부산 야경을 포기하고, 여행 스케쥴을 대폭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연히 들른 동백섬 여행으로 만족할 수밖에... ...
경주 양동마을 지난 7월 31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에서 경주 양동 마을과 안동 하회마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하회마을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방한했을 때 들렸던 류씨마을로 유명해서 몇 번 다녀왔지만, 경주 양동마을은 처음 듣는 마을인지라, 호기심이 컸다. 뉴스를 들으니 찰스 왕세자가 방문했던 곳이란다. 외국의 국가 원수가 방한해서 우리나라 전통마을을 찾아 보았다는 이야기는, 이 영국모자를 제외하고는 들어보지 못했다. 양동마을은 영천 지나 거의 포항 언저리에 있어서, 뜨거운 뙤약볕을 4시간여 달려 갔다. 가는 길에 차창 밖 구름이 너무 아름다웠다. 벌써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마을 입구 초등학교에 차를 주차시키고 걸어서 마을로 올라갔다. 마을 입구 초입에 허름한 가게에 사람들이 몰려 빙과류를 사..
강화 전적지 1. 고려궁터 강화도 고려궁지입니다. 고려는 1232년 대몽 항쟁을 위해 강화로 도읍을 옮기고 송도 궁궐의 모양을 본떠 3 년여에 걸쳐 궁궐을 지었답니다. 그 후 1270년 몽고와 화해하고 송도로 천도했는데, 천도 후 불에 타 소실되었다고 합니다.조선시대에에는 이곳에 행궁을 짓고 강화유수부 등 많은 건물들을 세웠는데,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에 의해, 규장각에 있던 주요 서적 문화재가 약탈되고, 건축물들이 불타 없어지게 되었답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고속전철을 팔기 위해,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이 때 약탈해 간 규장각 도서를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돌려주지 않고 시침떼고 있지요. 복원해 놓은 외규장각 건물입니다. 2. 초지진 운양호 사건 때 일본군으로부터 포격당한 흔적이 아직..
정몽주 선생의 묘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에 있는 포은 정몽주(1337∼1392) 선생의 묘소입니다. 선생은 고려말 이성계 회유에 동조하지 않아 죽임을 당한 만고의 충신으로 알려져 있죠. 포은의 묘는 선생이 순절한 후, 개성 풍덕군에 묘를 썼다가, 후에 고향인 경북 영천으로 이장할 때, 경기도 용인시 수지면 풍덕천리에 이르자 앞의 명정이 바람에 날아가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 이곳에 떨어지자, 영정이 떨어진 이곳에 묘를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성계의 다섯 째 아들인 이방원(후에 조선조 태종)에게 자기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타살된 포은은 만고의 충신으로 추앙을 받게 되고,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세우고 나라의 기초를 다졌던 개국공신 삼봉 정도전은 이방원의 왕위 쟁탈 정변 때 제일 먼저 피살된 후, 역적으로 몰려 그의 현란한..
외암 민속마을에서 1. 시집가는 날 처음엔 모델인 줄 알고 사진 찍는 걸 허락 받고,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런데, 초례청에 입장하며 혼례 올리는 걸 보고서야 실제로 시집가는 아씨란 걸 알았습니다. 연출 아닌 실제 상황이고,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라 망설이다가 축복하는 뜻으로 조심스럽게 올려 봅니다. 날씨가 너무 더워 좁은 가마 속에서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만, 신부의 표정이 너무 밝아 행복해 보였습니다. 신부는 근엄한 전통 혼례임에도 웃음을 듬뿍 머금어 보는 이들의 축복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2. 마을 풍경 입구에서 바라본 민속마을 전경입니다. 클릭하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인위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민들이 실제 사는 집들이란 점에서 박제된 민속촌은 아니었습니다. 낙안읍성처럼 잘 정리된 민속마을은 아니지만, ..
江村 風景 과거의 추억을 한 웅큼 간직한 강촌마을엔 6월의 초여름 햇살이 시간 속에 멈춰있는 듯 했다. 곧, 경춘선 복선 전철이 완공되면 철도역이 폐쇄된다는 소문에, 퇴락해가는 강촌역사와,한무리 젊은이들을 쏟아내고 세월 속으로 사라질 열차를 바라보며, 시간 저편에서 스믈거리던 추억들을 끄집어 냈었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였던 강촌역이 사라지면, 이곳은 어떤 모습으로 탈바뀜 될는지... 흑백사진처럼 가슴 속에 남아있던 젊은 시절의 추억들은 어디로 떠날는지, 잛은 시간 안에 복잡한 상념들이 춘천으로 사라지는 열차의 꽁무니처럼 스쳐 지나갔다.
