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346) 썸네일형 리스트형 질풍노도 해돋이를 보러 나갔지만, 수평선 위에 구름이 두텁게 앉았다. 겨울바다에는 파도를 나르는 세찬 바람과 바다 위를 떼 지어 나는 새떼 뿐이었다. 해도 떠오르지 않은 춥고 이른 아침에, 먹이를 구하기 위해 바람과 파도와 싸우는 새떼의 모습에서 비장함을 느껴 보았다. 솟아오르는 붉은 태양 대신에 생존을 위해 먹이를 구해야만 하는 새들의 비상을 보면서, 우리네 인생사를 돌아다보았다. 햇살이 퍼지고 구름이 걷히자, 바다는 망망한 수평선을 맑고 투명한 하늘아래 깔고 눕는다. 수평선 너머로부터 바람에 실려 떠밀려 온 물살들이 바위에 장렬하게 부딪힌다. 하얀 포말들을 허공에 뿌리고는 장렬하게 산화한다. 파도 잃는 바람은 나그네를 스치곤 땅 위로 고함치며 올라선다. 그 뒤로 또 밀려드는 질풍노도(疾風怒濤)! 疾風怒濤! 疾.. 연꽃 봄의 전령사 뒷공원에 활짝 핀 홍매화. 아직 날씨는 쌀쌀하고 추운데... ... 겨울 파도 2016년 1월 18일, 주문진, 겨울 파도 겨울 봄 여름에 내리지 않던 비가 가을부터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다. 겨울들어서도 비로 내리더니 갑작스레 새벽부터 눈보라가 휘날렸다. 바람이 불며 간혹 해빛까지 내비치며 내리던 눈이었는데 인적이 없는 곳엔 제법 수북하게 쌓였다. 가뭄때문에 고생한다더니 이젠 비때문에 가을걷이를 망쳤다고 투덜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러나 저러나 참 말많은 인간들이다. 제뜻에 제맘에 맞는 세상일이 얼마나 되랴 싶은데 투덜거림은 언제나 끝이없다. 자연에 겸손하며 살자. 가뭄의 고통을 느꼈거든 감사하며 살아가자. 내린 눈에 불편하긴 하지만 그렇게 반갑이 맞은 초겨울의 풍성한 눈이었다. 노고단 일출 지리산 온천지구에서 바라본 지리산 일출 조선청화백자전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청화백자전에서 인상깊은 몇 작품들... 2014 가을 가는 세월 잡을 수 있나. 금년 가을도 낙엽만 남기고 떠나가누나. 조여청사 모성설(朝如靑絲 暮成雪)이라. 길지도 않은 인생 하루살이 같아라. 임실 옥정호 붕어섬 설리 휴게소 주차장에서 국사봉 전망대에서 궁예미륵을 모신 국사암 쌍미륵사 언덕에서 내려오면서 포장도로가 오른쪽으로 휘어지고, 왼쪽은 차량 한 대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시멘트길인 작은 삼거리에 국사암 이정표가 서있었다. 가까운 거리에 있을 줄 알고, 삼거리 길가에 차를 세우고, 국사암을 향해 걸었으나, 좁은 시멘트길이 끝이 없어 보였다. 하는 수 없이 되돌아와 차를 타고 좁은 시멘트 도로로 조심스럽게 한참을 올라갔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을 피할 공간도 없어 불안했으나, 국사암 주차장까지 탈없이 올라갔다. 차량출입금지란 팻말을 보고, 까맣게 보이는 올려다 보이는 국사암을 보고 걸어 올라가려니 맥이 빠졌다. 그때, 승용차 한 대가 그 가파른 비탈길을 망설임도 없이 우리를 스쳐 올라갔다. 나도 용기를 내어 다시 차에 올라 비탈길을 오르는데, 그런 급경사는 처음 올라보는 .. 궁예의 전설이 깃든 쌍미륵사 대한불교 법상종 본산인 안성시 삼죽면 쌍미륵사. 규모는 작은 절이었지만, 궁예의 전설이 살아깃든 유서깊은 사찰이었다. 법상종이란 종파도 금시초문이었지만, 이 작은 절이 법상종의 총본산이라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황석영 소설 "장길산"을 읽으며, 소설 속에 미륵신앙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화순의 운주사를 일부러 찾아 가보기도 했지만, 수도권인 안성에 거대한 쌍미륵불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미륵불은 불교에서 석가모니불의 뒤를 이어 56억 7000만년이란 까마득한 훗날 홀연히 출현해 세 번의 설법으로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불이다. 가늠할 수조차 없는 긴 시간. 그러나 아무리 먼 시간이라도 미륵 출현은 날은 잡혀 있는 것이니 도래의 희망만큼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 오랜 시간 뒤 미륵이 도래하는 미래세상은 .. 전설이 숨쉬는 칠장사 이번 칠장사 방문은 세 번 째였다. 처음은 sbs에서 드라마 "임꺽정"을 방영할 때, 그 배경이라 해서 찾아갔었고, 두 번 째는 2년 전쯤, 이른 봄에 지나는 길에 들렀었다. 이번엔, 이른 봄의 모습이 쓸쓸해서 녹음이 우거진 모습을 보러 갔다.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명부전 아래 건물 툇마루에 앉았다가 문화해설가를 만나 이것저것 칠장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때마침 그분도 무료했었던지 칠장사에 얽힌 이야기를 구수하게 풀어냈다. 고려시대 혜소국사가 왕명으로 이 절을 중건하기 위해 내려왔는데, 퇴락한 사찰에 도적들이 숨어 살고 있었다고 한다. 7인의 도적들이 혜소국사의 도력에 감화되어, 지난 일을 회개하고 탈속하여 현자로 거듭나서 나한이 되었다. 우리나라에 나한 이야기가 있는 곳은 .. 안성 서일농원 전통 된장으로 농원을 일군 서일농원, 최근 MBC드라마 촬영지로 이름이 높아, 호기심에찾았다. 요즘은 집에서도 담그지 않는 된장, 간장, 고추장을농원에서 만든다는 것이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그덕에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를 얻고 있으니, 우리네 전통 조리법이 각광받는 것 같아서 보기에 좋았다. 널찍한 주차장엔 이미 많은 차들이 있었다. 마치관광지처럼 유명세를 타는 모습이었다. 안내도를 따라 농원을 한 바쿠 둘러 보았다. 넓은 부지에 아름답게 정원을 꾸미고, 주인이 만든 된장으로 맛을 내는 식당을 내고, 그 뒤엔 무수한 항아리들이 구수한 된장 냄새를 풍기는 장독대를 펼쳐 놓았다. 작은 구릉 같은 언덕엔 과수원을 꾸미고 전망 좋은 곳곳에 정자를 만들어 운치를 주었다. 이른바 녹색 산업이다. 우리의 먹거리를.. 수원 화성, 남수문 복원 수원화성 축성과 함께 1796년 완공된 남수문은 일제강점기인 1922년 대홍수로 유실된 후, 1927년 완전 철거되어 사라진지85년 만에 복원되었다.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인근의 남문시장과 지동시장 사이를 흐르는 수원천에 세워진 남수문은 북쪽의 수문인 화홍문과 짝을 이루는 화성의 수문이다. 남수문 아래 수원천은90년대 복개되었다가, 작년에 복개구간을 해체하여, 예전의 하천으로 되돌린 바 있다. 곰배령 가는 길목 "세파에 지치고, 병든 자들이여! 이곳으로 오라." 병들고 찌든, 세속의 삶에 지친 사람들의 재활처라는 곰배령. 내비게이션 달랑 하나 믿고 닥치고 찾아갔다. 조침령 터널 부근의 작은 삼거리에서 북쪽의 좁은 길로 접어들어, 계곡을 왼쪽에 끼고 한참을 올라가니 작은 다리가 있는 삼거리에서 포장길은 끝이 났다. 길가 이정표에 곰배령 주차장 안내판을 보고 조심스럽게 좁은 길을 터덜거리며 올랐다. 비포장 도로여서 먼지가 몹시 났다. 맞은편에서 차가 내려오면 길가에서 대기하다가 천천히 교행했다. 길 오른쪽으로 진동분교장이 있고, 드믄드믄 펜션들이 들어서 있었다. TV에서 보던 산골 풍경이 아니라 별장 같은 펜션 건물들이 대부분이어서 적잖이 실망했다. 이윽고 찾아간 주차장에는 차들이 가득해서 들어가지 못하고, 그 주.. 추억 속의 강촌역 경춘선 복선 전철이 개통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갈 강촌역은 폐쇄되고 철로가 뜯겨나갔다. 젊은이들로 붐비던 플랫폼엔 포클레인이 시멘트를 뜯어내며 새로운 공사를 하고 있었다. 인근의 레저촌엔 사발이 대여 영업이 한창이어서, 좁은 길을 사발이 오토바이들이 떼 지어 다니고 있었다. 향후 어떤 모습으로 바뀔는지... 간간이 역사를 찾는 사람들은 퇴락한 역사 안에서 추억이라도 캐내듯이 지난날의 흔적들을 더듬고 있었다. 