철원 풍경 갈말읍 지포리 신철원에서 2km쯤에 있는 삼부연 폭포,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잠시 더위를 잊을 수 있을 만큼의 시원스런 폭포입니다. 폭포 위는 저수지라죠. 폭포수가 떨어지는 곳에 세 개의 가마솥같은 웅덩이가 파였다고 해서 삼부연이랍니다. 신철원에서 북방으로 7km 쯤에 있는 고석정 내려가는 마당, 임꺽정 동상입니다. 조산조 중종 때 백정으로 학대 받던 민중의 한을 의적활동으로 쏟아냈던 임꺽정! 바로 아래 한탄강 고성정이 그의 주활동 무대였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한탄강 협곡 사이에 우뚝 솟은 기암괴석, 이른바 고석정입니다. 추가령 지구대인 이 지역은 옛날에 용암이 흘러 움푹 파인 곳이 바로 한탄강이죠. 철원의 돌들은 대부분 제주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곰보돌, 현무암이랍니다. 고석정에 임꺽정이 은거하..
포천 산정호수 1. 호수에 드리운 명성산 그림자 2. 산정호숫가 조각공원 3. 산정호수의 이모저모 4. 자인사 산정호수는 1925년 일제가 축조한 인공호수입니다. 물이 맑아 산속의 우물(山井)이라는 이름으로 해방 후 한국전쟁 이전까지는 김일성 별장이 있었다고 전합니다.국군이 북진하며 수복한 38 이북의 땅이기도 합니다. 명성산은 태봉국을 세웠다가 부하인 왕건에게 쫓긴 궁예왕의 슬픈 전설이 깃든 산이기도 하구요. 지금은 리조트와 각종 위락시설이 들어선 유원지가 되었습니다. 수려한 산세 아래 넓고 맑은 호수에서 하루동안의 산책도 여유있어 보입니다. 산정호수 가까이 있는 자인사는 세워진지 얼마 안 된 사찰입니다만, 왕건의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라 한 번 들려봤습니다. 그런데, 크게 놀란 것은 보통 절에서 볼 수 없는 거대한 ..
임진각 주변 1.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 2. 제 3 땅굴 3. 화석정 연록의 대지 사이로 쭉 뻗은 자유로를 달려 도착한 임진각 평화마루. 몇 년 전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잔디 동산에는 많은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선입견 때문인지는 몰라도 형형색색의 바람개비와 조형물들이 공원의 분위기를 야릇하게 만드는 듯 싶었습니다. 거기에 철 잊어버린 연 날리기도 망향심을 돋우는 분위기였습니다. 때마침 남쪽에서 북쪽으로 바람이 불어 연들은 높이 날아 올라 북녘을 바라볼 듯 싶었습니다. 바람개비도 힘차게 돌아 분단의 그리움을 색깔로 토해내는 듯 했고... 주차장 앞에 안보 관광 프로그램이 있어서, 민통선 안쪽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짧고 군지역이라 사진 촬영을 제한했기에 남긴 것 ..
만리포에서 천리포까지 1. 만리포 2. 천리포 수목원 3. 천리포 항
화성시 남양성모성지 화성시에 있는 남양성모성지. 조선조말 신유박해를 비롯한 천주교 탄압으로 많은 사람들이 순교하였는데, 남양도 예외가 아니었겠지요. 그때 순교한 분들을 위해 1984년부터 성지개발을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성모성지 입구의 안내문과 통나무로 지은 초봉헌실입니다. 성체조배실, 석굴암처럼 암굴로 되어 있습니다. 겨울철 성모성지의 항공사진이명화 속의 성모님 이콘과 유사하다는 안내판과 사진들. 미사를 드리는 성당입니다. 그런데, 성당 안에는 십자가가 없고, 성당 전면 유리창 밖에 세워져 있습니다. 자비로우신 예수님 동상입니다. 예수님 동상 옆에 세워진 피에타 성모석상입니다. 죽은 아들 예수님을 끌어안고 슬퍼하는 성모님의 모습이 어찌 보면 동양적인 것 같기도 했습니다. 예수님 동상 주변에 조성된 묵주 알 위..
광화문, 삼청동, 경복궁, 청와대 주변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상 뒤편에 조성된 잔디 공원 삼청동 언덕, 북촌주변 - 내국인과 외국인이 뒤섞여 글로벌 정서가 넘쳐흘렀다.주변의 경관들은 국적 상실한 골목길.지도를 들고 주변을 탐색하는 일본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경복궁 강녕전 내부 임금님 침전, 금년엔 강녕전을 공개하는 해인가 보다. 향원정 옆에서 열변하시는 역사 해설가님조선 건국 공신 정도전 이야기부터 을미사변 명성황후 이야기까지 마이크도 사용하지 않고 구수하게 잘도 하셨다. 건청궁 안, 고종은 사대부풍 처소를 원했기 때문에 단청을 칠하지 않았단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된 곳. 경복궁 북문, 신무문 나가는 길 신무문 앞, 길 건너편이 바로 청와대 정문 신무문 서쪽길을 조금 내려가면 청와대 홍보관인 청와대 사랑채가 있다. 청와대 사랑채 2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