기차가 서던 플랫홈엔 철로가 없어졌다. 강촌역 아래, 한산해진 카페 풍경 강촌역에서 춘천 방향으로는, 강촌 IC에서 춘천으로 나가는 새로운 교량이 놓이고 있다. 김유정 문학촌 김유정역에서 도보로 5분 정도 걸어가면 그의 생가터에 김유정 문학촌이 있다. 1908년 1월 11일 춘천에서 태어나 만 30년도 채우지 못하고 1937년 3월 29일 타계한 그의 고향인 춘천시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토속적이고 해학적인 소설들을 써내었다. 실레마을 부자집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 살아생전엔 호강을 누리며 자랐으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형의 가산탕진으로 어려운 생활을 겪었다. 일찍이 서울에 유학하여 휘문고보(徽文高普)를 거쳐 연희전문(延禧專門) 문과를 다니다 그만두었다. 대학시절 당대의 유명한 기생 박록주를 짝사랑하며 이룰 수 없는 사랑에 폭음하며 실의에 빠져들기도 했었다. 이후 고향 실레마을로 낙향하여 금병의숙을 세워 고향사람들의 문맹퇴치 운동을 하기도 했었다. 이때 겪은 고향사람들.. 사라지는 낭만 열차, 김유정역 경춘선 전철이 개통이 되면서 김유정역은 폐쇄되어, 앙상한 건물만이 홀로 세월의 풍상을 겪고 있었다. 본디 소설가 김유정의 고향 마을이자춘천의 남쪽인 이곳 실레마을은 일제 강점기인 1939년 7월 25일 사설철도인 경춘선이 놓이면서 신남역이 들어섰었다. 그 후, 춘천 - 서울간 완행열차만 운행되다가 보통급행이 생기며, 무궁화호가 지나다녔었다. 김유정을 기리고자 2004년 12월 우리나라 철도역에 최초로 역이름에 인명을 붙여 김유정역으로 개명하였다. 2010년 12월 12월 21일 경춘선 복선 전철이 개통되면서 본래 있던 이 역사는 폐쇄되고, 역사의 대각선으로 맞은편에 새로운 전철역사가 들어서게 되었다. 과거의 낭만을 지키려는 듯 퇴역한 무궁화 디젤기차가 쩍쩍 갈라진 누더기 페인트 옷을 입고 춘천을 향하여 .. 밀레를 닮은 화가, 박수근 미술관 박수근, 그는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며 세상으로 나왔다. 어려서부터 그림솜씨가 뛰어나 그의 실력을 인정받았기에, 궁핍한 그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준 후원자들이 있었다. 국민학교시절 일본인 교장 선생님, 청년시절엔 춘천의 일본인 지방관리와 한국전쟁 이후 미국인 밀러 부인 등, 이들은 진흙 속에 묻혀 있던 박수근을 도와,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만들었다. 한국전쟁 중, 금강산 아래 금성(지금의 금화)에서 가까스로 월남하여 처남 집에 얹혀살며 생계를 위해 미군부대 PX에서 미군들의 초상을 그렸다는 사실은 과거 100여 년의 우리 역사가 이 땅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과 시련이 있었는지를 알게 해 준다. 박수근 미술관에 들렸다가, 그의 행적을 찾.. 세월이 비껴 지난 왕곡마을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 왕곡마을은 함경도 민속마을이라 해야 알맞겠다. 마을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경주 양동마을과 비슷해 보였으나 양동마을에 비해 양반과 상민 가옥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다. 14세기 고려말 두문동 72현 중의 한 사람인 양근 함씨 함부열이 이성계의 조선건국에 반대하여 간성에 낙향하여 은거하였다. 그 뒤, 그의 손자 함영근이 이곳 왕곡마을에 정착한 이후 함씨 후손들이 대대로 이곳에서 생활해 왔다. 특히, 동학혁명 때 동학민들이 흘러들었는데, 이때를 전후하여 함경도식 전통한옥과 초가집들이 원형을 유지한 모습으로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이런 연유로 왕곡마을은 고려말부터 양근 함씨와 강릉 최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600년 세월을 이어온 전통민속마을로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0년 .. 동해 최북단, 대진항 풍경 동해 최북단 대진항에는 이제 아카시아 꽃이 한창이었다. 파아란 5월의 하늘 아래 싱그러운 신록사이로 펼쳐진 맑은 동해는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남북분단의 현실이 아니었다면 어디보다도 평화로울 대진항은 표면적으로는 긴장감을 감추고 있었다. 주민들의 대부분은 북한이 고향으로 그리운 고향 근처에 살고 싶어 이곳에 산다고 한다. 넓은 동해로 나가 해안을 바라보면, 막힐 것 없이 탁 트인 바다에서 해금강도, 금강산도, 먼발치 바다에서나마 조상들의 뼈가 묻힌 고향땅도 바라볼 수 있기에,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 38 이북 땅인 이곳은, 속초부터 주민들의 말씨도 함경도 말씨에 가깝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이념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한 겨레 한 형제가 억지로 갈라서서 철천지 원수가 되어 살아가야 하는지, 분단의.. 동북단 최고의 휴양지 화진포 1. 화진포 해변 건봉사 다음 코스로 찾은, 70년대 친구와 들렸었던 화진포. 넓은 모래사장과 호수의 맑은 물을 즐길 수 있는 동해안 북단의 화진포 해변이다. 맞은편 산자락 중턱 건물은 수복 전 김일성이 묵었다는 김일성 별장이다. 김일성 별장 앞 화진포 호숫가에는 경쟁하듯, 자유당 시절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의 별장과 대통령 이승만 별장이 있다. 38 이북의 서늘한 기후에 바다와 호수를 관망하며 즐길 수 있어, 한 때 최고의 권력을 지녔던 사람들이 앞다투어 별장을 두고 휴양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화진포의 아름다움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5월의 뜨거운 햇볕이 여름을 방불케 했다. 남북분단의 현실이 아니라면 경포해변만큼이나 유명한 명소가 됐을 것이다. 다행히도 지자체의 노력 탓인지, 주변이 아름답게 정비되어 .. 금강산 건봉사 막 동터오는 햇살을 등 뒤로 받으며 찾아간, 동해안 최북단,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에 있는 건봉사였다. 6.25 전쟁 때, 치열한 전투로 소실되었던 것을 1994년 이후 점차로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단다. 임진왜란 때 왜구가 통도사에서 가져간 부처님 진신치아사리 12 과를 임진왜란이 끝나고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찾아와 건봉사에 봉안하였다. 이후조선 경종 때 사리탑을 만들고 적멸보궁을 지었는데, 현재의 적멸보궁은 1994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경내엔 아직도 휑한 건물터가 많이 남아 있어서, 오늘의 건봉사는 새로운 사찰로 만들어 가고 있는 절이라 하겠다. 한동안 왕래할 수 있었던 금강산 방문이 끊어지고, 냉전시대 이상으로 남북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이때, 우리가 갈 수 있는 최북단의 사찰이 바로 건봉.. 환구단의 봄 서울시청 근처에 갔다가 환구단을 찾았다. 환구단 주변의 나무들에 녹음이 깊어 겨울 분위기와 사뭇 다르게 보였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후, 제대로 된 가치관의 정립도 없이, 외형적으로만 치달아 온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환구단이 아닌가 싶다. 민족 자존의 자긍심은 현대식 빌딩들의 뒷골목에 묻어 버리고, 도시의 겉만 화려하게 치장하고는 세계 선진국으로 진입했느니 어쩌니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에게 과연 '정의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집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수한 사건 사고들에 온몸이 움츠려 들기도 한다. 믿을 곳이 점점 사라지는 현실에 공포감마저 일어나 잠자기 전에 현관문의 잠금장치를 확인하는 버릇까지 생겨났다. 별로 가진 것도 없.. 간송미술관, 진경시대 회화대전(眞景時代 繪畵大展) 간송미술관을 다녀왔다. 1년에 두 번만 볼 수 있는 기회라일요일임에도 번거로움을 각오하고 미술관을 방문했으나, 우려는 사실이 되어, 진경산수화들을 보기까지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3시간여를 서서 기다려야 했다. 오전 9시 20분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 12시 10분에야 전시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줄은 미처 몰랐다. 나야 간송미술관 방문을 벼르고 있던 처지로, 첫 방문길이었으나, 여타의 관람객들은 매우 익숙한 모양새였다. 오랜 시간 끝에 입장한 관람객들은 작품 하나하나에 시선을 고정한 채 움직이려 들지도 않았다. 미술 전시회에 가보았어도 이토록 진지하게 감상하는 관객들은 처음 보았다. 무료입장이지만, 기다린 그 시간에 대한 보상심리로 애착을 갖는 것인지, 아니면.. 경복궁의 밤 경복궁 야간개장, 구름같은 인파가 몰렸다. 특히 경회루 연못가엔 발디딜 틈조차 없었다. 겨우 간신히 비집고 들어가 몇 장을 촬영했다. 대단한 정열을 지닌 포토맨들이었다. 아쉬운 것은 경복궁 근정전과 경회루 까지가 개방 공간이었다. 향원정의 야경도 아름다울 것 같았는데... 황매산 철쭉꽃 산행기 장박마을에 도착한 시각이 오전 11시 10분, 마을 입구 다리 앞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마을옆길을 통과하여 주능선이 있는 너박이 쉼터까지 굽이굽이 비탈길을 올라갔다. 숲이 우거져 따가운 햇살을 피할 수 있었는데, 휴일날이라 사람들이 많은 게 흠이었다.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많아서, 모퉁이 돌아서는 구비마다 힘들어 하는 여성분을 많이 보았다. 요즘 산악회는 여성들이 대세인가 보다. 화려한 등산복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사람들이 많다 보면 모두가 무신경해져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 좁은 길 한가운데서 길을 막고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요즘 누구나 다 들고 있는 스틱을 함부로 휘두르기 일쑤였다. 이웃을 배려하는 등산매너가 아쉽다. 예전에는 산에서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서 서로 인사하고.. 산청 황매산 철쭉 말로만 들었던 황매산 철쭉꽃은 정말 대단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행에 민감한 건 정말 우리의 기후와 자연 때문이겠다. 그래서 분명하게도 메뚜기는 한 철이겠다. 산청군 장박마을에서부터 비탈진 산길을 올라 능선 산행에 접어들면서부터 사방은 철쭉꽃 천지였다. 내 생애 이렇게 많은 철쭉꽃을 본 건, 이번 산행이 처음이었다. 소백산 산행 때는 철을 놓쳐 시들어가는 철쭉꽃을 보곤 여간 실망했던 것이 아니었는데, 황매산 철쭉꽃은 정말 일품이었다. 때 맞추어 철쭉꽃을 보러 나온 전국의 등반객들 또한 대단히 많았다. 이따끔 길목마다 앞으로 나가기 위해선, 추석날 귀성열차표 사는 줄만큼이나 길게 줄을 서서 반걸음씩 움직였다. 인파 못지 않게 폴싹거리는 먼지도 대단했다. 이토록 철쭉꽃이 활짝 핀 장관을 본다면, 대여섯 시.. 이전 1 2 3 4 ··· 13 다음